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위기 25:1~28은 지금도 생활에서 도로교통법의 삼색 신호등처럼 지켰어야 할 희년법이 있습니다. 그 희년법으로 본 누가복음 족보는 현실적 삶을 이어온 자들의 기록으로 소중하며, 그 안에는 신비하고, 오묘한 창조의 질서와 십자가의 구원원리가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희년법과 누가복음 족보는 지구촌 인류가 알고 따라서 복을 받아야 할 내용이므로, 홍보(퍼나르기)를 부탁드립니다.
마태복음과 비교한 누가복음 족보의 특징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눅3:22~23)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다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이가 30세가 되어 세례를 받은 후의 계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에는 처음부터 특이한 점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요셉의 부친이 야곱이라고 하고, 누가복음는 헬리라고 합니다. 그 위로 올라가면 계보의 내용 파악이 어렵습니다. 특히 스룹바벨의 이름이 부각되는 포로기 초기의 계보가 해석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태복음 족보는 초보적 이해라도 하고 있지만, 누가복음 족보에서 포로기 계보는 아직 해석마저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가 다른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과 필자의 사견을 덧붙이면 이러합니다.
첫째, 마태복음은 족보의 기록이 윗대부터 아랫대로 내려오는 내림차순(하향식)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는 오름차순(산향식)입니다. 상향식 계보는 초점이 기업의 상속권과 계승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마태복음 족보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기록하지만, 누가복음은 아담의 후손을 모두 포함합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혈통을 따라서 오심을 말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담의 혈통, 곧 모든 인류의 혈통을 따라서(행 17:26) 구원자로 세상에 오심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인의 혈통도 누가복음의 상위 족보인 아담과 노아 등의 계보가 들어있습니다.
셋째, 마태복음 족보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신분(장자권, 통치권, 대표권)을 기준으로 기록했고, 누가복음은 사람의 사적인 가계의 가계대표나 그 삶의 역사를 따라 기록했습니다.
넷째, 마태복음 족보는 다말, 라합, 룻, 밧세바 등의 이방여인이 포함되고, 누가복음 족보는 여성인 마리아의 계보를 따라 여성 상속자의 계보를 따릅니다.
다섯째, 아브라함에서 다윗까지 내려온 계보는 같지만, 그다음 대부터 마태복음 족보는 솔로몬의 계보를, 누가복음 족보는 나단의 계보를 따릅니다.
여섯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족보를 비교하면 다윗에서 나누어진 두 계보가 스룹바벨에서 합쳐지는 듯하다가 다시 두 계보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요셉의 아버지를 야곱이라고 하고, 누가복음은 헬리라고 합니다.
일곱째, 마태복음 족보는 아브라함 이후 족장시대, 왕조시대, 포로기 이후시대로 분류하여 3기로 나누어 14대씩 기록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 족보는 30세가 된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하여 인류의 혈통을 따라 그 씨와 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까지 올라가는 77대를 기록합니다. 이를 마태복음 족보처럼 시대별로 구분하면, 예수 그리스도부터 포로기 초기 대표자인 스룹바벨까지 21대, 왕조시대 약 21대, 사사시대에서 족장시대까지(다윗->아브라함) 14대, 그리고 아브라함에서 아담을 창조한 하나님까지 21대를 기록했습니다. 두 족보가 7의 배수로 선택된 대표자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덟째, 마태복음 족보는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20대 이름이 들어있고, 누가복음 족보는 같은 기간에 21명의 이름이 들어갑니다.
따라서 누구복음의 족보를 해석하려면, 누가복음만이 가진 족보의 특징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나단 계보로 본 누가복음의 특징
그 위는 멜레아요 그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눅 3:31)
누가복음의 특징은 다윗과 밧세바의 셋째 아들인 나단의 후계자를 계보에 올렸습니다. 나단 계열의 후계자들은 포로기의 대표자 스룹바벨(스알디엘 포함) 외에는 왕통이나 공동체의 대표권을 역임한 사례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단 계열의 후계자들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가족대표의 역할만을 수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가 평범한 한 가정의 경제생활을 중시하여 삶의 역사를 이어온 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 계보에 이름을 가진 자들은 성경에서 사회적 공헌을 했거나 남에게 피해를 끼친 사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역대의 왕들이나 백성들이 하는 바알신을 끌어들여 우상을 섬긴 사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선지자를 핍박하고, 백성들에게 악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이후 유다지파의 갈렙과 요셉지파의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에 앞장을 섰고, 유다지파는 사사시대에도 기업을 비교적 잘 지켰습니다. 분배받은 지파별 토지를 지키고, 가계와 기업을 잇고 지키는 경제활동에는 자기 역할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다윗 가문에서 왕이 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족보를 따라서 오십니다.
