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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남사중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2월 14일 열린 효행졸업식에서 어르신에게 마스크팩을 해주고 있다. 사진=조준우 기자 | 어르신 등 지역 주민, 졸업생 장학금 1천만원 마련 졸업생, 효도잔치로 보답… “잘 자라 큰 사람 되길”
“매일 마주치는 우리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이번 기회에 인사도 드리고 우리 동네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알고 보니, 어르신 대부분이 우리 중학교 선배님이시더라고요.” 올해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 소재 남사중학교(교장 송장섭)를 졸업하는 이희연 학생이 2월 14일 열린 졸업식에서 한 말이다. 남사중학교의 올해 졸업식은 특별하게 꾸며졌다. 일반적인 졸업식과 달리 경로당에서 ‘효행졸업식’이라는 이름으로 식전행사가 치러진 것. 전교생이 155명밖에 되지 않는 남사중학교의 졸업생 58명은 이날 인근 경로당 3곳에 흩어져 어르신들을 위한 장기자랑과 안마, 마사지 시간을 마련했다. 졸업생을 위해 장학금을 모아준 어르신 등 지역 주민과 교직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효를 실천하는 뜻 깊은 졸업식을 만들기 위함이다. 올해 졸업생들을 위해 마련된 장학금은 약 1000만원. 가정형편을 고려해 학생 한 명 당 적게는 15만원부터 많게는 30만원까지 졸업생 전원이 장학금을 받았다. 20여 년 전부터 남사중학교에는 교장, 교감을 포함한 전체 교직원과 경로당 회원 등 마을 주민들이 장학금을 모아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전통이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송장섭 교장은 “작은 마을이라 부모님이 돈 벌러 외지에 나가고 조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다. 게다가 장학금 마련에 어르신들이 힘을 보태주시기도 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아이들에게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해 효행졸업식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행사는 졸업생들이 그간 동기들과 함께 땀 흘리며 준비한 장기자랑 무대로 시작됐다. 학생들은 홀로 또는 여럿이 무대에 올라 다양한 공연을 펼치며 어르신들의 흥을 돋웠다. 트럼펫 연주를 선보인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여학생 7명은 걸그룹 ‘에이핑크’의 음악에 맞춰 발랄한 춤을 선보였다. 막춤을 춘 학생도 플룻을 연주한 학생도 있었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르신들의 얼굴은 어느덧 환한 미소로 물들었다. 이 중 어르신들의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이들은,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에 맞춰 트위스트 춤을 춘 4명의 남학생이었다. 이들은 이어진 앙코르 공연에서 어르신들을 직접 일으켜 세워 함께 춤을 췄다. 경로당은 순식간에 1·3세대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됐다. 트위스트 춤을 춘 신재희 학생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굉장히 즐거워하셨잖아요. 마음이 정말 좋아요”라며 “이제 졸업하면 이 마을을 떠나 먼 곳으로 가게 되는데, 어르신들을 마지막으로 뵙는 걸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했어요. 졸업식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어르신들께 피부미용에 좋은 마스크팩과 마사지, 안마를 해드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은 양손으로 정성을 가득 담아 어르신들의 어깨, 팔, 다리를 ‘꾹꾹’ 주물렀다. 여기저기에서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장영희(76) 어르신은 안마를 받으며 “너무 너무 좋아. 하늘만큼 땅만큼 좋아. 우리 손주들보다 더 예뻐”하고 말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김 어르신(86)의 기분은 더욱 남다르다. 이번에 졸업하는 학생 중 한 명인 유한성군이 친손자이기 때문. 유군과 친구들은 어르신 곁에 둘러 앉아 몸 이곳저곳을 주물렀다. 김 어르신은 “하하하, 착해. 수고했어. 우리 한성이 착하고 좋아. 친구들이랑 이렇게 안마해주니 고마워”하고 말했다. 유군은 “할머니가 기뻐하실 것을 생각하며 준비하니 좀 떨리기도 했는데, 오늘 어르신들 반응이 생각보다 더 좋아 행복했다”며 “할머니, 오래 오래 사세요”하고 말했다. 이희연 학생도 “이전에는 봉사시간을 채우려고 봉사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게 아니잖아요. 그것부터 기분이 완전 색다르고, 뿌듯했어요”라며 웃었다. 윤미정 학생도 소감을 밝혔다. “뉴스를 보면 졸업식 뒤풀이에서 ‘알몸뒤풀이’라면서 안 좋은 모습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졸업하는 것도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효행졸업식이 계속됐으면 좋겠어요.” 박송자(70) 어르신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몇 분 동안 계속 안마하는 아이들에게 팔 아프니 그만하라고 손사래를 치며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해서 다들 큰 사람 됐으면 좋겠어. 졸업식 날 이렇게 수고해주니 기분 좋은데, 너무 고생스러운 거 같아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오후 2시 남사중학교 3층 다목적실에서 열린 졸업식에서는 ‘장한 어버이상’과 ‘자립상’ 시상도 이어졌다. 장한 어버이상은 친손자가 아님에도 김모 학생을 맡아 자식처럼 키워준 노부부가, 자립상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난 김모군이 받았다. 송 교장은 “어르신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진심이 우러나오는 것 같다”며 “어르신들도 학생들도 처음에는 거리감이 있었는데, 서로 친할머니, 친손자처럼 대하는 것 같아서 기대 이상으로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차로 불과 한 시간~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남사중학교. 그러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효의 정신과 공동체 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고 교복을 찢는 등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일부 ‘막장 졸업식’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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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서울에서 차로 불과 한 시간~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남사중학교. 그러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효의 정신과 공동체 문화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밀가루와 계란을 던지고 교복을 찢는 등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일부 ‘막장 졸업식’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풍경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