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시대(페.톡Cell)회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 있길 원하노라💖 甲辰年 성경적인 신앙뿌리 깊이내려 하늘에 보물(賞)쌓는 해(後)⇨❀ † 신약(바울) ☆ (牧會書信)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1-12)
딤후3:8-17절) 복음(福音)의 가치(價値)
Ⅱ.성령의 능력이 나타남(중)
바울은 원래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핍박(逼迫)한 사람이었기에 자기가 그렇게 능력(能力)있는 주님의 종으로 사용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단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다른 모든 자랑이나, 세상(世上) 지식(知識)을 모두 배설물(排泄物) (똥)처럼 버리고,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만 붙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말씀을 통해 성령의 능력(能力)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 성령의 능력(能力)이 사도 바울로 하여금 상상할 수 없는 큰 믿음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3:10-11절)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사도 바울의 삶에서 중요한 특징은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이끄시는 삶을 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서 특징적인 것이란 *말씀과 행실과 의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향(意向)'이란 *목적'을 말합니다. 즉 사도 바울은 닥치는 대로 산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목적(目的)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目的)은 옛날의 세상적(世上的)인 목적(目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삶에는 두 가지 분명한 목적(目的)이 있었는데, 하나는 *할 수 있는 한 복음(福音)을 효과적으로 땅 끝까지 전(傳)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연구(硏究)하고, 가르치는 삶'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이 사도 바울의 부흥(復興)의 비결(祕訣)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 세계(世界)에 걸쳐서 복음(福音)을 전(傳)하고, 교회(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고, 신약 성경(聖經)에도 가장 많은 서신서(書信書)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 비결(祕訣)은 역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았을 때, 성령의 능력(能力)이 넘치도록 그에게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면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곳은 그가 *제 1차로 복음(福音)을 전했던 지역'입니다.
여기서 안디옥은 비시디아 안디옥인데, 바울은 안디옥 시(市)전체가 복음(福音)을 들으러 나오는 부흥(復興)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고니온에서는 앉은뱅이 하나를 능력(能力)으로 치료했는데, 온 도시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은 *신(神)이라'면서 그 앞에 제사(祭祀) 를 드리려고 했지만 말렸습니다.
그리고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이 따라오면서 바울을 돌(石)로 쳐 죽였는데,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다시 살아나 계속 복음(福音)을 전(傳)하였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다 놀라운 기적이었고, 이 후에도 이런 기적들은 계속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많은 반대(反對)와 핍박(逼迫)중에서도 성령의 능력(能力)으로 많은 사람들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최고의 축복(祝福)은 역시 심령(心靈)부흥(復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 바울에게 이런 복음(福音)의 능력(能力)과 부흥(復興)이 계속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사실 인간적(人間的)으로는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적(人間的)으로 뛰어난 사람은 사울이었고, 다윗의 형(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인물(人物)도 좋았고, 인간적(人間的)인 능력(能力)도 그들이 더욱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그들보다 뛰어난 점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그 많은 시(詩)들은 전부 성경(聖經)말씀을 묵상(默想)한 것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다윗이 그렇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랑하니까 그에게서 성령의 능력 (能力)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성령의 능력(能力)을 힘입어 양(羊)들을 훔치러 온, 곰이나 사자나 이리들을 이겼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장수(將帥) 골리앗을 돌(石)팔매로 때려죽여 버렸습니다.
다윗에게 너무나 놀라운 성령의 능력(能力)이 나타나니까 사울 왕이 시기(猜忌)해서 그를 몇 번씩 죽이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능력(能力)은 지저분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能力)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숭고(崇高)하고, 파워플(powerful)한 것입니다.다윗은 사울 왕의 시기(猜忌)로 많은 고난(苦難)을 겪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다윗이 한 것은 자기를 따라온 사백 명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우선 다윗 자신이 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려면, 자기가 성경(聖經)을 많이 연구(硏究)해야하는데,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能力)을 캐내는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다윗은 다른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에 우울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은 다녔지만, 정신적(精神的)으로는 아주 건강(健康)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계속 다윗에 대하여 분노(忿怒)했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멀리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신병(精神病)이 걸리고, 히스테리(Hysterie)가 찾아오고, 심지어는 무당(巫堂)까지 찾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드니까 다윗은 모든 원수(怨讐)들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大)부흥(復興)의 시기(時期)가 오게 했습니다. 대(大)부흥(復興)의 시기(時期)란? *한 번도 시험에 빠지지 않고, 계속 부흥만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든다고 해서 처음부터 이런 축복(祝福)의 역사(役使)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인간적(人間的)인 방법을 쓰는 사람에 비해 실패(失敗)한 것 같습니다. 즉 심지어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실패(失敗)하고,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는 믿음을 상실(喪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적(全的)으로 의지(依支)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연단(練鍛)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자라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능력(能力)이 점점 더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폭포수같은 능력(能力)이 계속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3:12절)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데, 박해(迫害)를 받을까?
①자기 자신이 세상적(世上的)인 방법으로 살 수 없는 것 때문에 고생을 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처음 붙잡으면, 세상적(世上的)인 방법도 쓰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能力)도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때는 너무나도 힘이 없으니까 주위에서 누구든지 건드리고 집적거릴 수 있습니다. 즉 두 가지 방법이 모두 다 통하지 않으니까 이 세상(世上)에서 바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무능(無能)해서 무시(無視)를 당하고, 업신여김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忍耐)할 때, 성령님의 능력(能力)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능력(能力)은 너무나 아름답고, 강력하기 때문에 주위에서 모두 시기(猜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악성루머(rumor)를 만들어 퍼트리기도 하고, 어느 때는 직접적으로 말(言)로 공격(攻擊)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싸우면 안 됩니다. 끝까지 인내(忍耐)하면서 자기의 길을 꾸준히 가면, 결국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인정(認定)을 하면서 칭찬(稱讚)하게 됩니다.아-멘 찬송가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