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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경(上經)
건괘(乾卦) 본의(本義)의 주에 나오는 ‘제유(諸儒)’, ‘조씨(晁氏)’, ‘여씨(呂氏)’
○ 제유는 왕필(王弼), 한강(韓康)을 가리킨다. 조씨(晁氏)의 이름은 열지(說之)이며, 여씨(呂氏)는 동래 여씨(東萊呂氏)를 가리키니, 이름은 조겸(祖謙)이다.
○ 쌍호 호씨(雙湖胡氏)가 말하기를, “동래 여씨의 말은 여미중(呂微中)에게 미치지 못한다.” 하니, 여기에서 말한 여미중은 바로 급군 여씨(汲郡呂氏)이니, 이름은 대방(大防)이며 자는 미중(微中)이다.
원형이정(元亨利貞)
○ 주자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의 본뜻은 건괘와 곤괘는 다른 괘와 마찬가지로 크게 형통하되 정도(正道)로 하는 것이 이롭다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단전(彖傳)과 문언(文言)을 지음에 이르러 처음으로 건괘와 곤괘를 사덕(四德)으로 나누었고, 다른 괘들은 예전 그대로 두었는데, 문왕과 공자 두 성인의 뜻이 다름이 있어서가 아니라 각기 하나의 이치를 밝혔을 뿐이다.” 하였다.
정전(程傳)에 나오는 “하늘 또한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天且不違 是也]”
○ 정시회(鄭時晦 정엽(鄭曄))가 말하기를, “‘하늘 또한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문언(文言)에서 말한 뜻은 하늘이 성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인데, 정자가 인용한 뜻은 하늘이 도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자의 설은 문언과 다르니, 옳지 않은 것 같다.” 하였다.
○ 문언(文言)의 정전(程傳)을 살펴보면, “대인(大人)이 천지, 일월, 사시, 귀신과 합치된다는 것은 도에 부합된다는 것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성인은 하늘에 앞서 하되 하늘이 그와 같고, 하늘보다 뒤에 하되 하늘에 순응한다는 것은 도와 합치되는 것이다.” 하였다. 삼가 상하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늘이 성인을 어기지 않은 것은 그가 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니, 성인을 어기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말이다. 정전의 전후 설들이 서로 일치하니, 의심할 게 없다.
구이(九二)의 본의(本義)에 나오는 “효(爻)와 점치는 사람이 서로 주와 빈이 된다.[爻與占者 相爲主賓]”
○ 운봉 호씨(雲峯胡氏)가 말하기를, “‘나타난 용[見龍]’이란 상(象)이며,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는 것은 점(占)이다. 상(象)으로 주를 삼고 점(占)으로 객을 삼은 것은 변례(變例)이다.” 하였다.
○ 나는 살펴보건대, 점치는 사람이 바로 보통 사람이라면 구이의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로우니, 이 경우는 점치는 사람이 빈이 되고, 구이효(九二爻)가 주가 되는 것이다. 만일 ‘나타난 용’의 덕을 가진 사람이라면 구오(九五)의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로우니, 이 경우는 점치는 자가 주가 되고 구오효가 빈이 되는 것이다.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점치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라면 효(爻)가 빈이 되어서 ‘보는 것이 이롭다’는 대상은 바로 구이의 대인이다. 만일 점치는 자가 스스로 ‘나타난 용’의 덕을 가지고 있다면 효가 주가 되어서 ‘보는 것이 이롭다’는 것은 바로 구오의 대인이다. 효가 빈이 되면 점치는 자는 주가 되고, 효가 주가 되면 점치는 자는 빈이 되는 것이다.” 하였다.
용구(用九)의 본의에 나오는 “양효는 구를 쓰나 칠은 쓰지 않는다.[陽爻用九而不用七]”
○ 살펴보건대, 정전(程傳)에서는 점법(占法)을 사용하지 않고, 용구(用九)와 용육(用六)의 뜻에 대해 다만 “지나치게 강한 데 처해서는 부드러움을 쓰고, 지나치게 부드러운 데 처해서는 강함을 쓴다.”는 뜻만을 말하였다.
