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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음 윤두수
문백 정순택
오음은 윤두수(尹斗壽)의 호인데 오동나무 그늘을 적이나 좋아하여 자신을, 일컫는 데 사용했을 것이다. 네 살 터울의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와 같이 송강과 뜻을 함께한 벗으로 정치에 염증을 느끼면 함께 직을 던질 정도의 지기여서 남겨진 시가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8편이 전부였다. 이도 많다고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은, 송강보다 한 살 아래인 월정은 단 한 편도 보이지 않아서 고개가 갸웃해질 뿐이었다.
어찌하던, 남겨진 상태로 감상해야 하는 처지로 감지덕지했는데 어떤 작품보다 많은 말을 하는 것 같았으나 쉽게 읽혀지지 않아서 보고 또 보는 동안 입이 절로 벌어졌다. “증오음”은 함께 낙향할 것을 청하였고, “방오음한거불우”는 한적하게 사는 벗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읊었으며, “풍계기오음”은 금강산 계곡의 멋에 빠져 정경을 읊어 전하는 우정의 시였고, “대인희별오음”은 사람들이 오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자 그들을 대신하면서 익살떤다고 하였으며 “차오음시운”은 오음이 읊은 시를 보여주자 그에 대한 답으로 2회에 걸쳐 두 편씩 지은 것 같은데 오음이 무엇이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어찌해야 하오? 하는 질문에 따른 듯하였다. 이를 함께 보려 하다가 둘로 나누기로 하였다.
1.
송강과 오음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나라를 적이나 사랑한 정치가였다. 나라 안에 함께 살아가는 뭇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치이념이고 목적이었으나 손을 놓아야 할 처지에서 직을 버리고는 유유자적하는 삶이 좋지 않으냐는 말은 공허한 것처럼 들렸다. 그분들은 신선을 동경했을지라도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을 뿐, 본심은 속세에서 힘들어 헉헉대는 백성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질 수 있게 하고 싶은 욕망으로 통치자 임금이 바른 정치를 펼칠 수 있게 한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 소신껏 일하기, 바라는 만큼 막혔을 때 막막하기는 피차가 같았을 것이니 시로써 마음 주고받으며 거취 결정한 느낌이 들었다.
하여튼 솔직담백한 성격의 소유자 송강이나 같은 생각으로 정치하는 지기여도 직을 버리자는 뜻을 비치기는 힘들어서 ‘시’의 형식을 빌렸음 직하다. 당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내어 어떠한지 물으면서 이런저런 거추장스러운 장치는 벗어던지고 익히 알고 있는, 상황이니 흉금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벗의 생각이 어떠하였건 낙향해야 할 처지에 그런 제의를 먼저 하여 직에서 물러났으니 걱정되는 마음에 거처하는 곳에 찾아가기도 하고 금강산에 유람하면서 소식 전하는 등 마음을 쏟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정격 시와 격이 다른 시 즉 고시는 좋은 시절에 많은 벗들이 함께 있다 헤어지면서 점잖은 처지에 우스갯소리가 어려웠을 테, 지만 자유스럽게 지을 수 있는 고전적인 시를 통하여 속마음 드러내기가 좋아 소싯적 어리석은 생각부터 시작하여 앞으로의 소신을 밝히면서 소신껏 사는 것을 주위에서 알아주지 않으면 절규 소리 들을 것이라고 하였다.
贈梧陰 증오음
一別年應換 일별년응환하나
三年路益迷 삼년노익미한데
客心春鴈北 객심춘안북하여
歸夢漢江西 귀몽한강서하오
黃閣多新面 황각다신면하고
靑山有舊棲 청산유구서하니
寧同問津叟 녕동문진수하며
長與白鷗兮 장여백구혜합시다
윤두수(尹斗壽)에게 주다
한번 나뉘고 해가 지나면 응당 바뀌겠으나
삼 년 만의 길이라 더욱 혼미한데
나그네 마음은 봄에 북으로 가는 기러기여서
돌아갈 꿈으로 한강 따라 서쪽을 향한다오
황각(黃閣)에는 새로운 얼굴 많으므로
청산에 오랫동안 깃들 곳이 있으니
차라리 함께 나루의 늙은이에게 물으며
길이길이 흰 갈매기와 놀면 어떠하오
줄 증贈 오동나무 오梧 그늘 음陰 하나 일一 나눌 별別 해 년年 꼭 응應 바꿀 환換 셋 삼三 길 노路 더할 익益 희미할 미迷 나그네 객客 마음 심心 봄 춘春 기러기 안鴈 북녘 북北 돌아갈 귀歸 꿈 몽夢 은하수 한漢 강 강江 서녘 서西 누를 황黃 문설주 각閣 많을 다多 새 신新 얼굴 면面 푸를 청靑 메 산山 있을 유有 오래 구舊 깃들 서棲 차라리 녕寧 같을 동同 물을 문問 나루 진津 늙은이 수叟 길 장長 더불어 여與 흰 백白 갈매기 구鷗 어조사 혜兮
오음에게 준 이 시는 오랫동안 낙향한 후 조정에 들어갔으나 일할 여건이 아니라서 떠나기를 결심하고는 같이 직을 내려놓으면 어떠한지 묻고 있다. 피장파장 끙끙거리느니 향리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이 좋은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제시했을 것이다.
