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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거기 낙원에서 여름과 겨울에도 움직이지 않는 다섯 나무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나뭇잎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들을 알게 되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도마복음 19장)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24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먹게 하리라(요한계시록 2장 7절)
도마복음 19장은 상징적인 요소가 가득 찬 어록입니다. 또한 난해한 가치술어적인 진술들이 도마복음예수를 통해 계시됩니다. 특히 ‘다섯 나무’에 관한 아주 심오한 지혜신비영성이 감추어진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다섯 나무의 상징성은 여러 가지 지혜신비적인 담론을 가지고 영적해석이 요구되며, 또 영적깨달음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나무’의 상징성을 켐벨은 현현(顯現)세계의 전체, 하늘과 땅, 그리고 물의 총체로 돌의 정적(靜的)인 생명과 배대하는 동적(動的)인 생명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상징을 가진 나무로서 세계수로 알려진 북유럽 신화의 우주수(宇宙樹) ‘이그드라실’(Yggdrasill)은 강대한 풀푸레나무 또는 상록수이며 생명의 샘, 영원한 생명과 불사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융(Jung)에 의하면 ‘자기’(自己)가 바로 ‘이그드라실’이며,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뻗은 세계수는 대극(對極)의 합일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무수한 신화와 전설은 우주를 상징하는 우주목을 등장시킵니다. 이는 절대적 실재, 생명과 신성성의 근원을 구현하며 세계의 중심성을 표현합니다.
또한 우주목과 관련해서 ‘사람’의 상징성으로 쿠퍼는 ‘남자’에 대한 설명에서 우주와의 관계로 인간은 소우주이며 대우주와 4대 원소의 반영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육체는 땅, 몸의 열은 불, 혈액은 물, 그리고 숨은 공기에 해당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인간은 우주적 존재로서 신과 우주를 이어주는 연결 끈으로 나타냅니다.
수피교에서는 인간은 우주적 존재의 상징입니다. ‘여자’는 태모, 태모신, 달에 의해서 상징되는 여성원리로서 대지와 바다를 표현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여성원리와 남성원리에 의한 원형을 상징합니다. 원형은 시공간의 차이를 넘어선 보편적인 존재성의 조건을 항상 재생할 수 있는 인간 속에 있는 그러한 가능성을 지닌 것입니다.
결국 집-나무-사람의 상징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미로 합일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그 자신이 창조한 집이나 우주 속에 거주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자기의 몸속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적 사유구조는 집-몸-우주를 동일시하는 사상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헬레니즘의 우주적 기원에 대한 지혜․신비는 우주생성신화를 나타나는 특징으로 위대한 어머니 여신이 나옵니다.
이러한 등장은 기독교의 창조주의 신 개념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부터 나오 질 않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있는 것으로부터 있는 것이 나온다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의 우주생성신화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때로는 창조주와 동일 시 되기도 하고, 때로는 창조주와 다른 것입니다. 이처럼 헬레니즘의 신화에는 우주 생성과 관련해서 여신의 개념을 중요시하게 됩니다. 참고로 도마복음 101장에서는 ‘나의 진정한 어머니는 생명의 어머니’라고 상징적으로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하여튼 헬레니즘시대의 우주 생성론과 관련된 신화가 펠라스고스(Pelasgos) , 오르페우스(Orpheus), 호메로스(Homeros), 헤시오도스(Hesiodos) 창조신화 등에 등장합니다. 도마복음에서도 창조와 관련된 상징적 내용이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이는 어록 13장에 나오는 ‘우주 안에 다섯’이 다섯 나무(19장)와 연관해서 진술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도마복음의 상징성은 중요 테마입니다. 이러한 테마는 배대(配對)의 합일적인 사유구조로 표현됩니다. 원래 동양과 서양이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 양성(兩性)구유의 상징성은 두 전통에서 모두 동일한 합일구조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도마복음의 상징성에 나타나는 미분적합일 구조에서 발견됩니다.
도마복음에서 발견된 문학형태 중에 고대 상징적․의례적 요소가 지혜신비영성 담론의 원형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마복음의 상징성에 대한 담론은 특별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19장에 나오는 ‘다섯 나무’가 우주론적․인류학적 원형의 상징적인 개념을 담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성은 이야기 형식으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징성의 담론이 지혜신비영성으로 감춰집니다. 이는 도마복음의 어록이 ‘비밀의 말씀들’로 숨겨져 있는 담론으로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마복음의 상징성은 ‘깨진 신화’의 담론입니다. 그리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신화적 장치의 도구가 지혜신비영성의 상징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신화는 사실적인 서술로는 표현하기 불가능한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해 특별한 가치술어적인 진술로 사용됩니다. 또한 도마복음에 나타난 싱징구조의 특성으로 신화성을 말하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지혜신비영성의 표현과 관련해서 가치술어적인 담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표현으로 바로 원시신화성이 자연스럽게 등장합니다.
