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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의 천지, 승리섬①
아마미에 빛나는 사제성(上)
"가장 괴로워한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이케다(池田) SGI 회장의 '행복철학'이다.
이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동지는 낙도의 벗이 아닐까.
이케다 SGI 회장은 경의와 상찬을 담아 이렇게 썼다.
"낙도, 그곳은 창가(創價)의 동지에게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이 아니라
구원(久遠)의 사명을 다하는 천지이고, 행복섬이고, 승리섬이다."
△당시 아마미오섬 회관. 남국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사제(師弟)의 혼을 계승한 것은 낙도의 동지다
우리 섬을 행복의 낙도로
드넓은 바다에서 밀려드는 바다 내음.
산에서 들려오는 나무들의 속삭임.
대지에서 느끼는 흙의 따스함.
푸른 하늘에 빛나는 태양은 벗의 웃는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은 조용히 벗을 지켜본다.
치유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천지 낙도. 본토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동경하는 휴양지'와 같은 이미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역사가 있었다.
도시에 비해 불편한 환경, 사정없이 덮쳐오는 자연재해, 줄어드는 인구, 뒤떨어진 산업.
창가의 동지에게도 구습이 뿌리 깊은 곳에서 전개하는 광포의 투쟁은 몰이해로 인한 중상 그리고 박해와 벌이는 투쟁이기도 했다. 벗은 그런 냉혹한 환경에서 '우리 섬을 행복의 낙토로!'라며 이를 악물고 분투했다.
이케다 SGI 회장은 존귀한 승리섬의 동지에게 계속 격려를 보냈다. 지금 그 '사제의 유대'를 가슴에 품고, 사명의 천지에서 빛을 발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벗의 연대가 넓혀지고 있다.
"창가 민중운동의 방정식은 사제불이(師弟不二)로 일어선 한 사람에서 만인으로, 한 지역에서 전국으로, 세계로 넓혀지는 것이다. 낙도부의 동지들은 깊이 서원한 사명의 천지에서 사제 승리의 혼을 엄연히 계승했다. 그러므로 나는 힘주어 말한다.
'낙도의 동지에게서 배워라! 승리하는 용기를 철저히 배워라!"
('수필 인간세기의 빛')
이번 호부터 ‘장절’하고 할 수 있는 승리섬의 발자취와 SGI 회장과 새긴 원점을 통해 창가의 혼을 배우고자 한다.
묘법(妙法)의 씨앗
규슈 남쪽에서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아마미 군도(群島)는 본토와 오키나와 양쪽의 영향을 받으며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했다. 전 지역이 아열대기후로 여름에는 따가운 햇살이 피부를 찌른다.
오키나와 본도(本島)를 제외하면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아마미오섬을 중심으로 사람이 사는 섬은 가케로마섬, 기카이섬, 요로섬, 우케섬, 도쿠노섬, 오키노에라부섬, 요론섬으로 모두 여덟 곳이다.
아마미는 에도시대 초기, 사쓰마번(藩)의 가혹한 지배를 받았다.
중, 후기에는 압정(壓政)이 강화되어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를 강요받고 노동과 조세에 시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6개월 동안 약 1500회나 미군기의 공습을 받았다. 특공함대 '진양'의 기지도 구축되었는데 거기에는 중학생도 동원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군정하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토와 오키나와 틈새에서 '방치'되어 복구가 지연됐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국복귀운동이 열기를 띠면서 1953년 12월에 아마미 군도는 일본에 반환되었다.
이런 아마미에 묘법(妙法)의 씨앗이 뿌려진 때는 1955년 무렵이었다.
동지는 온 섬을 걷고 또 걸으며 몰이해의 벽을 넘어 한 사람 한사람을 입회로 이끌었다. 산이 많고 비포장도로가 이어져 있는 아마미는 같은 마을이라고 해도 촌락에서 촌락으로 이동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해안을 따라 배를 저어 가야 하는 곳도 한두 곳이 아니었다.
육로에는 강한 독성을 지닌 반시뱀(살무사과의 뱀)이 있었다. 갈 때는 버스로 가도, 돌아올 때는 밤길을 걸어와야만 했다.
야행성인 반시뱀에 물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가로등이 없는 산길에서는 횃불을 치켜들고 걸었다.
그러나 반시뱀을 밟거나 갑자기 나무 위에서 반시뱀이 눈앞에 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 반시뱀을 포획해 팔아서 교통비에 보태기도 했다.
