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최후의 증인>
1. 2020년, 40년 전 ‘광주항쟁’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며 수많은 의문은 여전히 미해결 상태이다. 광주를 휩쓸었던 비극은 그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뿐 아니라 후에 그것을 들었던 사람들에게도 거대한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1950년 한반도를 초토화시켰던 전쟁의 비극이 1980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6.25는 결코 누구에게도 소문이 아니었으며 피와 공포로 기억되는 생생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에 만들어진 6.25 관련 영화를 보는 것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이성적 시선을 넘어서는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2. 1980년 개봉된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은 김성종 작가의 원작을 영화로 재현하였다. 연이어 일어났지만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던 두 개의 살인사건이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6.25때 지리산 빨치산과 연관되었음이 밝혀진다. 서장의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을 통해 지역유지 양달수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과 탐문 수사를 통해 비극적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전쟁의 막바지 지리산 빨치산 대장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딸(지혜)을 가장 믿을 수 있는 부하에게 맡기고 죽음을 맞았으나, 부하는 딸을 겁탈했을 뿐 아니라 도망다니던 빨치산들은 딸을 성노리개로 학대하였던 것이다. 딸의 유일한 보호자는 우연하게 빨치산 활동에 개입하게 된 마을 머슴 ‘황암(황바우)’였다.
3. 빨치산들의 자수 과정에서 대다수 공비들은 죽음을 당하고 살아남은 것은 부하와 황바우 그리고 딸에 불과했다. 하지만 황바우는 탈출 과정에서 딸을 괴롭히던 동료(한동수)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20년이 넘는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딸은 청년단장이었던 양달수의 첩으로 살게 된다. 딸은 황바우의 투옥과정에서 그를 기소한 김검사에게 몸을 바치면서까지 황바우를 구하려했으나 철저하게 배신당한다. 그런 후 20년 지난 후에 양달수와 김검사가 살해당한 것이다. 형사는 결국 두 사람의 죽음이 과거의 비극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4. 영화는 80년대 영화의 특징인 일종의 ‘로드무비’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사와 탐문 과정에서 형사는 한반도 곳곳을 떠돌며 그 과정에서 황량하고 쓸쓸한 우리의 국토가 정직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80년 우리의 땅과 마을은 아직도 허술하고 편의와는 거리가 먼 고통을 품고 있는 아픔의 장소였다. 전쟁의 비극은 여전히 마을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과거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과거를 은폐하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온갖 괴변을 통해 생존하고 있었다.
5. 결국 살인사건의 실체는 탐욕과 거짓으로 평생을 살았던 존재들의 서로를 향한 총질에서 시작되었음이 밝혀진다. 황바우가 죽였다던 한동수는 김검사와 양달수의 음모와 결탁하여 황바우를 감옥에 가두고 본인은 숨어서 살아간다. 시간이 지난 후 서로는 서로를 이용하다 불안을 느낀 한동수가 태영을 부추겨 두 사람을 죽인 것이다. 하지만 비극은 수사 과정에서 증폭된다. 딸이 겁탈당한 후 낳은 아들(태영)은 황바우 가족의 보호를 통해 성장하였고 황바우는 출옥했지만 살인사건의 의심이 아들에게 향하자 황바우는 죄를 스스로 뒤집어쓰기 위해 자살하였으며 그러한 죽음을 본 지혜 또한 30년에 가까운 비극 앞에서 황바우에게 속죄하기 위해 그의 관 앞에서 자살한다. 하지만 죽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사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죽인 형사 또한 사건이 마무리된 후 스스로 총을 물고 죽음을 택한다.
6. 영화는 수많은 죽음으로 뒤범벅이 된다. 죽음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구분된다.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전쟁 속에서 타인을 이용했고 그것을 통해 성공과 출세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죽음이다. 하지만 영화가 뒤로 갈수록 억울한 사람들의 자살이 연이어 이어진다. 전쟁의 상처 속에서, 인간의 배신 속에서,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이 전쟁이 가져왔고 전쟁을 이용했던 인간들의 추악함을 통해 또다시 파멸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 형사의 죽음은 묘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했음에도 살인을 저질러 피의자가 되었고, 인간에게 검증받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역사의 아픔 속으로 소멸되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7. 추악한 역사적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항상 말한다. ‘역사가 추후 진실을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에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평가받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영화 <최후의 증인>은 역사가 하지 못한, 국가가 망각한, 참혹하고 불행한 약자들의 고통에 대한 진한 허무가 배여 있다. 김검사와 양달수의 죽음은 역사의 무능에서 파생된 해결되지 못한 비극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과거의 불행은 또다시 유사한 고통으로 똑같이 반복되었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불안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 뿐이다.
첫댓글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비극적 굴레, 인간 본성의 모습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