○ 점법에서는 순양(純陽)을 노양(老陽)이라 하니, 양이 변해서 음이 된다. 그러므로 용구(用九)라 말한다. 순음(純陰)의 용육(用六)에 대한 의의 또한 이와 같다.
○ 구(九)는 변하고 칠(七)은 변하지 않는다. 《주역》에서는 변화를 귀중히 여기니, 이른바 용구(用九)는 단지 변화를 위주로 말한 것이다. 음효에서 육(六)을 쓰고 팔(八)을 쓰지 않는 뜻도 이와 같다.
단(彖)
○ 다른 괘에서 쓰는 예(例)는 단(彖)과 대상(大象)이 모두 괘사(卦辭) 아래에 있고, 소상(小象)은 각 효사(爻辭)의 아래에 있는데 건괘(乾卦)만은 효사의 끝 부분에 있다. 이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상전(象傳)에 나오는 “괘 아래의 상과 효 아래의 상[卦下象爻下象]”
○ 괘 아래의 상은 바로 대상(大象)이니, 건괘(乾卦)의 ‘천행(天行)’ 이하의 문장이며, 효 아래의 상이란 바로 소상(小象)이니, 초육(初六)의 ‘잠룡(潛龍)’ 이하를 말한다.
본의에 나오는 “괘의 상하 양상과 양상의 육효[卦之上下兩象 及兩象之六爻]”
○ 상하 양상(兩象)이란 중건(重乾)을 가리켜 말한다. 양상의 육효(六爻)란 초구(初九), 구이(九二), 구삼(九三)의 유이다. 주공이 쓴 글은 잠룡(潛龍), 현룡(見龍), 건건(乾乾), 혹약(或躍), 비룡(飛龍), 항룡(亢龍) 등의 말을 가리킨다.
본의에 나오는 ‘단전(彖傳)’, ‘상전(象傳)’
○ 단전(彖傳)이란 ‘대재(大哉)’부터 ‘만국함녕(萬國咸寧)’까지이고, 상전(象傳)이란 ‘천행(天行)’부터 ‘불가위수(不可爲首)’까지이다.
“구이에 이르기를, ‘나타난 용이 밭에 있다.’ 하였다.[九二曰 見龍在田]”의 본의에 나오는 “싫어함이 없을 때에도 보존한다.[无斁亦保]”
○ 《중용장구》에 이르기를, “역(射) -《시경》에는 역(斁) 자로 되어 있다.- 이란 싫어함이니, 싫증 내고 게을러서 불경스러움을 말한다.” 하였다.
○ 소주(小註)에 주자가 말하기를, “평상적인 말을 미덥게 하고 평상적인 행실을 삼가는 것은 지극히 높은 성대한 덕이다. 이 경지에 이르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사악한 마음이 막아지고 진실한 마음이 보존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싫어함이 없을 때에도 보존한다.[无斁亦保]’는 뜻으로, 비록 싫어함이 없는 때에도 마땅히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보존함이란 가지고 지킨다는 뜻이다.” 하였다.
○ 퇴계(退溪 이황(李滉))가 말하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꺼린다는 말과 같다. 보통 사람의 정(情)은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행위를 살펴보면 그 마음에 반드시 꺼리는 바 있어 그 지키는 바를 보존하게 된다. 성인이란 꺼리는 바 없어도 또한 스스로 보존하고 있다.” 하였다.
○ 나는 살펴보건대, 주자의 설과 퇴계의 설이 같지 않다. 퇴계의 설이 틀린 것 같다.
“군자는 배움으로써 모은다.[君子學以聚之]”의 본의에 나오는 “네 가지의 것.[四者]”
○ 네 가지의 것이란 배워서 취합하고, 물어서 분별하고, 너그럽게 거처하고, 인(仁)으로 행하는 것이다.
구삼(九三)의 “거듭된 강[重剛]”
○ 본의에서는 양효(陽爻)로써 양의 자리에 있는 것을 바로 거듭된 강[重剛]이라 하였는데, 정전(程傳)에서는 하효(下爻)와 본효(本爻)가 모두 양(陽)인 것을 거듭된 강이라 하였다. 건괘(乾卦), 이괘(離卦), 대장괘(大壯卦), 손괘(巽卦)에 대한 정전에 모두 중강(重剛)이라는 글자가 있다.