절복(折伏)의 발걸음은 촌락을 넘고, 마음을 넘고, 섬을 넘었다.
초창기의 어느 벗은 모터가 달려있지 않은 통나무배를 저어 섬으로 건너가 절복을 하고 동지를 격려했다.
‘촌락사회’를 구축한 아마미에서 학회원의 행동은 촌락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인간관계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아마미에는 전통적인 토착신앙뿐 아니라 타 종교와 타종의 절도 산재해 있었다. 그래서 반발과 비판도 거셌다. '본토에서 이상한 종교를 가지고 왔다'며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학회원은 벗의 행복을 위해, 섬의 번영을 위해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케다 회장은 그런 다기진 동지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격려했다.
회장을 우리 섬에!
아마미 광포는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반이 생기고, 지구가 결성되고, 1961년에는 대망의 아마미오섬 지부가 발족했다. 1963년 3월에는 아마미오섬 회관이 완성되었다. 이케다 회장은 개관을 기념하여 참석자들에게 색지(色紙)에 글을 써서 선물했다.
'이케다 회장을 아마미에 모시자'는 동지의 염원은 날이 갈수록 높아갔다. 아마미에는 점점 절복의 물결이 일어나 회원은 6천 세대를 넘었다.
그러던 중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소식이 도착했다.
6월에 열릴 예정인 회관 입불식(入佛式)과 아마미오섬 지부 총회에 이케다 회장이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고난에 지지 않고 철저히 투쟁한 동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었다. 환희 속에서 홍교는 더욱 진전되고, 회장이 방문하기 직전에는 6600세대까지 확대 되었다. 아마미는 승리한 모습으로 스승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신심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미 첫 방문
1963년 6월 21일, 이케다 회장은 가고시마 공항에서 아마미로 갔다. 눈 아래로는 산호초의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비행기는 십여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작은 프로펠러기였다. 당시는 아마미오섬의 공항이 개설되기 전이라 도쿠노섬을 경유해서 가야만 했다.
오후 1시 발 비행기가 도쿠노섬 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무렵이었다. 트랩에서 내린 회장은 회원의 모습을 재빠르게 발견하고 '수고하십니다' 하고 말을 건넸다. 회장의 '격려행'이 바로 시작되었다.
공항에서 가메토쿠 항구까지는 비포장도로를 승용차로 이동했다. 당시는 차가 있는 멤버가 없었기 때문에 지역의 멤버가 해운회사에 부탁해 미리 준비했다.
약 1시간 거리를 달리는 도중에도 회장은 몇 번이나 차를 세웠다.
잠깐이라도 회장을 만나기 위해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때마다 동지를 격려했다.
회장은 멤버뿐 아니라 운전기사와 함께 사진을 찍어 나중에 기념으로 보내주었다. 아직 입회하지 않은 그 운전기사는 추억의 사진 한장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회장을 태운 차가 간신히 가메토쿠 항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몇 시간씩 걸려서 걸어온 많은 동지가 모여 있었다.
당시의 이야기 - 조 가즈히코 씨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케다 선생님의 섬 방문에 감동이 물결쳤습니다.
가메토쿠 항구에서 선생님은 "여러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도쿠노섬에도 이렇게 많은 동지가 있었군요. 굉장합니다."라며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계속 격려하셨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멤버와 굳게 악수를 나누고 "신심을 하면 반드시 행복해집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항에서 항구를 떠나기까지 약 2시간 동안 선생님은 도쿠노섬에 영원한 원점이 될 격려를 거듭하셨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마음의 거리는
장소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총지부 결성
도쿠노섬의 벗을 격려한 이케다 회장은 아마미오섬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역 멤버가 빌린 '여명호'에 올라탔다.
저녁 무렵에 배가 출발했다. 아마미오섬 나제 항구까지는 5, 6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도 회장은 선장과 인사하고 지역 간부들과 간담을 거듭했다.
밤 10시경 나제항에 도착했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했지만 그곳에도 마중 나온 멤버가 많이 모여 있었다. 회장은 감사의 말을 건네고 차를 타고 아마미오섬 회관으로 갔다.
회관에 도착한 뒤 '신심 지도를 철저히 하겠다'는 동행간부에게 야마모토 신이치 회장이 말하는 장면이 소설《신·인간혁명》에 그려져 있다.