세월은 무서운 것이어서 한번 떠나고 해가 바뀌면 응당 변하겠거니 했으나 삼 년 만에 들어선 길이어서 그런지 혼미할 뿐이었다. 그렇다 보니 마음이 안 잡힌 나그네가 되어 해동되면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철새 기러기가 적이나 부러웠다. 한강에서 배 타고 서쪽으로 흘러가면 황해, 해변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영산강 하구와 만나 거슬러 오르면 반가운 성산이다. 꿈에 밟히기까지 하는 정도의 관청 문에는 새로운 얼굴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은 생각과 행동이 판이하여 국록을 축내는 몸이라면 나라와 백성이 우선인데 어이해서 사사로운 일에 먼저 손 내미는지. 막으려고 안간힘 기울였으나 마이동풍이었다. 청산에 오랫동안 깃들 곳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어서 이럴 바엔 차라리 늙은 뱃사공에게 길을 물으며 흰 갈매기와 함께 노는 것이 좋을 같았다. 뜻이 맞는 벗과 함께한다면 길이길이 그렇게 살고 싶어 함께 낙향할 것을 오음에게 물어보는 송강이었다.
訪梧陰閒居不遇 방오음한거불우
幽居寂寞近城市 유거적막하나 근성시하고
雨後終南翠色多 우후종남하며 취색다한데
滿地梧陰人不見 만지오음하니 인불견하여
夕陽搖棹下楊花 석양요도하고 하양화하였지
한가로이 사는 윤두수 찾았으나 못 만나다
유거(幽居)는 적막하나 저자와 가깝고
비 온 뒤 종남산(終南山)처럼 많은 비취색(푸른빛)인데
오동나무 그늘 가득한 땅에 사람은 아니 보여
석양에 요도(搖棹)하여 양화도(楊花渡)로 내려갔지
찾을 방訪 오동나무 오梧 그늘 음陰 한가할 한閒 살 거居 아니 불不 만날 우遇 숨을 유幽 고요할 적寂 쓸쓸할 막寞 가까울 근近 성 성城 저자 시市 비 우雨 뒤 후後 마칠 종終 남녘 남南 비취 취翠 색 색色 많을 다多 가득할 만滿 땅 지地 사람 인人 볼 견見 저녁 석夕 볕 양陽 흔들일 요搖 노 도棹 아래 하下 버들 양楊 꽃 화花
오음은 송강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모양으로 벼슬 버리고는 세상을 피하여 그윽하고 외딴곳에 한가히 사니 벗을 생각할 때마다 어디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만약 권하지 않았다면 쓸쓸하고 궁벽한 곳에서 고요히 지내며 시간을 낚고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저래 마음 한구석이 걸린 송강은 찾아가 위로나 하고 싶었는데 막상 찾았을 때 보여야 할 사람은 흔적 없이 사라져, 있었다. 찾은 날은 비 온 뒤여서 신선의 산 종남산처럼 비취색의 파란 물결이 넘쳐나 깊은 숲에 앉아 있으면, 지근거리여도 찾기 어려워 목청껏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성의 저잣거리와 가까이 있으니 마음이나, 삭힐 겸 하여 나섰는가 본 데 그렇다면 이내 오련만 감감무소식이다. 오동나무 그늘은 넘쳤으나 사람이 안 보여 기다리다 지친 송강은 석양을 뒤로 하고 노를 잡아 흔들며 양화진으로 향했다.
