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는 키높이까지 자란 잡초와 덤불이 많으니 트랙대로의 산행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임도를 따라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산행일자 : 2021년 7월 17일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 15km
산행시간 : 7시간
산행코스 : 고속철 다리 밑-편백숲-숙재-오봉산-고속철 다리 밑.
함양 오봉산에 이어 이번에는 건천에 위치한 오봉산으로 간다.
주말마다 예보되는 비 때문에 거의 한 달만에 하는 산행이다.오봉산 입구에 도착하니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는 푸른 하늘이 너무나 반갑다.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 산행들머리를 들어설 때만 해도 푸르고 맑던 하늘이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어두워지더니 이어 굵은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편백나무숲을 둘러보기 위해 경부고속철도 당리터널 입구 교각에 있는 '단석산 트레킹 길 편백나무숲' 안내판에서 출발하여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직진한다.
편백나무 숲 입구.
쭉쭉 뻗은 편백나무숲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나무데크를 따라가다 등산로로 들어서서 올라가는데 우측으로 약사사가 보인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빗방울은 더욱 굵어져서 나무 밑에서 짐시 비를 피하고 가려 했으나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진행한다.
경사는 점점 심해지고...
복두암 갈림길인데 우측 복두암 방향의 등로는 희미하기만 하여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측 복두암 방향의 길에는 금줄을 쳐놓았다. 스님들이 수행 중이라 못 들어가게 하는 모양이다.
짚신나물.
양탄자도 깔려 있지만...
물레.
고추나무.
사람의 인적이 드문데다 비가 자주 내린 탓인지 풀들이 제법 무성하게 자랐다.
허나, 이게 고난의 시작일 줄은 여기서는 꿈도 꾸지 못했다!
붉은 토끼풀.
오봉산이 보이고,
건천 방면으로 인내산과 구미산도 보인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데,
으아리꽃.
비가 내린 탓에 곳곳에 연못이 생겼다.
기린초.
숙재갈림길에서 오봉산까지 이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산성을 따라 서문으로 가기 위해 좌측으로 들어섰는데 이게 생고생길이 될 줄 어이 알았으랴!
달맞이꽃.
숙재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넓은 초지가 나타났다.
당초 계획대로가면 좌측 봉우리를 넘어와야 했지만 숲이 무성하여 임도로 계속 돌아왔던 터.
하지만,
정면으로 보이는 낙동정맥 길과 합류하여야 하는데 키만큼 자란 풀들 때문에 등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잡초를 헤치면서 길을 뚫고 뚫어,
낙동정맥길과 합류했지만 이게 등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잡초가 우거져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다.
무작정 뚫고 나갈 수밖에...
패랭이꽃.
뱀무.
간신히 헤쳐나와 715봉 부근에서 서문방향으로 내려서려니 등로가 보이지 않아 방향만 잡고 무작정 내려서는데 곳곳에 산성의 흔적이 보인다.
경주 부산성
사적 제25호인 부산성은 신라 문무왕 3년에 쌓기 시작하여 3년만에 완성한 석성으로 주사산성이라고도 한다. 부산은 경주의 서쪽에 있으며 주사산, 오봉산, 오로봉산, 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며 높이는 729.5m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 9.47km에 이르며, 부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한 세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지금은 남문, 창고, 연병장과 비밀통로인 암문 등의 터가 남아있다. 성 밖은 4면이 모두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여 천혜의 요새라 할 수 있으며, 경주의 서쪽으로 통하는 길목으로서 국방의 요충지였다.
선덕여왕때에는 백제군이 이 산 아래 여근곡으로 숨어 들었다가 신라군에게 섬멸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전기까지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신라 효소왕때 화랑 득오가 죽지랑과의 우정을 그리워하며 모죽지랑가를 지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마침내 넓은 초지로 나왔지만 정상등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시 시작된 정글 탐험!
등로는 어디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잡초 속에 섞여있는 딸기 줄기 때문에 온통 가시에 찔리고 긁히고...
바로 옆에 있는 주사산도 찾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간신히 정상등로에 합류 했지만,
이 길도 험하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등로가 보이니 다행이었다.
오봉산 주사암과 좌측 마당바위도 보인다.
가는장구채.
주사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사암은 좌측으로 올라간다.