"지도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마미 동지에게서 신심을 배워야 합니다. 이곳의 지부장이나 부인부장은 멀리 떨어진 아마미에서 매달 배와 열차를 갈아타고 도쿄에서 열리는 본부간부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일주일은 걸립니다. 그동안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보내준 가족도 고생이 매우 클 것입니다.
그리고 회원을 격려하기 위해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뛰어다니며 필사의 각오로 광포의 길을 열어 왔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희생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광선유포의 대공로자입니다.
간부이고 역직이 높다고 신심이 강성한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것도 아닙니다. 말을 시키면 분명 여러분이 더 잘할 것이고, 교학도 더 많이 알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신심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광선유포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얼마만큼 절복을 하고, 얼마만큼 동지를 일으켜 세우고, 얼마만큼 움직이고, 땀을 흘렸고, 분한 눈물을 흘렸는지가 중요합니다.
아마미는 분명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마미 동지의 마음은 나와 가장 가깝습니다. 나와 하나라고 해도 좋습니다.
학회본부에 함께 있어도 마음은 나와 다른 곳에 있는 간부도 있습니다. 마음의 거리는 결코 장소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을 데리고 온 것은, 아마미의 벗을 만나면서 진정한 신심을, 진정한 투쟁을 그리고 진정한 노고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제8권 '포진')
그리고 회장은 총지부를 결성하자고 제안했다. 인사안을 검토하고 세 개 지부의 포진으로 출발하기로 결정했다. 아마미의 새 출발은 광포를 향한 회장의 예리한 일념에서 시작되었다.
한 사람 한사람이 일본제일의
실증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아마미오섬 회관 완공식
이튿날인 22일 오전 10시 전에 열린 아마미오섬 회관 완공식에는 회원 5백여 명이 기쁨에 넘치는 표정으로 모였다.
근행에 이어서 인사에 나선 회장은 동지의 분투를 상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회관이 완성되면 언제나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관 이상으로 여러분이 훌륭한 집에 살고 훌륭한 가정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어본존의 공덕은 평등합니다. '나는 이런 숙명이니까 이제 좋은 집에는 살 수 없겠지.' '나는 이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거야.' 하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희망을 강하게 품고 강한 신심으로 숙명전환에 도전, '내가 바로 일본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일본 최고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실증을 한 사람 한사람이 멋지게 보여주기 바랍니다."
희망이 넘치는 지도에 큰 박수가 울렸다. 이어서 회장은 어본존의 공력(功力)을 말했다.
"어본존을 '공덕취(功德聚)' 또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은 전 우주의 공덕이 전부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이 본존은 우리 흉중의 육단(肉團)에 있습니다. 그리고 불계(佛界)를 용현하려고 어본존에게 창제하는 것입니다.
종을 약하게 치면 작은 소리가 나고, 세게 치면 크게 울립니다. 마찬가지로 어본존에게 강하게 제목을 올리고, 대성인 말씀대로 절복행(折伏行), 다시 말해 학회활동에 힘쓰면 그 공덕은 절대적입니다.
제멋대로 하는 신심으로는 신심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창가학회가 불의불칙(佛意佛勅)의 단체로서 일어선 까닭이 있습니다."
모두 진지하게 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으로 회장은 아마미 광포에 거는 기대를 말했다.
"앞으로도 여전히 힘든 일, 슬픈 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용보살(地涌菩薩)이며 환희 중의 대환희의 사람입니다. 지용보살이 최후의 승리를 획득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성인은 '니치렌(日蓮)의 제자들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 (어서 128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쪼록 굳게 단결하여 일생성불을 목표로 그리고 또 아마미의 광포를 달성하는 날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용기 있는 행동으로 한 사람 한사람이 승리자가 되기를 말씀 드리고 나의 격려로 하겠습니다."
참석자는 결의에 찬 표정을 떠올리며 불퇴(不退)의 맹세를 담아 박수를 보냈다.
낙성식이 끝나자 회장은 총지부 결성에 따른 인사 면접에 들어가 혼신의 힘을 다해 간부를 격려했다.
당시의 이야기 - 우라타 나가코 씨
당시 구(區)여자부장이던 저는 의료 담당으로 총회가 열리는 시오하마 해안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날이 갰지만 마침 장마철이라 그때까지 내린 비로 운동장이 물에 잠겼습니다. 그래서 함께 물을 퍼내며 회합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회관에서 면접을 보고 부대장 사명을 받았습니다. 총회 때는 단상에서 이케다 선생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괴로워도/ 한탄하지 마라 벗이여/ 내일은/ 광선유포의/ 낙토를 볼 것이다"라는 휘호를 받고 더욱더 아마미 광포를 위해 끝까지 달리자고 깊게 결의했습니다.
