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국수/수제비’의 어원
면(麵/麪)은 면(丏/面) 글말의 형성자이다. 면(丏)의 금문은 만(万)과 같고, 독체자로는 소전에 나타나지 않는다. 곧 만(万)은 소전에 만(萬)과 함께 쓰이다가 점차 면(丏)으로 따로 구분하여 쓰인 글자이다. 면(丏)은 ‘보이지 않는, 숨은/ 가리다, 토담’등의 뜻이다. 우리말 ‘면’은 ‘개미·쥐·게 등이 파내어 놓은 보드라운 가루 흙’의 뜻도 있다. 그러면 면(麪)은‘보리/밀을[맥(麥)] 만(萬) 갈래로[면(丏)] 미러(밀다/표면에 붙은 것이 떨어지도록 문지르다, 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넓고 얇게 펴다) 노느다(여러 몫으로 나누다, 분배하다) 또는 면내다(가루 흙을 파내다, 조금씩 훔쳐내다)[면]’의 얼개로 ‘밀가루’의 뜻과 ‘국수’의 뜻을 함께 나타낼 수 있다. 즉, 보리 낱알을 수없이 문질러 나눈(면낸) 것은 밀(보리)가루이고, 그 반죽을 밀어 나눈(면낸) 것은 국수가 된다. 마찬가지로 면(丏)은 면을 수없이 갈아 놓은 것이 ‘보이지 않는’ 뜻이고, 몃구어(몃구다/<옛>메우다) 놓은[면] 것이 ‘토담’의 뜻이며, 그렇게 토담을 쌓는 것에서 또한 ‘가리다, 숨다’ 등의 뜻이 유추되었다.
면(麵)은 소전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면(麪)과 따로 국수만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글자로 추론이 가능하다. 면(面)의 낯, 얼굴/ 대할, 만날, 뵐/ 겉/ 쪽 등의 뜻에서 가루의 의미를 유추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구분 없이 본래의 면(麪)을 제치고 면(麵)이 같은(밀가루, 국수 등) 뜻으로 쓰인다고 볼 수 있다. 어쨌거나 한말 ‘국수’의 어원은 무엇인가? 면(麪)과 견주면 국수의 형태에서 유추할 수 있다. 즉, 밀가루 반죽에서 국수가 만들어지는 현상으로 알 수 있다. 반죽으로 가장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 형태는 ‘수제비’이다.
수제비의 어원은 주로 ‘수(手) + 접(摺) + 이 > 수접이 > 수저비 > 수제비’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듯하다. 우리말 어원에 대한 시각이 우리말 의미보다는 한자어나 이웃나라 말에서 찾으려는 시각에서 그 틀을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우리말의 시각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우리말의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수 + 제비’로 볼 수 있다. 제비를 주로 연(燕)의 제비(새)로만 보기 때문에 의미 연결이 되지 않아 한자어에서 찾은 것이다. 제비뽑기(추첨)에서 보듯, 제비는 ‘미리 정해 놓은 글자나 기호를 종이나 나무쪽 따위에 적어 놓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잡게 하여 승부·차례 또는 경품 탈 사람 등을 가리는 방법이며, 또는 그 때 쓰이는 종이나 나무쪽 따위의 물건’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제치어(일정한 기준 아래 따로 빼어) 비어내다/비어지게하다/비릊다’의 준말이다. 그러면 밀가루 반죽을 수두룩하게(수북수북) 제비로 뽑아 낸 곧 떼어낸 의미로, 그 조리법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제비(추점)의 형태는 다양하다. 납작한 돌멩이 같은 나무쪽도 있을 것이고, 죽간이나 그 보다 더 가늘고 기다란 괘사를 적은 대나무 같은 것도, 종이를 접은 것 등의 여러 모양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제비처럼 밀가루 반죽을 국물에 수두룩하게 뽑아/떼어 내 끓인 것이 국수제비 곧 수제비국이고 더 줄여서 ‘국수’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점차 조리법의 발전에 따라 납작하게 밀어 말아서 칼로 자른 것이 ‘칼국수’이고, 국수틀에 넣어 보다 가늘고 기다랗게 뽑아낸 것이 오늘날의 ‘국수’이며, 가장 원초적인 처음의 납작한 조약돌처럼 담방담방 떼어 낸 국수를 따로 ‘수제비’로 구분했다고 볼 수 있다. ‘물수제비’또한 같은 어원이다. 즉, 수제비처럼 물위에 담방담방 띄어지게 하는 놀이임을 알 수 있다.
국수는 잔칫날 특히 ‘언제 국수 먹여 줄 거냐?’고 묻듯, 결혼식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말 ‘면먹다(여럿이 내기 따위를 할 때 어떤 두 사람 사이에는 서로 이기고 짐을 따지지 아니하다, 한편이 되다)’는 뜻에 따라 짝을 만나 한편이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또한 국수는 가루를 반죽하여 이기어 잇듯, 다시 그 반죽을 여러 가닥으로 기다랗게 잇듯, 이어짐의 상징이다. 즉, 국수처럼 후손을 많이 오래도록 잇게 되었음을 알리는 의식이기도 하다. 더불어 잔칫날 국수는 그렇게 이어가며 오래오래 사시라는 축원도 덧붙여진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제사상에 올리는 상징 또한 조상의 얼 그 뜻을 국수처럼 이어가겠다는 약속의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