좌측에 보이는 봉우리 정상이 오봉산이다.
주사암에 들렀다가 마당바위를 찾아보고 오봉산 정상으로 오를 예정이다.
주사암(경상북도 문화재 제522호)
정상 바로 밑에 자리잡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 말사인 주사암은 오봉산 정상에 부처님의 가피가 심어진 복밭으로서 신라 30대 문무왕 3년 오봉산 남쪽에 있는 부산성을 축조하던 시기에 의상대사님의 원력으로 이룩된 사찰로서, 처음은 주암사라고 불렀으나, 어떤 연유로 인하여 폐사되었다가 임진왜란때 사명 유정스님의 도움으로 중창불사를 이룬 이후 주사암으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좌측 계단을 내려서면 마당바위로 갈 수 있다.
마당바위 전경. 멀리 팔공산자락도 보인다.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주사산.
큰산꼬리풀.
마당바위에서.
멋진 암봉이 나타났다.
영천 북안 방면.
경주시 방면. 구미산과 용림산이 보인다.
붉은바위라는데 별 특징이 없다.
한 바퀴 돌아보고 오봉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 되돌아 간다.
마당바위(지맥석).
오봉산 정상에 있는 바위로 측면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부에는 100여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편평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신라 때 김유신장군이 바위 위에 쌓아둔 보리로 술을 빚어 군사들에게 먹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좌측으로.
주사굴.
신라때 한 노승이 밤마다 자신이 사는 동굴로 임금이 아끼는 궁녀를 데려가자 화가 난 임금이 궁녀에게 주사(朱沙)로 굴 옆 바위에 표시를 해놓으라고 일렀다. 궁녀가 임금의 말대로 주사병을 던져 바위에 물을 들여놓자 다음날 임금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노승이 있는 동굴을 에워쌌다. 그순간 노승이 주문을 외우니 순신간에 신병(神兵) 수만 명이 등장하여 노승을 보호하였다. 임금은 부처님이 노승을 보호함을 깨닫고 노승을 국사로 모신 뒤 바위 옆에 절을 지어 주사암(朱砂庵)이라고 하였다.
오봉산 정상.
다섯 개의 봉우리가 올망졸망 모여 있는 모양새라 닭벼슬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정상에서 뒷쪽 능선으로 진행해야 했는데 그만 도로 돌아서 도로로 내려서고 말았다.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정상에서 능선으로 이어지는 등로와 만나고 곧 이어,
우측 숲길로 들어선다.
산성의 흔적.
한동안 산성을 따라 등로는 이어지고,
아래 쪽에 여근곡이 있는데 여기서는 볼 수가 없다.
여근곡, 유학사 갈림길.
하늘말나리.
천지못.
못이라기보다는 그냥 웅덩이에 가깝다.
암문터인 듯.
누리장나무.
여기서 성터의 흔적은 끝이 나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 하산하던 중에,
지나온 571봉이 우람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정상 좌측부근에 복두암이 자리하고 있는 데 숲이 우거져 보이지가 않는다.
원래는 261봉을 거쳐 하산할 계획이었는데 등로가 희미해 곧바로 도로로 떨어지는 등로로 내려서게 되었다..
다시 되돌아 가느니 경사가 급하더라도 계곡에서 알탕도 할 겸 그냥 내려서는데 보통 경사가 심한게 아니라 그냥 죽죽 미끄러지다시피 내려선다.
단석산.
좌측에 장군바위가 보인다.
계곡을 건너 포장도로와 합류하고 성암사까지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도중에 알탕도 하고...
성암사.
도상거리 15km, 7시간 가까이 걸렸다.
중간에 소나기가 내리기도 했거니와 예기치 않은 덤불을 헤쳐나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하지만 그동안 몰랐던 부산성도 찾아보고 마당바위에서의 시원한 조망과 멋진 암봉, 정상 바로 밑에 위치한 주사암도 살펴볼 수 있어서 보람찬 산행이라 할 수 있겠다.
온몸에 긁힌 상처는 예외로 치고!
첫댓글 수고
많이하셨습리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더위에 고생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전남 보성에도 오봉산 있어요
찜통더위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맞습니다
예전에 다녀온 적 있어요.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많이 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잘 지내지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