楓溪寄梧陰 풍계기오음
雨後楓溪瀑水凉 우후풍계에는 폭수양하여
坐來環珮響鏘鏘 좌래환패하자 향장장하고
須臾客去空山靜 수유객거하며 공산정하니
深夜星辰自動光 심야성진하여 자동광하네
풍악의 계곡에서 윤두수에게 부치다
비 내린 뒤 금강산 계곡은 폭포수로 서늘하여
앉자 환패(環珮) 소리 장장 울리며 들려오고
잠시 머물다 갈 나그네에게 빈산은 고요하더니
깊은 밤엔 별들이 스스로 밝게 움직이네
단풍나무 풍楓 시내 계溪 붙일 기寄 오동나무 오梧 그늘 음陰 비 우雨 뒤 후後 폭포수 폭瀑 물 수水 서늘할 양凉 앉을 좌坐 올 래來 두를 환環 찰 패珮 소리 울릴 향響 옥 소리 장鏘 잠시 수須 잠깐 유臾 나그네 객客 갈 거去 빌 공空 메 산山 고요할 정靜 깊을 심深 밤 야夜 별 성星 별 진辰 스스로 자自 움직일 동動 빛 광光
금강산은 가을엔 풍악, 겨울이면 개골산이라 불리니 송강은 가을 금강산에 들어갔던 모양으로, 계곡의 정경에 반하여 오음에게 이를 알리는 시를 짓고는 곧장 붙였을 것이다. 그 현상을 보면, 가을비가 많이 내린 뒤여서 계곡물은 폭포수로 변하여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에 빠져들어 앉았더니 환패 소리 마냥 ‘장장’ 울리며 들려왔다. 풍악산은 사람이 정주하려면 이런저런 준비가 덧보태지는 통에 자연스레 나그네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 되어 빈산으로 고요더니 밤이 깊어지자 숫한 별들이 스스로 움직이며 밝게 비쳐 쏟아져 내리는 모습에 입이 자꾸만 벌어졌다. 오음과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어 느낌 그대로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代人戱別梧陰 대인희별오음
幼歲不知別 見人垂淚笑 유세부지별하여 견인수루소하며
自語一生中 會多離別少 자어일생중에는 회다이별소한데
今來忽不然 人事亦難料 금래홀불연하니 인사역난료해져
出門摻子裾 愁腸熱如燎 출문삼자거하면 수장열여료하여
有耳不我聞 有目不我眺 유이불아문하고 유목불아조하니
颯颯竹風呼 凄凄山日照 삽삽죽풍호하며 처처산일조하오
願作車中塵 隨君度嶺嶠 원작거중진으로 수군도영교하여
願作案上筆 隨君助吟嘯 원작안상필로서 수군조음소하며
室爲照君燈 江爲濟君棹 실위조군등하고 강위제군도하니
如形之有影 動靜必相要 여형지유영하여 동정필상요하오
不然生作嗚咽泉 불연생작오열천하고
不然死作界面調 불연사작계면조하며
不然化爲斑竹泣湘江 불연화위반죽읍상강하여
不然化爲精衛入海徼 불연화위정위입해요하오
君如不信四不然 군여불신사불연하면
聽我臨岐一聲叫 청아임기일성규하리다
윤두수와 이별하며 사람들 대신하여 익살떨다
어린 나이엔 이별 알지 못해 눈물 흘리는 사람 보면 웃으며
스스로 말하길, 한세상 가운덴 모임 많고 이별 적을 것이라 했는데
지금 와 홀연히 그렇지 않으니 사람 일의 어려움 또다시 헤아려져
문 나가 어르신 옷 뒷자락 잡으면 근심에 창자 불붙은 것처럼 더워서
귀 있어도 나는 들리지 않고 눈 있어도 나는 멀리 보이지 않아
삽삽(颯颯)하는 댓바람 소리 슬프고, 산에 해 비치면 처처(凄凄)해지네
원컨대, 수레 속 티끌로서 그대 따라 고개산길 지나고
원컨대, 책상 위 붓으로서 그대 따라 소음(吟嘯)에 돕고
집에선 그대의 등불로 비추고 강 건너려하면 그대의 노가 되고
같은 형태의 그림자 있어 움직임에 반드시 서로 요구하고
그렇잖으면 살아서 오열(嗚咽)하는 샘이 되고
그렇잖으면 죽어서 계면조(界面調)가 되고
그렇잖으면 반죽(斑竹)으로 변해 소상강 가에서 울고
그렇잖으면 정위(精衛)로 변해 바다에 들어가 돌아다니고
그대, 이 같은 네 가지 그렇잖으면 믿지 않으려니
갈림길에 이르러 나의 한마디 절규나 들으시오
대신 대代 사람 인人 희롱할 희戱 이별 별別 오동나무 오梧 그늘 음陰 어릴 유幼 나이 세歲 아니 부不 알 지知 볼 견見 드리울 수垂 눈물 루淚 웃을 소笑 스스로 자自 말씀 어語 한 일一 생활 생生 가운데 중中 모둘 회會 많을 다多 떠날 이離 작을 소少 이제 금今 올 래來 깜짝할 홀忽 그럴 연然 일 사事 또 역亦 어려울 난難 헤아릴, 셀 료料 날 출出 문 문門 잡을 삼摻 사람, 어르신 자子 옷 뒷자락 거裾 근심 수愁 창자, 마음 장腸 더울 열熱 같을 여如 불붙을 료燎 있을 유有 귀 이耳 나 아我 들을 문聞 눈 목目 멀리 볼 조眺 바람소리 삽颯 대나무 죽竹 바람 풍風 슬퍼할 호呼 바람 찰 처凄 메 산山 날, 해 일日 비칠 조照 원할 원願 지을, 할 작作 수레 거車 티끌 진塵 따를 수隨 그대 군君 지날 도度 고개 영嶺 산길 교嶠 책상 안案 위 상上 붓 필筆 도울 조助 읊을 음吟 읊을 소嘯 집 실室 할 위爲 비칠 조照 등 등燈 강 강江 건널 제濟 노 도棹 나타날 형形 어조사 지之 그림자 영影 움직일 동動 꾀할 정靜 반드시 필必 서로 상相 구할 요要 슬플 오嗚 목멜 열咽 샘 천泉 죽을 사死 경계 계界 얼굴 면面 고를 조調 변할 화化 아롱질 반斑 울 읍泣 강 이름 상湘 정밀할 정精 지킬 위衛 들 입入 바다 해海 돌아다닐 요徼 믿을 신信 넷 사四 들을 청聽 임할 임臨 두 개로 갈릴 기岐 소리 성聲 부르짖을 규叫
