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하반기 문예바다 신인상 | 수필 부문 당선작 |
큰 꿩의 비름
김채옥
관악산 기슭 산 아래 세 번째 집인 친정집은 가파른 언덕길 위에 있다. 몇 번을 쉬어가며 올라가다 저만큼 집이 보일 때쯤에는 마음이 조급해진다. 빨리 뛰어 올라가 거실에 드러눕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문에 도착해도 몇 가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우선 대문 틈새로 삐죽 나온 낡은 요구르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내야 하고, 또 녹슬어 뻑뻑하고 침침한 구멍으로 열쇠를 밀어 넣어 이리저리 맞추어봐야 한다. 문이 쉽게 안 열리더라도 침착하게 대문 손잡이를 앞으로 뒤로 당겨보면서 열쇠를 비틀면, 그제야 딸깍, 하고 대문이 열린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대문 안으로 쑥 들어가 왼편으로 돌아서면 계단이 다섯 칸,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면 다시 눈앞에 3층까지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까마득히 올려다보인다. 나도 모르게 담벼락에 기대어지는 순간, 대문 여닫는 소리에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딸을 반기신다.
그런데도 나는 성큼 올라가지 못하고 계단 한쪽에 있는 화분 옆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이 화분은 어느 날 친정에 왔다가 갑자기 내 눈에 띄었다. 연둣빛 동그란 이파리가 만지면 야들야들하고, 이파리와 한 몸같이 조화로운 엷은 색깔의 꽃송이는 얼마나 우아한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여름 땡볕에 물 한 번 안 주고, 엄동설한에 내버려 두는데도 봄이면 어김없이 부활하는 그 존재의 이름을 네이버로 검색해 보니 ‘큰 꿩의 비름’이라는 이상야릇한 이름이 떴다. ‘꿩’과 ‘비름’의 합성어인데 꿩이 주로 많이 다니는 곳에서 이 식물이 유독 눈에 잘 띈다고 한다. ‘큰’은 다른 꿩의 비름에 비해 크게 무리를 지어 피어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식물은 오 년 전, 아들이 대학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 속에 중앙의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빛나게 해 주는 들러리 식물이었다. 아들이 받은 꽃다발 중 하나를 친정어머니에게 드렸고, 어머니는 꽃들이 모두 시들어 가는데도 계속 푸르름을 유지하는 그 식물의 생명력이 기특하여 버려둔 화분에 꽂아두셨다고 한다. 꽃을 장식하고 있던 이 들러리 식물은 굳세게 살아남아 비와 햇빛의 도움만으로도 해마다 푸르른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고는 우아한 꽃을 피워내었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50년을 넘게 살아왔다. 처음엔 마당이 있는 단층집이었는데 30년도 더 전에 3층 주택으로 지어 이젠 다시 무너질까 걱정하는 낡은 집이 되었다. 이 집에 오래 살게 된 것은 어머니에게는 한없이 불편한 집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와 두 남동생, 그리고 조카들까지 옥상이 있는 이 집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친정집 옥상에 오르면 뒷산이 바로 앞에 보여서 정원처럼 감상할 수 있다. 작은 방으로 연결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경사가 꽤 높아 중간중간 매듭을 지은 등산용 밧줄을 잡고 암벽을 타듯 올라가야만 안전하다. 옥상에는 어머니가 철마다 손수 담그는 간장과 고추장이 있는 장독대도 있고, 가족들이 누워 밤하늘에 별을 볼 수 있는 편상도 있다. 예전에 주택 집 옥상마다 있었던 노란색 물탱크는 직수로 바뀌어 쓸모가 없어지자 반으로 잘려 커다란 텃밭이 되었다.
산이 가까운 옥상에는 매년 뜻밖의 손님들이 찾아들곤 한다.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가 보면 어느 때는 귀퉁이에서 한 무리의 청보리가 우람하게 자라 이삭을 맺고 있기도 하고, 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깨진 화분 속에서 앙증맞은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어 어머니에게 여쭤보니 고들빼기라고 했다. 남동생이 고집을 부려 작은 수조에 진흙을 넣어 만든 연못에는 여름이면 수련 잎들이 동그랗게 둥둥 떠올라 있고 꽃도 피워내며, 산새들도 찾아와 목을 축이고 쉬어간다. 옥상에 올라와 보면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식물들을 공간적으로 이동시켜서 새로운 장소에서 뿌리를 내리게 한다. 바람이나 산새, 곤충에 따라온 식물의 씨앗은 자신이 놓인 곳이 어디든 어김없이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꽃을 피워냈다. 나는 그런 식물들의 강인함에 울컥하고,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작은 꽃에 매혹당한다.
높은 집에 사는 사람에게는 뜻하지 않는 선물이 또 있다. 아름다운 일몰의 시각을 언제든 원하면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들이 지금처럼 많이 들어서기 전에는 옥상에서 서울대 캠퍼스와 여의도, 한강이 한눈에 다 내려다보였다. 그때는 사방이 툭 터져 있어서 경관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버지는 미리 옥상에 올라가 텃밭에 물을 주고 찬으로 쓸 야채를 솎아내고, 빨래를 걷는 등 집안일을 거두다가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어린아이같이 기쁜 표정으로 연신 감탄을 하며 모습을 감추는 붉은 해를 끝까지 지켜보셨다. 그래서인지 친정집에 갔을 때 나에겐 아버지의 모습과 체취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리움의 장소가 바로 옥상이다.
날씨가 흐린 날은 노을을 못 봐서 아쉽기는 하지만 흐린 날대로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어두움이 조금씩 내려앉는 이곳에서 편안한 자세로 편상에 누우면 온몸의 감각이 열리면서 어느새 기쁨의 바다에 풍덩 빠지게 된다. 조금씩 주위가 사위어가면서 산새의 지저귐도, 컹컹하고 개 짖는 소리도,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 서로 부르는 소리도 잦아드는 고요 속으로 5월의 아카시아의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실려 온다. 그리곤 눈을 감는 순간 향기가 내 몸을 온통 휘감는다.
자식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깃든 이런 주택 집을 불편해도 어쩌지 못하고 반평생을 지켜온 어머니는 늘 집에 대해 불평을 하셨지만 어쩌다 자식들 아파트에서 하루 자는 것도 불편해하셨다. 하루만 집을 떠나있어도 옥상의 채소들을 걱정하였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진다는 소식이 조금만 들려도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오셨다. 낡은 집이어서 세심하게 살펴야만 큰 탈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그 집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낸 추억이 지금도 그 집에 깃들어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어머니와 산책을 하고 온 날, 먼저 계단을 올라와 열쇠로 현관문을 연 어머니가 어두운 거실을 향해 “여보 나 나왔어요!”라고 무심결에 말하는 소리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묻자 어머니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직도 아버지가 집안 어딘가에 계신 것만 같다고 했다.
한참 자의식이 커가던 청소년기에는 불편한 주택이 싫고, 종갓집 맏며느리로 어려운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이 안쓰럽고 답답해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까지 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에게 뭐라 하면서도 어느새 똑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나 또한 사는 집도, 직장도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다 보니 어느새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어머니의 집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작별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다 귀퉁이에서 ‘큰 꿩의 비름’을 다시 마주했다. 오늘따라 ‘큰 꿩의 비름’이 어딘지 우리 가족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보였다. 계단 끝에서 생각에 잠긴 딸을 내려다본 어머니는 빨리 가라고, 어두워지고 있다고 늙은 딸에게 핀잔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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