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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의 단상(斷想)
-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산다 1 -
차창 밖으로 유월의 들녘은 푸르다 못해 진한 녹색으로 색칠을 한다. 엊그제 막 모내기가 끝 난 논은 갓 시집온 여린 모가 줄지어 띄엄띄엄 둥지를 털기에 바쁘다. 힌 포기 한 포기 논배미에 옮긴 모는 혹독한 여름을 걸쳐 열여 번이 손질이 가고나면 새 하얀 밥쌀로 우리들의 식탁에 오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루 세끼니 밥을 먹고 살아가고 있다. 내 젊은 시절인 6-70년대 고달픈 삶을 살 때 하얀 쌀밥 한 그릇 배부르게 먹어본게 대다수 없는 서민들에겐 모두가 소망이었던 시절인데, 지금은 그 쌀밥은 옛 사람들이나 하는 말처럼 들린걸 보면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지난 5. 26일 막내 상훈이가 결혼을 하여 이젠 나도 사내애들 세 놈들을 모두 여위살이를 시켰으니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니 맘이 좀 홀가분하다. 그래서 이제부터서는 그동안 숨 가쁘게 살아온 나날들을 생각하며 먼저 내 주위 친, 인척들의 안부도 살필 겸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옛날에는 구례에서 서울을 가려면 오직 검은 연기 내 품는 기차가 그도 완행열차 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지만 이젠 다르다 그전에 다니던 완행차가 열 세시간정도 걸린게 지금은 단 3시간10분이면 오, 갈수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옛날에는 사는 방식이 느리게 살았다면 요즘은 스피드 곧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남보다 더 빨라야 한다. 모두가 어서 어서 빨리 빨리라는 대명사 단어가 되었다.
집을 출발한 버스는 3시간10분여만에 목적지인 서울에 잘 도착했다. 먼저 교회에 함께 다닌 한분이 서울대 분당병원에 입원 수술을 기다리는 분을 문병하러 갔다. 말로 듣기만 했던 분당병원 시설도 크고 깨끗해서 보기에 좋았다. 오랜만에 만나이런저런 말을 나누며 위로를 했다.
다만 병실이 1인실을 사용하고 있어 하루 병실료가 450,000원 이라고 말했다. 참 너무나 비싸다고 난 생각을 했는데, 그도 방이 없다고 말을 하니 어이가 없어진다.병원이 그리도 크고 많은데 날이 갈수록 병원에 환자는 넘쳐난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평균 수명이 2017년말 기준으로 남자 79세, 여자 84세라고 하지만 병원은 어찌 그리 날마다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는지 생각하면 씁쓸하다.
분당 병원에서 문안을 하고 나와 지하철을 이용 철산 요양원에 계신 내 부보님의 한 개 밖에 없는 핏줄이신 고모님을 만나 뵈었다. 고모님은 올해로 88세 나이신데내 나이 젊을 때인 1968년 10월내가 처음 상경했을 때부터 조카인 나를 많이 사랑해 주시고 예뻐해주신 참 고마운 분이다. 언젠가부터 고모님이 세상에 살아계신 동안만큼이라도 종종 들리려고 했지만 그게 맘뿐, 잘 되질 않는다.
작년 이맘때에도 찾아갔지만 한 해가 더 지나갈수록 고모님은 노쇠를 더해간다. 그 환한 얼굴하며 유별나게 하얀 피부가 어느새 검은 버섯으로 얼굴 여기저기에 피어난다. 맘이 아프다. 50년전 어린 때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쳐 지나간다.
사람은 왜 아프고 늙고 병이 들고 종국에는 죽고 그럴까? 성경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정한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마는 안개와 같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삶을 초로인생이라고 말한걸 본다. 그러기에 졍녕 우린 아프고 늙고 병들어 죽게 마련인가 보다.
너희는 내일 일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룻밤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수가 없다고 했던가? 서울에서 계획대로 모든 일정을 잘 마친 후 귀가길에 오른 때이다. 고속버스로 오는 길에 한 시간여쯤 달려왔을까? 아랫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온 배가 아파온다.
참 난감했다. 이런 때를 가르켜서 빼도 박도 못 한다고 했던가? 나 한몸 아프다고 하여 버스를 세울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도중에 하차할 수도 없고, 참으로 힘들었다. 3시간여를 달려 오는 동안 가까스로 있는 힘을 다해 복통을 참으니 정해진 시간에 버스는 잘 도착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난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때가 석양무렵으로 병원에서 진단결과 일상적인 위경련 복통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진료를 받고 나서 복통이 좀 나아야 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배는 더 아파온다.
