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2025. 3. 8 (토)
2. 장소: 서해랑길 60 구간
3. 행로와 시간
[대천해수욕장(09:22) ~ 대천항(10:11) ~ 군헌갯벌체험장 (10:41) ~ 발레리조트(11:10) ~ 대천방조제(11:40~12:34) ~ (우회 신길) ~ 깊은골(13:52) / 18.48km]
오랜만에 서해랑길 트래킹을 가려 한다.
산악회에서 제시한 코스는 60~61 연계구간이다. 27km의 거리와 8시간이 넘는 게 부담이 되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하리란 생각에 신청을 했다.
요즘 부쩍 산행이나 트레킹 장소 선택이 쉽지 않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 마음의 동요가 잦아지고, 또 정보가 많다 보니 잴 것도 많아진다. 경험의 지혜라 자위해 보지만, 늙어 가는 게 분명하다.
[코스 개요]
서해안 해산물의 집산지이자 해상교통의 요지인 대천에서 시작하는 길로 넉넉한 바다가 내주는 먹거리를 맛불 수 있는 기회이자, 마을을 잇는 농촌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라 한다.
대천은 여러 번 찾았고 갈 때마다 더 번화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또 어찌 변해 있을까 기대된다.
[관광포인트]
- 보령머드축제의 현장으로 백사장 길이만 3.5km에 달하는 '대천해수욕장'
- 노을 명소로도 유명하며 음악분수와 조명으로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대천해변 분수광장'
- 52m 높이의 타워에서 로프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짜릿한 체험시설 '짚트랙코리아'
- 갯벌생태와 서해안 머드에 관한 전시물을 만날 수 있는 '보령머드박물관'
- 토종비결로 유명한 이지함의 '토정이지함묘'
- 천주교 박해사건 때 처형장이었던 천주교 순례지 '갈매못순교성지'
- 전국 제1의 키조개 생산지로 유명항 '오천항'
대부분의 명소들이 시작과 끝에 몰려 있다.
거리가 부담이 된다면 60구간 끝 지점에서 걷기를 멈추고, 택시나 버스로 오천항까지 이동하여, 충청수영성 일대를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은 선택지로 여겨진다.
늘 그렇듯 선택은 현장에서 이루어 지리라. 갯벌과 바다를 볼 생각에 마음에 풍선이 뜬다.
(여기까지는 트래킹 준비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실제는 이와 많이 다르리라)
[서해랑길 60 구간 걷기]
09:20 대천해수욕장 조형물 앞에 선다. 흐린 날씨에 미세먼지까지 자욱하여 바다 풍경은 영 아니다. 긴 해변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짚트렉 하늘다리는 이 계절에는 흉물이다. 을씨 년스럽다. 길은 대천항으로 이어진다. 어시장에 잠시 들린다. 생물 고기보다 말린 고기가 있는 풍경이 더 근사하다.
대청항을 지나자 도로 옆 트레킹로가 무척 길게 이어진다. 온갖 폐기자재와 어망들로 어수선한 주변 모습을 보며 괜히 왔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2차선 도로 한켠에 보행자를 위한 표시봉이 안전시설의 역할을 한다.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사실 코너에서 운전자가 조금만 실수를 해도 보행자를 덮칠 상황이지만, 이 낮고 작은 표시봉은 실제 이상의 가치를 하고 있다.
30여 분 험한 길을 걷다 작은 벤치에 앉았다. 바다쪽으로 녹슨 쇠 조형물이 보인다. 자세히 살피니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조각이다. 누구의 작품인지 몰라도 멋지다. 심플하지만 척 봐도 핵심을 잘 드러낸 명품이다.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여러 컷 찍었다. 다시 바다 풍경이 넓게 보인다. 잠시 해변으로 내려갔다 올라선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대천방조제로 이어지는 작고 낮은 다리를 건넌다. 풍경이 근사하다. 바다 끝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물새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새들의 떼창이 바다 위로 울린다.
대천방조제는 무척이나 길었다. 최소 3.5km 이상 이어진다. 물새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걷다 보니 지겨운 길도 나름 걷는 재미를 준다.
10km 이상을 걸었나 보다, 방조제를 건너 해변으로 내려선다. 희고 통통한 물새 두 마리가 다른 새들과는 달리 나의 접근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키며 앉아있다. 마치 여기가 자기 집이라는 듯 여유를 부린다. 그 도도함에 반에 사진 몇 장을 찍는다.
대천방조제 시작부터 주변 풍경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온 보령발전소의 위용이 점점 크게 드러난다. 남은 거리는 이제 3km 정도다.
두루누비 안내와는 다르게 서해랑길 표지기는 도로가 아닌 마을 쪽으로 나 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표지기를 따라간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올라선다. 당황스럽지만 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다행히 산 언덕을 따라 서해랑길이 이어진다. 한창을 올라 내려서니 도로와 만난다. 그리고 이내 60 구간 날머리에 당도했다. 4시간 30분의 여정이 이렇게 마무리 된다.
[충청수영성]
깊은골 버스정거장에 61코스 안내도가 걸려 있다. 잠시 망설였으나 오늘 서해랑은 여기서 멈춘다.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택시를 불러 오천항으로 이동했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 맞은편 높다란 언덕 위에 커다란 정자가 서 있다. 수영성이다. 척봐도 위용이 넘친다. 인기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안내판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딴 세상이 펼쳐진다.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조망이 펼쳐진다.
정자가 있는 언덕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 풍경과 수영청의 오래된 나무와 빈 공간은 근래 본 풍경 중 단연 최고였다. 무엇보다 그 놓임새가 압권이었다. 이 풍경 하나 만으로도 이곳은 다시 올 가치가 있는 명소 임에 틀림없다. 좋은 구경을 했다.
[에필로그]
버스는 5시가 되기 전에 서울로 출발한다. 27km가 넘는 거리를 모두 1시간 이상 빨리 완주했다. 대단한 분들이다.
걸음을 깊은골에서 마친 건 잘한 결정이었다. 굳이 61구간을 가지 않아도 보령의 바다와 갯벌과 산야를 충분히 걷고 바라보며 좋은 경험을 했다. 생각을 비우고 오로지 걷는 것에만 집중하며 주변 풍경과 교감하는 건 나만의 힐링법이다.
오늘 점심 음식점에서 기분 나쁜 경험을 했다. TV에는 정치 뉴스가 반영되고 있었도, 술 한잔 걸친 중년남자들이 외지인인 내 눈치를 보며, 내게 세를 과시하려는 듯 심한 말로 야당을 욕한다. 도대체 왜? 언성이 점점 커진다. 추접스럽다. 조용히 밥 먹고 있는 내게 도대체 왜?? 너무 시끄러워 밥맛이 뚝 떨어졌다. 이곳에서도 패거리와 진영 싸움이 도가 넘친다. 분열된 이 나라의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
잠깐 졸다 깨어난다. 버스는 서해대교 위를 달린다. 미세먼지가 오전보다 많이 개었다. 이어폰에서 황가람의 노래 '반딧불'이 흘러나온다.가사와 멜로디가 감성을 자극한다. 아주 오래 전 들었던 신형원의 '개똥벌레'와 오버랩된다. 시간은 동일한 소재를 훨씬 더 세련되게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삶과 역사의 진보도 이와 같았으면 하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