그러나 왕조시대에 들어오면서 다윗이 왕이 되고 나서는 족보가 왕통을 잇는 솔로몬 계열과 가계를 잇는 나단 계열로 나누어집니다. 백성들이 군주제도를 요청할 때, 사무엘은 하나님이 군주제도가 초래할 폐단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삼상 8:9~18). 하나님은 군주제도가 희년법을 어기고, 나라가 피폐해 질 것을 미리 예견하며, 왕가(王家)와는 별개로 사가(私家)의 다른 계보 하나를 지켜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단 계열은 솔로몬 계열이 이어온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백성들) 대표자 역할보다 가계를 지키는 가계대표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나단의 후계자들은 모세의 율법과 생활규례를 잘 지킨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레위기 희년법과 민수기 상속법, 그리고 계대결혼법을 지키며, 이 법을 따라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족보에 오른 이름은 같은 기간을 살았어도 나단 후계자가 마태복음에 소개되는 솔로몬 자손보다 숫자가 더 많습니다. 다윗 가문에서 솔로몬의 자손은 솔로몬에서 예수까지 27대가 소개되고 있지만, 같은 시기에 나단의 후계자는 42명의 이름이 족보에 오릅니다.
그 실례로 사사시대의 사사들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기적도 행하면서 큰 일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이 오르지 못합니다.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만 행하였기 때문입니다(삿 17:6, 18:1, 19:1, 21:25). 그러나 사사기에 이름 한번 올리지 못하지만, 가계와 기업을 지켜온 룻과 보아스는 족보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희년법과 상속법, 그리고 계대결혼법을 지켜온 자들입니다. 이들은 토지 무르기와 계대결혼을 실행하는 데는 더 가까운 친족, 기업무를 자를 불러내고, 그 지역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증인을 세우는 등(룻 4:1,2), 주도적인 역활을 합니다. 그래서 기업을 무르고 가계의 대표 사역자로 가계를 복원하여 다윗 왕가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솔로몬 계열과 나단 계열은 분리 된 후, 두 계열은 같은 기간에 이름을 올린 숫자가 현저하게 다릅니다. 이것은 희년법 규례대로 가족과 기업을 성실하게 지켜온 대표자들에게 돌아가는 현실적 상급(복)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가계와 기업은 지키면, 그 기업을 유지하기 쉬우나, 버리거나 방관하면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광야살이를 한 이유도 약속의 땅과 기업에 대한 의지가 약해서 빚어진 불행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가 가계의 기초가 되는 가정과 기업의 상속권을 지켜온 자의 족보로 보고 내리는 평가입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족보가 가계를 지키고 잇기 위해 필수적 규례인 희년법, 상속법, 계대결혼법 등을 직접 관련시켜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지켜야 씨와 기업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창조의 질서이고, 구원의 원리입니다.
이런 평가의 예를 예수님이 달란트의 비유로 말하면, 솔로몬 계열은 다섯 달란트의 재능을 받았고, 나단 계열은 두 달란트의 재능을 받았지만, 나단 계열의 후계자들은 “작은 것에 충성하여 ...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자(마 25:21)”가 되는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족보 비교에서 나단 계열은 선행을 하고, 솔로몬 계열은 악행을 했다는 이분법적 평가는 아닙니다. 나단 계열은 성경에서 행적(선행 또는 악행)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계열은 다 같이 인간의 약점을 가진 사람들의 계보입니다. 구원은 사람의 공로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업만은 현실적으로 그 기업을 지키는 자에게 돌아옵니다. 희년은 희년법을 지키면 돌아오고, 지키지 않으면 희년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성경 희년법은 그런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법은 생활 공동체의 뿌리가 되는 가계와 기업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나단 가계의 계보를 중심으로 본 누가복음의 족보는 이러한 희년법을 지켜온 자들의 이름이 족보에 오르고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의 족보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먼저 기업을 지키고 이어오는 레위기 희년법, 민수기 상속법, 신명기 계대결혼법을 이해해야 합니다.