곤괘(坤卦)의 괘사(卦辭)에 나오는 “암말의 정이 이롭다.[利牝馬之貞]”
○ 퇴계가 말하기를, “대체로 양은 넉넉하고 음은 부족하며, 양은 온전하고 음은 절반이다. 건괘(乾卦)는 이롭지 않은 바가 없으므로 이로운 바를 말하지 않았지만, 곤괘(坤卦)는 암말의 정(貞)이 이로우니, 오직 유순(柔順)과 정정(正貞)만이 이로울 뿐, 그 외의 것은 모두 이로울 수는 없다.” 하였다.
○ 최립(崔岦)이 말하기를, “건괘에서는 육룡(六龍)을 타고 있는 성인으로 말하고, 곤괘에서는 암말을 타고 있는 군자로 말하였으니, 이는 임금의 도와 신하의 도라는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하였다.
먼저 하면 혼미하고 뒤에 하면 얻는다.[先迷後得]
○ 퇴계가 말하기를, “양이 앞서 부르고 음이 뒤에 화답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다. 만일 이에 반대되어서 음이 먼저 하면 혼미하여 도리를 잃게 된다. 반드시 뒤에 하여야만 그 도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먼저 하면 혼미하고 뒤에 하면 얻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최립이 말하기를, “‘뒤에 하면 얻는다[後得]’는 것은 다만 아래 문장의 ‘상도(常道)를 얻는다[得常]’의 얻음[得]을 말한다.” 하였다.
정에 편안하면 길하리라.[安貞吉]
○ 정전(程傳)에서는 “편안하고 정(貞)한 것이 길(吉)하다.”라고 해석하였는데, 본의에서는 “안(安)이란 음순(陰順)의 행위이고, 정(貞)이란 양건(陽健)의 행위이다.” 하였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안과 정은 다른 것이므로 “편안하고 또 정함[安且貞]”으로 해석해야 할 것인데, 또 이르기를 “정에 편안하다.” 하였다. 이렇게 해석하면, “정에 편안하다.[於貞安]”가 된다. 주자의 상하의 말뜻에 차이가 있는데, 미상(未詳)이다.
○ 최립이 말하기를, “안정(安貞)이란 그 정에 편안하고 견고히 함이니, 용육(用六)의 영정(永貞)이라는 것과 똑같은 정(貞)이다. 그 암말[牝馬]의 정(貞)에 비해 보면 변하여 커진 것이니, 이미 변하여 커졌다면 건괘(乾卦) 이정(利貞)의 정(貞)에 넉넉히 짝할 수 있다. 그러나 끝까지 안고(安固)히 분수를 지켜야 하는 것이지 그 ‘아름다운 이익[美利]’과 ‘온전한 공[全功]’에 대등할 수 없다. ‘용육은 영구하고 정고함이 이롭다.[用六利永貞]’는 것이 ‘안정길(安貞吉)’이 되는 것은 송괘(訟卦) 상구(上九)가 ‘끝까지 하는 것은 흉하다.[終凶]’가 되고, 비괘(比卦) 상육(上六)이 ‘뒤늦으면 장부라도 흉하다.[後夫凶]’가 되며, 절괘(節卦)의 ‘정하면 흉하다.[貞凶]’가 ‘고절(苦節)은 정고해서는 안 된다.[苦節不可貞]’가 되는 유와 같다.” 하였다.
“안정의 길함[安貞之吉]”의 본의(本義)
○ 위에서는 ‘안정(安貞)’이라 하고 아래에서는 ‘편안하고 또 정(貞)하다.’ 하였으니, 상하의 말에 차이가 있다.
대상(大象)의 “지세가 곤이다.[地勢坤]”의 정전(程傳)에 나오는 “그 지세는 순하고 기울어 있다.[其勢順傾]”
○ 곤괘(坤卦)는 음이며, 지세(地勢)는 동남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까닭에 순경(順傾)이라고 한 것이다.
둔괘(屯卦)의 본의에 나오는 “풀이 땅을 뚫고 나온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象屮穿地]”
○ 초(屮) 자는 초(草) 자의 옛 글자이다.
