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는 유언과도 같은 서신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바울은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을 일깨우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복음을 위해 고난받으라고 합니다.
1,2절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고백합니다.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인이 예수님이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고백입니다. 또 바울에게는 죽음이 훼손할 수 없는 생명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기에 투옥을 부끄러워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야말로 소망에 붙들린, 약속을 붙잡은 인생입니다.
3-5절 감옥 안에서도 바울은 청결한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쉬지 않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자신을 향한 디모데의 눈물과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하고 감사했습니다. 내 영혼이 잘 보존되고 은사가 잘 쓰임받도록 이토록 기억하면서 기도해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또한 나의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5절 거짓 없는 믿음은 복음의 열매이자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거짓 교사들의 위선(3:5)과 달랐고, 바울의 청결한 양심(3절)과 닮았습니다. 그것은 겉으로나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져버릴 가변적 믿음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형성된 믿음이고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입니다(참조. 행 16:1). 그들은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주고(3:15), 삶으로 번역된 말씀을 몸소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자녀의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과 열의만큼이나 신앙교육에 힘쓰고 있습니까?
6-8절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 일 듯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각성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영이신 성령께서 다시 역사하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 마음(영)이라면 복음을 전하다가 갇힌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매일성경, 2024.11/12, p.50-51,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후서 1:1-8에서 인용).
① 디모데후서는 유언과도 같은 서신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바울은 하나님이 디모데에게 주신 은사와 사명을 일깨우며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복음을 위해 고난받으라고 합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고백합니다.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인이 예수님이요,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고백입니다. 또 바울에게는 죽음이 훼손할 수 없는 생명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기에 투옥을 부끄러워하지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야말로 소망에 붙들린, 약속을 붙잡은 인생입니다.
② 감옥 안에서도 바울은 청결한 신앙의 양심을 지키며 쉬지 않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서 자신을 향한 디모데의 눈물과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하고 감사했습니다. 내 영혼이 잘 보존되고 은사가 잘 쓰임받도록 이토록 기억하면서 기도해주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또한 나의 격려와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야 할 지체는 누구입니까?
③ 거짓 없는 믿음은 복음의 열매이자 복음의 통로가 됩니다. 디모데의 거짓 없는 믿음은 거짓 교사들의 위선(3:5)과 달랐고, 바울의 청결한 양심(3절)과 닮았습니다. 그것은 겉으로나 일시적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져버릴 가변적 믿음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형성된 믿음이고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의 유산입니다(참조. 행 16:1). 그들은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어주고(3:15), 삶으로 번역된 말씀을 몸소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자녀의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과 열의만큼이나 신앙교육에 힘쓰고 있습니까?
④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해 디모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가 다시 불 일 듯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각성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근신의 영이신 성령께서 다시 역사하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 마음(영)이라면 복음을 전하다가 갇힌 바울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사역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자랑하고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도리어 복음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