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에 있는 이수정(李秀正) 前 문화부장관의 墓碑
故 이수정(李秀正) 장관의 서울대학교 문리대 4.19 선언문
내가 사는 호방 마을에는 문화부장관을 지낸 故 이수정(李秀正) 님의 선대가 산 흔적이 많다. 그분의 생가는 이웃마을 온막리 지만 어릴 적부터 도시로 유학하였고, 선친을 비롯한 선대들은 우리 마을에 대농(大農)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의 여러 집터와 적지 않은 토지는 그분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아 사후 자녀들 소유로 남아있다.
이수정(李秀正,1940~2000)님은 경북 청도군 매전면 온막리(明臺)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재학시절 4·19 선언문을 기초했으며, 한국일보 기자, MBC 전무, 청와대 대변인, 문화부장관 등을 지냈고,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분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 3학년 때 4.19혁명이 일어났고, 당시 그가 작성한 4.19 선언문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韓國의 名文'으로 남아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宣言文(선언문)
象牙(상아)의 眞理塔(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疾風(질풍)과 같은 歷史(역사)의 潮流(조류)에 自身(자신)을 參與(참여)시킴으로써 理性(이성)과 眞理(진리), 그리고 自由(자유)의 大學精神(대학정신)을 現實(현실)의 참담한 薄土(박토)에 뿌리려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自身(자신)들의 知性(지성)과 良心(양심)의 엄숙한 命令(명령)으로하여 邪惡(사악)과 殘虐(잔학)의 現狀(현상)을 糾彈(규탄), 匡正(광정)하려는 主體的 判斷(주체적 판단)과 使命感(사명감)의 發露(발로)임을 떳떳이 宣明(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知性(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現狀(현상)이 民主(민주)와 自由(자유)를 僞裝(위장)한 專制主義(전제주의)의 표독한 專橫(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斷定(단정)한다.
무릇 모든 民主主義(민주주의)의 政治史(정치사)는 自由(자유)의 鬪爭史(투쟁사)다. 그것은 또한 如何(여하)한 形態(형태)의 專制(전제)로 民衆(민중)앞에 君臨(군림)하든 "종이로 만든 호랑이"같이 헤슬픈 것임을 敎示(교시)한다.
韓國(한국)의 日淺(일천)한 大學史(대학사)가 赤色專制(적색전제)에의 果敢(과감)한 鬪爭(투쟁)의 巨劃(거획)을 掌(장)하고 있는데 크나큰 自負(자부)를 느끼는 것과 꼭 같은 論理(논리)의 演繹(연역)에서, 民主主義(민주주의)를 僞裝(위장)한 白色專制(백색전제)에의 抗議(항의)를 가장 높은 榮光(영광)으로 우리는 自負(자부)한다.
近代的 民主主義(근대적 민주주의)의 基幹(근간)은 自由(자유)다.
우리에게서 自由(자유)는 喪失(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剝奪(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理性(이성)의 慧眼(혜안)으로 直視(직시)한다.
이제 막 自由(자유)의 戰場(전장)엔 불이 붙기 시작했다. 正當(정당)히 가져야 할 權利(권리)를 奪還(탈환)하기 위한 自由(자유)의 鬪爭(투쟁)은 燎原(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 自由(자유)의 戰域(전역)은 바야흐로 豊盛(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民主主義(민주주의)와 民衆(민중)의 公僕(공복)이며 中立的 權力體(중립적 권력체)인 官僚(관료)와 警察(경찰)은 民主(민주)를 僞裝(위장)한 家父長的 專制權力(가부장적 전제권력)의 하수인으로 발 벗었다.
民主主義 理念(민주주의 이념)의 最低(최저)의 公理(공리)인 選擧權(선거권)마저 權力(권력)의 魔手(마수)앞에 壟斷(농단)되었다.
言論(언론), 出版(출판), 集會(집회), 結社(결사) 및 思想(사상)의 자유의 불빛은 무식한 專制權力(전제권력)의 악랄한 發惡(발악)으로하여 깜박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漆黑(칠흑)같은 밤의 繼續(계속)이다.
나이 어린 學生 金朱烈(학생 김주열)의 慘屍(참시)를 보라! 그것은 假飾(가식)없는 專制主義 專橫(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裸像(나상)밖에 아무 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卑屈(비굴)하게도 威(위하)와 暴力(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百步(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學究(학구)의 良心(양심)을 강렬히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自由(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沈默(침묵)에 自由(자유)의 鐘(종)을 亂打(난타)하는 打手(타수)의 一翼(일익)임을 자랑한다. 日帝(일제)의 鐵槌(철퇴)아래 미칠듯 自由(자유)를 歡呼(환호)한 나의 아버지, 나의 兄(형)들과 같이 --.
良心(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永遠(영원)한 民主主義(민주주의)의 死守派(사수파)는 榮光(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現實(현실)의 뒷 골목에서 勇氣(용기)없는 自虐(자학)을 되씹는 者(자)까지 우리의 隊列(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自由(자유)의 秘密(비밀)은 勇氣(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隊列(대열)은 理性(이성)과 良心(양심)과 平和(평화), 그리고 自由(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隊列(대열)이다. 모든 法(법)은 우리를 保障(보장)한다.
단기 4293년(서기 1960년) 4월 19일
서울大學校 文理科大學 學生 一同

선언문이 세겨진 묘전비

선언문이 인쇄된 전단

선언문의 육필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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