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김남숙
아침에 눈을 뜨면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늦은 아침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무심히 창밖을 바라본다. 출근하는 사람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가는 엄마들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는 모습이 보인다.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니, 생생하게 흐르는 삶의 물결이 나만 제쳐두고 흘러가는 것 같다. 기지개를 켜고 마당으로 나오니 감나무에 매달린 초록 이파리도 내 마음처럼 외롭게 나부끼고 있다.
외갓집 뒤란에도 오래된 감나무가 있었다. 툇마루에 앉아 늦가을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홍시를 바라보면 입안에 침이 고이곤 했다. 장독대 옆에서는 어미 닭이 쉬지 않고 땅을 파헤쳐 모이를 찾고 갓 깨어난 병아리가 기우뚱거리며 걸음마를 배우던 평화로운 풍경. 잊은 줄 알았던 유년의 따뜻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5년 전 퇴직 후, 집을 짓고 제일 먼저 마당에 감나무를 심었다. 그해 겨울 몇십 년 만에 찾아왔다는 강추위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마당의 나무들을 덮쳤다. 애지중지하던 감나무는 짚으로 옷을 입혀 주었지만 봄이 와도 움틀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미 죽은 것 같으니 뽑아내고 새로 심자는 남편에게 기다려 보자고 우겼다.
올봄에는 튼튼해진 감나무에서 일찍부터 나온 도톰한 이파리들이 반들반들하게 윤기가 돌았다. 여름 장마가 길어지면서 도사리 감들이 나무 아래 수북하게 쏟아지다가 장마가 지나가고 남은 감들은 제법 알이 굵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나가 남아 있는 감의 수를 헤아렸다. 이제는 떨어지지 않고 잘 익어갈 만큼 알이 굵어졌다고 흐뭇해할 때 태풍이 몰려왔다. 서너 차례 몰아친 태풍
이 그 많던 감들을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무참하게 떨어뜨렸다.
이글거리던 태양의 열기가 하루가 다르게 식어갔다. 햇볕과 바람의 기운을 알아차린 나무들은 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잎으로 가는 양분을 차단했다. 초록에 지친 이파리들이 노란색으로, 붉은색으로 곱게 물들더니 바스락거리며 바닥으로 나뒹굴고 있다. 정원에 함께 사는 소나무 이파리와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집 감나무 이파리는 아직도 젊은 줄 알고 욕심을 부리는 남편처럼 여전히 초록을 고집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남편이 주식을 더 사고 싶다며 대출을 받자고 조르고 있다. 젊어서부터 주식을 한다고 여러 번 큰 손해를 입었다. 빠듯한 살림에 그 돈을 메꾸느라 애꿎은 나만 아등바등하고 살았다. 퇴직하고 연금으로 생활하는데 대출이자까지 낼 수는 없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서재로 들어가 꽝 하고 문을 닫았다.
나이가 들어도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뾰족한 성격에 이제는 단련이 될 만도 하건만, 그 싸늘한 말투는 여전히 내 마음을 지독한 외로움의 늪에 빠져들게 한다. 그동안 날려버린 돈을 되찾아야 한다며 모니터의 파란색, 빨간색 숫자에 빠져 지내는 남편의 모습은 단풍 들지 못하는 감나무의 초록 이파리를 닮아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는 담배 농사를 지었다. 뜨거운 여름에 온 식구가 매달려 일해야 하는 고된 농사였지만 담뱃잎을 잘 말려 조합에 수납하면 시골에서 만져보기 어려운 목돈이 들어왔다. 농한기에 사랑방에서 새끼를 꼬다가 무료해지면 아버지는 동네 가겟방에 나가 화투를 치셨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아버지는 외지에서 온 전문 노름꾼에게 농사지은 돈뿐만 아니라 담배밭까지 모두 잃어버리고 집을 나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쌀 항아리는 비었는데 엄마는 자리에 누워 있고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동생들 때문에 부엌으로 광으로 허둥거리던 막막했던 시간.
남편과 함께 탄탄한 새 가정을 만들고 싶어 결혼했으나 시댁도 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한 시아버님이 읍내 여관에서 빚을 얻어 화투를 치자 남편 직장에까지 빚쟁이들이 찾아왔다. 어느 날 퇴근해 집에 와보니 냉장고에 빨간딱지가 붙어 있었다. 너무 놀라 가슴이 콩닥거렸다지만 남편은 얼마나 미안하고 막막할까 싶은 생각에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빚을 갚느라 한여름에도 만삭인 몸으로 임신복 원피스 한 벌로 견디고,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사촌들이 물려준 옷을 입혀 키웠다. 퇴근 후 시장에서 장본 까만 비닐봉지를 무겁게 들고 들어와 옷도 벗지 못하고 밥을 지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고 두 아이가 앞을 다투어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거리면 작은 아파트가 초록 이파리들의 생기로 가득했었다.
고달팠지만 따뜻했던 옛 생각에서 깨어나자 외로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천장이 높고 넓은 거실에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 막차 끊긴 간이역처럼 휑한 분위기가 부엌과 거실에 감돌았다. 싸늘한 바람 한 줄기가 가슴을 헤집고 들어와 텅 빈 몸을 통과해 가는 것 같았다.
시내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딸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제 할머니인 줄 미리 아는 세 살배기 손녀가 현관에 섰다가 와락 품에 안겼다. 허허로운 우주와 나를 이어주는 탯줄 같은 아이였다. 손녀와 함께 어린아이가 되어 숨바꼭질하는 동안 외로움도 꼬리를 감추고 꼭꼭 숨어 있는 듯했다. 가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떼어놓고 미운 남편 저녁밥을 지어주기 위해 딸네 집을 나섰다.
시내버스에 올라 금강 다리를 건너고 수목원과 호수공원을 지나는 동안 어스름이 내렸다. 고운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은 신비로운 색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해가 지고 있었다. 떠오를 때의 찬란함도 한낮의 치열함도 내려놓고 처연하게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보노라니 나도 그곳에 함께 있는 것 같았다. 생의 마지막 정거장이 저토록 아름다운 곳이라면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라도 가볍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초록 단풍인 채로 낙엽 지던 우리 집 감나무 이파리가 떠올랐다. 단풍 들어 떨어진 다른 이파리들과 달리 한동안 땅에 안착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하여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시내버스에서 내려 걷다가 우리 집을 바라보았다. 감나무 아래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는 남편의 모습이 먼발치에 보였다. 언제 저렇게 말랐을까? 남편의 성근 머리카락과 좁은 등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남편은 마당에 뒹굴던 감나무 이파리들을 갈퀴로 긁다가 대문에 들어서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아침에 화를 낸 것이 마음에 걸려 마당에 서서 집 나간 식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남편은 아직도 자신이 청춘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지. 어서 따뜻한 밥상에 마주 앉아 내 안에 가득 담아온 일몰의 색으로 남편의 초록을 물들이고 싶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묵은김치를 넣어 남편이 좋아하는 청국장을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