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리처>는 액션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영화다. 영웅적인 주인공이 나와 악당을 제압하기까지, 신나는 액션과 위협적인 긴장과 공포가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작품. 감독 크리스토퍼 맥쿼리(Christopher McQuarrie)가 연출한 영화는 저자 리 차일드(Lee Child)의 연작소설 중 제9권 <원 샷>(One Shot)의 플롯을 토대로 제작되었으며, “잭 리처”는 시리즈를 이끌어가는 가공의 등장인물로 유명해졌다.
주인공 잭 리처 역에는 탐 크루즈가 출연했다. 탐 크루즈의 잭 리처는 퇴역 수사관으로 야심찬 여변호사 헬렌 로딘(로자먼드 파이크 분)을 돕는다. 그녀는 피츠버그의 앨러게이니 강변공원에서 참변을 당한 다섯 명의 무고한 시민들의 저격범을 변호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라크 전에 투입됐다 무사히 전역한 전직 저격수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나왔음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사건의 정황에 의심을 품고 접근하는 잭과 헬렌은 이 사건의 진실에 점점 더 다가간다.
진실을 향해 갈수록 두 남녀주인공은 악착 같은 흑인형사 에머슨(데이비드 오옐로)과 헬렌의 부친인 지방검사 알렉스 로딘(리차드 젠킨스 분)의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펼친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배후의 가공할 음모를 찾아 집요하게 뒤를 파헤치는 리처는 결국, 더 제크(베르너 헤어조크)라는 어슴푸레한 형체와 마주하게 되고, 법관이 아닌 집행자로서 미궁의 사건을 마침내 종결 짓는다.
감독 맥쿼리, 1996년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아주 꽉 조여들면서도 때론 유쾌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스릴러물을 만들어냈다. 절묘한 세트피스 상황과 미로 같은 플롯은 그럴듯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한편, 크루즈의 주연은 정말 멋지다. 거총 매그넘 포스로 판관이 아닌 법의 집행자임을 자인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처럼 사람을 휘어잡는 흡인력과 자신감에 찬 다소 건방진 태도까지, 실제 소설 속의 주인공과 신체적인 차이가 있지만 불식시킬 만큼 썩 괜찮다.
또한 잠깐이지만 로버트 듀발과 호흡을 맞춘 액션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잭 리처>를 위한 음악은 작곡가 조 크래머(Joe Kraemer)가 맡았다. 영화음악가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또 한 번의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2000년 <웨이 오브 더 건>(The Way of The Gun)에서 맥쿼리 감독과 범죄스릴러물을 탁월하게 공작해낸 이후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정한 궤적을 그려온 그의 이력에 돌파구가 되어줄 작품. <하우스 오브 더 데드>(The House of the Dead), <조이 라이드>(Joy Ride), <힛처>(Hitcher)와 같이 DVD 매장으로 직행한 몇몇 공포영화를 포함해 60여 편의 영화들에 이름을 올렸지만 전혀 주목받지 못한 무명이나 다름없던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크래머의 야심작 <잭 리처>의 스코어는 1970년대의 음울한 정치적 스릴러 스코어에 천착해 있다. 데이비드 샤이어(David Shire), 마이클 스몰(Michael Small), 그리고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과 같은 작곡가들이 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나 <암살단>(The Parallax View), 그리고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이 그 전례. 이 일련의 작품들에 쓰인 스코어는 옳은 정치적 의제를 가진 보통사람과 책임감 강한 단호한 형사의 액션을 팽팽하게 긴장된 음악의 묘사로 반주했다.
크래머의 스코어는 그러나 그 범위와 크기에 있어 성기고 친밀한 당대의 작품들과는 다소 편차를 보이기도 한다. <잭 리처>의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크고 강력하다. 이판사판 전부를 걸고 덤비듯 동적범위가 전 방위적이다. 단방에 휘어잡는 사운드로 시작부터 강타하는 '메인타이틀', 포근하고 솔깃한 브라스 테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곡조는 하워드 쇼어(Howard Shore)의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을 연상케 하는 음산한 기세로 펼쳐지다가 리듬적인 목관악기와 마치 분노를 표출하듯 고조되고, 스트링 스타카토와 간명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브라스를 수반한 타악적인 행진곡조로 마무리된다.
하워드 쇼어의 영향력은 스코어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현저하다. 특히 팽팽한 긴장과 지속적인 불안감을 주는 순간들에서 그렇다. 'Who is Jack Reacher?', 'The riverwalk', 그리고 극적인 종결 'Showdown'과 같은 지시악절에서 크래머는 현악 군과 목관악기 군을 연계한 화음진행과 악구로 그 특유의 음상을 그려낸다. 이 음악들은 깔끔하고 지적이지만 다소 무서운 분위기로 영화가 요구하는 톤에 완벽히 조응한다.