여러분을 반드시 끝까지 지키겠다는
확신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6천 명이 모인 결성대회
아마미총지부 결성대회는 나제 항구와 가까운 시오하마 해안 매립지에서 개최했다. 개회는 오후 1시로 예정되었지만 이미 오전 중에 약 6천여 명의 참석자가 회합장소를 가득 메웠다.
정면에는 특설무대가 있고 현수막에는 '창가학회 아마미오섬 지부대회'라고 씌어 있었다. 전날에 총지부를 결성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에 다시 고쳐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속에 큰 박수가 일었다. 회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아마미총지부 결성대회가 시작되었다. 총지부 결성과 인사 발표, 간부 인사에 이어서 이케다 회장이 연단에 오르자 참석자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회장을 처음 보는 회원들뿐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두 기대와 긴장된 표정을 떠올렸다.
회장은 먼저 더운 날씨에도 모인 벗을 위로하고 유머를 담아 말했다.
"여러분은 어떤 회장이 오나 하고 기다렸을 겁니다. 와서 보니 젊은 회장이라 실망하시지는 않았는지요. 그래도 그 점에 대해서는 용서해주세요."
한여름 태양 아래 한차례 웃음꽃이 피었다. 아마미의 벗은 처음 만나는 회장의 꾸밈없는 소탈한 인품에 친근함을 느꼈다.
진지한 표정을 하고 회장은 힘차게 말했다.
"단, 광선유포를 실현하는 정신, 그리고 삼류강적(三類强敵)을 물리치고 여러분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확신, 귀신도 울리는 대확신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회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습니다. 한 나라에 두 국왕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몇천, 몇만 개가 있지만 석존의 교상판석(敎相判釋)과 천태대사와 전교대사의 해석 그리고 니치렌대성인 어서에 비추어보면 그 시대에 진실한 종교, 불법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지금까지 종교가 돈벌이고, 비과학적이고, 민중을 우롱하고 무시한 맹신주의 종교뿐이었기에 사람들은 종교라고 하면 사교(邪敎)라며 종교를 경멸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오직 하나 진실한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종교의 '종'은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그 가르침이 '종교'입니다.
근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근본의 종교가 바로 니치렌불법(日蓮佛法)이고 어본존입니다.
이것은 독단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떠 경문을 보고, 철학상에서 논하고, 또 현실에서 신심한 현증(現證)으로 절대 확신을 갖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습니다."
참석자는, 확신에 찬 회장의 말에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근성이 비뚤어진 사람이라도 마음속으로는 이 어본존을 신앙하고 싶어 합니다. 어떤 훌륭한 위치에 있어도 한치 앞은 모릅니다. '숙명전환'이라는 중대한 문제와 생명과 인생이라는 본원적인 문제인 경우는 최고의 철학과 종교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만인 공통의 진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만, 어떻습니까."
회장의 외침에 찬동의 박수가 일었다.
니치렌불법의 공덕은 ‘명익’
이어서 회장은 공덕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악구와 비난 속에서 다행히도 니치렌대성인의 위대한 불법을 남보다 먼저 신앙할 수 있었습니다.
니치렌불법의 공덕은 '명익(冥益)'이라고 하여, 오늘 신심하고 내일 당장 부자가 되거나 병이 낫는 그런 공덕은 아닙니다. 병이 그 자리에서 낫는 경우도 있지만, 나무는 매일 보고 있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이 보이지만 3년, 5년, 10년이 지나는 동안에 점점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도 하루 이틀로는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15년이 지나면 이만큼 성장했나 하고 알게 됩니다. 이런 도리와 마찬가지로 명익, 즉 차츰 숙명이 전환되고, 죄장이 소멸되고 그리고 복운이 쌓입니다.
커다란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이익이 니치렌불법의 이익, 말법의 이익입니다."
회장의 말에 놀란 참석자도 적지 않았다. '공덕'이라고 하면 분명하게 나타나는 '현익(顯益)'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멤버가 올바른 신앙관을 확립할 수 있도록 거듭 다짐했다.
"따라서 초조해하지도, 방심하지도 말고, 나무가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려 거목으로 성장하듯이 어본존을 확실하게 수지하고 창가학회를 철저히 따라가십시오.