앞에서 감동, 받았을 시들은 정해진 틀에 있었으나 이 시에서는 문장이 들쑥날쑥하고, 제목에서 익살떨었다고 했으니 분위기 자체가 자유롭다는 것은 금방 느껴진다. 이렇게 정격에서 벗어나면 옛날부터 짓던 방식 즉 고시(古詩)로 분류하는데, 하여튼 여럿이 함께하던 송강은 오음과 헤어지면서 그들이 안 하는 익살을 재미 삼아 하고는 시로 써서 남겼던 모양이다.
살아가면서 헤어지려니 눈물이 난다는 표현은 흔히 들었으나, 나 송강은 소싯적에 그런 것을 보면 웃었지만, 생각해보니 나이가 어려서 알지 못한 탓일 뿐이었소. 그리 웃으며 눈물 흘리는 이별일 바에야 이 세상을 살면서 모임은 많을수록 좋을 것 같았고, 이별만은 적으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였는데 지금에 이르러 홀연히 깨달아진 것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소. 또한 사람의 일에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도 헤아려지면서 문밖에 나가 어르신의 뒷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근심에 살았을 것이 생각되어 옷 뒷자락을 잡을라치면 창자가 불붙은 것처럼 더워집디다. 그리되면 귀 있어도 들리지 않고 눈 있어도 보이지 않아 대나무에서 나는 ‘삽삽’하는 바람 소리에 슬프기만 하고 먼 산에 해 비치면 쓸쓸하고 가련한 처지가 슬퍼지고 원망스럽기까지 하였소이다.
그런 처지로 그대가 타고 가는 수레 속의 먼지로서 고개의 산길은 지나기 원하고, 책상 위에 놓인 붓으로서 당신이 소리 높여 읊는 시의 문장을 남기는 일에 미력하나마 돕기를 바라며, 당신의 집에서는 등불이 되어 비춰주고, 밖에 나가 강을 건너려 한다면 당신의 노가 되어 출렁이는 물살을 가르고 싶은 등 모든 일에 나타났으면 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그림자 되어 당신의 움직임에는 반드시 서로 요구하는 것이 되기를 바란다오.
그렇지 않다면 살아서는 추천오열지성(秋泉嗚咽之聲 가을 샘물 오열하는 소리)이 되어 오열처창(嗚咽悽愴 마음이 몹시 구슬프게 흐느낀다)하고,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죽어서라도 계면조(界面調 노래나 풍악에서 슬프고 처절한 가락.)가 되어 듣는 이마다 눈물 흘려 그 눈물이 얼굴에 금 그은 끝에 경계의 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여의하지 않다면 소상강(瀟湘江) 가에 나는 얼룩무늬 대나무 즉 반죽(斑竹 순임금이 순행 중에 창오(蒼梧)의 들판에서 죽자 왕비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소상강에 투신 후 눈물이 대나무에 아롱져 나타났다고 함.)으로 변하여 소상 강가에서 항상 울고 싶으며, 그마저도 어렵다면 염제의 딸 왜(娃)가 물놀이 좋아하다 동해에 빠져 죽고, 영혼이 작은 새로 변하여 매일 돌을 물어다 동해에 떨어뜨려 바다를 메우려 했다는 정위(精衛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새.)가 되어 바다에 들어가고 돌아다니는 정위진해(精衛塡海 정위가 바다를 메우려 함. 가망 없는 일에 힘씀. 목적 달성을 위해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노력함.)하고 싶소이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끝의 마지막 부분의 그렇지 않을 경우의 네 가지마저 그대는 믿지 않을 것이니 우리가 헤어질 갈림길에 이르러 나의 한마디 절규나 들으시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있는데 오열처창(嗚咽悽愴)하고 계면조(界面調)하며 반죽(斑竹)으로 살고 정위진해(精衛塡海)하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 절규가 따른답니다. 조금 후 갈림길에서 그런 절규를 들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