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대에 글자를 새기고 고한 글 刻天淵臺告文
아! 우리 선생께서 이 산을 얻고 이 대(臺)를 쌓아 이름을 ‘천연대(天淵臺)’라 한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제자가 오늘 벼랑의 바위를 깎아 이 이름을 새겨서 영원토록 남겨 보이려는 것이 또한 어찌 공연히 한 일이겠습니까?
생각건대 선생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이제 30여 년이 되어 뜰의 풀이 이미 무성하지만 광풍(光風)은 사라지지 않았고 제월(霽月)은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매번 이 천연대에 한번 올라 바라보면 솔개가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뛰어 연못 위로 오르는 것이 의연(依然)히 옛날 그대로입니다.
감회가 서글퍼서 배회해도 온종일 풀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의 일이란 떠밀려 옮겨가고 세상의 도(道)도 오르락내리락하니, 이 천연대의 흥폐(興廢)와 존망(存亡)은 또한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후인들이 선생의 유적을 추모하여 그 장소를 알고 싶어도 알 수 없다면 어찌 우리들이 지금 느끼는 회포와 같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보다 더 심함이 있을 것입니다.
배회하고 방황하다가 감개(感慨)가 다하지 않을 때 갑자기 이 벼랑의 바위 위에 새긴 이 세 글자가 강 언덕에 밝게 걸려 있어 서원의 입구를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을 본다면 어찌 이 때문에 뛸 듯이 기뻐서 마치 당시에 연어(鳶魚)의 지취(旨趣)를 보는 것과 같지 않겠습니까?
이에 재상 이산해(李山海)가 쓴 ‘천연대(天淵臺)’라는 세 개의 큰 글자를 벼랑의 바위에 새겨서 천 년 뒤에 이 땅에 와서 유람하는 사람들에게 자사(子思)와 정자(程子)께서 말씀하신 ‘상하에 드러난다.[上下察也]’와 ‘생동감이 넘친다.[活潑潑地]’라는 구절과 아울러 선생께서 평소에 완락(玩樂)하셨던 뜻을 눈을 들어 볼 수 있게 한다면 어찌 가리키며 돌아보는 사이에 마음과 눈을 열어서 이미 어두워진 나머지에서 하늘의 이치를 밝힐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이 벼랑과 이 바위는 비록 ‘눈으로 보기만 해도 도를 체득함이 있다.[目擊道存]’라고 말하여도 옳을 것입니다.
아! 천연대 글자가 비록 마모되어도 바위는 옮겨가지 않을 것이고, 세상이 비록 변해도 명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선생의 도덕(道德)은 위와 아래에 밝게 드러날 것이니, 그 하늘[天]과 그 연못[淵]이 어찌 바르지 않겠으며 어찌 원대(遠大)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세속(世俗) 사람들이 비웃고 업신여기더라도 근심할 것이 못됩니다. 아! 생각건대 선생께서는 사당의 영령으로 계시어 묘정을 오르내리시니, 감히 삼가 아뢰어 알리지 않겠습니까?
[주1] 천연대(天淵臺)에 …… 글 : 이 글은 1601년 10월에 지은 것이다. 〈월천연보〉에 따르면 1601년 10월에 천연대 바위에 ‘천연대’ 세 글자를 크게 새기고 사당에 고하였으며, 이때 고유문(告由文)을 지었다고 하였다. 천연대는 도산서원(陶山書院) 동쪽의 탁영담(濯纓潭) 가에 있는데, 처음에 창랑대(滄浪臺)라고 하였다가 뒤에 천연대로 바꾸었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천연대’라는 글씨는 1600년(선조33)에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 등이 청하여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 1539~1609)가 쓴 것이다. 《退溪集 卷3 陶山雜詠》
[주2] 광풍(光風)은 …… 있습니다 : 광풍은 맑은 바람을, 제월은 비 갠 달빛을 뜻한다. 황정견(黃庭堅)이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주돈이(周敦頤)의 높은 인품과 탁 트인 흉금을 묘사하여 이르기를 “흉금이 시원하기가 마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과 같다.[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주3] 솔개가 …… 것 : 《시경》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고 하였다. 《중용장구》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라고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다.
[주4] 연어(鳶魚)의 지취(旨趣) : 원문의 ‘연어(鳶魚)’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준말로, 우주에 유행(流行)하는 대자연의 이치를 가리킨다.
[주5] 이산해(李山海) : 1539~1609.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여수(汝受)이고, 호는 아계(鵝溪)ㆍ종남수옹(終南睡翁)ㆍ죽피옹(竹皮翁)ㆍ시촌거사(柿村居士) 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어릴 적에 계부(季父) 이지함(李之菡)에게 수학(受學)하였으며, 1558년(명종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61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대사간, 부제학, 대사성, 도승지, 대사헌, 이조 판서, 양관 대제학,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으며, 1591년(선조24)에는 정철(鄭澈)을 탄핵하여 강계(江界)로 유배 보냈다. 서화(書畫)에 능하여 문장팔가(文章八家)라 일컬어졌다. 저서에 《아계유고(鵝溪遺稿)》가 있다.
[주6] 자사(子思)와 …… 구절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구절이 있는데, 자사(子思)는 《중용장구》 제12장에서 이 시를 인용하고서 이 시는 “상하의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고, 정호(程顥)는 “이 한 대목은 자사께 매우 긴요한 사람을 위한 곳으로, 생동감이 넘친다.[此一節, 子思喫緊爲人處, 活潑潑地.]”라고 하였다.
[주7] 완락(玩樂) : 주자의 〈명당실기(名堂室記)〉에 “즐기고 완상하여 진실로 내 몸을 마칠 때까지 하여도 싫증나지 않을 것이니 또 어느 겨를에 외물을 사모하겠는가?[樂而玩之, 固足以終吾身而不厭, 又何暇夫外慕哉?]”라고 하였다. 이황은 이 기문의 구절을 인용하여 도산서당(陶山書堂)에 완락재(玩樂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刻天淵臺告文
猗歟我先生。得此山築此臺。而命之以天淵者。豈偶然哉。而弟子之今日鑿崖石銘此名。而留示無窮者。亦豈徒然哉。惟先生去世。于今三十年餘。庭草已蕪。而光風未泯。霽月凝輝。每一登臺而望焉。則鳶之飛而戾乎天。魚之躍而出乎淵者。依然故在也。感慨惆悵。徘徊而不釋者竟日。而況人事之推遷。世道之陞降。臺之廢興存亡。亦不可知。則後之人。追先生之遺迹。欲知其處而未得者。安知其不如吾儕今日之懷。而或甚焉者乎。徘徊徬徨。感慨不歇。忽覩此崖石上玆三字者。昭揭江皐。輝映山門。則寧不爲之躍如也。若見當時鳶魚之趣者耶。玆以李相山海所書天淵臺三大字。刻于崖石。庶令千載之下來遊斯地者。其於思程所贊上下察也活潑潑地。竝與先生平日玩樂之意。擧眼斯得。則豈不有以開心目於指顧之間。明天理於旣晦之餘乎。然則斯崖也斯石也。雖謂之目擊道存。可也。噫。臺雖壞而石不轉。世雖變而名不泯。惟先生道德之昭著于上下。其天其淵。豈不韙歟。豈不遠哉。雖被世俗笑侮。有不足恤者。噫。惟先生在廟之靈。陟降庭止。敢不敬告以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