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편 십자가의 심판
1)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물이다.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이 된 것은 만고불멸의 진리이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물이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이며,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십자가는,
▶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통해 우리를 자녀 삼으실 사랑 때문이다,
▶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거하시고 싶으신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다.
▶ 율법의 회초리 대신 복음으로 가슴에 품고 싶으신 사랑 때문이다.
▶ 부활의 연합한 자로 영원한 안식을 함께 누리게 하시려는 사랑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것은 율법의 요구를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으니 십자가 밑에 죄인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부활의 연합한 자 안에서 새 생명의 증인으로 살자.
2)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의 상징물이다
십자가는 하늘과 땅의 심판이며, 영과 육의 심판이며,
복음과 율법의 심판이며, 죄와 의의 심판이다.
롬5:16~17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심판이며,
첫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함이다.(엡2:15 히8:13 9:15: 10:9)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사도가 십자가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와 함께 자신도 못 박혔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죽었다는 의미는 율법 아래 있는 자를 말하고,
살았다는 의미는 복음 안에 있는 부활의 연합한 자를 말한다.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육의 개념이 아니라, 영적관계를 말한다.
또는 내 죄를 십자가에서 사해주신 은혜에 감사해 그 십자가를 생각하거나,
십자가에 달린 주를 바라보면서 고난에 동참한다는 의미로도 생각 할 수 있지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것은 모든 죄와 저주를 십자가로 심판하시고
무덤에 장사지내고 부활하실 선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밑에 머물 것이 아니라,
부활의 연합한 자안에서 승리를 선포하며 살자는 것이다.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은혜에서 떨어진 자’란 선물로 받은 구원이 취소된다는 말이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예수께서 지셨고, 나는 실제적으로 못 박힌바 없었으나,
부활의 연합한 자가 되고 보니, 나도 함께 못 박힌바 된 것이 은혜이기에 더 자랑스럽다.
우리의 죄는 예수십자가와 함께 죽고, 우리의 저주는 무덤에 장사 되었으며,
부활의 연합한 자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이다.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의 조건이 되었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으며,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이다.(롬1:4) 그러므로 십자가가 심판한 것이 아니라
달리신 예수그리스께서 자기육체로 단 한 번의 제물이 되셔서
영원히 온전하게 하신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사형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3) 십자가는 하나님과 연합의 상징물이다.
엡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사”의미는 이방인과 유대인의 분리의 원인인 율법을 말하며,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을 분리시킨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며,
크게는 하나님과 우리가 원수 되었던 죄의 담으로 인하여
나누어진 상태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엡2: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자기의 안에서”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영적관계를 말한다.
엡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의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적관계 안에서 하나가 되어졌다는 것이다.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는 이 큰 사건은 십자가가 중재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 복구할 수 없는 상태를 두고 소멸이라 말한다.
이 진리를 아는 것 같으면서, 허물어진 율법의 터 위에 다시 재건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십자가를 두고 수직 사랑, 수평 사랑을 비유하여 사랑을 강조하다 보면,
위로 하나님 사랑 아래로 이웃사랑이 어떤 율법사처럼(눅10:27)
영생의 조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옛 약속이 제시하는 영생의 조건이고, 새 언약의 구원의 조건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하셔서 내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영생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롬8:9~10)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이것은 영적으로 체험 되지 않으면 항상 십자가 밑에서,
세상에 속한자로 죄인 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하신 것은 하나님과의 연합을 선포한 것이다.
4) 십자가는 죽으심과 부활의 상징물이다.
롬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존재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은 부활의 연합한 영적관계 안에서만 알 수 있다.
바울이 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육신이 사는 동안 죄 문제는 큰 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원죄는 사함 받았으나, 자범죄는 회개해야 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은혜로 구원은 받았으나 율법의 행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고 하였다.
십자가에 함께 못 박히고, 함께 장사되고, 함께 일으키심을 받고,
함께 부활의 연합한 자가 될 때야 비로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실을 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단순히 나의 죄 때문이라는 소극적인 면보다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신 대 사건이다. 큰 틀 안에서 보면 죄를 정하는
율법자체를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며, 나의 죄를 이미 해결해 놓은 사건이다.
이 진리를 모르는 서기관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자기 눈에 들보는 두고
형제의 눈에 티를 빼라고 하는 자들이며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먹는 자들이라 질타 하셨다.
그것이 원죄와 자범죄의 논리이다.
성경은 큰 죄와 적은 죄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죄와 저주는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고,
무덤에 함께 장사 지낸바 되었다. 함께 부활에 연합한자는 부활을 증거 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삶 속에서 살다보면 모든 것이 해결 되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롬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죄에 거하겠느냐”의 의미는 죄를 짓는다는 뜻이 아니라 정죄하는 율법아래 살겠느냐? 라는 뜻이다.
그리고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는 죄에 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롬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함께 죽고 함께 살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롬6:4~5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함께 죽고 함께 살아서 새 생명으로 사는 자이다.
롬6:6~7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옛 사람은 예수이전의 전 인류를 말하며, 새 사람은 예수부활의 연합한 새 생명으로
사는 새로운 피조물들을 말한다.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여기서 율법아래 있는 유대인, 율법과 관계없는 이방인, 그리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
세 부류로 구분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자.
나는 유대인도 아니요, 이방인도 아니라 부르심을 입은 자이다. 더 나아가 창세전에 택함 받은 자이다.
십자가는 옛 사람을 자기육채로 심판하시고, 새 사람을 지어 생명의 부활로 심판하셨다.
계20;11~15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의 심판이 있다.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그 행위대로 받는 심판이다. 그 행위란 하나님의 의를 믿지 못한 행위이다.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의 심판이 있다. 나와는 관계없는 심판이다.
공중혼인 잔치에 참여할 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죽은 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영생한 생명의 소유자이다.
나는 생명록에 기록된 자가 아니라, 창세전에 선택받은 자요,
자녀의 권세를 이미 소유한 자요, 신부로 아버지의 권속이 된 자이다.
이를 경험한자는 무덤 가운데 있어도 죽은 자가 아니라, 예수 안에 잠든 자요,
천사장의 나팔소리에 일어날 자이다.
살전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현
재 부활의 연합한 자가 누릴 행복이다.
그러므로 부활에 연합한자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벗어버리고
부활의 주를 증거 하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라는
찬양가사처럼 보혈에 머물면 부활의 주님은 신기루처럼 보인다.
다음 편에서 그 이유를 밝히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