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를 다시 생각함
예전의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녀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던 것 같다. 밥 먹는 자세나 테이블 매너는 기본이고 웃어른에 대한 공경과 사회 생활하면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까지 인간됨의 기본 인성 교육이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졌다. 요즘처럼 식탁에 앉아서도 애나 어른이나 모두가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는 세태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 됐지만...
그런데 내 생각에는 이렇게 소중한 밥상머리 교육에도 부작용이 있었으니 바로 왼손잡이에 대한 강제 교정이다.
왼손잡이가 되는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었지만 요즘은 날 때부터 타고난다는 유전설이 정설로 굳어진 상태인 듯하다. 이렇게 타고난 왼손잡이를 강제로 교정하려는 데서부터 왼손잡이의 비애가 시작된다.
대가족 제도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할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때부터 자연스레 밥은 오른손으로 먹어야만 하며, 왼손으로 밥을 먹는 건 상스러운 짓이라는 밥상머리 세뇌를 받았다. 딱지치기며 잣치기 팽이치기 등 온갖 놀이며 가위질 양치질 빗자루질 등 갖은 일상들은 모두다 왼손을 쓰는 상태에서 말이다.
이렇게 왼손잡이 손주를 억지로 오른손잡이로 교정하려고 애쓰셨던 우리 할아버지에게는 애지중지하는 내새끼를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애틋한 심정이 크셨을 것이다.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동서고금을 통해 공통적으로 있어 왔다고 한다. 따라서 왼손잡이에 대한 어려서부터의 교정 노력도 동서고금이 한결같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면 이런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은 왜 생긴 걸까? 이에 대한 설명도 여러 가지로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배척을 그 시발점으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통계적으로 전세계 성인의 약 10%가 왼손잡이이며 우리나라의 경우는 약 5~6%라고 한다. 따라서 세상 대부분의 물건들이 애초에 오른손잡이를 위해서 고안되고 만들어진 건 당연하다. 그런 물건들을 왼손잡이들이 왼손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게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소수자에 불과한 왼손잡이용 물건을 따로 만들어 주자니 추가 비용이 들게 되므로 자연스레 왼손잡이는 거추장스럽고 불편을 초래하는 존재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배척이나 차별로 끝나지 않고 왼손 사용이 터부시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술을 따를 때 왼손으로 따르는 건 예의 없다고 여겨지므로 왼손잡이는 윗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아랫 사람에게라도 술을 따를 때에는 왼손을 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무엇보다 왼손잡이가 서러운 건 오른손, 왼손이라는 이름 자체에서부터 벌써 차별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데 있다. 오른손의 '오른'은 '옳다'는 뜻이니 당연히 긍정적인 반면에, 왼손의 ‘왼'의 원형인 ‘외다'의 사전적 정의는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 쓰기에 불편하다' 내지는 ‘마음이 꼬여 있다'는 뜻으로 부정적이다.
이는 영어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오른쪽의 right는 옳다는 의미가 있는 반면, 왼쪽인 left는 lyft에서 파생되었는데 이는 '쓸모없다'의 의미라고 한다. 게다가 전세계의 모든 언어에서 왼쪽이 긍정적인 뜻인 경우는 전혀 없다고 하니 과연 왼손잡이의 저주라고 할 만하다.
이런 것 말고도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에는 다소 불편한 진실도 있다. 오른손은 밥 먹는 손이요, 왼손은 화장실에서 뒷처리할 때 쓰는 손이라는 선입견의 작용도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왼쪽을 이렇게 부정적 시각으로 보았으면서, 조선시대 정승 중에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더 높은 건 무슨 까닭일까? 이건 좌우보다는 동서남북 방향과 관련되어 있다. 자고로 임금의 어좌는 북쪽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자리했고, 또한 고래로부터 동쪽을 서쪽보다 높은 것으로 여겨왔다. 그런데 남쪽을 바라보는 왕 입장에서는 동쪽이 왼쪽에 있다. 이런 연유로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한 끗발 높은 벼슬이 된 것이다.
오늘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1992년부터 세계 각국에서 이 날을 기념해 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행사는 없는 듯하다.
왼손잡이와는 별도로 왼발잡이도 있고, 알고 보면 우리의 눈이나 귀도 주로 쓰는 방향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왼발잡이의 날, 왼눈잡이의 날 그리고 왼귀잡이의 날도 생길 것인가?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왼손잡이에 대한 이런 편견이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내친김에 왼손잡이의 날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다수자라고 해서 소수자를 배척하거나 차별과 횡포와 갑질로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1. 8. 13 세계 왼손잡이의 날에
사족 : 나는 우리나라 국민의 5%만 해당하는 왼손잡이에다 동시에 우리나라 남자의 6%만 해당한다는 적록 색약자이니, 곱하면 0.3%에 해당되는 희귀종이다. 그럼에도 아들 딸 자식들에게는 하나도 물려주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주님, 감사합니다!
https://youtu.be/LoQ08C_jiQg
첫댓글 재밌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
신부 님! 감사합니다.^^
글을 읽다보니 왼손잡이 어린 아들에게 왼손 가위를 사 줬던 때가 생각나네요~ 저는 밥먹는 것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왼손잡이 불편합니다 ㅠㅠ
다음 글을 기다리며~~
간디, 나폴레옹, 뉴턴, 빌 게이츠... 이들이 모두 왼손잡이^^
우리 들째달이 왼잽이야 고쳐 보려고 했지만 안되더라고 내덕에 둘째는 왼손 바른손 다 능수 능란 하게 잘써 근데 왼손으로 글 쓸때 보면
이건 아니다 야
퀴리 부인, 안젤리나 졸리, 니콜키드먼, 오프라 윈프리... 이들도 모두 왼손잡이.^^
글 잘 읽었습니다.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그런것들을 이해주고 모두 함께 사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합니다
이베드로님 글쓰시는 솜씨가 대단하네요
큰 이 베드로 님께서 작은 이 베드로에게 댓글을 달아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