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성웅 목사의 부탁으로 제가 올린 글입니다)
신윤일, 홍계호, 최규창, 원성웅의 만남의 이야기..
-2015년 여름, 미국거주 배재 88 동문들을 만나고 돌아와 친구들의 안부를 전하며-
내가 시무하는 옥토교회의 성도들의 배려로 나는 7월 들어 3주간 동안 길지 않은 ‘안식월’을 가졌다.
원래 안식년은 6년 일하고 1년을 쉬는 구약성경에 나와 있는 제도인데, 대학에서는 교수들에게 안식년 휴식과 연구 기회를 주어 해외로 나가서 교환교수로 지내거나 저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교회에서는 안정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에게만 이런 안식년 휴식이 주어질 뿐, 대부분의 중소형 교회의 목회자들은 공식적으로 안식년을 쉬지 못하고 목회를 계속하다가 탈진과 소진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교우들의 배려로 1~3달의 휴식을 갖게 되면, 나름대로 재충전과 회복의 좋은 기회가 된다.
<옥토교회 전경>
<원성웅 목사 부부>
<옥토교회의 캄보디아 복지선교쎈타>
나는 2003년에 1차 예배당 건축을 끝내고 나서 한 달의 휴식기간을 가졌었는데, 그 때는 러시아와 북유럽을 여행을 다녀 온 후로, 남은 기간은 서울 시내의 유명한 교회들을 순방하며 배울 기회를 가졌었다. 그 후로도 선교지 방문 등 해외여행을 자주 했어도 모두 회의나 어떤 ‘미션’을 가지고 다녀왔으므로 온전한 쉼과 안식이 되지는 못했다. 이번에 짧지만 모처럼 공식 안식월을 얻어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7월 7일~24일까지의 기간 중에 첫 번째 도착한 곳은 남부의 아틀란타였다.
아틀란타에는 우리 88동기 중에 신윤일 목사가 실로암 한인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다.
7일(화)에 내가 도착했을 때, 홍계호 장로부부도 워싱턴에서부터 벤을 몰고 내려와서 저녁 무렵에 합류하였다. 우리 세 가족은 신 목사 사택 2층에 함께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갖다가 7월 12일(주일)에는 실로암 한인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신 목사는 오랜만에 방문한 내게 1부 2부 설교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교회에 6년 전에 왔을 때에는 부흥회를 인도했었는데, 그 때는 실로암한인교회가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구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었다.
지금은 건축공사가 끝나고 크고 넓직하고, 실용적으로 잘 지어진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실로암 한인교회>
신윤일 목사는 연세대 공대를 졸업한 후에 ROTC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서 사업을 하다가 좀 늦게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되었다.
시카고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더 한 뒤에 장로교회 목사로 안수 받고 시카고에서 6년, 아틀란타에서 16년째 목회하며, 미국 한인 장로교회 목회자 중에 영향력이 큰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었고, 애틀란타 지역에서는 교파를 초월하여 교민사회에서 중요한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자녀들은 딸 둘이 갓 결혼하여 사위 하나는 회계사요 한 사위는 목회자로서 믿음의 대를 이었다.
<신윤일 목사 부부>
<신윤일 목사 사택>
<아틀란타 박물관에서 함께한 오찬 - 신윤일 홍계호 원성웅 부부>
7월 12일 주일을 지낸 후에, 우리는 계획대로 바하마 크루즈 여행을 떠났는데, 플로리다 주 초입의 잭슨빌 항구에서 떠나는 ‘카니발 패시네이션 호’ 를 타고 5박6 일의 여행을 함께 하였다. 이 배는 크루즈 선 중에 중간형(3 천 명 정도 승선하는) 배로 길이가 200m쯤 되는 12층 규모의 배였다.
이 여행에는 시카고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잭슨빌에 도착한 최규창 사장 부부도 함께 하여 우리 배재 88동기 4커플이 함께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5박6일 동안 친한 친구들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먹고 자고 이야기 나누며 지낸 적이 없었는데,...
