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령(斷髮嶺)
단발령은 곧 금성(金城)과 회양(淮陽)의 경계가 나뉘는 곳으로서, 회양군 군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120리 떨어진 지점에 있다.
천마산(天摩山) 한 산맥은 길이 몹시 험준하니, 꼬불꼬불 감돌아서 마치 양의 창자와 같고 또는 서려 있는 뱀과도 같았으며, 좌우의 우거진 숲들은 서로 어리비쳤다. 가운데 봉우리에 이르자 오량동(五兩洞)이 있고 영천(靈泉)이 쏟아졌는데, 물맛이 꽤 산뜻하고 시원하였다. 재로 10리를 가서 비로소 그 정상에 오르니 갑자기 풍악(楓嶽)의 여러 봉우리들이 나타났는데, 역력히 삼삼하고 명랑하였다. 비로봉(毘盧峯) 이하 흰 옥과 같은 만 층의 여러 봉우리들이 반공중에 첩첩이 쌓여 있었으니, 바라봄에 모골이 쭈뼛하였다. 옛 기록에서 이르기를, “신라의 태자가 여기에 올라서서 바라보고 마음이 기쁜 나머지 머리를 깎았다. 그래서 마침내 단발령이라고 이름하였다.” 하였다. 위에는 토단(土壇)이 있는데 우리 조선의 세조(世祖)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며, 토단 아래에는 손수 심은 두 그루의 전나무가 있다 한다.
표훈사(表訓寺) 앞에는 절재[拜岾]가 있는데, 가정(稼亭) 이곡(李穀)의 《동유기(東遊記)》에 이르기를, “금강산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이 재를 거쳐야 하는데, 재에 오르면 산이 보이고 산이 보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절재’라 한다.” 하였는바, 또한 단발령에 얽힌 뜻과 같은 맥락이다. 풍악산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통구(通溝)를 건너면 단발령을 경유하게 되고, 화천(和川)으로 들어가면 마휘령(摩暉嶺)을 경유하게 된다. 요컨대 이 두 재의 정상에서는 일만이천봉의 신수(神秀)하고 괴기(瑰奇)한 경관을 거의 다 음미할 수 있는데, 다만 정면으로 대하고 비스듬히 대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러나 전면(全面)과 반면(半面)에는 각각 나름대로의 자태가 있으니, 참으로 소동파(蘇東坡)가 말한, “횡면으로 보면 재를 이루고 측면으로 보면 봉우리를 이룬다.”라는 것이다.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제일 봉우리 위에서 기갈증 위로하니 第一峯頭慰飢渴
인간에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믿겠네 人間信有別乾坤
옥산이 무너져 가니 구름 뿌리 움직이고 玉山頹去雲根動
설령이 차가워지니 학의 날개 번득이네 雪嶺寒來鶴翼翻
우뚝 솟은 봉우리는 장로 격이요 嵂崒孤撐爲長老
나열된 봉우리들은 아손과 같네 巑岏羅立似兒孫
인간의 영욕에 얽매인 일 누가 바라겠는가 貪癡却笑何人意
멀리 떠나려면 먼저 승려가 되어야 하느니 遐擧先須作晩髠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원 상인(元上人)에게 지어 주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풍악이 바로 신선들의 세계라 말하는데 人言楓嶽是丹丘
만고토록 가파른 바위 바다 머리에 서 있네 萬古巉嵒碧海頭
현폭과 단애는 빼어난 절경 많고 懸瀑斷崖多秀絶
불당과 선당은 머물러 있을 만한 곳 佛堂禪室可淹留
석문엔 담쟁이덩굴 사이로 달이 길이 비치고 石門長照綠蘿月
아름다운 나무는 단풍진 가을을 알지 못한다 琪樹不知紅葉秋
진토에서 몇 년이나 몽상을 괴롭혔던가 塵土幾年勞夢想
유유히 떠나는 그대의 종적이 부럽구려 羨君蹤跡去悠悠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도중(途中)에 입으로 부르다’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풍악산이 어디에 있느메뇨 楓嶽在何許
구름이 가리니 산 보이다 말다 하네 雲遮山有無
선승을 찾고자 단발령을 넘고 싶어 尋禪欲斷髮
길을 물으니 바로 통구란다 問路是通溝
가 보기도 전에 마음 먼저 상쾌하고 未去心先爽
경치 들어 보니 병이 벌써 나았다 聞來病已蘇
봉래산은 바라보는 속에 아른거리는데 蓬萊只望裏
신선들을 보는 것과 방불하구나 彷彿見仙徒
서하(西河)의 시는 다음과 같다. 그 한 수는
이 걸음 괴로운데 어디를 가려고 하는가 此行辛苦欲何之
소나무 계수나무 떨기 속 저문 비 내릴 때 松桂叢中暮雨時
봉우리들은 서로 연이어 띠처럼 맺어져 있고 關嶺相連縈似帶
길은 일정한 방향이 없어 뒤엉킨 실과 같다 路岐無定亂如絲
천 굽이 경사진 시내는 말이 뜰 만큼 깊고 千回急澗深浮馬
한 면의 기이한 봉우리는 반쯤 눈썹 드러냈네 一面奇峯半露眉
신선산의 구경은 옛날부터 품어 온 뜻이었으니 自是仙山存宿計
옷 젖는 것도 배고픈 것도 상관할 게 없다 不妨沾濕又長飢
하였고,
또 한 수는
단발령을 올라서서 準擬登玆嶺
금강산을 대면하려 하였다 金剛對面看
지금 와서 갑자기 잃었으니 今來忽相失
어느 곳에서 장안사를 찾을까 何處覓長安
하였으며,
또 한 수는
나무 그늘 침침하고 시냇물은 급히 흐르는데 山木陰陰溪水急
젖은 구름 모여들고 비는 분분이 내리는구나 濕雲回合雨紛紛
뭇 산들 갑자기 천 길 구렁텅으로 변했는데 群山忽變千尋壑
창해의 동쪽 가에서 땅을 점령하고 있도다 滄海東邊占地分
하였다.
