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CONCACAF는 프랑스령 기아나에게
말루다가 골드컵 본선에 출장할 수 없다는 통보를 내렸다.
'프랑스령 기아나'. 사실 자주 들어본 이름은 아닐 것이다. 아마 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지리 시간에 아직까지 독립하지 못한 유일한 남아메리카 지역, 혹은 과학 시간에 우리별 1호를 발사했던 기아나 우주 센터의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프랑스 관광청에도 소개가 되어있는 엄연한 프랑스의 영토이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정글로 덮인 이 땅은 여행 후기를 찾아봐도 몇 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미지의 땅이다.
프랑스령 기아나는 우리에게 우주 기지를 통해서 알려져있다.
이마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축구에 있어서도 아직 기아나는 미지의 땅이다. 프랑스의 영토였던만큼 축구의 인기는 높지만, 인기에 비해 수준은 높지 않다. 다른 프랑스의 해외영토 누벨칼레도니와 타히티가 FIFA에 가입한 것과 달리, 아직 FIFA의 정회원국도 아닌 상태이다. 더군다나 지리적으로는 남아메리카에 위치하고 있으나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축구 최강국들이 버티고 있는 CONMEBOL(남미 축구 연맹)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CONCACAF(북중미 축구 연맹)에 가입해있는 상태이다.
파리 생제르망의 레전드 베르나르 라마는 청소년기를 기아나에서 보냈고,
축구도 그 곳에서 배운 채 본국으로 돌아갔다.
1946년에 프랑스령 기아나 축구협회가 창설되고, 1961년에 리그 시스템을 만들어 본국 프랑스의 FA컵 개념인 쿠페 드 프랑스의 참가할 수 있는 탄탄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까지 그렇다 할 스타 하나 없이 지내온 프랑스령 기아나였다. 스타 선수를 고파하던 프랑스령 기아나의 주민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플로랑 말루다였다. 말루다 이전 베르나르 라마가 기아나 출신의 프랑스 국가대표로, 98년 월드컵과 유로 00에 출장한 바 있으나, 대마초로 구설수로 올랐던 사건과 그가 기아나 태생이 아닌 청소년기를 잠시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몸담았기에 말루다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하였다.
첼시 시절의 플로랑 말루다.
말루다는 프랑스령 기아나 땅에서 태어난 선수로는 최초로 프랑스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FIFA 주관 대회에 출장한 선수이다. (06년 월드컵, 10년 월드컵) 비록 나를 비롯한 첼시 팬들에게는 말칼족의 일원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선수는 아니나 (물론 항상 못햇던 것은 아니다. 09/10 시즌 활약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월드컵을 두 번이나 나가고, 프랑스 국가대표로써 80번이나 A매치에 출장한 그는 아직까지도 프랑스령 기아나가 배출한 최고의 축구선수로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달 즈음, 깜짝 뉴스가 들려왔다. 이 프랑스령 기아나의 영웅이 고향을 대표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얘기이다. 가장 먼저 그가 아직 현역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 놀랐고, 프랑스령 기아나가 골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는 점에 한번 더 놀랐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이었던 그가 프랑스령 기아나 국가대표팀으로 뛸 수 있다는 것에 마지막으로 놀랐다!
첫 골드컵 본선 진출을 기뻐하던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팀.
놀랐던 점들에 하나하나씩 답변을 달자면, 먼저 말루다는 현재 만으로 37세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델리 다이나모스에서 그의 상징과도 같은 15번과 함께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두 번째로, 프랑스령 기아나는 지난 6월, 같은 프랑스의 해외영토인 마르트니크에서 열린 북중미 골드컵 예선이자 캐리비아 해 지역 최고의 축구팀을 가리는 캐리비안컵에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 골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50년이 넘는 프랑스령 기아나 축구협회 역사상 첫 메이저 대회 출전으로, 대회 출전을 앞두고 프랑스 본토에서 활약하는 기아나 출신 선수들 섭외에 큰 힘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말루다도 이 계획의 일원으로 흔쾌히 섭외에 응하였으며, 골드컵을 앞두고 펼쳐진 친선경기 두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기아나 축구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이는 프랑스령 기아나가 CONCACAF의 회원국이지만 아직 FIFA에 가입되지 않은 FIFA 비회원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두 경기뿐이었지만, 나쁘지 않은 퍼포먼스와 정신적 지주, 스타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말루다는 별 다른 문제 없이 23인 최종 로스터에 등록이 되었고, 멕시코와 미국이 1군 멤버를 데려오지 않은 이 대회에서 몇 안되는 스타 선수로 언론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대회 직전 뜻밖의 암초가 나타났다. 골드컵이 FIFA가 주관하는 토너먼트가 아닌만큼 모두가 말루다를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팀에서 볼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CONCACAF는 골드컵 규정에 국가대표 선정이 FIFA의 규정에 따라야함이 명시되어있음을 얘기하며 (골드컵 규정 섹션 XV) 말루다가 본선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내렸다.
2007 골드컵에서 과달루프 국가대표팀으로 출장했던 조슬린 앙글로마.
아마 본인들이 이전에 내렸던 결정을 까먹은 것일까? CONCACAF는 지난 2007년 골드컵 대회에 조슬린 앙글로마의 출전을 허락했던 사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르세유, 발렌시아의 철인으로 불리며 유로 1992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던 과달루프 출신의 이 오른쪽 수비수는 2007년 현재 프랑스령 기아나와 완전히 같은 상태인 과달루프가 (프랑스의 해외영토, FIFA 비회원국, CONCACAF 회원국) 처음으로 골드컵에 출장하게 되자 프랑스 국가대표팀 출신이었던 그가 과달루프는 FIFA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에 대회에 출장할 자격이 있음을 발표하였고, 탄탄한 수비로 과달루프의 골드컵 4강행을 도운 바 있다.
캐나다전에서 말루다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감독은 억울함을 토로하며 몰수패를 받더라도 말루다를 개막전인 캐나다전에 출장시킬 생각이 있음을 밝혔고, 말루다도 대회가 열리는 미국에 입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지난 8일 말루다는 결국 찾아볼 수 없었다. 말루다를 내보내고 몰수패를 받느니 수준 차이가 나더라도 직접 한번 부딫혀보자는 것이 선수단과 코치진이 내린 결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한 점은 그대로였다. 경기 후에도 프랑스령 기아나의 감독은 말루다를 출장 불가능한 선수로 처리해버린 CONCACAF의 행정을 비판하였다.
프랑스령 기아나와 캐나다와의 경기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지만,
안타깝게도 말루다의 소식을 알리지는 못하였다.
안타깝게도 말루다와 프랑스령 기아나의 인연은 이렇게 골드컵 전 두 경기만으로 끝이 나는 것 같다. 충분히 알려질만한 얘기였음에도, 개막전이었던 프랑스령 기아나와 캐나다와의 경기가 캐나다의 16세 신성 알폰소 데이비스의 멀티골로 아쉽게 묻혀버린 말루다의 이야기. 블로그를 통해서라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