초구(初九)의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利建侯]”
○ 건후(建侯)에 대한 해석은, 위 문장 두 곳에서는 모두 제후를 세우는 것으로 말하였는데, 초구의 뜻을 해석하면서 “그를 세워서 이롭게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상하의 말에 차이가 있어 의심스럽다.
상육(上六)의 상전(象傳)에 나오는 “셋으로 나누고 또 둘로 나누었다.[分三而又兩之]”
○ 셋으로 나눴다는 것은 3획(畫)의 팔괘이며, 또 둘로 나눴다는 것은 6획의 64괘이다.
몽괘(蒙卦) 상구의 상(象)에 나오는 “상하가 순하기 때문이다.[上下順也]”
○ 상하는 지위(地位)의 상하인데, 최립이 상하 종시(上下終始)로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수괘(需卦) 구삼의 상전에 나오는 ‘재(災)’, ‘생(眚)’
○ 안에서 일어나는 요얼(妖孼)은 생(眚)이라 하고, 바깥의 요얼은 상(祥)이라 하며, 하늘에서 내린 불은 재(災)라 한다.
사괘(師卦) 구이의 정전에 나오는 ‘세유(世儒)’
○ 세유(世儒)란 왕안석(王安石)을 가리킨다.
육삼의 “여러 사람이 주장한다.[輿尸]”
○ 여시(與尸)에 대한 설은, 정전(程傳)의 해설이 좋은 것 같다.
육사의 상전에 나오는 “사가 후퇴하다[如四退次]”
○ 여(如)는 발어사이다.
비괘(比卦) 구오의 상에 나오는 “지위가 정하고 중하다.[位正中]”
○ 정중(正中)은 ‘정하고 중하다[正而中]’는 말이니, 《언해(諺解)》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상육의 “머리가 없다.[无首]”
○ 머리가 없다는 뜻은 정전과 본의(本義)가 차이가 있다. 머리란 정전에서는 초효(初爻)를 가리켰고, 본의에서는 상육(上六)을 가리켰다.
소축괘(小畜卦) 대상(大象)의 정전에 나오는 ‘요계(擾係)’
○ 요(擾)는 ‘길들이다’의 뜻이다.
구이의 “연결하여 회복함이다.[牽復]”
○ 정전의 뜻은 이효(二爻)와 오효(五爻)가 서로 연결하여 회복한다는 것이고, 본의의 뜻은 이효와 초효가 연결하여 회복한다는 것이니, 두 설이 같지 않다.
육사의 본의에 나오는 “중을 비우며 손체이다.[虛中巽體]”
○ 손괘(巽卦)를 왜 가운데가 비어 있다고 하는가. 손괘의 하효(下爻)가 음이어서 가운데가 통한 까닭에 허중(虛中)이라 말한 것이다.
이괘(履卦) 구사의 정전에 나오는 “비록 가깝지만 처하지 않는다.[雖近不處]”
○ 처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履) 자에 ‘행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상구의 본의에 나오는 ‘미정(未定)’
○ 당시에 선악이 나뉘어지지 않았기에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태괘(泰卦) 상육의 상(象)에 나오는 ‘명란(命亂)’
○ 정전과 본의의 말이 같지 않다. 정전에서는 그 명이 요란스러워 말을 해도 그치게 하지 못하며, 난(亂) 자는 많다는 뜻으로 보았다. 본의에서는 그 명령이 질서가 없어 어지러운 까닭에 다시 막히게 된 것으로 보았으니, 고명(告命)의 명(命) 자와 같지 않다.
동인괘(同人卦) 구사의 상전에 나오는 ‘이자(二者)’
○ 이자(二者)란 둘째 효를 가리키고, 2효(爻)는 삼효와 사효를 가리킨다. 삼효와 사효는 이효와 오효의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대유괘(大有卦)의 ‘원형(元亨)’
○ 건괘, 곤괘에서만 사덕(四德)으로 해석하는데, 이 괘에서도 “크고 또 형통하다.”로 해석한 것은 잘못이다.
예괘(豫卦) 육삼의 본의(本義)의 소주(小註)에 나오는 ‘육사(六四)’
○ 육(六) 자는 구(九) 자로 써야 한다.
