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영사(佛影寺)
평지에 수련 연못을 중심으로 당우가 배치된 사찰이다. 중요 당우가 앞 마당에 배치되고, 부수적인 불당이 뒷면 계단 위에 배치된 대개의 사찰과는 배치가 많이 다르다. 부석사가 중요 불당이은 위로 위로 올라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모든 당우가 대웅전과 똑같이 평지에 배치되어 있고, 저마다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위엄과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전남 화순 운주사의 불상처럼 넓게 퍼져 던져지듯 배치된 당우가 스님이나 불자나 대등한 불심을 보여주는 거 같다.
1. 불영사 대강
명칭 : 불영사(天竺山佛影寺)
위치 :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방문일 : 2024.8.15.
입장료: 없음
주차료 : 대형 소형 각각 3,000원, 2,000원
2. 둘러보기
불영계곡과 여러 산에 둘러 싸인 사찰은 일주문을 지나서도 몇 키로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절이다. 불영계곡이 아름다워 견딜 수 있지만, 힘든 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개별적인 당우들이 여기저기 바둑돌처럼 떨어져 던져진 것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앞에 널리 수련잎 가득한 연못이 객을 맞는 데다 사찰 가득한 간지럼나무(배롱나무)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가운데의 수양을 말한다.
이름이 전국에 높아도, 역사에 높아도 이렇게 외지 방문객에게 편안한 마음을 선물할 수 있는 절은 많지 않다. 덕분에 권위에 짓눌리지도 엄숙함에 억눌리지도 않고서, 배롱나무 덕분에 분산된 더위를 덜 무서워하며 둘러볼 수 있었다.
전남 운주사처럼 편안한 사잘이 경북에도 있구나.
1) 사찰 소개
천축산불영사(天竺山佛影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 1370년(공민왕 19) 유백유(柳伯儒)가 지은 「천축산불영사기」에 그 기록이 나온다.
의상이 경주로부터 해안을 따라 단하동(丹霞洞)에 들어가서 해운봉(海運峰)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니 서역의 천축산을 옮겨온 듯한 지세가 있었다. 또 맑은 냇물 위에서 다섯 부처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내려가서 살펴보니 독룡(毒龍)이 살고 있는 큰 폭포가 있었다.
의상은 독룡에게 법(法)을 설하며 그곳에다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독룡이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신비로운 주문을 외워 독룡을 쫓은 뒤 용지(龍池)를 메워 절을 지었다. 동쪽에 청련전(靑蓮殿) 3칸과 무영탑(無影塔) 1좌를 세우고 천축산 불영사라 하였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이 다시 불영사를 향해서 가다가 선사촌(仙槎村)에 이르렀는데, 한 노인이 "우리 부처님이 돌아오셨구나." 하면서 기뻐하였다.
그 뒤부터 마을 사람들은 불영사를 부처님이 돌아오신 곳이라 하여 불귀사(佛歸寺)라고 불렀다. 의상은 이 절에서 9년을 살았으며, 뒤에 원효도 이곳에 와서 의상과 함께 수행하였다 한다. 청련전과 무영탑료는 환희료(歡喜寮)와 환생전(還生殿)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408년(태종 8) 이문명(李文命)이 지은 「환생전기」에 의하면 옛날에 백극재(白克齋)가 울진현령으로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급병을 얻어 횡사하니 그 부인이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불영사로 와서 남편의 관을 탑전(塔前)에 옮겨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렸다. 3일 만에 남편이 되살아나 관을 뚫고 나오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탑료(塔寮)를 환희료, 불전(佛殿)을 환생전이라 하고, 『법화경』 7권을 금자(金字)로 사경하여 불은에 보답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며, 1396년(태조 5)에 화재로 인하여 나한전(羅漢殿)만 남기고 모두 소실되었던 것을 이듬해에 소설(小雪)이 중건하였다. 그 뒤 1500년(연산군 6)에는 양성(養性)이 중건하였고 1568년(선조 1) 무렵에 성원(性元)이 목어 · 법고 · 범종 · 바라 등을 조성하였고, 남쪽 절벽 밑에 남암(南庵)을 지었으며, 의상이 세웠던 청련전을 옛터에 중건한 뒤 동전(東殿)이라 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전에 영산전(靈山殿)과 서전(西殿)을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영산전만이 남고 모두 전소되었다. 성원은 1603년에서 1609년(광해군 1) 사이에 선당(禪堂)을 건립하였고, 불전(佛殿) · 승사(僧舍)를 중건하였다. 1701년(숙종 27)에는 진성(眞性)이 중수하였고, 1721년에는 천옥(天玉)이 중건하였다.
