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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 참 청정하다. |
바다가 청정하고 출렁거린다. 사람의 마음도 늘 동요로 일렁거릴 적이 많다. 마음을 잡는 것이 평화로 나가는 길이다. 해인(海印) 이라는 말귀만 실천하고 살아도 세상살이가 무탈하다. 한시도 쉬지 않고 출렁거리는 바다 표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사람은 평화의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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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강은 죽막동 후박나무 군락지를 돌아 수성당(水城堂)이 있는 용두산을 돌아 대마골, 여울골을 감도는 층암절벽과 암반으로 이어져 나가는 약 2km 구간입니다. 명칭은 당나라 시인 소동파가 놀았다는 중국 적벽강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졌습니다. 절벽의 암석과 자갈 등이 적색을 띠고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赤壁江 적벽강은 변산반도에 위치하며 변산반도국립공원에 해당합니다. 용두산 절벽 위의 수성당을 비롯하여 그 앞 절벽 밑 대마골ㆍ여울굴의 철마(鐵馬) 등은 어로민속과 토속신앙의 전설이 많은 지역입니다.
채석강- 전라북도 기념물 제28호이며,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변산반도 서쪽 끝의 격포항(格浦港) 오른쪽 닭이봉(鷄峰)일대의 1.5㎞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총칭하는 지명으로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흡사하다고 하여 ‘채석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변산팔경 중의 하나인 채석 범주(彩石帆舟)가 바로 이곳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층(斷層)과 습곡(褶曲)이 유난히 발달된 기암절벽이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곳곳에 해식동굴(海蝕洞窟)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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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대로 확인하고 싶어 숙소에 모닝콜을 부탁하는 편이 아닙니다. 직접 통화하며 일행들의 컨니션을
챙기는 편입니다. 이러한 연유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 나에게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잠은 언제 주무시는지요? 오래된 습관이기에 괜찮습니다. 여행이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옭매고
있는 일상적인 습관에서 벗어나는 기회입니다. 일상에서 젖은 습관을 잠시 내려 놓는것이 여행입니다. 여행을 처음
시작한 이들은 바로 나의 마을을 떠나 내가 필요한 것을 쟁취 목적으로 이웃마을과 전쟁하기 위하여 나의 마을을
떠나는 침략자들이 만들어낸 전쟁놀이가 바로 여행의 효시입니다. 무엇인가 쟁취하려면은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본능적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그때 그때 사황에 맞춰야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입니다. 늘 여행 동무인 총무님께
핸폰으로 나만의 모닝콜인 전화를 하였습니다. 전달하였다. 늘 그렇듯 준비과 끝나는대로 전화를 부탁하고 내가
할 일을 이어 나갔습니다. 차는 이미 차는 세차와 함께 소독까지 완료하였으니 격포해안 야영장 모래밭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입실하는 사이 옆 엘리베이터에서 형제들 목소리가 낭낭하게 들린다. 로비로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카메라와 핸폰을 챙기는 사이 전화를 주셨다. 로비밖에서 조우 새벽에 일어나 하루 일정을 체크하며 결심한대로
동내 한 바귀를 돌고 이 지점에 도착하였다.
회화나무, 당산 나무 모습이다. 귀히 여기던 나무라 궁궐에는 꼭심는 나무였다. 해미읍성 안에 심어진 회화나무는 천주교
신자들을 박해하며 철사로 머리채와 목을 묶어 처형장소로 삼기도 하였다. 간단한 목례로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며 순교
자들처럼 예수 마리아를 불러 보았다. 당연히 마음으로다. 드러내는 것보다 드러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는 좋아한다.
평생 이 가치를 위하여 사는처럼 살아 온 사람이다. 늘 있는 그 자리에 있는 산이 나는 참 좋다. 그래서 그랬을까? 점점
산이 되어 갔다.지금도 매일 산이 되어 가는 중이다.
격포에 있는 숙소 소노텔에서 이렇게 걸어 왔습니다. 빈 터에 쌓인 노적가리도 보며 저 멀리 내변산 능선 아래에 해가 있는 기운도 느껴가며 걸어 왔습니다.
시간상, 이제는 이 해안을 놓아주어야 할 시간이다. 채석강 모습 뒤로 어제 지난 온 새만금 길이 보였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긴 방죽 길, 새만금 방파제, 유명한 일화를 많이 많들어 낸 역사였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일화도 전설이 되어 후손들에게 전달된 답니다.차로 달려 왕복 80분이 소요되는 곳입니다. 그 길을 달리며 일몰을 보고 싶고, 또는 실내를 나름대로 정서적, 해안 픙경에 맞춰 꾸며 놓고 군산 100년사를 복도 양 벽에 사진를 전시 해 놓은 주인의 수고를 잊지 않으려 늘 가면은 복도부터 챙기는 습관이 생긴 곳입니다. 어제 저녁으로 흰포도주와 함께 코스 회요리를 챙겼던 곳이 보였습니다. 어머님의 큰 언니, 정숙이 누나 엄마, 저에겐 큰 이모님이 사시던 곳, 큰 이모부님이 해운기술자 였기에 한국동란 때 함께 피난을 가셨다가 군산이 해운사업을 하기에 좋다는 판단으로 머문 후 지금까지도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사업을 물려 받아 전부 태평하게 사신답니다. 어제 일정상 밥 때를 못맞춰 앉아서 일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참고로 그곳 부근에 일몰 사진 하나를 올리겠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저녁을 먹었던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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