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드문드문 비치는 아침, 광나루 역 1번 출구 옆에서 우리 일행들이 만났습니다. 본격적인 휴가철, 더구나 주말에 길 막힐 걱정도 아랑곳없이 중원계곡을 향해 즐겁게 출발합니다. 운전대는 길을 잘 아는 산소님이 잡았습니다. 그러나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하고 우려했던 대로 도로는 거의 주차장입니다. 햇빛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날씨인데, 거의 서 있다시피 한 차안의 냉방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근육질의 다부지고 넓적한 몸매의 호암님을 앞자리에 앉혔는데도 배가 나온 비만아 바우님 덕분에 뒷자리는 서로 몸이 닿습니다. 게다가 다리 긴 하리님의 양보로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범바위님은 바로 뒷자리에 앉은 키 크고 다리 긴 하리님을 잊고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제낍니다. 가도가도 길이 뚫릴 기미가 안보이자 운전대를 잡은 산소님은 우회길을 택해 차를 몰아 보지만, 큰 효과가 없습니다. 우리만 약삭빠른 게 아니니까요. 바우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양으로 계속 우스개를 이어갑니다. 그의 재미난 입담이 아니었다면 정말 더 힘든 고행 길이었을 것입니다. 돌고 돌아 평소 소요시간의 3배 넘는 시간을 소모하여 계곡 입구에 다다르니 도로 옆길까지도 주차난에 몸살입니다. 아, 대한민국 좁은 나라. 좁은 나라 대한민국.
계곡 입구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포즈를 잡던 우리는 염치없게도 가게에서 가족을 위한 물건을 사가지고 나오시는 어떤 부인에게 카메라 셔터를 부탁합니다. 나는 속으로 조마조마 했습니다. 아래위로 훑어보며 ‘손에 물건 든 것 안보여요?’하여 핀잔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니, 그 분은 뙤약볕 아래에서 손에 든 물건을 땅에 내려놓고, 카메라를 받아 든 후 구도까지 조정해 가며 두 장의 촬영을 해 주십니다. 카메라 주인 바우님은 촬영된 사진을 검색 리뷰하며 감탄을 합니다. "이 여자분 프로네 프로~" 아, 한국 여자 좋은 여자, 좋은 여자 한국 여자.
계곡 길로 들어서자 물소리가 들리고, 나무 그늘이 이어집니다. 온 몸의 땀구멍이 서서히 문을 닫습니다. 계곡 물길 안에 북적이는 인파도 이곳은 덜 야만스럽습니다. 가족과 함께 온 일행이 많고, 학생 같은 사람들이 많은 듯한데,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 가족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서 그리 하는 듯합니다. 벌건 대낮에 가족들 앞에서 마치 남들에게 하듯이 막무가내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여기저기서 여자들이 괴성을 크게 질러대는 짓은 여기라고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짖는다고 다 똑같은 개는 아닐 텐데도 말입니다. 이솝 우화의 얘기에 나오듯이 이쁜 강아지가 주인 무릎에 올라 귀염을 받는다고 해서 당나귀까지 무릎에 앉으려 하면 안될 텐데도 말입니다. 파스칼의 [팡세]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려니와 짐승도 아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인간은 천사처럼 행동하려고 하지만 짐승처럼 행동한다.’
도착한 시간이 벌써 점심시간 다 됐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합니다. 배고프다고, 얼른 점심부터 먹자는 바우님의 하소연을 하리님이 부드럽게 달래서 일행은 결국 합수 지점까지 올라갑니다. 계곡의 중류를 벗어나니 그야말로 비경입니다.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계곡은 인적마저 드물어 마치 깊고 깊은 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공기는 맑고 차가워 감히 물속에 발을 담글 생각조차 없습니다. 드디어 점심 식사 자리가 펼쳐집니다. 각자 준비한 음식을 꺼내 놓습니다. 일행에게 나눌 적당한 여분의 음식들도 펼쳐 놓습니다. 과일, 떡, 찰밥, 그리고 맛있는 김치와 밑반찬들. . . . 오늘도 호암은 어김없이 마나님이 준해 준 별식들을 메고 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그때까지도 얼음이 녹지 않은 동치미를 꺼내 놓습니다. 여름날에 먹는 얼음 동치미의 맛이라니! 호암님의 부인은 대체 어떤 분일까 상상해 봅니다.
식탁에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 마주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음식을 먹는 자세와 모습은 사람마다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는 그 사람에 관한 숨겨진 많은 과거와 현재의 정보를 읽어낼 수 있는 법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읽혀지는 법이지요.