그동안 다들 열심히 살았고,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도 통과하여 이제는 인생의 후반기, 환갑을 다들 넘기고 자식들이 결혼하여 손자녀들을 보는 기쁨을 누리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최규창 부부>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는 규창이>
시카고의 최규창이는 한인회의 총무로 역할을 하며 시카고 한인회관을 짓는데 많은 모금을 했을 뿐 아니라 큰 공로도 세워서 유력한 한인회장의 물망에도 올랐으나 그가 극구 사양했다 한다. 규창이는 시카고 정착 초기부터 시도했던 몇 가지 중요한 사업에서 어려움을 겪다가 9.11 이후에는 상당한 빚도 지게 되었었는데, 이제는 그의 성실한 노력에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해주셔서 그 많던 빚도 다 갚고, 그 사이에 국가공인 세무사 자격증도 따게 되었다 한다. 경제적으로는 자기 아내와 함께 처음부터 시작했던 세탁소 사업이 잘 되어 윤택하게 되었고, 두 딸(교사와 약사로)도 잘 키워서 이번 9월에 둘째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사위도 건실한 크리스천이요 회계사라 한다.
<홍계호 장로 부부>
<홍장로네 저택>
워싱턴에서 수의사로 개업한 홍장로 이야기는 이미 들어 알고 있겠지만, 홍장로는 자기 밑에 의사 두 사람과 간호사 8명을 두고 병원을 운영하면서 자신은 아내와 함께 교회 활동과 선교, 또는 찬양간증 사역을 위해 미국 전역 뿐 아니라 한국에도 일 년에 한차례씩 방문하고 있다.
홍 장로는 자신이 주축이 되어 탄자니아 선교회를 만들어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배재학당’ 같은 좋은 고등학교를 지어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그는 매월 5,000불 이상의 선교비를 모금하여 보내는 일 외에, 학교 건물과 기숙사와 도서관을 짓도록 이미 250만불 이상의 선교기금을 탄자니아로 보내었다. 홍장로에게도 두 아들이 있으나 아직 결혼시키지는 않았다.
크루즈 여행은 먹고 쉬고 잠자며 오랜만에 ‘부인들의 수다’ 보다 더한 ‘남편들의 수다’로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들을 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가졌다.
<크루즈에서 찍은 신윤일 홍계호 최규창 그리고 나>
<네 커플>
나는 출발하기 전에 정동 배재총동문회 사무실에 들러서 배재 130주년 기념 벨트를 구입하여 선물하여 다 같이 차고, 규창이가 시카고 동문 모임에서 가져온 모자도 함께 쓰고 사진을 찍었다.
고교 동문들의 만남은 즐겁고 부담이 없다.
나는 국내에서 자주 만나는 배재동문들이 있어서 참 좋고, 외국에 나가있지만 서로 잊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죽마고우’ 친구들이 있음에 행복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좋은 것을 주셨으나 부인과 가족을 주신것 외에 평생 함께 걸어갈 친구들, 특히 배재 동창 친구들을 주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 미국 방문 중에 내 친척들 - 샬롯에 살며 의류 사업을 하는 조카가 애틀란타 나를 만나러 왔었고, 뉴욕에 사는 조카 가족6명은 워싱턴으로 내려와 홍계호 장로댁에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L.A 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미안하고, 뉴욕의 동문들도 전화로 들리라 했지만, 여행 일정상 그리로 가지 못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동문들도 만나고 싶었으나 후일을 기약하는 수밖에... 벌써 7년이나 지났지만 2008년 3월에 L.A 배재코랄과 함께 했던 ‘보은의 음악회’ 때에 뉴욕에 내려서 워싱턴으로,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로, 그리고 아펜제라 선교사를 파송한 랭커스타 감리교회를 거쳐서 볼티모어 러블리 레인 교회에서 이화여고 동문들과 함께 음악회를 열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 행사를 마치고 LA로 들어가서 배재 동문들과 교제를 나눈 기억들이 새롭다.
친애하는 배재88동기들!
지혜자의 말에 “우정은 숲속에 난 오솔길과 같아서 왕래가 뜸하면 길이 없어진다” 했지! 오솔길이 잡초에 덥히지 않도록 서로 연락도 하고 자주 만나는 시간도 가지면 좋겠다!
무더위에 건강하게들 지내시고, 100세까지 장수하는 시대에 좋은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나누며 지내세!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준 배재학당의 좋은 전통과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다함께 긍지 있는 삶을 살아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