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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어떤
성서인가요? |
◆ 시편 ◆
한자 詩篇
라틴어 Liber
Psalmorum
영어 Books of
Psalms
출처 : [가톨릭대사전]
시편이라는 성서 이름은
어떻게 생겼나요?
유다인들이 처음에
시편을 부른 이름은 ‘기도(트필롯)’였어요. 그러다 후대에 가서는 ‘찬양(트힐림)’
또는 ‘찬양의 책’이라 불렀어요. 구약성경에서 찬양하라는 동사(hll)의 2/3 이상이 시편에서 나오기 때문이죠. 아무튼 기도와 찬양은 시편의
두 측면이죠. 그리스어 성경은 시편이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그리스어
psallo)” 것이라 하여 ‘프살모이(psalmoi, 찬미가)’라 불렀어요. 시편의 영어
이름(psalms)도 여기서 연유하였죠. 우리 말 성경 이름 ‘시편’은 시모음집이라는 뜻의
중국어 성서 이름 ‘시편(詩篇)’을 딴 것이구요.
누가
썼나요?
시편 이외에도 성경에 나오는 노래는 적지 않아요. 이런 노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애송되었기 때문에,
원작가를 밝히기가 쉽지 않아요. 시편에도 첫머리에 다윗, 아삽, 코라의 후손, 모세 등의
작품이라고 나와 있으나, 이들의 작품으로 확인할 수는 없어요. 시편은 사실상 하느님 백성 전체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다만, 다윗은 음악을 즐기고 시와 노래로 하느님께 찬양과 기도를 드린 대표적인 인물이기에, 자연스럽게 시편의
대부분을 그의 작품으로 여기게 된 것이죠.
언제
쓰여졌나요?
시편은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되었어요. 아마도 대부분은
다윗과 솔로몬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황금시기인 기원전 10세기와 가장 어려웠던 시대인 바빌론 포로기 전후에 생겨났을 거에요. 이런저런 시들이
한데 모아져 현재와 비슷한 꼴로 형성된 것은 대략 기원전 2세기경으로 여겨져요. 그때 모세오경을 모방해서 시편을 다섯 권(시편 1-41;
42-72; 73-89; 90-106; 107-150)으로 나누었을 거에요.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켜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책과 시편들”(루가 24,44)이라 했어요. 즉 시편은 그 때까지도 완결되지 못한 성문서를 대표하는 성서로 꼽힌 것이지요.
왜
썼나요?
예나 지금이나 유다인이나 그리스도인이나 두루 애송하는
성경은 아마도 시편일 거예요.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렸고 어려운 처지에서는 구원을 탄원해 왔기 때문이죠. 비단
개인적으로뿐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가 드리는 전례에서도 시편은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죠.
시편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응답의 성경’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경 전체가 하느님이 하신
큰일을 전하고 예언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면, 시편은 하느님의 그 일과 말씀에 대한 하느님 백성의 응답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하느님이 하신 큰일들을 체험한 이들은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신 백성을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를 아니 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주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사는 하느님의 백성은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우리와 함께 해주시며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을
“나의 바위, 나의 구원자”(시편 19,14)라 고백해 왔던 것입니다.
<나눔과 새김>
마음에 드는 시편 하나를 암송하시고 자주 되새겨
보십시오. 그 시편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바꿔 서로 나눠 보십시오.
인간이 무엇이기에(시편 8편)
1 [지휘자에게. 기팃에 맞추어.
시편. 다윗] 2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 하늘 위에 당신의 엄위를 세우셨습니다. 3 당신의 적들을 물리치시고 대항하는
자와 항거하는 자를 멸하시려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당신께서는 요새를 지으셨습니다. 4 우러러 당신의 하늘을 바라봅니다,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을 당신께서 굳건히 세우신 달과 별들을. 5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6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7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8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들하며 9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입니다. 10 주 저희의 주님 온 땅에 당신
이름, 이 얼마나 존엄하십니까! |
시편을 읽는
방법
먼저 시편은 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아야기식 성경처럼 그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자주 읽으면서(가능하면 외우면서) 단어와 구절에 함축된 깊은 뜻을 새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그 시편 저자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느끼고 공감하며 더불어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죠.