고괘(蠱卦) 구이의 정전에 나오는 “중도에 이르게 한다.[致之於中道]”
○ 중도(中道)의 중(中)이란 중용(中庸)의 중(中) 자가 아닌 것 같다. 중군(中君)의 중(中) 자 뜻이 있다. 교(矯)란 떨치고 바로잡는 것이니, 강한 모양이다.
상구의 정전에 나오는 “고상함 또한 한 가지의 도가 아니다.[高尙亦非一道]”
○ 고결하게 스스로 몸을 지킨 자는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이며, 물러나 스스로 몸을 보존한 자는 장량(張良)과 소광(疏廣)이며, 남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고 홀로 몸을 조촐히 한 자는 엄릉(嚴陵)과 주당(周黨)이다.
임괘(臨卦) 대상(大象)의 본의에 나오는 “두 가지 것[二者]”
○ 두 가지란, 가르치려는 생각과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다.
초구의 “정하여 길하다.[貞吉]”의 정전에 나오는 “정을 얻으면 길하다.[得貞則吉]”
○ 수괘(需卦)와 겸괘(謙卦)에서 모두 정길(貞吉)을 말하였는데, 바르게 하면 길함을 말한 것이다.
관괘(觀卦)의 본의에 나오는 “8월의 괘…….[八月之卦云云]”
○ 8월의 괘란 음이 자라나고 양이 소멸되어 가는 것인데 괘명(卦名)과 계사(繫辭)에서 모두 소장(消長)으로 말하지 않고 우러러본다는 뜻을 취하여 괘명을 붙이고, 또 괘사(卦辭)에서도 우러러본다는 뜻을 취하여 말하니, 이 역시 양을 붙들고 음을 억누르는 뜻이다. 계사란 괘사를 가리킨다.
상구의 본의의 소주(小註)에 나오는 주자설(朱子說)
○ 관아생(觀我生)이란 내 스스로 내가 했던 일을 돌이켜 보는 것이며, 관기생(觀其生)이란 남들이 내가 했던 일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소주에서 주자는 모두 스스로 본다고 하였으니, 의심스럽다. 본의와 소주에 차이점이 있겠는가.
서합괘(噬嗑卦) 육이의 “코를 잘린 것이다.[滅鼻]”
○ 비(鼻)는 형벌당한 자의 코이다.
구사의 “황금ㆍ화살[金矢]”과 육오의 ‘황금(黃金)’
○ 최립(崔岦)이 말하기를, “구사와 육오에서 말한 황금ㆍ화살과 황금이란, 나의 생각으로는 금(金)은 모두 옥사(獄事)를 단정짓는 뜻을 취했을 뿐이다. 화살은 구(九)의 강직함을 취하였으나, 그것이 사(四)라는 음(陰)의 자리에 있는 까닭에 소상(小象)에, ‘「어렵게 생각하고 정도로 하는 것이 이로우니, 길하다.」는 것은 광대(光大)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경계하였다. 황(黃)은 오(五)의 중도(中道)를 취하였으나, 음효(陰爻)인 육(六)이 그 자리에 있는 까닭에 ‘정고(貞固)히 하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경계한 것이다.” 하였다.
본의에 나오는 “형벌 쓰는 도를 얻었다.[得用刑之道]”
○ 단(彖) 아래의 정전에 이르기를, “강(剛)으로써 유(柔)의 자리에 있으니, 옥사를 다스리는 데 적절하지 않다.” 하였는데, 본의에서는 “강으로써 유의 자리에 있으니, 형벌 쓰는 도를 얻었다.” 하니, 두 설이 같지 않다.
비괘(賁卦) 구삼의 정전에 나오는 “암사슴이 깨끗하다.[麀鹿濯濯]”
○ ‘암사슴이 깨끗하다.’는 인용은 적절하지 못하다.
박괘(剝卦) 육오의 “물고기들을 꿰다.[貫魚]”
○ ‘관어(貫魚)’의 관(貫)이란 여러 첩들을 꿰고 있다는 뜻이니, 관(貫)이란 후비(后妃)가 하는 것이며, 물고기란 곧 여러 첩(妾)이다.
복괘(復卦)의 “복에서 그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復其見天地之心]”의 정전에 나오는 ‘선유(先儒)’
○ 선유란 바로 왕필(王弼)을 말한다.