레위기 희년법
레위기 희년법은 한 가정에 분배된 기업은 영원히 존속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희년법은 기업은 팔아도 희년까지 시한부로만 팔고 사고(레 25:15,16), 영구 매매는 금지합니다(레 25:23). 또 시한부로 팔렸어도 그 기업은 형제나 동족이 값을 치러 무르기를 해주어야 합니다(레 25:24,25). 아니면 희년까지 가면 내가 판(잡힌) 기업은 땅이 생산물을 내어 대신 갚아주고 기업이 빚 담보에서 풀립니다(레 25:28).
이렇게 빚이나 죄에서 묶여있는 것을 값을 치러 풀어주는 것을 속량(贖良, 고엘, redemption)이라고 합니다. 이를 대신해 주는 것은 대속(代贖)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빚과 죄를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피를 흘려 값을 치른 희생의 대가로 우리가 자유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특히 누가복음의 족보는 이 희년법대로 기업의 상속권을 이어온 자들의 계보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족보는 베들레헴에 있는 다윗 가문의 기업을 상속하는 기업에 관련된 족보입니다.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장소가 다윗의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족보의 순서는 상향식(오름차순,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으로 보여줍니다.
상향식 족보는 기업의 상속권과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의 시작은 요셉과 마리아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눅 3: 23) 베들레헴에 있는 다윗의 기업에 대한 상속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인된 베들레헴 기업이 희년법을 따라 어떻게 유지되고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누가복음 족보입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족보는 희년법을 실행해 온 사람들의 계보이며, 그들이 희년법을 지켜서 희년법이 말하는 기업의 복을 받은 자들의 계보입니다.
민수기 상속법
그러면 누가복음의 족보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민수기의 기업 상속법을 이해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족보가 난해한 것은 바로 기업의 상속권을 따라 이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난해한 누가복음의 족보를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데에는 희년법과 상속법을 먼저 알아야 그 실마리를 찾나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업 상속의 원칙은 민수기에서 이렇게 정해져 있습니다.
<기업 상속권의 승계 원칙>
첫째,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진입 후 지파별, 가족별로 분배받은 기업은 조상대대, 후손대대로 상속하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앞서 살핀대로 희년법은 분배받은 기업은 사용권만 거래하고 소유권은 거래하지 못하게 했습니다(레 25:23). 이에 사용권도 팔렸으면 형제나 친족이 값을 치른 무르기로 되찾아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기업 상속권이 소속 가계나 소속 지파에게 영구적으로 남아있게 하는 기업 상속의 대원칙입니다.
둘째, 결혼한 가정에 아들이 없이 아버지가 죽었으면 형제가 죽은 자의 아내에게 씨를 빌려주어, 곧 계대결혼을 통해서라도 형제의 혈통과 기업의 상속권을 이어주어야 합니다.
셋째, 장자에게는 두 몫의 기업을 주는데, 두 아내에게 아들이 있을 경우 반드시 연장자 아들에게 두 몫을 주어야 합니다(신 21:15~17). 이것은 상속의 순위에서 사람의 주관(감정적)에 따른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넷째, 장자에게 두 몫의 기업을 주지만 그에 따른 의무가 있습니다. 장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형제들이 분배 또는 상속받은 기업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약에 형제들이 가난과 질병, 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업의 경작권 팔았으면, 형제가 그 무르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이때 두 몫을 가진 장자가 우선하여 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장자권을 가진 장남이 이러한 장자의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장자권이 차자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 상속권의 승계 순위>
마태복음의 족보는 1기 족보만 보더라도 장자가 그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차자에게 장자권이 넘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장자권이 돌아왔지만, 형수에게 설정한 오난은 장자권은커녕 하나님 앞에 죽어야 했으며(창 38:7), 무르기의 의무를 거절한 룻기의 아무개는 그에게 돌아온 장자권을 보아스에게 넘겨줍니다(룻 4:6~12).
곧 성경의 희년법에서 기업에 대한 상속권은 첫째, 둘째, 셋째의 요건을 따르되,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넷째의 경우처럼 결국 기업을 희년법대로 지켜 낸 자에게 기업의 상속권이 넘어가게 됩니다. 이러한 상속법을 기초로 기업의 상속권 순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민 27:1~11, 36장 전체).