또 시편은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 나아가 신약성경을 포괄하는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시편 한 구절, 또는 한 편을 이해하려면 시편 전체의 흐름과 함께 성경이 대변하는 이스라엘의 신앙 맥락과 연관시켜 보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야훼는 나의 목자”(시편 23,1)란 구절만 보더라도,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이 성경에서 드러내는 깊은 뜻과 그에 대한 다양한 신앙고백이 갈무리되어 있습니다. 또 ‘목자’라는 말 속에는 자신이 양이라는 고백과 함께, 목축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의 생활양식은 물론 거기서 비롯된 목자와 양의 실질적 관계, 이 관계를 유비시켜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간의 관계를 가리켰던 다른 성경 표현 등이 다 담겨 있지요.
시편의 분류와
감상
시편은 그 형식과 내용에 따라 크게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그밖의 시로 나뉩니다. 여기서도 그렇게 몇 가지로 나눠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1.
찬양시
유일하신 절대자 하느님, 창조주 하느님,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따르는 하느님을 기리고 찬양하는 시편들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권유로 시작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나열한 다음, 다시 하느님을 찬양하거나 짧은 축복문 및 기도문으로 마무리하는 꼴로 짜여 있습니다. 대개 시편 8; 19; 29; 33; 67; 95-100; 103-106; 111; 113-114; 134; 136; 145-150편 등을 찬양시로 봅니다. 일례로 시편 8편을 감상하겠습니다.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시편 저자는 왜 하느님을
찬양합니까?(8,3-6)
시의 첫머리와 끝머리에서 시인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이름을 기립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 너무나 크고 고맙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 중심이 되는 하느님의 업적은 창조사업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나타나는 창조 업적이 시인의 입을 빌어 다시금 묘사됩니다. 도대체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를 당신 창조의 중심에 놓으시고 뭇
만물을 돌보게 하셨는지, 시인은 다만 감격하여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본래부터 그럴 만한 자격이나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저자는 이 시편을 빌어 예수님을 노래합니다(히브 2,6-9). 이 시편에 나오는 인간상이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던 것이죠. 여하튼 우리는 이 시편을 노래하면서 새삼 자연 속에 있는 인간의 위치와 사명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가득이나 생태계의 위기를 느끼는 이 시대에, 이 짧은 시편의 울림은 크게 크게 번져 갑니다. “야훼, 우리의 주여! 주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노래하면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제2장
6 어떤 이가 어디에선가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를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7 천사들보다 잠깐 낮추셨다가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시고 8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만물을 그의 지배 아래 두시면서, 그 아래 들지 않는 것은 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만물이 아직도 그의 지배
아래 들지 않았습니다. 9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잠깐 낮아지셨다가”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
어찌하여 나를버리시나이까?(시편
22편) 구약성경 시편
제22편 1 [지휘자에게. ‘새벽 암사슴’
가락으로. 시편. 다윗] 2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3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4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5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신뢰하였습니다. 신뢰하였기에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6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고
당신을 신뢰하여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7 그러나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 8 저를 보는 자마다 저를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9 “주님께 맡겼으니 그분께서 그자를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그분께서 구해 내시겠지.” 10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
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11 저는 모태에서부터 당신께
맡겨졌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12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환난이 다가오는데 도와줄 이 없습니다. 13 수많은 수소들이 저를 에워싸고
바산의 황소들이 저를 둘러싸 14 약탈하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저를
향하여 입을 벌립니다. 15 저는 물처럼 엎질러지고 제 뼈는
다 어그러졌으며 제 마음은 밀초같이 되어 속에서 녹아내립니다. 16 저의 힘은 옹기 조각처럼 마르고
저의 혀는 입속에 들러붙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흙에 앉히셨습니다. 17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저를 둘러싸 제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18 제 뼈는 낱낱이 셀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저를 보며 좋아라 합니다. 19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20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21 저의 생명을 칼에서, 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22 사자의 입에서, 들소들의 뿔에서
저를 살려 내소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23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24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 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25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의 가엾음을
업신여기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시고 그에게서 당신 얼굴을 감추지도 않으시며 그가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들어 주신다. 26 큰 모임에서 드리는 나의 찬양도
그분에게서 오는 것이니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을 채우리라. 27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그분을 찾는 이들은 주님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28 세상 끝이 모두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민족들의 모든 가문이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29 주님께 왕권이 있고 민족들의
지배자시기 때문이다. 30 세상의 모든 권세가들이 오직
그분께 경배하고 흙으로 내려가는 모든 이들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내 영혼은 그분을 위하여 살고 31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장차
올 세대에게 주님의 이야기가 전해져 32 그들은 태어날 백성에게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리니 주님께서 이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
2.
