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수리사>
수리산에 있는 사찰이다. 수리산에는 여러 개의 사찰이 있는데 그중 가장 역사적 함의가 깊은 곳으로 군포의 대표적인 전통사찰이다. 수리산의 이름이 바로 이 사찰 이름 修理寺에서 왔다고도 할 정도로 수리산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에 많은 불사를 벌여 깔끔하게 다듬어놓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아직 가건물도 있고, 건물 사이에서는 어지러운 느낌도 나지만 완공된 건물 하나하나는 아담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특히 대웅전은 가람 전체의 인상을 응축하고 있다. 대웅전 안 부조로 된 탱화는 기법과 색상이 은은한 느낌을 주며 우아한 분위기를 낸다. 여느 사찰 탱화에서는 보기 힘든 기법이다.
명칭 : 수리사(修理寺)
주소 : 군포시 속달동 329-2
방문일 : 2020.2.21.
수리사는 신라 진흥왕 18년(558년)에 건립되어 부속암자가 12개나 되는 대 가람이었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크게 쇠퇴했는데 그뒤 재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6.25때 다시 피해를 입었다. 의병장 곽재우가 말년에 수도했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쇠락했던 시절, 절 부지마저 축소되었는데, 군포시와의 재판에서 옛터를 되찾아 그 뒤로 여러 불사를 단행했다. 2001년 이후 나한전, 삼성각, 대웅전, 요사채 등을 새로 신축했다. 대웅전은 옛건물을 헐고 지어 2003년에 완공하였다.
사찰의 주요 건물이 2000년 이후에 완성된 것이라 새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눈으로 안 보이는 역사는 오래지만 눈으로 보이는 건물은 오래되지 않아 새 절이나 다름없어 고풍스러운 맛은 없다. 하지만 절터나 절의 연혁이나가 상당하여 새로 지었어도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1988년 전통사찰 86호로 지정되었다. 6.25후 중건한 청운스님의 주지 시절에는 태고종이었다 하는데, 현재는 조계종 소속이다.
사찰 근처가 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2007년 이후 유해를 4구나 수습했다는 걸로 보아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찰도 큰 피해를 입었음은 불문가지다.
지금은 상당한 규모가 되었지만 여전히 대형 사찰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방문객으로서는 편안하고 안정감이 더 드는 거 같다.
수리사 관련 기록은 많지 않다. <고려사절요> 1217년조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단편적 기록이 보이는데, <고려사절요>에는 수리사를 포함한 인근의 종군한 중들이 최충헌을 죽이려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외 17세기 이응희의 <玉潭遺稿>에 수리사에서 놀며 지은 시가 두 편 게재되어 있다. 이외 허진동(許震童)이 1870년에 지은 <동상집>에도 차운하여 지은 수리사 시가 올라 있다.
修理寺는 이치를 닦는 절이라는 뜻이다. 곽재우가 절을 재건하고 수도하였다고 하나 경내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곽재우는 임진왜란 때 경상도에서 활약한 의병으로, 붉은 옷을 입고 싸워 홍의장군으로 알려져 있다. 곽재우의 의병은 왜적의 호남 진출을 저지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는 수 차례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거나 곧 사퇴를 해서 유배를 가기도 했다. 곽재우는 이곳 수리사 외에도 보리사, 해인사 등의 사찰에 들어가 독서생활을 하는 등 유학자지만 불교와 매우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도교의 양생술과 도술을 익혔다고 하기도 한다.
민중적 영웅 곽재우의 이야기는 구전과 문헌에서 다양한 설화로 구성되어 전승되고 있다. 말년에는 벽곡을 하고 세상을 떠나 우화등선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순신처럼 영웅적 활약 이후 높은 공적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모습이 설화나 그의 진퇴과정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런 배경 속에서 수리사 은거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에는 박한경(朴漢慶) 대순진리회 도전(都典)이 이곳에서 수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독서 후 1969년 서울 중곡동에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증산과 석가모니의 영정을 설치하는 교당의 모습에서 불교와의 관련이 보인다.
수리산은 경기도에 있는 3개 도립공원 중 하나다. 안양, 군포, 안산의 3개시에 걸쳐 있는 산으로 군포 시민에게는 병풍같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등산과 산책에 좋아 멀리서도 찾아오는 산이다. 수리산에는 이외에도 상연사, 용종사 등 암자 규모의 작은 절이 있다. 반월호수 옆 <군포대야물말끔터>에 가면 수리산에 서식하는 동식물 전시를 볼 수 있다.