서계(西溪)의 시는 다음과 같다.
서쪽 산 동쪽 산 합했다 다시 열렸는데 西崖東嶂合還開
말 타고 다리 건너며 몇 차례나 바라봤나 跋馬溪橋望幾回
지대가 낮아져서 다 보지를 못하였기에 却爲因低看不盡
굽이굽이 돌아서 다시 단발령 위로 오노라 盤盤更上嶺頭來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의 시는 다음과 같다. 그 한 수는
저녁에 신산의 근처에서 잠을 자며 夕宿近神山
머리 들어 구름 낀 재를 바라보노라 矯首望雲嶺
승경을 찾는 일 이제 처음이 아니니 冥討匪今始
경치 뛰어난 곳을 벌써 알고 있노라 勝處心已領
이불 둘러쓰고 기이한 생각에 잠기고 虛衾擁奇想
베개 어루만지며 잠 이루지 못하노라 撫枕情耿耿
정신이 벌써 신선과 친구를 삼아서 神有羽人交
꿈속에 그와 함께 하늘을 날아다녔다 夢與天路永
뒤척이다 보니 벌써 새벽이 되었는데 輾轉遂已曙
하인 녀석이 와서 날씨가 맑다고 알린다 僕夫告晴景
하였고,
또 한 수는
내가 동쪽에서 노닐고 돌아오면서부터 自我東遊還
신령스러운 산이 뇌리에 새겨져 있노라 靈山在肺腑
되새겨 보면 십여 년이 훌쩍 지나갔는데 宛宛一紀餘
오늘 다시 금강산을 보리라 생각했으랴 不謂今再覩
맑은 새벽에 높은 재를 올라가니 淸晨躋崇嶺
이채로운 빛이 공중에 가득하다 異彩滿空宇
총총히 박혀 있는 일만 이천의 봉우리들 叢叢千萬峯
일일이 날개를 치며 춤을 추는 것 같구나 一一如翔舞
높아서 기울어진 하늘의 기둥을 떠받치고 高扶天柱傾
맑아서 땅의 영기가 모인 것을 보겠노라 淸見地靈聚
불그스름한 노을은 농후하게 끼어 있고 蔚蔥絳霞氣
옥 같은 봉우리들은 밝게 죽 늘어서 있다 森朗群玉府
우람한 장관은 구주(九州)를 덮었고 偉觀掩九有
수려한 경치는 천고에 으뜸을 차지하였네 秀色竟千古
평생을 돌아다니며 보아온 산들은 平生所見山
쇄세한 것들인데 다 셀 수 있겠는가 瑣細誰復數
잠시 후 절정에 올라가려 하는데 行當上絶頂
혹시 우리 강토가 작아 보일 수 있을는지 或可小東魯
하였다.
구당(久堂)의 시는 다음과 같다.
천 겹의 단발령에 올라서서 斷髮千重嶺
둘러보니 금강산 일만이천봉 回頭萬二峯
통구의 오늘 밤 밝은 달이 通溝今夜月
나의 옛 모습을 비춰 주누나 照我舊時容
만정당(晩靜堂) 서명균(徐命均)의 ‘통구(通溝) 도중에’라는 시는 다음과 같다.