① 기업의 상속권은 아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고, 장자권은 장남에게 우선권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 우선권은 의무가 수반됩니다. 부모에게 상속받은 기업을 형제들이 타인에게 넘기지 않도록 무르기를 해주는 의무입니다(레 25:25).
② 아들이 없는 경우 기업의 상속권은 딸에게 넘어갑니다. 이 경우 그 딸은 같은 지파의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③ 딸도 없는 경우 기업은 4촌에게 넘어갑니다(민 27:9).
④ 그다음은 삼촌(아버지 형제)에게 넘어갑니다(민 27:10).
⑤ 삼촌도 없는 경우에는 근족의 혈통 순서를 따릅니다(민 27:11).
⑥ 근족도 없는 경우 그 기업은 소속지파에 남아있습니다. 이런 경우 성경은 어떻게 하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고, 친족도 없을 때 몸종에게 상속권을 넘기려고 했습니다(창 15:2).
①~⑤의 상속 순위는 딸의 상속권(②번)을 제외하면 무르기를 하는 권리와 의무의 승계도 같은 순위가 됩니다.
⑦ 기업의 상속권은 지파별, 가족별로 분배된 기업을 지키고, 되찾고, 잇는 희년법의 무르기 제도나 계대결혼법과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의 상속권을 잇는데 필요한 기업 무르기, 여성 상속, 계대결혼의 의무를 수행하면 자기 기업은 물론 형제의 기업까지 상속권이 당대나 후손들에게 돌아옵니다. 이 경우 두 몫 또는 두 몫 이상의 기업을 상속받을 수 있으므로 야곱이 아들 요셉이 장자가 아닌데 두 몫의 기업을 분배받은 것처럼 사실상 장자권을 잇게 됩니다. 이 법을 이행하는 방법이 바로 우리를 빚과 죄에서 풀어주어 생명을 자유하게 하는 구원의 필수 수단, ‘속량(贖良)’입니다. 또 이 속량의 궁극적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 성경 전체, 곧 성경 구속사의 핵심 주제입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여성 상속에 대한 제도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모세의 율법에서 여성에 대한 상속권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레위기 여성 상속에 대해 민수기 27:1~11과 36장 전체를 할애하여 상속의 순위와 이에 수반된 조건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딸에게 돌릴 것이요 딸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민 27:8,9) 형제도 없으면 그의 기업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희년을 당하여 그 기업이 그가 속한 지파에 첨가될 것이라 그런즉 그들의 기업은 우리 조상 지파의 기업에서 아주 삭감되리이다 ...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종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민 36:4~6)
민수기에는 무남독녀의 경우 기업의 상속에 대한 규정이 있습니다. 요셉지파의 후손 중 슬로바핫은 슬하에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딸들이 모세에게 기업을 요구했고, 모세는 이들이 여성인지라 하나님게 품신하여(물어보고) 허락을 받은 다음 기업 상속권을 주었습니다. 기업은 사람이 살아야 할 생존의 터전이므로 여성에게도 기업 상속권을 준 것입니다. 이렇게 여성에게도 상속권을 준 것은 여성의 인권과 생계를 보장해 준 면에서 일찍부터 이방 나라보다 진보된 사회보장제도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딸의 상속에서 후속 문제가 생깁니다. 딸이 타 지파 남자와 결혼을 했을 경우 상속받은 토지가 희년법에 따르면 남편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지파별로 분배받은 토지가 타 지파에게로 넘어가게 되고, 여성이 속한 지파의 기업이 줄어들게 됩니다.
이것은 가족별, 지파별로 분배받은 토지가 타인에게 양도되지 않도록, 영구 소유권은 매매도 금지한 희년법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런 경우 딸들이 자기의 소속 지파에게만 결혼하도록 결혼제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제도를 제한하여 미래에 있을 토지제도의 문란을 사전에 차단한 조치입니다. 성경은 그만큼 토지제도를 중요시합니다. 성경 희년법은 생존권이 걸려있는 기업을 가족별, 지파별로 존속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민수기 36장은 한 장 전부를 기업의 여성 상속과 지파 결혼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에 26장 1절에서 11절까지도 여성 상속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분량만 보면, 희년법을 규정한 레위기 25장 전체보다 더 많은 분량입니다.