2년, 3년, 10년, 15년 뒤를 보십시오. 신심한 사람과 신심하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 그 다음은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실험증명자가 되기 바랍니다."
모두 동지를 생각하는 스승의 마음을 느꼈다.
근본은 자신의 일념
이케다 회장은 한 사람 한사람에게 당부하듯이 은사의 지도를 인용해 말했다.
"도다 선생님은 '신심의 목적은 일가화락의 신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은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족이 행복해집니다. 물심양면으로 행복이 넘치면 그 사람은 훌륭한 신자입니다.
또 '난을 이겨내는 신심'입니다. 숙명전환을 위해 정법(正法)을 수지하면 반드시 삼장사마(三障四魔)가 일어납니다. 대성인은 '마(魔)가 다투어 일어나지 않으면 정법이라고 알지 말지어다.'(어서 1087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훈대로 정법을 증명하기 위해, 또 숙명을 전환하고 일생성불을 증명하기 위해 난(難)이 있습니다. 그 난을 극복하기 바랍니다.
또 '각자가 행복을 획득하는 신심'입니다. 자신의 절대행복을 획득하는 신심이 대성인의 지도이며, 창가학회의 정신이고 지도입니다.
여러분이 안심입명(安心立命)하여 유유히 사자왕(師子王)처럼 인생을 꿋꿋이 살아가며 즐길 수 있는, 그런 한 사람 한사람이 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경애를 확립하려면 착실히 절복하고 제목도 부르고 삼장사마와 싸워야 합니다."
아마미 광포를 추진하는 동지는 '마와 투쟁한다'는 지도를 듣고 새롭게 결의했다. 회장은 힘차게 말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닙니다. 정치도 과학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조금 행복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행복은 아닙니다.
근본은 자기 자신의 일념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일념을 우주대(宇宙大)로 열어 인생을 마음껏 즐기고 기쁨을 만끽하려면 어본존이 필요합니다. 어본존과 경지명합(境智冥合)하는 곳에 대우주의 리듬과 합치한 인생행로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어본존을 끌어안고 어떤 연(緣)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본존만이 자신의 일념만이 절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확신하고 나와 함께 생애 뜻깊은 불도수행을 끝까지 해나가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회장이 지도를 끝마치자, 서원의 박수소리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지금 있는 장소를 적광토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반시뱀과 태풍
회장은 총지부 결성대회를 마치고 이어서 열리는 지도회까지 남은 시간을 이용해 나제 시내를 둘러보았다.
회장은 아마미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지역간부에게 물었다. 그 대답은 맹독성을 지닌 반시뱀과 맹위를 떨치는 태풍이었다.
회장은 '제목을 부르는 사람을 늘리자'고 말하고, 다시 지도를 거듭했다.
"문제 해결의 근본이 되는 것은 여러분의 일념입니다.
불법에서는 일념이 대우주를 포용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념이 바뀌면 중생세간이 바뀌고, 국토세간도 바뀝니다. 그것이 의정불이(依正不二)이며 일념삼천(一念三千)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학회원이 늘어나 모두 창제를 하게 되면 어떠한 환경도 바꿀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사람의 일념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태풍에도 집이 날아가지 않을까, 농작물 피해를 적게 할 수 있을까 등을 연구하는 것도 일념에서 시작됩니다. 나아가 행정을 움직이는 것도 일념입니다.
자신이 있는 곳을 상적광토(常寂光土)로 만들고 행복과 평화의 천지로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저는 아마미 동지가 그 선구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소설《신·인간혁명》제8권 '포진')
회장은 시내를 둘러보고 이어서 나제 시내에서 열리는 장년부 반장회에 참석했다. 전 혼을 담아 격려를 보내고, 아마미오섬 회관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장시간 배가 지연되어 총지부 결성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오키노에라부섬과 요론섬의 회원 269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고 회장이 외치자 환성이 일었다. 회장은 한 사람 한사람에게 말을 건네며 격려를 계속했다. 그리고 20분 정도에 걸쳐 모든 사람과 굳은 악수를 나눴다.
"악수를 하면서 결의를 이야기하는 장년부원도 있었다. 눈시울을 적시며 공덕의 환희를 보고하는 부인부원도 있었다.