식사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계곡 물을 즐깁니다. 나이를 먹어도 물속에서는 어린애가 됩니다. 왜냐면 물은 인간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오래 전에 바다로부터 진화되어 육지로 걸어 나왔습니다. 바다는 인간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파도 소리는 소금기 있는 인간의 피와 체액과 인간의 세포들을 고향으로 부릅니다. 인체의 70%가 물이고, 우리는 열 달 동안 어머니 태안의 양수 속에서 헤엄치며 성장했습니다. 물은 그래서 신성합니다. 물을 오염시키면 곧 우리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찰칵대는 바우님의 카메라 셔터가 부지런히 촬영을 합니다. 그러나 맑은 계곡 물속에서의 천진난만한 즐거움을 오래 누리지 못합니다. 시간에 쫒깁니다. 워낙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하산 시점이 빨리 왔습니다.
산 밑에 가까워질수록 다시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바우님이 또 보챕니다. “우리 다시 계곡으로 얼라가요 어서요오~” 차를 움직여 천년고찰 용문사로 이동합니다. 의병들이 나라를 위해 싸운 전장터이기도 하답니다. 남아 있겠다는 하리님을 뒤에 두고 절로 올라가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절까지 긴 길에 이어지는 물길에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울리도록 배려해 놓은 점이 인상적입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절까지의 먼 길을 걷도록 한 것이지요. 절에 이르니 그야말로 명당지세입니다. 절 전체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대웅전의 배산 뒤로도 높은 산봉우리들이 첩첩이 이어지고, 절 바로 좌측으로는 이끼 낀 넓은 계곡이 울창한 숲 아래 아름답게 펼쳐져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잘 가꾼 절 마당 축대 앞에는 일천 년 나이로 추정한다는 은행나무가 지금도 살아 거대한 밑둥을 드러내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천 년이라니! 감히 상상도 못할 세월입니다. 그 세월 동안 저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은행나무 앞에 서니 내 생명의 시간은 티끌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한 낱 티끌의 시간여행을 하며 그조차 의식 하지 못하고 지냅니다.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입니다.
절 구경을 마치고 돌아보니 주변에는 호암님과 촬영하던 바우님만 있습니다. 산소님은 먼저 혼자 내려갔다 합니다. 그 분의 ‘my way'가 다시 발동한 모양입니다. 내려오면서 시장기가 든 나는 절아래에서 절구로 찧어 만든다는 옛날 식 인절미를 샀습니다. 내려간 산소님과 남아 있는 하리님 몫도 챙겨들고 가니 두 사람도 맛있게 먹습니다. 출처도, 어떤 특성의 것인지 묻지도 않고요. 모두 시장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낙조도 사라져 갈 즈음, 산행 뒤의 저녁식사 시간으로는 좀 늦은 시간에 우리는 절에서 내려와 산소님의 이끌림에 따라 산소님이 과거에 와 봤다는 불고기집을 찾아 배고픔을 참고 시내를 배회 합니다. 그냥 근처의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하자는 일행들의 의견은 산소님의 과거 추억에 대한 집착에 의해 묻힙니다. 여러 차례 묻고 물어 꽤 먼 거리를 차로 이동합니다. 드디어 그 식당에 도착해 또다시 산소님의 주문대로 식사를 마치고 출발합니다. 산소님은 아직 이 디젤 짚차의 특성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듯 가끔씩 에러를 내긴 했지만, 수고스럽게도 먼 길을 돌아 밤 아홉시가 훨씬 넘어 아침에 출발했던 광나루 역 근처에 도착합니다. 운전한 사람이나 동승한 사람들이나 모두 녹초가 되었습니다. 내가 키를 받아 잠시 차를 주차하는 동안 이 번에는 하리님이 아이스크림 콘을 사와서 한 개씩 나누어 줍니다. 긴 여로 끝에 먹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을 하리님은 기억하고 있었던 게죠. 땡큐, 비록 몇 천원의 배려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인간적인 배려심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차를 몰고 오는 동안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어지는 생각에 묻혀 내비게이션의 안내음을 듣지 못한 채 분당- 수서 도시고속화 도로를 용인까지 무심코 달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되돌려 오는 길에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했다지요. ‘돼지가 되어 즐기기보다 사람이 되어 슬퍼하리라.’
첫댓글 아~ 수서까지 다녀 오셨군요 ~~~ 잊지못할 하루 였습니다 ^^
용인까지요.ㅎ
@세나무 에구야 ~
그림이 그려지는 하루였습니다 ㅡ♡
독특한 추억이 되겠죠?
함께해서 좋았습니다.
코란도 애쓴 날이에요 ㅎㅎ
낄낄낄....
송산형님 저 불랙입니다 산소형님초대로 형님에 멋진글을 읽을수있게되었네요! 멋진추억 만들고 오셨네요ㅡ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러셨는가? 어서오시게.
환영하네.
글은 무슨!
뼈대도, 내용도 엉터리인데.
그냥 단순한 기록일 뿐인데.
아무튼 반갑네ㆍ자주 보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