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년경 여름에 영국에 출장 갔다가 맨체스터 와 리버풀을 거쳐
북아일랜드 벨파스터 까지 가보았는데. 맨체스터에는 웨지우드 찻잔그릇이 유명하다. 벨패스터는 리버풀에서 비행기로 한시간정도 거리에 있고, 그들 설명으로는
500 년 정도 전에 전쟁에서 패한 사람들이 이곳으로 도피해 왔다고함니다. 6/ 2 일에는 토트넘과 리버풀이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갖는다고 함.
이 영국이란 나라는 북아일랜드 공화국, 스코트랜드와 영국 3 나라가 합쳐서 대영제국이고 파운드화도 엘리자베스여왕이 그려져있는데 환율이 조금씩 다른 화폐이다. 리버풀이 기네스 흑맥주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리버풀은 비틀즈의 본고장이다,그래서 공항 이름도 존레논 공항이다.
산업 혁명과
더불어 영국 제1의 항만으로 성장하였다. 원자재 수입과 공산품
수출은 물론이고 대서양 노예 무역 또한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 때문에 리버풀은 세계적인 해운사인 커나드(Cunard),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의
본거지였으며 RMS 타이타닉(RMS
Titanic), RMS 루시타니아(RMS
Lusitania), RMS 올림픽(RMS
Olympic), RMS 퀸 메리(RMS Queen Mary),RMS퀸 엘리자베스(RMS
Queen Elizabeth)와 같은 거대 선박의 등록 항구이기도 했다.
이 도시에서 결성된 비틀즈로 인해 종래의 산업 도시에서 관광 도시의
이미지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랜드 내셔널 경마는 매년 도시의 외곽에 있는 에인트리
경마장(Aintree Racecourse)에서 열린다. 도심의
일부 지역인 피어 헤드(Pier Head), 앨버트 독(Albert
Dock) 및 윌리엄 브라운 스트리트(William Brown Street)는 2004년에 유네스코에 의해 리버풀
해상 상업 도시(The Liverpool Maritime Mercantile City)로써 세계유산 지위를 부여받았다. 2007년에 창립 800주년을 맞았으며 2008년 노르웨이의 스타방에르와 함께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토트넘은
옛날에는 별볼일 없는 소도시였는데 요즘 축구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섰다.( 이곳은 필자가 가지않은 도시임)
런던
북쪽으로 기차로 한시간정도 거리인듯하다.
금년 5월 4일 오전(한국시간) 손흥민이 역사적인 개장 1호 골을 터트린 토트넘 홋스퍼의 새 홈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사진)은 최첨단 시설을 갖춘 관중친화적
구장이다.
이날 개장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을 짓기 위해 무려 10억 파운드(약 1조5000억 원)가 투입됐다. 9층 규모에 6만2000석을 갖췄다. 관중 수용력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구장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인 올드 트래퍼드(7만5000석)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시설은 단연 으뜸. 일단 다용도 구장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축구는
물론 잔디 교체를 통해 미국프로풋볼(NFL)을 치를 수 있다.
벨파스트는
방문했을 당시그때에는 심한분쟁은 없었지만 그래도 시내 체그포인트같은데에 장갑차가 2 대정도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18~19세기에는 아일랜드 섬의 상공업 중심지였으며, 20세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잠시나마 더블린을 제치고 아일랜드 섬 최대의 도시였기도 했다. Lagan 강을 끼고 있으며 조선업에 유리한 위치인데, 타이타닉 호가 벨파스트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것도 그 때였다. 분쟁의 원인은 구교와 신교의 갈등으로 시작됨.
분쟁으로 시내에 폭발물이 터질때
스타우드 맥주집
타이타닉호 기념추모관
벨파스터 성
침몰한 타이타닉 호를 기념해 세운 타이타닉 벨파스트(Titanic
Belfast) 박물관은 바로 항구옆에 위치해 있다. 이곳 타이타닉 쿼터(Titanic Quarter) 지역 아파트에는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며, 창고를
개조해 만든 바와 레스트랑이 늘어선 카시드럴 쿼터(Cathedral Quarter) 지역도 방문객이
자주 찾는 곳이다.
벨파스트의 고유한 스타우트(stout)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선플라워 바(Sunflower Bar)를 추천한다. 선플라워
바의 입구에는 테러가 잦았던 시절 출입자 검문하기 위해 만든 철문이 남아 있다. 철문은 이제 녹색 페인트와
꽃 장식으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1960년대말 이후부터는 가톨릭교도와 신교도간에 종교갈등의 긴장과 폭력이 높아졌다. 최근에는 평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도 종파별로 거주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굿 프라이데이 협정 이후 허구한날 총폭탄이 날아다니던 험악한 전쟁 시절은 끝났지만, 여전히 도시 곳곳에 peace line이라 하며 충돌 소지가 있는 민족주의(친아일랜드) 계열 주민과 연합주의(친영국) 계열 주민들 거주 구역 사이에 쳐진 장벽들과, 여기에 그려진 전투적인 정치적, 역사적 벽화들을 보면 여기가 최근까지 분쟁지역이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물리적 충돌은 이제 확실히 수그러들었어도 종종 경찰차나 반대 집단의 퍼레이드에 화염병을 던지고 튀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폭력적인 행위가 종종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IRA 조직은 공식적으로 무장해제했지만 "언제 다시 무기가 필요할지 모른다"라는 마인드로 여전히 당국 몰래 총기를 숨겨놓은 경우는 흔한 편이며, 불법 무기 소지로 누가 체포당하는 일이 2010년대 현대 까지도 종종 있었다. 당장 경찰차만 보더라도 이곳에서는 일반 차량이 아니라 중무장한 방탄 장갑차가 기본이다.
여기까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