그 뒤 혜능(惠能)이 요사채를 신축하였으며, 재헌(在軒)과 유일(有逸)이 원통전(圓通殿)을 중수하고 청련암(靑蓮庵)을 이건하였다. 1899년과 1906년에는 설운(雪雲)이 절을 중수하고 선방(禪房)을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1년 보물로 지정된 불영사응진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 대웅보전 · 명부전(冥府殿) · 조사전(祖師殿) · 칠성각 · 범종각 · 산신각 · 황화당(黃華堂) · 설선당(說禪堂) · 응향각(凝香閣) 등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197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불영사삼층석탑을 비롯하여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불영사부도, 그 밖에도 대웅전 축대 밑에 있는 석귀(石龜)와 배례석(拜禮石) · 불영사사적비 등이 있다.
이 절의 동쪽에는 삼각봉(三角峰), 아래에는 좌망대(坐望臺)와 오룡대(五龍臺), 남쪽에는 향로봉(香爐峰) · 청라봉(靑螺峰) · 종암봉(鐘岩峰), 서쪽에는 부용성(芙蓉城) · 학소대(鶴巢臺), 북쪽에는 금탑봉(金塔峰) · 의상대(義湘臺) · 원효굴(元曉窟) · 용혈(龍穴)이 있는데 모두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재)
참고문헌
『천축산불영사기(天竺山佛影寺記)』
불영계곡
대웅보전. 1725년 중건된 건물이다.
오늘 햇빛은 참으로 강렬하였다. 눈부신 햇빛 속에서 촬영한 사진 속 건물들도 모두 눈부시다. 대웅보전의 위엄이 더욱 정확하게 빛난다.
대웅전 내부
배롱나무 아래의 삼층석탑. 고려초의 석탑으로 천년의 탑이다. 불교의 힘을 보여주는 탑이다.
그래도 오늘 주인공은 불전이 아니라 배롱나무다. 전남에도 사찰이나 누각이 모두 배롱나무가 장식하고 있다. 동서가 배롱나무로 주고받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비슷하다.
이곳 불영사 평지 사찰에 가득한 배롱나무도 탈듯한 여름 햇빛과 놀라운 조화를 이루며 여름 사찰을 평화롭게 아름답게 장식해주고 있다. 덕분에 하늘이 더 파래고 나뭇잎이 더 파래다. 더위에 지친 마음도 위로가 된다. 더구나 잔잔한 붉은 꽃잎이 탱탱하게 더위를 소화해내서 사람은 뒷전에서 소극적이어도 될 듯해서 더욱 좋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
대웅보전.
산신각. 그러고보니 산신각은 현판이 보이지 않는다. 내부 탱화가 산신화여서 산신각임을 알겠다. 우치나 규모도 산신각의 다른 사찰 사례와 비슷하다.
산신각 내부.
스님 정진 공간. 대웅전 왼쪽으로는 모두 이처럼 선방으로 꾸며서 사실 관람객이 볼 만한 곳은 생각보다 협소하다.
명부전 내부
의상전 내부.
이전 조감도에는 이곳이 인현왕후사당으로 나온다. 왜 의상전으로 교체했는지 알 수 없다.
응진전. 대웅보전과 함께 보물로 지정된 당우다.
응진전 내부
칠성각 내부
법영루. 보통 다른 사찰에서 사물을 설치하고 범종루라고 부르는 곳이다.
극락전
극락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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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불영사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