나는 동헌(東軒)에 앉아서 我坐黃堂裏
날마다 고량진미를 포식하노라 日飽列鼎几
마음은 백성의 굶주림을 염려하나 心雖念民飢
내가 직접 겪은 것만은 못하노라 猶未若在己
지금 전야 사이를 나가 보니 今出田野間
애처로워서 볼 수가 없도다 怛然不可視
긴 산협은 첩첩이 얽히고설켜 감돌아 앉았는데 長峽莽回互
쓸쓸하게 몇몇 마을이 그 가운데 자리 잡았다 蕭蕭數村里
전토가 모두 산마루에 있으니 有田皆高巓
곡식이 절반은 익지 않았다 荒穀半無穗
주민들은 대부분 비쩍 말랐는데 居民多鵠形
죽 늘어서서 절을 하고 꿇어앉네 紛然羅拜跪
상공과 관세 등으로 上供與官稅
독촉받는 것이 너무도 많다 徵責多色類
먹는 것도 오히려 넉넉치 못한데 所食猶不贍
죄를 면하기 어려울 걸 염려한다 恐難免係纍
나는 세를 정감해 주고 싶지만 我欲與停減
또한 마음대로 놓아두기도 어렵다 亦難一任意
한갓 탄식하는 마음만을 품고 있으니 徒然懷歎咨
옛 양리에게 깊이 부끄러워하노라 深愧古良吏
허원(許源)의 시는 다음과 같다.
단발령에 올라서니 하늘을 잡을 수 있는데 髮嶺初登可捫天
봉래산을 동쪽으로 바라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蓬山東望杳無邊
잠시 후에 해가 솟고 구름이 걷히니 須臾日出煙雲卷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드러나네 露出崢嶸萬二千
斷髮嶺
嶺卽金城。淮陽分界處。在淮陽治西北一百二十里。盖天摩山一脉。路極險峻。詰曲縈迴。如羊膓。又如卛然。左右叢薄。互相掩暎。至中峯。有五兩洞。靈泉逬瀉。味頗淸冽。嶺行十里。始登其頂。忽見楓岳諸峯。歷歷森朗。自毘盧以下。如萬層白玉。堆疊於半天。望之毛骨竦然。誌云。羅太子登此。而望見心悅。落髮。遂號斷髮云。上有土壇。我世祖駐蹕之所。壇下有手植雙檜云。表訓寺之前。有拜岾。李稼亭記云。入此山。必由此岾。登岾則見山。見山則不覺稽顙。故曰拜岾。亦斷髮之義也。楓岳之路有二焉。涉通溝者。由斷髮。入和川者。由摩暉。要之。二嶺之巓。庶可先領。萬二千峯神秀瑰奇之觀。而特正對。與斜對。稍不同耳。然全面半面。各自有態。眞坡老所謂。橫看成嶺。側看成峯者也。
穌齋盧守愼詩云。第一峯頭慰飢渴。人間信有別乹坤。玉山頹去雲根動。雪嶺寒來鶴翼翻。嵂崒孤撑爲長老。巑岏羅立似兒孫。貪癡却笑何人意。遐擧先須作晩髡。石洲權鞸。賦贈元上人詩云。人言楓岳是丹丘。萬古巉嵒碧海頭。懸瀑斷崖多秀絶。佛堂禪室可淹留。石門長照綠蘿月。琪樹不知紅葉秋。塵土幾年勞夢想。羡君蹤跡去悠悠。月沙李廷龜。途中口占云。楓岳在何許。雲遮山有無。尋禪欲斷髮。問路是通溝。未去心先爽。聞未病已蘇。蓬萊只望裏。彷彿見仙徒。西河詩云。此行辛苦欲何之。松桂叢中暮雨時。關嶺相連縈似帶。路歧無定亂如絲。千回急澗深浮馬。一面奇峯半露眉。自是仙山存宿計。不妨沾濕又長飢。又云。準擬登玆嶺。金剛對面看。今來忽相失。何處覓長安。又云。山木陰陰溪水急。濕雲回合雨紛紛。群山忽變千尋壑。滄海東邊占地分。西溪詩云。西崖東嶂合還開。跋馬溪橋望幾回。却爲因低看不盡。盤盤更上嶺頭來。農巖金昌協詩云。夕宿近神山。矯首望雲嶺。冥討匪今始。勝處心已領。虛衾擁奇想。撫枕情耿耿。神有羽人交。夢與天路永。輾轉遂已曙。僕夫告晴景。又云。自我東遊還。靈山在肺腑。宛宛一紀餘。不謂今再覩。淸晨躋崇嶺。異彩滿空宇。叢叢千萬峰。一一如翔舞。高扶天柱傾。淸見地靈聚。蔚葱綘霞氣。森朗羣玉府。偉觀掩九有。秀色竟千古。平生所見山。瑣細誰復數。行當上絶頂。或可小東魯。久堂詩云。斷髮千重嶺。回頭萬二峯。通溝今夜月。照我舊時容。晩靜堂。徐命均。通溝途中詩云。我坐黃堂裏。日飽列鼎几。心雖念民飢。猶未若在己。今出田野間。怛然不可視。長峽莾回互。蕭蕭數村里。有田皆高巓。荒穀半無穗。居民多鵠形。紛然羅拜跪。上供與官稅。徵責多色類。所食猶不贍。恐難免係纍。我欲與停减。亦難一任意。徒然懷歎咨。深愧古良吏。許源詩云。髮嶺初登可捫天。蓬山東望香無邊。須臾日出烟雲卷。露出崢嶸萬二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