탄원시
박해를 받거나 죽음이나 질병 같은 심각한 고통을 받을
때 하느님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구원해 주실 것을 탄원하는 내용이지요. 시인은 먼저 자신의 고통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뒤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고백합니다. 이어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하느님께 구원을 간청합니다. 이러한 탄원은 한 개인이 드리기도
했고,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와 예루살렘의 파괴 같은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집단적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이 유형이 시편에서 가장 많은데 그 중
대표적인 탄원시는 시편 3; 5; 22; 25; 28; 44; 60; 74; 78-80; 83; 85; 90; 94; 102; 123; 137편
등입니다.한 예로 시편 22편을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시인은 하느님을 ‘나의 무엇’이라고
부릅니까?(22,19)
이 시편은 울부짖음으로 시작합니다. 그 울부짖는
소리가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다가, 구원자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로 마감됩니다. 지금 “뼈 마디마디 드러나 셀 수 있는” 처지에 빠진 이 시인이
겪고 있는 곤경과 어려움은 몹시 심각합니다. 그런 처지에서도 시인은 끝끝내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구원을 맡겨 드립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마태 27,46)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감사시
하느님께서 베푸신 구원행위의 위대함을 노래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내용입니다. 시작은 찬양시와 비슷한데, 본문에서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나열하면서 하느님께 영원히 찬미를 드리겠다는 약속과
지속적인 신뢰심을 표현한 다음, 끊임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함을 공동체에 권유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끝맺고 있어요. 감사시에도 부분적으로는
탄원과 찬양의 내용이 들어 있어요. 사실 이 세 가지는 서로 어울려 다니거든요. 대표적인 감사시인 시편 18; 30; 32; 34; 40;
66; 92; 116; 118; 124; 129; 138편 등에서 18편을 살펴 보겠습니다.
야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시편 18편)
* 시인이 하느님을 “나의 무엇”이라고
부른 열한 가지 표현을 찾아 보십시오(18,1-2. 28).
구약성경 시편
제18편 1 [지휘자에게. 주님의 종 다윗.
주님께서 그의 모든 원수들의 손아귀와 사울의 손에서 그를 건져 주신 날, 그가 이 노래로 주님께 아뢰었다. 2 그는 말하였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 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 28 정녕 당신께서는 가련한 백성은
구원하시지만 거만한 눈들은 끌어내리십니다. 29 주님, 정녕 당신께서 저의
등불을 밝히십니다. 저의 하느님께서 저의 어둠을 밝혀 주십니다. 30 정녕 당신의 도우심으로 제가
무리 속에 뛰어들고 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성벽을
뛰어넘습니다. |
시인은 열정적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그분이 베푸신
구원행위를 나열합니다. 하느님은 그를 “원수의 손에서”(3,17절), “거센 물 속에서 건져 주시고”(16절), “어깨를 펴게 해
주시고”(19절), “상을 내리시고”(20절), “붙들어 주시고”(26절), “적대자들 위에 높여 주셨습니다”(48절). 그렇기에 시인은 “그
고마움을 어찌 만민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당신의 이름을 노래하지 않으리이까?”(49절)하며 토로합니다.
시인이 고백하는 하느님은 “하늘을 밀어 제치시는”(9절) 자연의 주재자이시고, “옳게 살았다고 상을 내리시는”(20절) 정의의 하느님이십니다. 결국 시인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은 인간이나 다른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뿐이시며(31절), “한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한마음으로 위해 주신다”(25절)고 체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사무엘 하권 22장에서 다윗의 노래로 나올 만큼 오래 된 노래입니다.
