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씀 잠언 28장 13절
제 목 죄를 자복하는 자가 받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죄를 숨기지 않고 자복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용서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이라고 아뢰면 용서하시는 아버지입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용서를 너무 쉽게 생각하여 죄를 반복하다가 결국 자기의 길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용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진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이 세상에서 육체를 가지고 있을 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전도서 9장 4-5절에 모든 산 자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솔로몬은 죽은 사자보다 살아있는 개가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더 낫다는 말을 했습니다.
죽고 나면 하나님께 용서 받을 기회를 상실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그 영혼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 자신을 쳐서 복종하므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에 빠진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대속제물로 사용하셨는데 성자하나님께서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그렇게 놀라운 사랑을 받은 성도들이 세상을 버리지 못해서 날마다 죄를 지으며 자기의 의를 바벨탑처럼 세우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희생앞에서 다시는 세상을 위해서 살지 않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것을 보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용서하실 그 날을 한없이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주고 건져준 사람들이 배신하는데도 그들을 또 용서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하나님이 이해가 되십니까?
뭔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사단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았다면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기의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을 가진 인간들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위해서 구원을 받아준 것처럼 교만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백성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는 것 같으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나 입술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자녀들의 마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용서할 수 있는 조건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축복과 용서를 받는 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기만 하면 성도를 축복하시고 그에게 내리기로 작정하셨던 재앙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악한 길로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죄를 자복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진노하셨던 마음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면 성도에게 유익하게 하시려고 계획했던 모든 것을 거두시고 복에 대해서 뜻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대속하시면서 까지 아담이 지은 원죄를 용서하셨는데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미련한 인간은 끝까지 죄를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원죄는 아담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자기와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죄는 아담의 씨를 통해 전해지기 때문에 그의 자손들은 모두 아담과 동일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바로 그 원죄를 사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일이며,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베푸신 용서는 인간의 힘으로 절대로 받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이사야 56장 10-11절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이방군대를 소집하시고 그토록 사랑하시던 자기 백성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의 타락을 더 이상 보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파숫군은 망루에서 망을 보는 영적인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그들은 소경이 되어 적이 침략해도 알지 못했습니다.
집을 지키는 개처럼 예민해서 사단의 움직임을 빨리 알아차리고 모두가 깨어나도록 짖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벙어리 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써 본분은 감당하지도 못하면서 그들은 탐욕스러운 개처럼 세상의 정욕을 버리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지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또 용서하시며 인내하셨지만 돌이키지 않는 그들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어 이방군대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난은 스스로 연단을 자초했기 때문에 당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모든 고난과 연단을 막아주시고, 이방군대와 싸워주시며 생명과 삶을 주장해 주시는데 사람이 미련해서 연단 가운데 빠지는 것입니다.
아합 역시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7대왕 아합은 모든 것을 소유한 왕이지만 이스르엘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은 욕심에 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왕후가 아합에게 왜 근심하고 있느냐고 묻자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은데 나봇이 팔지 않아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왕후 이세벨은 바알의 본산지 두로와 시돈에서 바알의 제사장 겸 왕으로 군림했던 엣바알의 딸로서 아합과 정략결혼을 한 여인입니다.
엘리야가 바알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선지자들을 죽였을 때 엘리야를 죽이기 위해서 분을 품던 여인이기도 합니다.
이세벨은 권력을 이용하여 나봇을 모함했고, 나봇은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세벨은 아합에게 나봇이 죽었으니 그 포도원을 차지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아합의 모든 악행을 보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길 사마리아에 있는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서 그리로 내려갔으니까 너는 그를 만나서 내 저주의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그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을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에 대해서도 예언하시길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 것이며, 아합에게 속한 자들은 모두 그들처럼 될 것이라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아합의 집 전체에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세워 출애굽의 기적을 베푸신 이스라엘백성이 그것도 북왕국을 다스리는 왕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21장 27절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아합은 자기를 비롯해 아내와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할 것이라는 엘리야의 예언을 듣고 두려웠습니다.
엘리야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는 그는 죽은 자처럼 힘이 없어졌습니다.
자기가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알기에 더욱 두려웠던 것입니다.
저주를 들은 아합은 지금까지 악했던 것과는 달리 하나님께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기의 옷을 찢으며 왕이라는 신분은 하나님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 했으며 굵은 베를 두르며 회개하는 척 했습니다.
걸음을 천천히 걸으며 자기가 지금 용서 받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여드리며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길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열왕기상 21장 28-29절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합이 내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이 내리리라 하셨더라
우리는 아합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인을 용서하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나봇을 그토록 잔인하게 죽인 아합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백성의 것을 착취하며, 이방여인을 왕비로 삼아 이방신상을 세우는 죄를 지었으므로 더욱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심판을 하셔서 그들이 두려워서라도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아합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십니까?
그렇다면 죽은 나봇이 너무 억울한 것 아닙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악한 아합을 용서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는 아합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세상의 것을 욕심 내며, 우상과 간음하며, 남의 것을 탐하며, 마음으로 살인하고,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해서 드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도 알며, 사망 가운데 떨어지는 영혼들을 구원하라고 하늘의 권세도 주셨지만 아합처럼 날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지 못해서 근심하고 있습니다.
아합이 거짓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한 것을 아시면서도 용서하셨듯이 우리가 오늘 회개하고 내일 죄를 지을 것을 아시면서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아합이 용서를 받지 못했다면 우리도 용서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만일 이 성읍에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멸망시키려는 이 성읍을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작은 믿음을 붙들고서라도 용서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에 의인 열명이 있다면 절대로 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의인 한 사람 때문에 전체를 구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빼앗기지 않는 세상축복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받은 성도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처럼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않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더욱 놀라운 축복안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얼마나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인지 깨닫는다면 아합처럼 거짓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로 살아가며 놀라운 하늘의 복을 누리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