수리사 입구에 있는 <수리산탐방안내소>는 건물은 완공되었으나 아직은 개관을 준비중이다. 이곳이 개관하면 수리산의 이모저모를 잘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수리사는 이곳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 올라가면 된다. 수리사까지 길이 잘 닦여 있고, 계곡을 끼고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다.
인근에 있는 반월호수와 엮으면 하루코스가 흐뭇하게 이루어진다. 수리사 아래 새롭게 식당과 커피숍 등의 거리가 현대식 사하촌으로 조성되었으며, 반월호수 주변에도 환경을 보존하는 선에서 식당과 커피숍이 있다. 호수는 전체가 데크길과 흙길로 이어져 한바퀴 돌아볼 수 있다. 1957년에 조성된 아름다운 호수이다.
더 조용한 곳을 원하면 바로 아래 갈치호수가 있다. 30분이면 한바퀴 돌아볼 수 있는 아담한 곳인데 역시 풍광이 아름답고 인근 마을이 푸근하다. 호수를 끼고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맛있는 화덕피자를 하며, 실내장식이 살뜰해 로맨틱한 분위기에 젖을 수 있다.
대웅전과 불상과 나한 탱화. 모두 최근에 조성한 것이다.
범종각. 범종 표면에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국보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의 비천상과 같은 모습이다. 연화좌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모습으로 주위에 보상화(寶相花)가 하늘로 날아오른다.
*보상화 : 연꽃을 모체로 꽃잎이 겹쳐 바깥으로 퍼져나가는 형상의 불교 문양. 길상문양
약수정. 옆으로 삼층석탑은 부모은중경이 새겨져 있다.
뒷편에서 본 약수터. 바위 위에 돌을 쌓아놓은 무더기들에 염원이 담겨 있다.
나한전과 내부 불상. 본래 대웅전에 있던 불상을 옮겨 놓은 듯하다.
수리사 입구 표지석과 사찰 전경
수리사 입구 일주문의 앞뒤 모습. 일주문의 장식이 화려하고 웅장하다. 절의 규모나 언덕배기 위치로 보아 지붕이 좀 무겁다는 느낌을 준다.
사찰 입구에 게시된 수리사 연혁이다.
<6.25전사자 유해발굴 기념지역> 현판이다. 이 일대가 그렇게 지정되어 있고 이곳에서 유해와 유품을 발굴하였다는 기록이다. 사찰 안에 세워져 있다.
2019년 후반기에 새로 바꿔 그린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의 탱화나 불상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부조 형식의 그림이다.
이전 그림은 거의 흑백에 가까운 그림이었고 동자의 위치도 반대로 되어 있다. 중앙의 산신령이 훨씬 더 화려해졌다. 호랑이는 산신령 뒤로 숨어 더 온순한 모습이 되었다. 수리산과 어떤 모습이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삼성각과 그 옆 불상. 삼성각은 절의 가장 뒷편에 있다. 목이 없이 몸체만 남은 석불을 모셨다. 아마 이전 임진왜란 이전 화려했던 사찰의 그 시절을 증언하는 듯하다. 대웅전 축조 시에도 이전 주춧돌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 유물인가 아닌가 추측된다. 가사의 주름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뒤로 쌓은 돌담이 정교하다.
사찰 제일 뒷편에서 바라본 전경
수리사로 들어서는 입구에 수리산탐방안내소가 있다. 아직 개장 전이고 준비중이다. 20년 상반기 중 열 예정이라 한다.
수리사는 수리산에 있다. 수리산은 경기도에서 세번째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다. 수리산의 제일 높은 태을봉은 489미터다. 높지 않은 산이라 비교적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등산로가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편한 코스는 산책하는 기분으로도 일주할 수 있다. 수리산 코스를 10개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수리산 명칭 유래담이 세가지가 제시되어 있다. 수리산 바위가 독수리와 비슷하여 수리산, 수리사에서 따와 수리산, 왕손이 수도하여 수리산이라 했다는 설이다.
*아래 수리산탐방안내소에서 사찰까지 길이 잘 조성되어 있고, 계곡을 낀 데크길이 있어서 간혹 사찰까지 오르는 자동차를 피해 한적하게 계곡을 감상하며 오를 수 있다.
*수리산 자락 탐방소 근처로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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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23.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