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시산제 참가 후 4월부터 7월까지 宗事와 개인 일 등으로 내리 네 달 동안 산행을 빠지고 나니 섭섭한 생각을 가질지도 모르는 88산우회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8월10일 산행모임에는 일찌감치 마음을 작정해 놓고 산행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천둥벼락이 요란하게 친다. 지나가는 비려니 했지만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천둥소리를 들으며 빗속을 뚫고 집을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다. 생각끝에 휴대전화로 불참하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다. 산행은 취소해도 점심이나 함께하면 좋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그렇게 해서 12시30분 강남 대치동에서 8명이 만났다. 소주와 맥주가 몇 순배 돌아가고 나니 기분들이 좋아졌나보다. 나는 걷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래서 제의를 했다. 오늘 대체 산행으로 걷기운동이나 하자며 올림픽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그러자 학여울역의 양재천으로 나가 걸어 가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한 5년전 여름 밤 양재천을 오가며 50km울트라마라톤에 처음 도전했던 기억이 퍼득 스쳐지나갔다. 좋다. 한번 양재천-한강-올림픽공원으로 걸어보자. 장거리 걷기에 다섯명이 나섰다. 학여울역 아래 양재천으로 이동을 했다. 갈길이 바쁜 石泉이 남양주집까지 걸어갈 기세로 먼저 치고 나갔다. 중간에 하나둘씩 샛길로 나가니 잠실주경기장까지 愚山과 둘이서 걷게 되었다.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愚山을 보내고 나니 이제 혼자 남았다.
한강변을 따라 올림픽공원으로 발길을 옮기다. 주경기장 앞을 지나 잠실대교를 지나니 잠실철교와 올림픽대교가 나타난다. 땀은 나고 물병의 물이 금새 금새 동이 난다. 주로변의 편의점이 보일 때마다 들어가서 게토레이와 생수로 갈증을 채워주었다. 양재천에서부터 3시간 넘게 걸었나보다. 올림픽대교 못미쳐에서 성내천을 끼고 올림픽공원 진입로 팻말이 나타난다. 이곳이 한강에서 올림픽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의 진입로다. 풍납취수장 앞을 지나 자전거길과 산책로가 둔덕을 따라 길게 뻗혀있다. 오랜만에 무궁화꽃들도 볼 수 있다. 잠실나루역과 아산중앙병원을 잇는 육로와 연결되는 산책로를 지나니 올림픽공원 700M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10여년 전만해도 우뚝 선 올림픽회관과 파크텔 건물이 보였으나 이제는 고층아파트단지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올림픽파크텔이 시야에 들어오고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나타난다.
단풍나무가 이제는 많이 자라 가로숲을 이뤘다. 몽촌토성과 토성주위를 둘러싼 연못 해자(垓子)위에 다리가 세워졌다. 이름처럼 아름다운 곰말다리... 올림픽크텔과 몽촌토성 해자 사이에 그리스 작가 디오한디(Diohandi)의 『제24회서울올림픽대회』라는 제목의 상징조형물이 우뚝 서있다. 몽촌토성으로 오르는 초입 언덕에는 소나무들이 일단의 수문장들처럼 몽촌토성을 지키고 있다. 몽촌토성에 오르면 토성안의 평화로운 전원(田園)이 그야말로 목가적(牧歌的)인 풍치를 물씬 풍긴다. 1968년 보호수로 지정되던 당시 은행나무의 수령이 530년이니 이제 나이가 573살을 지나고 있다. 은행나무 옆에 고목의 버드나무도 성안을 지키듯 두나무가 정승처럼 버티고 있다. 연인의 길이라 불리는 길에 조롱박과 수세미가 주렁주렁 메달려 있다. 조성된지 근 30년을 맞고 있는 올림픽공원의 나무들이 이제 숲을 이루고 있다. 3년전에 태풍으로 나무들이 쓰러진 자리에 새로 조성된 나무들의 군락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이제 몽촌토성 둘레길의 반을 걸었다. 양재천에서부터 쉬지않고 근 네시간 반을 걸었나 보다. 오른쪽 발등이 신호를 보낸다. 파크텔 사우나에 전화를 걸어 문닫는 시간을 확인하다. 흘린 땀을 씻으려면 나머지 반을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반바퀴를 도는 길목에 가족놀이동산 표지판이 보인다. 88호수변으로 팔각정도 보인다. 이곳에 작은 동산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화수회와 대종회가 매년 5월 정기총회를 개최했던 장소다. 1996년 낙원동 총회를 제외하면 13년 동안 전국의 종친들이 올림픽공원에 모여 뿌리모임을 갖고 서흥인 한마당 축제를 벌였던 곳이다. 인적이 뜸한 곳이지만 지금은 보행자 통로가 있어 걷는 사람들이 이곳을 지난다. 스웨덴 작가 디트만, 에릭(Dietman, Erik)의 조형물 『어제와 그제, 오늘과 내일』 앞에 발을 멈춘다. 사람의 모습을 새긴 바위조각들 사이로 철제금고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철제의 금고들이 다 녹슬어 부식되어 질 때 이 작품은 더 진가를 보여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안내문에는 한국인과 한국문화가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작가의 말이 소개되었다. 양재천-한강-올림픽공원 길을 근 다섯시간 걸었나보다. 완보(完步)의 기쁨보다는 따금따끔 저려오는 오른쪽 발을 계속 의식해야 했다. 목욕탕에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대신 차가운 물에 먼저 발을 담가야 했다. 양재천-한강-올림픽공원 걷기는 아주 우연하게 만들어졌으나 나에게는 또다른 추억으로 오래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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