이는 지혜신비영성을 말하면서 상징성에 대한 담론을 배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상징성을 언급하면서 신화성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신화의 요소는 모든 어록의 진술 중에 지혜신비영성과 관련된 비밀의 어록들과 함께 표현됩니다. 그리고 도마복음에 나타나는 신화적 상징성은 고대 근동지역과 헬레니즘의 사상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됩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신화에서 세상을 처음으로 만든 어머니와 아버지인 가이사와 우라노스는 ‘대지’와 ‘하늘’을 뜻합니다. 즉 그리스인들은 세상의 시원으로 대지로 보고 그 배대(配對) 점을 하늘로 생각했습니다. 그 둘의 결합에 의해서 세상 만물이 생성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록 3장에서 ‘하늘’은 여성성으로 하는 지혜신비영성의 ‘하늘나라’에 대하여 언급하게 됩니다. 한편 우주상징과 관련해서 도마복음에서는 용어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헤트’입니다. 그중에 ‘자궁’이라는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는데, 동양신학자인 송찬성이 우주를 하나의 ‘자궁’(헤트)으로 보는 사유구조가 발견됩니다.
결과적으로 도마복음에서 나타나는 신화적 상징구조의 핵심은 어록 19장에 나오는 ‘다섯 나무’를 가장 주요하게 언급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도마복음에 나타난 ‘다섯’은 분명히 기수(基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숫자 ‘5’는 인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머리 하나에 사지(四肢)가 달린 인간의 형상은 오각형 펜타그램으로 구현됩니다.
고대 마야 족에게는 숫자 5가 신성한 숫자였습니다. 이는 숫자 5가 옥수수의 신을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스텍 족에게는 완전성과 의식의 각성을 상징했습니다. 그리고 부적으로 사용된 ‘5’라는 수는 피타고라스학파들의 기본적인 상징물 가운데 하나였던 원이 새겨진 별 모양의 5각형이 그림 속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이러한 기수의 개념으로 동양사상적 사유에 ‘오방색’(五方色)이 있습니다. 이는 황청백적흑(黃淸白赤黑) 5가지 색을 말합니다.
또한 음과 양의 기운이 생겨나서 하늘과 땅이 되고 다시 음양의 두 기운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5행(行)을 생성하는 음양오행사상이 나옵니다. 이러한 오행은 오색과 방위와 연관됩니다. 그래서 중앙과 사방을 기초로 삼아 황은 중앙, 청은 동쪽, 백은 서쪽, 적은 남쪽, 흑은 북쪽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황은 오행 가운데 토에 해당하며 우주의 중심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청은 목(木)에 해당해서 만물을 생성하는 색으로 상징되고, 백은 금(金)에 해당되어 결백과 진실 등을 상징하며, 적색은 화(火)는 상징하여 생성과 창조 정열, 애정, 적극성 등을 상징하고, 흑은 수(水)에 해당하여 지혜를 상징합니다. 물론 이러한 동양적 사유구조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의미가 도마복음에서 말하는 ‘다섯’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섯’이 ‘나무’와 연결될 때에는 우주목의 상징성에서 동양적 개념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받게 됩니다. 이는 우주목 신화담론과 유사한 내용을 나타내고 ‘낙원 안’이라는 장소로 제시합니다. 물론 여기서의 ‘낙원’이 구약성경의 창조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지만 함의된 개념을 가진 지혜신비영성의 담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낙원’이란 용어의 전승적인 배경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 이집트 벽화에 음식과 음료를 주신 어머니 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생명나무에 대한 상징이 나타납니다. 이 생명나무는 낙원에서 자라는 나무로 낙원의 중심에 있으며 재생과 불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나무는 고대동서양에서도 널리 퍼져있는 주제입니다. 이러한 생명나무는 지상낙원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종교는 신성한 나무의 상징성을 받아들여 낙원에 생명나무를 표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신화의 보편적 상징성을 드러내 주는 핵심적 구조는 신성한 나무와 관련되어집니다. 이는 대부분 신화에서 창세와 시원의 사건에 항상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낙원의 중앙에는 선악과나무와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와 동일한 구조로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에 해당하는 신성한 나무의 등장은 우연한 등장이라기보다는 보편적 의식의 원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다섯 나무’는 낙원(파라다이스)에 있는 생명나무를 신화적으로 상징화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대 신비영지사상에 나타나는 생명나무는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측은 팽창적인 에너지를, 좌측은 축소적인 에너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로 내려가는 나무의 가운데 몸체는 좌우의 균형점으로 간주합니다.