난 금 새 무식쟁이가 되어버렸다. 진료의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어린아이처럼 좀 지나면 낫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 아픈 배를 움켜쥐고 밤새 뒹글며 참았으니 말이다. 도착해서 좀 더 큰 병원을 찾아 바로 응급실로 후송했더라면 맹장이 터져 복막염이 되어 힘든 수술은 않했을 걸 생각하니 의사보다 내 자신이 한없이 바보스럽고 부아가 자꾸만 치민다.
그 이튿날 다른 병원에 가서 또 진단을 받아보니 똑같이 일종의 위경련같은 복통 이란 답변이다. 그때 까지만 해도 의사의 말만 맹목적으로 믿고 그래도 몸이 아파서 병이 난지 나흘만에 남원 의료원에 갔더니 단벙에 의사말이 맹장염이란다. 아마도 맹장이 터져버린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다. 부랴 부랴 복부 초음파를 하니 의사말대로 너무 늦어서 맹장이 터져버려 복막염이 되었다고 한다. 어서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내 사실 칠십평생 수술이나 입원한번 안 해본 사람이다. 생각하니 부아도 나고 눈앞이 캄캄했다. 당일 오후 5시경이었던가? 내 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한 짐승처럼 수술대 위에 올랐다. 처음 본 수술실은 어두컴컴했다. 보기에 을씨년스럽다.
한식경이 지났을까 마취에서 눈을 떠보니 하얀 까운을 입은 의사 분들이 복막염 수술이 좀 어렵게 끝났다고 말한다. 맹장수술 시기를 놓치면 급성 복막염으로 진행 수술하기가 많이 힘들다고 한다.
난 맹장수술 기회를 노치는 바람에 복막염 수술을 해야했고 맹장수술은 간단해서 3일이면 족할 입원기간을 일주일간이나 입원치료 후 퇴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내 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채 5일이 지나지 않아 다시 하복부 복통이 심하여 다시 응급실로 직행 검사결과 장 폐색증이라고 한다. 수술 후 장이 막혀서 음식물이 내려가지 않아 병이 생긴 것이다. 난 다시 5일간의 금식이란 고통속에 병원신세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요양하고 있는 중이다.
병이 생겨서 처음 병원으로 찾아갔던 의사 두 분이 나의 병을 정확하게 진단하여 조치하였더라면 난 맹장이 터져 복막염수술이라는 힘겨운 수술을 안 했을 터인데, 의사를 잘 못난 바람에 난 큰 고통을 받아야 했고, 그 결과는 너무나 가혹했다.
이제 다신 아프지 않았음 하는 내 간절한 소원이지만, 어둠의신은 나에게 더 큰병을 안겨주려고 하는가? 아무리 사람은 조석으로 화와 복이 있다고 하지만 올 여름은 유난이도 내 몸이 여기저기 자꾸만 아프려고 한다. 어서 어둠의 터널이 지나가 갔으면 하고 간절한 소원의 기도를 하늘에 드려본다.
2018. 8. 11.
어느 여름날의 단상(斷想)
-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산다 2
내가 역류성 식도염이란 병을 진단받아 약을 복용한지도 어느새 올 해로 꼭3년이란 세월이 된다. 평소에 폭식과 밀가루 음식을 너무나 즐겨 먹었던 나였다. 그런 나의 식습관은 나중에 큰 병으로 돌아와 가뜩이나 허약한 나에게 큰 고통을 주었으니, 바로 역류성 식도염이란 위장병이다.
젊을 때 군대시절에 대전 병참학교에서 혼자 보초를 서면서 그리도 먹고 싶었던 풀빵 한뭉치를 개울타리 넘어 민간인들에게 사서 혼자 야금야금 다 먹어대었으니 그때는 그래도 피가 한창 끓은 젊을 때의 일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난 평소에 빵과 부침개 등 밀가루 음식을 너무나 자주 먹은 탓인가는 몰라도 2년전부터 음식이 역류해오는 식도염이란 진단을 받아 그동안 위장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잘 아는바와 같이 약이란 반드시 순기능 작용이 있는 반면에 또 역기능이란 면이 있게 마련이라고 했다. 한쪽은 몸이 낫고 다른 한쪽은 부작용등이 발생 한다고 했던가? 어려서부터 자주 앓아오던 위장병이라서 그런지 약을 복용해도 잘 듣질 않았다.
그러나 의사의 지시대로 약 2년여를 꾸준히 복용을 하니 속은 좀 버릴망정 몸이 아프지 않으니 살 것만 같다. 그런데 지난 4월 중순쯤이던가? 평소에 같으면 식도염약을 복용하면 뱃속이 편안해 지는데, 이젠 가슴통증이 생겨났다.
