김목의 호남 기행
-영산강을 따라서 (5)
황룡의 발톱은 몇 개일까?
용의 암수는 갈기와 뿔로 구별한다. 갈기가 부드럽고 뿔이 통통하면 암룡이다. 반면 갈기가 날카롭고 뿔도 끝이 뾰족하면 숫룡이다. 용의 권위는 발톱 개수로 상징한다. 발톱이 7개이면 제왕이다. 5개는 분봉왕이고, 3개는 태자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황룡강의 황룡은 발톱이 몇 개일까?
부족국가 시절 황금빛으로 익은 오곡백과를 수확하고 황룡강변에서 제천의식을 올릴 때다. 황금빛 예복을 갖춘 부족장이 강물에 발을 담그고 하늘을 향해 기원을 하는 모습은 필시 한 마리 황금용의 모습이었으리라. 황룡이란 이름을 그리하여 얻었으리라.
장성 들녘을 적시는 이 황룡강은 영산강의 제1지류다. 장성군 북하면 입암산에서 발원, 담양군 월산면 병풍산 용흥사계곡에서 내려온 북하천을 받은 뒤 장성호에 잠시 들렸다, 월평 너른 들판으로 나오는데 이곳은 동학 전적지다.
1894년 음력 4월 21일이다. 동학농민군은 함평을 출발하여 장성 황룡강 주변의 월평장터에 진을 쳤다. 관군을 이끌고 온 홍계훈도 22일 장성에 잠입했다. 이들이 농민군을 만난 것은 다음날 23일 점심 무렵이다.
당시 4천여 명의 농민군은 월평장터와 황룡강변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여기저기 밥 짓는 연기가 감돌고, 이어 삼삼오오 둘러앉아 기름장에 밥을 찍어 먹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림처럼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홍계훈의 명으로 농민군을 살피러 나온 대관 이학승의 눈에 농민군은 간단하고 쉬운 상대로 보였다. 결국 이학승은 동정만 살피고 접전하지 말라는 홍계훈의 말을 무시하고 대포를 쏘아 농민군 4~50명을 쓰러뜨렸다. 잠시 우왕좌왕하던 농민군은 곧 전열을 가다듬고 세 방향에서 관군을 향해 압박해 들어갔다.
이때 사용된 것이 장태다. 장태는 원래 짐승들로부터 닭을 보호하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닭장이다. 농민군들은 이 장태를 사람 몇이 숨을 수 있게 크게 만들고, 그 안에 볏짚을 채웠다. 대나무가 총알을 튕겨냈기에 장태는 효율적인 공격용 방패가 됐다.
이 장태를 고안한 농민군 지도자 이방언은 그의 고향인 장흥 관산의 지명을 따 ‘관산이장군’, 또는 ‘남도장군’, ‘장태장군’이라고 불렸다.
이 황룡촌 전투는 농민군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또한 이 승리의 여파로 전라도 감영이 있는 전주성을 별 저항 없이 점령했다.
그날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잘 정비된 황룡강은 남도의 젖줄이며 생명체의 산실이다. 용과 같은 걸쭉한 인물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원동력이다. 역사는 되풀이니, 지난날의 실패는 교훈이 되고 영광은 더욱 빛날 것이다.
흥성대원군 이하응이 호남지역을 평하던 중 장성을 ‘문불여 장성’이라 했다 한다. 문장은 장성만한 곳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어디 문장뿐인가? 글에는 정신이 실리고 행동이 수반되는 것이다.
황룡면 맥동 입구에 붓모양의 바위가 있다. 이 필암바위의 정기로 태어났다는 하서 김인후의 필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1868년) 때도 훼철되지 않았고 일제강점기와 6.25 때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선생이 세상을 뜬 뒤, 이웃에 살았던 오세억이란 사람이 죽었다가 하루 만에 살아나서, ‘자미궁에 갔더니, 신선인 하서 선생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며 돌려보내주었다’고 말했다 한다. 필시 선생이 황룡의 화신이었지 않을까 여겨지는 일화다.
장성군 진원면 고산리에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숭앙받는 노사 기정진 선생의 고산서원이 있다. 또 장성읍 장안리의 봉암서원에서는 임란 때 화차를 발명, 행주대첩의 쾌거를 올리게 했던 망암 변이중 선생을 뵐 수 있다.
조선시대 청백리의 상징인 아곡 박수량과 지지당 송흠 선생도 이곳 장성에서 뵐 수 있다. 아곡은 38년, 지지당은 51년 동안 고위 공직자로 살면서 뇌물은커녕 밥 한 그릇, 술 한 잔 얻어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부당한 뒷거래도 없었다. 황룡면 금호리의 아곡 선생 백비, 삼계면 관수정에서 지지당 송흠 선생의 맑고 깨끗한 삶을 배울 수 있다.
또 장성읍 오동촌길 72-1에는 임란의병장 고경명 선생 일가의 묘소가 있고, 또 황룡면 홍길동로 431은 허균이 쓴 홍길동의 생가이기도 하다.
백양사 가는 길 북하면 쌍웅리에 장성호 문화예술공원이 있다. 이곳에서 장성 출신 영화감독 임권택과 그의 영상세계, 그리고 오솔길을 산책하며 낯익은 시서화는 물론 조각가 박수근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예술공원 전망대에 서면 장성호가 한 눈에 들어오고, 아득히 황룡강이 흘러간다. 그렇다. 황룡은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의 발톱을 가진 용이다.
정읍과 장성 경계 입암산의 입암산성입니다. 호남고속국도에서 바라보면 갓바위가 있는 산입니다.
입암산 갓바위입니다.
갓바위에서 보면 곰소항이 아득히 보인다 합니다. 물론 고향이 그쪽인 분들에게만요. ㅎ
입암산 갓바위에서 바라 본 서쪽입니다. 곰소와 위도가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