ΑΩ 금주의 말씀 ΑΩ
“다 나에게로 오너라”
(마태오복음 11:16~19, 25~30)
한상윤(프란시스) 신부
세례자 요한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의 엄격한 금욕적인 삶에 대하여 미쳤다고 평하면서도 금욕적인 삶이 부러워서 많이들 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과 즐겨 먹고 마시니까 이번에는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린다며 비난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해석이 실질적이고 권위가 있었기에 그분의 말씀을 계속 듣고 싶어서 많이들 따랐습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에게는 이래도 불만 저래도 불만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힘없는 사람은 어느 편에 장단을 맞출 수도 없고, 강단과 뚝심이 없으면 이랬다 저랬다 하기 십상입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역시 생각을 잘해야 한다.
대학부 시절, 전도된 새내기 대학생이 하루는 주일예배에 보이질 않아서 전화했더니,“선배님! 공휴일이라 집에 있었어요. 교회는 공휴일날 안 쉬어요?”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포기할 일이 많습니다. 내려놓을게 많습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생깁니다. 그릇을 비워야 채울 수 있듯이, 은혜를 얻으려면 자기 내면의 에고를 비워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듯이 하느님이 임재하는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신자가 되어 간다는 것은, 피해를 감수할 줄도 알고, 손해 볼 줄도 알고, 나서고 싶을 때에 뒤로 한걸음 물러설 줄 아는 과정입니다. 그래야만 나는 가려지고 하느님만이 보이게 됩니다.
한편 나에게 하느님이 보이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공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믿음이 그만큼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신앙의 출발은 스스로를 아는데 있으며, 나의 믿음이 얼마나 위선적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힘으로 수고하고 노력하며 애써 선을 실천하려고 했던 공로주의를 뒤집어 쓴 위선의 탈을 벗어던지고 예수님께 달려나가야 합니다.
타인의 눈에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분간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속마음과 겉모양의 부조화를 극복해내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 안으로 들어가기 힘듭니다. 이런 불편함이 신앙 전체를 기초부터 흔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힘들고 지쳐있습니까? 간때문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살아보니 깨닫게 되는 인생의 의미는 ‘예수님이 없으면 안됩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아기 교육용 프로그램 ‘혼자서도 잘해요’처럼 신앙생활을 그렇게 해석하여 예수님께 보탬이 되어야 하고 자기 짐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에 쓰라림과 우여곡절 그리고 휘청거림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닌척 너스레를 떨지만 교만과 위선을 벗어버리고, 나에게 오너라 하고 부르신 주님께 인생을 의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그분께로부터 온유와 겸손을 배워 평안과 안식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변화는 예수님께 나아갈 때 비로소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무언가 하실 말씀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고맙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의 실패와 억압, 죄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풀어주시고,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혼자서 스스로 구원을 성취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예수님께 나아와 마음과 몸, 영혼의 병을 치유 받으십시오. 구원과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위한 절박한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나아오라고 하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달려 나가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