희년법은 기업이 타인에게 양도되지는 않도록 배려했고, 그래서 여성 상속의 경우는 결혼 조건도 제약을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생존권과 관련된 기업이 타인과 타인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수기 상속법의 목적이 레위기 희년법을 지키려는 초점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명기 계대결혼법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신 25:5,6)
계대결혼법은 신명기 25장에 있는 결혼제도입니다. 결혼한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으면 함께 사는 형제가 형수에게 들어가서 씨(혈통)를 이어주는 것이 계대결혼입니다. 그래서 형의 가계에 대를 이어주고, 기업을 상속받게 합니다. 이것은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과부의 생존권을 지켜주고, 가정을 회복시켜 주는 제도입니다. 이때도 계대결혼이 의무자는 기업의 무르기나 상속의 순위와 비슷합니다. 룻과 보아스가 계대결혼과 기업 무르기를 행할 때를 보면, 보아스와 아무개는 순위가 있었습니다. 곧 희년법의 기업 무르기, 민수기의 기업 상속, 그리고 계대결혼에는 서열이 있고(룻 4:4), 세 가지 제도는 서열의 순서도 모두 같습니다.
만약에 이 계대결혼제의 의무를 살아남은 형제가 행하지 않으면, 성읍의 장로들은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신 벗긴 자의 집”으로 부르게 했습니다(신 25:7~10).
그런데 이 계대결혼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갈 터전, 곧 기업에 대한 상속권을 지키거나 이어주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명기의 계대결혼제도는 민수기에서 제정한 기업 상속권을 지키고 잇기 위한 것입니다. 민수기 상속제도가 희년법을 지키는데에 목적이 있고, 신명기 계대결혼법 역시 희년법을 지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존과 자유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 희년법이고, 상속법이며 계대결혼법입니다.
예수님은 이 제도의 약점을 예로 들어 질문한 사두개인들에게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사람의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답변을 했습니다(마 22:32).
기업 상속을 받을 수 없는 경우는
상속권에 대한 것은 유대인의 시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이 없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네게 씨를 주지 않으셨으므로 자기의 종인 엘리에셀에게 상속권을 넘기려고 합니다. 그런 하나님은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창 15:4).
그로부터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자손이 있고, 자손이 살아갈 기업(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구체적 약속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횃불언약입니다(창 15:12~20). 길게 보면 성경의 상속권은 마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시작되는 아브라함에서 시작되고, 이를 모세가 율법에서 규례로 구체화 한 것은 출애굽 이후입니다.
성경에는 두 몫의 기업을 상속받을 장자권자가 그 권리를 잃고 차자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라도 기업 상속권은 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렇게 상속권이 상실되는 경우는 규례로 정해진 것은 없고, 하나님이 때를 따라 주권적 판단으로 결정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후 상속권이 상실되는 경우를 구체적 사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없었을 때 상속은 그 가계에서 끝이 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함께 나왔던 조카 롯도 소돔 땅의 범죄로 멸족하거나 그 후사에게 상속권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들은 믿음의 씨(조상) 아브라함과는 별개의 상속권을 가집니다. 우르 땅에 있는 형제의 후손도 가나안 땅의 상속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② 유다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상속이 끊겨집니다. 장자 엘은 일찍 죽고, 둘째 오난은 형수에게 씨를 빌려주기 싫어서 설정하여 바로 죽습니다. 상속권에 대한 탐욕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상속권이 끊어졌습니다. 이 상속권은 이방여인 다말이 시아버지의 씨를 받아 베레스에게로 이어집니다(마 1:3, 눅 3:33, 창 38:29, 룻 4:18).
③ 여호와 앞에서 범죄하면 정상적 상속권에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의 장자 르우벤은 아비의 침상을 더럽혀서 장자권이 박탈되면서 상속받은 기업이 절반으르 줄어들었고, 셋째 아들 레위는 참혹한 살상으로 인하여(창 34:25~31)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여(신 10:8), 성읍 일부를 분배받았으나 정상적인 기업을 상속받지는 못했습니다(민 18:20).