복되어라,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시편 1편)
4. 그밖의
시편들
(1) 지혜시·교훈시
시의 주요 내용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바르게 사는 길을
일러주는 시편들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 곧 토라와 하느님의 말씀을 성실히 지키면 주님의 굄을 받지만, 그 말씀을 어기고 듣지 않으면 멸망에
이른다는 교훈을 심어 주지요. 대표적인 시편은 1; 9-10; 14; 19; 37; 73; 112; 119; 127-128; 133편
등이지요.
의인의 길은 야훼께서 보살피신다(시편
1편)
* 시인은 의인을 무엇에
비유합니까?(1,3)
구약성경 시편 제1편 1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2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3 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4 악인들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어지는 겨와 같아라. 5 그러므로 악인들이 심판 때에,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감히 서지 못하리라. 6 의인들의 길은 주님께서 알고
계시고 악인들의 길은 멸망에 이르기 때문일세. |
1편은 지혜시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시편 전체의
서시(序詩)이기도 해요. 비록 여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이 시는 행복으로 가는 길과 멸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해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고 그것을 위해 온갖 애를 다 쓰지만, 누구나 행복하진 않죠. 또 참된 행복이 무언지도
아리송하구요.
1편이 보여주는 행복한 사람은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기는 사람”(2절)입니다. 여기서 법은 토라(율법)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 전체, 곧 성서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지요. 되새기는 일 역시 머리 속으로 궁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면서 체험하고 고백하는 일이죠.
하느님의 말씀과 함께 그 말씀에 젖어 사는 이들은
날마다 도처에서 자신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체험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살게 되죠. 그런 사람은 늘 싱싱하게 살며 제 철 따라
열매를 맺게 되어요. 반면에 아무리 부와 명예를 누려도 악인의 길은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이”(1,4) 아무 소득 없는 멸망의 길이라고
일러 주어요. 마치 이 시편은 격렬한 일생을 마치고 인생의 황혼에서 던져주는 한 선배 그리스도인의 충고이자 유언 같지
않으셔요?
(2)왕도시(王道詩)
이스라엘의 왕이 지녀야 할 덕과 해야 할 바를 알려
주며, 아울러 당신이 세우신 그 왕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보여주는 내용을 담았지요. 이스라엘의 왕은 하느님께서 ‘기름부은 자’였는데,
포로기 이후에는 ‘기름부음 받은 자’가 다시 올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왕, 곧 메시야로 이해되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시편들은 메시야
시편이라고도 불려요. 주요 시편은 2; 20-21; 45; 72; 89; 101; 110; 132; 144, 1-11 편
등이지요.
너는 내 아들(시편 2편)
성서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의 통치자는 절대주권을 갖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 아래에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느님의 주권을 벗어버리려는 헛일을 꾸미는가 묻습니다(1절). 하느님의 주권
아래서 그분의 가르침을 좇을 때만이 통치자의 권한은 정당성을 갖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들은 하느님의 가소로움과 분노를 사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이 시편은 사도행전 4,25-26과 13,33에 인용되었죠. 물론 하느님의 말씀이 메시야이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밝힙니다.
이외에도 시편은 하느님의 현존장소인 예루살렘을 기리는 시온시(46; 48; 76; 84;
87; 122편), 순례시(121편), 전례시 등으로 나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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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nfo.catholic.or.kr/bible/explain/explain_read.asp
가톨릭대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2065&keyword=%BD%C3%C6%ED&gubun=01
전례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7672&keyword=%BD%C3%C6%ED&gubun=04
전례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7671&keyword=%BD%C3%C6%ED&gubun=04
용어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5898&keyword=%BD%C3%C6%ED&gubun=02
얀 데 브레이,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Jan de Bray, David Playing the Harp, 1670, Oil on canvas, 142 x 154 cm, Private collection 개인 소장
얀 데 브레이,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세부), Jan de Bray, David Playing the Harp (detail), 1670,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개인 소장
http://www.wga.hu/index1.html
지거 쾨더, 다윗의 노래 - 푸른 목장, Sieger Köder, Ein Psalm
Davids, 1979
http://www.heribert-graab.de/bild-text/guter-hir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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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미지가 안 보여서 다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