'Barr and Helen'과 'Helen's story'와 같은 지시악절에서는 주제적 요소에 근거한 3화음 스트링이 두드러진다. 이는 작곡가 크리스토퍼 영(Christopher Young)의 1995년 스릴럴 <카피캣>(Copycat), <스피시즈>(Species), <제니퍼 연쇄살인사건>(Jennifer 8)을 연상시킨다. 살인범을 추적해서 결국 찾아내는 액션과 서스펜스 스릴러에 로맨스를 곁들인 암시의 균형감이 미묘하게 전해진다.
거장이라 불리는 작곡가들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단순히 훔쳐다 파괴하거나 경의를 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서 찬사를 보낼 만하다.
<잭 리처>의 스코어는 과거 명장들의 거장다운 스코어들 내에 존재하면서도 독자적이다. 그것 때문에 탁월하다. 스코어의 중반의 대부분은 영화와 함께 서스펜스 음악이 전반에 걸쳐 있는 게 장르영화에 충실한 방식.
따라서 긴장감을 길게 조성하는 현의 일관된 기조 유지와 가끔 콕 찌르는 사운드로 겁을 줄 수도 있지만, <잭 리처>에서 크래머는 90인조로 구성된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흥미진진한 영역으로 전진한다.
'Barr and Helen'과 'Evidence'를 일례로 아메리칸 두둑(duduk)을 오케스트라와 혼합해 용의자 제임스 바의 중동복무시절 과거회상장면에 간결한 표식으로 사용한 것이 그러하다.
전율하는 베이스 플루트, 하프 활주, 그리고 사악한 음모를 품은 첼로 화음은 'Farrier and the Zec'에서 배후에서 이 사건을 조작한 악당들의 기이한 악행을 나타낸다.
서스펜스, 스릴러와 더불어 장르영화의 필수요소인 액션에 따른 음악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 하지만 순전한 액션사운드는 극히 미소하다. 크래머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과시하는 액션 지시악절들을 연속되는 자동차 추격 장면을 위해 썼다고 한다.
촬영기사를 차 뒷좌석에 태우고 찍는 아날로그방식으로 재래식 박진감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피츠버그의 도심까지 연속된 추격 장면을 위해 쓰인 음악은 그러나 최종편집과정에서 채택되지 못했다. 포효하듯 으르렁대며 맹렬히 타오르는 엔진소리와 비명 지르듯 끽끽대는 자동차바퀴 마찰 음향만이 사실적 임장감을 한층 더 증폭시킬 뿐이다.
음악이 들어갔어도 좋았겠지만, 빈티지한 상상력을 부추긴다는 면에서 유효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대신에 'Evidence'의 중반에 애국적인 테마를 목관악기와 현을 통해 더 친밀감 있게 나타내고, 리듬적인 반주를 메인타이틀에 이후 'The quarry sequence'의 시작부분에서 재연해 이목을 끈다. 채석장 장면에 쓰인 지시악절 중 종반부에 현의 일정 고음이나 저음을 길게 연주 지속시켜 지속적인 긴장감을 주면서 비밀스런 피아노화음을 간결하게 혼용해낸 부분에서 랄로 쉬프린(Lalo Schifrin)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모든 주제적인 악상들을 총결산한 7분여의 'Finale and end credits'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스코어는 융기하는 거대한 팡파르 사운드를 각인시키며 관객들이 최상의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잭 리처>는 흥행성과를 넘어 작곡가 조 크래머의 이력을 재조명하고 재 점화할 계기가 되어줄 것으로 본다. 영화음악계는 관현악작법에 능숙하고 중요한 테마로 기분 좋은 분위기를 제공하며 좋은 영화를 위해 극의 지적인 면을 결정지어줄 줄 아는 작곡가를 필요로 한다. <잭 리처>가 비록 엄청나게 화려한 대작은 아니지만 진정한 걸작으로서의 풍모는 음악으로 완성될 수 있음을 재확인한다.
참고로 영화의 사운드트랙에는 미모의 여성이 잭 리처를 유혹하는 클럽 장면에 내러티브적으로 깔린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Young americans'를 위시해 멀리 해거드(Merle Haggard)의 'The fightin' side of me', 그렉 올맨(Gregg Alman)의 'Little by little', 그리고 하우스 오브 페인(House of Pain)의 'Jump around'가 노래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