난 평소 자주 다니던 순천에 있는 한 병원을 찾아 요즘 나의 병의 증세를 의사에게 말하고 우선 심,혈관쪽에 문제가 있는 듯싶어 위 내시경과 함께 심장 초음파나 심장 CT를 찍어 병명을 학인 하고자 했다. 2내과 의사 선생님은 아마도 평소 내가앓고 있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가슴에 통증이 생긴 것 같다고 말하면서 환자의 요구대로 한번 찍어는 보자고 하면서 경비부담 때문인지 말끝을 흐렸다.
결국 난 위 내시경과 함께 동시에 난생처음으로 심장 CT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나중에 영상물을 찬찬이 보던 의사는 심장이나 동맥혈관등을 볼 때 나이에 비해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과 함께 역류성 식도염 탓으로 돌린다. 그러면서 두 달분의 식도염약 처방전을 준다.
환자로서는 의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잖은가?. 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지내는 가운데 가슴통증이 점점 더 심해진 걸 느꼈다. 난 다시 다니던 병원에서 1내과 의사인 나의 주치의 선생님의 자세한 진찰을 받았다. 한 달 전에 같은 병원에서 찍어 두었던 위 내시경과 심장 CT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던 의사는 암만도 심장혈관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말 하면서 우선 한 달 분의 약을 처방하여 준다.
난 암만해도 심장방면에 밝은 전문병원을 수소문하여 광주에 있는 심장 전문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모든 병은 초기에 치료를 해야 하고 또 환자는 의사를 잘 만나야 된다는 확신을 얻었기에,
지난 8월 초 하루날 이던가?
광주에 있는 한 심장내과에 들려 의사와 진지하게 진료를 받은 결과 내 증세를 듣던 의사는 암만해도 심장혈관 한두 군데가 막혀 협소해진 것 같다고 하면서 심장 조영술을 검사를 권했다.
환자 대부분은 의사의 말에 무조건 믿고 순응하는게 도리라고 했던가?. 난 막대한 경비를 치루더라도 치료해서 나을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하랴 싶어 말로만 듣던 심장 조영술을 받기로 하고 잠시후 수술대위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올해 짧은 기간 동안 무려 난 두 번이나 수술대 위를 오르내리는 내 형편을 생각하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울컥 내 맘까지 침울해진다. 하얀 그리고 녹색가운을 입은 의사분들이 내 몸에 달라붙어 오른팔 혈관을 통해 조영술이 시작 되었고. 30여분이 지난 후 “조영술” 시술이 무사히 마쳤다.
난 시술 장면을 다 보지도 않았고 다만 큰 아들 상현이가 담당의사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함께 여러가지 애기하는 걸 들었는데 수술실을 나와 진료실에 들려 검사결과를 보게 되었는데 예상대로 심장 아래 가느다란 혈관이 조금 막혀 통증이 발생한것 같다고 말하면서 예방적으로 스탠트 한 개를 삽입했다고 했다. .
앞으로 혈관관리에 더 신경을 쓰라고 당부하면서 처방해드린 약 잘 먹고 한 달 뒤에 다시 오라고 한다. 난 3일간의 입원을 통해 또 한 가지 병이 늘어나 평생을 함께 가야하는 슬픈 운명의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우울증으로 장장 5년간이란 기나긴 싸움이 이제 막 끝났는데 그 무서운 병이 끝나기도 전에 난 또 다른병이생겨 험한 투병생활을 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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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우리의생을“초로인생”이라고 했던가? 아침에 풀잎에 잠시 돋는 이슬방울 같다고 말했다.동녁에서 해가 오르면 금새 없어지는 너무나도 하찮은 존재 그동안 어릴 때부터 병으로 얼마나 힘들고 모진 세상살이를 살아온 나였는데 이제 겨우 살만하니 몸이 건강하긴 고사하고 날이 갈수록 이름도 생생한 무서운 병들 엄습해 오고 있으니 아무리 웃으려 애써도 맘이 착잡하기만 하다.
더우기 협심증은 유전이라고 했던가?. 큰 아들 상현이가 협심증이란 병을 진단받고 2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는 와중에 애비인 나까지 또 협심증이란 병이 생겨서 부자가 함께 평생 같은약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살이가 너무 야속하다. 정녕 신은 나에게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냉혹한 벌을 주려는가?
일찍이 러시아의 철학자 “퓨쉬킨" 이란 시인은 ”언젠가는“ 이란 시에 서름의 나날을 참고 참노라면 나에게도 아름다운 날이 오리라고 말했는데 정녕 나에게도 언젠가는 더 좋은날 더 행복한 아름다운 희망의 나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2018. 8. 11 삼복더위에
첫댓글 박윤수 회장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건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