카발라의 심리치료에는 나무의 우측과 좌측 사이에서 교묘히 움직이면서, 두 에너지를 통합합니다. 더욱이 생명나무는 고대 수메르, 인도, 중국, 일본 등 여러 문화에서 등장합니다. 여기서의 생명나무는 낙원에서 자라는 불멸의 생명주기로 시작과 끝을 나타내며 우주목의 또 다른 양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명나무가 어록 19장 중반에 나오는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역하면, ‘너희가 거기 낙원에서 여름과 겨울에도 움직이지 않는 다섯 나무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나뭇잎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들을 알게 되는 자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이 진술에서 ‘나무 잎은 낙원 안에 있는 ‘다섯 나무’와 대비되는 생명성을 상징화 한 개념입니다. 이러한 생명적 의미가 구체적으로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라고 파격적인 지혜신비영성개념을 전개합니다.
이 진술의 핵심은 ‘다섯 나무’와 ‘나무 잎들의 발견’, 그리고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성취는 ‘아는 그들’, 즉 지혜신비영성을 아는 ‘앎’이 있는 자들은 생명성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마복음의 생명성은 ‘다섯 나무’의 나무 잎이 있는 문의 장소를 밀치고 완전히 발견하는 것’에 대한 진술을 통해 ‘다섯’에 숨겨져 있는 상징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숫자는 문자보다 한층 더 독립적인 체계이며 가장 단순한 차원입니다. 이러한 단순성에서 하늘과 땅은 초월과 내재, 성과 속, 형태와 비형태가 생명 속에 결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구조로 단군신화에서 하늘과 땅을 포괄하는 영역은 ‘생명의 흐름’으로 충만 된 세계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이집트도마공동체는 신화의 언어를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이집트인들 하늘과 땅을 원초적인 한 쌍으로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주목에 대한 그 사실을 아는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는 상징적 진술로 지혜신비영성을 표현합니다. 특별히 다섯 나무 ⟷ 낙원 ⟷ 잎 ⟷ 발견 ⟷ 앎 ⟷ 죽지 않음에 대한 진술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상호 의존적인 상징적 언어구조를 갖습니다. 다시 말하면 도마복음신화의 사유구조는 언어구조를 통해 나타나는 상징구조입니다.
한편 도마복음의 편집비평은 최종 편집자가 수집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텍스트를 저술할 때 그 중에서 독창적으로 사용한 전승 자료들에 대해서 편집한 부분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집 작업은 편집자의 독특한 사상을 통해 사유구조와 언어구조를 가집니다. 따라서 이 과정은 도마복음의 상징체계에 나타나는 사유와 언어구조를 분석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어록 1. 18, 19, 85장에 나오는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와 어록 8, 21, 24, 63, 65, 96장에 나오는 ‘귀 있는 자는 들어라’는 동일한 의미의 가치술어적인 진술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경우, 편집 전승된 자료에 의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혜신비적인 내용은 도마복음의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앎’과 관련된 사유구조입니다. 이러한 어록구조로 19장에 핵심적인 가치술어적인 진술이 나온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지혜의 길을 도마복음예수는 가르치고 제자들은 배우고 영적수행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聞)사(思)수(修)가 있습니다. 동시에 예수와 제자들을 동일시하는 조화로운 지혜영지가 표현됩니다. 그래서 13장에 “나는 더 이상 너의 선생이 아니다.” 라는 구문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가 제자들의 ‘선생이 아니다’라는 역설적 의미는 고대에 스승이 제자들과 동일시하는 지혜신비전승의 대조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도마복음에 나타난 신화적 상징성으로 나타나는 지혜신비영성의 가치술어적인 담론들과 관련된 모든 종교문화사상영성적인 내용들은, 결국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화하는 언어구조와 사유구조로 그 신화적인 상징적인 이야기들을 함의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의주님 나의하나님 삼위일체하나님의 우주목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깨닫는 영적깨달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주목 되신 예수그리스도가 그루터기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승천하신 지혜신비영성을 성령하나님의 조명으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계시하여 주옵소서. 삼일체하나님을 믿사옵고 경배하며, 세상의 참 빛이시며 생명나무 되시는 구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