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일시: 2025년 3월 22일 (토)
o 날씨: 맑음
o 경로: 구포역 - 오토캠핑장 - 화명계류장 - 수생식물원 - 화명생태공원 - 화명운동장 - 대천천 - 화명수목원 - 금정산 서문 (해월문) - 산성마을
o 거리: 11.1km
o 소요시간: 3시간
o 걷기정보 및 여행포인트: 욜로 갈맷길, 구포역, 화명생태공원, 대천천, 화명식물원, 금정산 서문, 산성마을
o 지역: 부산시 북구
o 트랙:
o 지도
YOLO갈맷길 9코스 후 10코스를 이어갑니다.
9코스가 삼락생태공원의 메인이었다면,
10코스는 화명생태공원과 화명수목원이 메인인 듯 합니다...
화명생태공원도 삼락생태공원처럼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닙니다.
그나마 야생화가 좀 더 많이 보이는 정도....
[화명생태공원]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생태 공원으로 전국에서 개장한 1호 생태공원이다. 2007년 7월에 착공하고, 2009년 6월 4일에 4대강 살리기 선도 사업으로 선정됨에 따라 총사업비 400억 원을 투자하여 조성되었다. 처음 명칭은 화명강변공원이었으나 2011년에 화명생태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개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명생태공원은 낙동강 하류를 따라 위치한 자연 생태 공원으로 각종 체육 시설과 녹지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총면적은 1.41㎢이다. 생태공원에는 습지 등의 자연 복원과 함께 시민이 즐길 수 있는 하천 숲,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공원에 설치된 체육 시설은 축구장 4면, 야구장 2면, 농구장 4면, 족구장 4면, 테니스장 10면, 케이트볼장 4면, 인라인스케이트장 1면, 민속 놀이마당 1면, 풋살 경기장 3면 등이 있다. 수생 데크, 전망 데크 등 편의 시설 41종 1,295개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120여 대의 자전거를 보유한 자전거 무료 대여소를 평일과 휴일에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공원 내에 있는 수영장은 여름에는 야외 수영장으로 겨울에는 눈썰매장으로 개장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3월말~4월초에는 튜울립이 만발한다는데...
1~2주 차이인데, 튜울립은 코빼기 안보이네요 ^^;;
꽃구경 왔는데 꽃이 없으니
맥도 빠지고 다리에 힘도 풀리고...
발바닥에 물집이 잡혔네요.
중간에 포기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계속 걷자니 발바닥에 불이 나고 ㅎ
[화명수목원] 부산지역 최초의 공립수목원으로, 금정산 고당봉을 뒤로 하고 맑은 대천천이 수목원 사이를 흐르고 있으며, 철새도래지인 낙동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규모는 11만㎡이며, 1,112종의 수목유전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화명수목원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수목유전자원의 보전 및 자원화를 촉진하고 시민의 건강증진과 산림치유 기능을 도입하여 도심지 생활권 내에서 산림체험 및 산림교육 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부산광역시에서 2003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2010년에 준공된 수목원이다. 수목원에는 숲으로의 초대, 깨어나는 숲의 생명력, 위기의 숲, 살아 숨 쉬는 미래 환경 등 6개 테마로 구성된 숲 전시실과 아열대 및 온대식물 등이 식재되어 있는 유리온실이 설치되어 있다. 야외에는 침엽수원, 활엽수원, 화목원, 수서생태원, 미로원, 야생초화원 등 9개 주제원이 조성되어 있고 부산에서만 자생하는 부산꼬리풀 등이 식재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컨디션이 좋으면 화명수목원도 한번 둘러보고 싶은데...
발바닥 때문에 지금은 '가능한 빨리 종점까지 가자'는 심정입니다.
[금정산성 서문]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 서쪽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문이다.
금정산성 서문과 금정산성 동문을 재건할 때의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 오고 있다. 동래 부사 정현덕(鄭顯德)은 금정산성 동문과 금정산성 서문을 완벽하게 재건하고자 전국에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 관계인 두 석공을 찾았다.
정현덕은 스승에게는 금정산성 동문을, 제자에게는 금정산성 서문을 만들게 하였다. 야욕과 욕심이 많은 스승은 금정산성 동문을 웅대하게 지으려고 하였던 반면, 금정산성 서문을 맡은 제자는 기술을 앞세워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만들게 되었다. 스승이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니,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칭송하였다. 이후 이들 사제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공사를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정산성 서문은 1703년(숙종 29)에 부산 금정산성과 함께 축조되었다. 1806년(순조 6) 동래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래읍성의 배후 성지로서 금정산성의 경영을 요청하여, 1807년 가을부터 1808년 초봄까지 금정산성 남문을 쌓아 완성하였다. 1824년(순조 24)에 금정산성 서문의 문루를 만들었는데, 성문 중에서 유일하게 계곡에 세워졌다. 그 이전에는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과 성문만 축조되고, 성문에는 문루가 없었다. 성문 위에 지은 초루(譙樓)와 ‘ㄷ’ 자 모양으로 조성한 성곽은 그 모습이 견고하고 아름다웠으며, 금정산성 서문을 통해 낙동강과 구포 김해 방면으로 왕래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방치되어 금정산성 서문이 허물어져 육축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7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금정산성 서문은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적군의 침입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좌우에 길이 5m, 높이 5m, 폭 4m 규모의 적대(敵臺)를 설치하였다. 수문은 대천천에 교량식의 홍예형으로서 높이 3m, 폭 2.5m인 3개의 수구(水口)를 마련하였는데, 그 모습은 아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정산 산성마을과 산성막걸리] 금정산 해발 450m.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수려한 산세를 뒤로하고 한 산골마을이 나타난다. 부산 금정구 금성동 ‘산성마을’. 왜구가 침략해 올 것을 대비해 조선 숙종 32년(1706년) 금정산에 쌓은 금정산성은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됐다.
지금은 ‘산성막걸리’와 ‘염소불고기’를 주 메뉴로 등산객의 발길을 잡는 관광마을이 됐지만 예전만 해도 시내까지 2~3시간을 걸어야만 하는 산골이었다. 이곳에서 막걸리를 빚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처음 누룩이 마을에 등장한 것은 조선 초 금정산 자락 화전민들이 생계 수단으로 빚기 시작한 때부터다. 범어사 승려도 누룩을 빚어 생계를 꾸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을 주민은 농사 대신 술을 빚어 생계를 이어 왔다. 산성막걸리가 알려지게 된 것은 금정산성을 축성하던 즈음이다. 산성을 쌓기 위해 각 지역에서 온 인부들은 이곳에서 먹어 본 막걸리에 반해 고향에 가서도 그 맛을 잊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산성막걸리’를 찾는 손길이 많아진 이유다... (중략) (네이버)
성치 않은 발을 끌고 겨우(?) 10코스를 마쳤네요.
신발이 문제인지?
내 다리가 문제인지?
4~5월에는 그간 미뤄둔 산행계획을 무지 많이 잡아 놨는데.... 괜찮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