초구의 “후회하는 데 이름이 없다.[无祇悔]”
○ ‘祇’의 독음은 시(𣏚)이다. 아래 글의 ‘옷의 부[衣部]’에 보인다는 설과는 다르니, 필시 지(秖) 자의 오자일 것이다. 지(秖) 자는 또 습감괘(習坎卦)에 보이니, 마땅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무망괘(无妄卦) 육이의 ‘불경확[不耕穫]’
○ 주자는 말하기를, “불경확(不耕穫) 구절을 이천(伊川 정이(程頤))은 세 가지의 뜻으로 말하였으니, ‘밭갈이를 하지 않고서 수확하다’, ‘밭갈이를 하되 수확하지 않는다’, ‘밭갈이를 하되 굳이 수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였다.
○ 퇴계는 말하기를, “이 효를 읽을 적에는 반드시 먼저 정자의 처음, 중간, 끝 세 곳의 차이점을 변별하고, 또 반드시 본의의 뜻을 변별하여 각기 귀결처가 있게 된 뒤에 문장을 따라 해석하면 분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 나는 살펴보건대, 정전에서 말한 ‘이치의 그러한 바’란 일의 당연함이니, 새밭[畬田]에서 수확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는 허망(虛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바’란 인심(人心)이 하는 것이니, 묵정밭[菑田]에서 경작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것이 바로 허망이다. 이것이 곧 밭갈이를 하지 않고서 수확한다는 설이다. 이른바 “밭갈이를 하되 수확하지 않는다.”와 “밭갈이를 하되 굳이 수확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는 비록 다른 것처럼 보이나 그 뜻은 실로 한가지이다. 이는 모두가 수확하는 것을 가리켜 허망이라 하고, 밭갈이하는 것을 가리켜 허망이 아니라고 말한 것인데, 밭갈이하는 데에는 밭갈이를 할 적과 이미 밭갈이를 끝냈다는 구분이 있다. 본의에서는 밭갈이와 수확을 모두 허망이라 하여 곧바로 “밭갈이와 수확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대축괘(大畜卦) 구이의 상전
○ 초구와 구이는 강건하지만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저지를 당하고 있는 때이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리하기 때문이며, 초구와 구이가 모두 아래에 자리하고 있기에 사세(事勢) 또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육사와 육오는 음유(陰柔)이지만 강건한 양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축(畜)의 때에 저지하는 간괘(艮卦)에 있고, 지위가 또 윗자리에 있어서 형세가 또 넉넉히 저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근사록(近思錄)》 주에 보인다.
감괘(坎卦)의 정전에 나오는 “일은 가운데에서 시작한다.[一始於中]”
○ 일(一)이란 1, 2를 가리키는 숫자가 아니다. 바로 하나의 양효이니, 단(單
)이다.
“하늘의 험함은 오를 수 없다.[天險不可升]”의 정전에 나오는 “물채가 다르다.[異物采]”
○ 채(采)란 일이다.
구오의 “이미 평지에 이르다.[祇旣平]”
○ 지(祗)는 평성(平聲)이니, 적소이(適所以)라는 말이다. 또 약(若) 자와 같은데, ‘若’의 독음은 시(祇)이므로 마땅히 저(底) 자로 써야 한다 하니, 옳지 않은 것 같고, 필시 지(秖) 자의 오자일 것이다. 또한 복괘(復卦)에 보이니, 마땅히 살펴보아야 한다.
상육의 “묶는 데 휘묵을 사용한다.[係用徽纆]”
○ 휘(徽)는 세 가닥의 줄이며, 묵(纆)은 두 가닥의 새끼이다.
이괘(履卦) 대상(大象)의 정전에 나오는 ‘세습계조(世襲繼照)’
○ 세습계조의 뜻은 나타나 있지 않다.
육이의 정전에 나오는 “중정의 덕[中正之德]”, “중순의 임금[中順之君]”
○ 육이와 육오가 모두 음효이므로 음양이 상응한 것이 아닌데도 임금으로 말한 것은 미상(未詳)이다.
구삼의 정전에 나오는 “질은 질과 같다.[耋與昳同]”
○ 질(昳)이란 해가 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