적당한 격려로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신이치는 한마디 한마디에, 한 번 한번 나누는 악수에 진심을 담아 한 사람 한사람을 끌어안는 듯한 마음으로 격려를 계속했다.“
(소설《신·인간혁명》제8권 '포진')
당시의 이야기 - 나카야마 루리코 씨
아직 입회하지 않은 어머니를 모시고 요론섬에서 참석했지만 배가 지연되어
총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회관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이케다 선생님이 우리 곁으로 오셔서 한 사람 한사람과 악수를 나누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 천식이 나을까요?" 하고 질문하자, 선생님은 그 사람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괜찮아요. 반드시 나을 겁니다." 하고 격려하고, 다시 제 어머니도 포함해 모든 회원과 악수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신심을 반대했던 어머니는 이 만남을 계기로 입회, 선생님이 일가화락의 길을 열어주신 생애 원점의 순간이었습니다.
계속해서 휘호를
회장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지역간부와 간담하고 이어서 대표에게 보낼 색지에 잇달아 휘호했다.
"어린 싹이/ 자라나는 모습/ 바라보며/ 묘법 유포의/ 여행 즐겁구나"
"괴로워도/ 벗이여 한탄하지 마라/ 내일의/ 광선유포의/ 낙토를 보라"
"부처의/ 깊은 자비를/ 생각하며/ 걱정 말고 힘써라/ 신앙의 길"……
그 격려의 펜은 늦게까지 멈추는 일이 없었다.
당시의 이야기 야마다 - 요시쿠니 씨
당시 저는 현(縣) 소속 직원으로 오시마지청에 근무했습니다. 총회 당일은 나제항 보안관리사무소에서 배를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에서 상쾌하게 내리시는 이케다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업무 때문에 총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날 밤, 회관에서 선생님의 친필 휘호를 받았습니다.
"어린 싹이/ 자라나는 모습/ 바라보며/ 묘법 유포의/ 여행 즐겁구나" 이것을 제 일생의 지침으로 정하고, 사회에서 활약하는 인재가 되자고 결의했습니다.
당시의 이야기 - 야스무라 요시오 씨
이케다 선생님은 지부장 사명을 받은 저와 간담해주셨습니다. 그때 '휘호를 써주겠다'며 펜을 들어 단숨에 써주셨습니다.
"자, 나아가자 월지(月氏)의 저 끝까지 묘법을 넓히는 여정에 의기양양하게"
그리고 "10년, 20년의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작은 눈앞의 전진이 아닙니다. 말법만년 진미래제(末法萬年 盡未來際)의 일체중생을 구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싸움이 우리의 목표이고 사명입니다." 하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가슴에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일체중생을 구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것이 사명이다
행복과 화락의 보물섬
이튿날인 23일, 이케다 회장은 나제 항구에서 배로 도쿠노섬까지 가서 그곳 가메토쿠 항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고시마로 향했다. 그 사이에도 만나는 동지에게 격려를 거듭했다.
첫 아마미 지도에서는 가는 곳마다 사제의 유대를 강하게 맺었다. 이 유대가 아마미 동지에게는 어떤 탄압과 박해에도 지지 않는 힘이 되었다.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 장소가 바로 자신의 불도수행의 장소라고 결의하고 도전하면 그곳이 '상적(常寂)의 도읍'이 된다. '행복의 도읍'으로 빛난다.
다기진 아마미의 벗은 이 성훈대로 자신의 지역을 '본유상주(本有常住)의 상적광토'로 빛내면서 오키나와와 함께 '세계 첫 광선유포의 지대'를 목표로 크게 행진하고 있다.
세계가 동경하는 행복과 화락(和樂)의 보도, 아마미에 영광 있으라! 승리 있으라! 하고 나는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질문회에서
지금하고 있는 일이 희망과 달라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제 장래 희망과 다릅니다. 이대로 좋을지 불안
합니다."라는 청년부원에게 이케다 회장은 이렇게 지도했다.
"오늘의 신심과 생활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과거, 미래라고 해도 결국 지금 이 순간에 달렸습니다. 장래 희망과 다르다고, 지금 하는 일을 대충하면 안 됩니다. 지금 현실에 부닥친 문제에 성실하고 진지하게 맞서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직업을 바꾸려고 해도 현재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며 생활의 양식을 제공하는 일을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자신의 경험이 되어 되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도중에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생애 신행학(信行學)의 실천을 근본으로, 끝까지 투쟁하세요.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하고 격려했다.
사명의 천지, 승리섬① 아마미에 빛나는 사제성(上).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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