④ 분배받은 기업을 두고(사실상 버리고), 이방 땅에서 오래 살면 상속권이 소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룻기에 엘리멜렉과 그 아들 말론과 기룐이 그 예입니다(룻 1:5).
⑤ 약속받은 가나안 땅을 너무 오래 비워두면, 그 땅은 상속받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과 아들 12 형제, 그리고 그 후손들이 애굽에서 산 400년간은 가나안 땅을 잃어서 상속권을 행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포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기서 살다 죽으면 상속권이 끊어집니다.
⑥ 우상을 섬기고 각기 자기의 소신대로 살면 정상적 상속권이 주어지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사사시대와 왕조시대에 바알신을 끌어들여 이스라엘을 타락, 황폐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때는 표면상 가계에 배분, 상속된 기업이 있더라도 이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상속권은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 가진 기업이나 재산도 불의한 재물이면,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소유나 상속재산은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⑦ 희년법 기업 무르기나 신명기 계대결혼법 의무를 거부하거나 게을리하면 상속권이 줄어들거나 끊어지게 됩니다. 계대결혼의 의무를 거부하면 죽어나 자기 몫의 기업은 자녀에게 상속이 되어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신 25:10, 룻 4:8)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그러나 이 법을 지키면 상속권이 두 몫으로 커질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이런 상속권의 계승과 단절에 대해 이해를 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업의 상속지, 베들레헴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입니다. 위치는 예루살렘의 남남서쪽 약 10Km(통상 거리로 7~8Km) 지점에 있으며, 예루살렘과 헤브론 및 네게브 지방을 연결하는 남북 주요 도로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성읍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난 곳이며, 그의 조상 룻과 보아스가 살던 곳, 다윗의 기업이 있는 곳입니다(룻 4:11, 삼상 16:1). 더 멀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눈에 보이는 땅을 다 준다”고 약속한 헤브론에서 40Km 떨어진 곳입니다.
날이 맑으면 실제로 헤브론에서 베들레헴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땅입니다. 여호수아시대는 유다지파에게, 사사시대는 룻과 보아스에게, 왕조시대는 다윗에게, 포로기에는 그 상속권이 성전을 다시 지어 이스라엘을 재건한 스룹바벨에게 이어져 온 기업입니다.
베들레헴은 이새의 아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양을 치며(시 23:4), 늑대를 쫒아내기 위해 물맷돌 던지기 연습을 하던 곳입니다. 다윗은 이 연습으로 뒷날 블레셋 군대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물론 그런 역사는 하나님이 함께하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전쟁터로 나가고, 왕이 되면서 기업이 있는 베들레헴을 떠났기 때문에 누가복음 족보는 이 베들레헴의 기업을 이어오는 자가 계보에 들게 됩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요셉은 다윗의 족속”이라 다윗의 동네로 조세등록을 하기 위해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눅 2:4). 시리아 사본은 이 구절을 “요셉과 마리아는 다윗의 족속”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들레헴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상속될 각자의 기업이 있었습니다.
30세가 할 수 있는 업무능력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 30세 쯤 되시니라...(눅 3:23)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는 헬라어로 "알코마이"라는 한 단어이며, '첫째로', '우두머리', '다스리다' 등의 뜻을 가집니다. 레위기인 중에 제사장과 성전 봉사를 위한 직무 연령은 30세에서 50세까지입니다(민 4:3,23, 대상 23:3). 제사장을 제외한 성전 봉사의 연령은 그 뒤 25세로(민 8:24), 다시 20세로(대상 23:37) 낮추었습니다.
요셉의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창 41:46),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었습니다(삼하 5:4).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나이는 20세입니다(민 1:3). 성막 공동체에서 약속의 땅을 불평하다가 징계를 받은 연령도 20세입니다(민 14:29). 성경에서 공무를 담당할 때는 그 직무를 따라 연령을 정한 것은 직무를 맡을 능력을 참작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도 교육과 훈련을 받아서 업무능력을 갖추고, 맡은 직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이 30세가 되면 공직으로서는 제사와 성전관리를 맡을 수 있고, 정치와 행정부문은 한 나라의 총리를 맡을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도 30세가 되면, 섭정할 필요 없어서 왕이 독자적으로 왕정을 펼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제사장, 총리, 왕과 같은 중직자나 책임 있는 공직자는 그 수행에 필요한 나이가 30세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사적인 경제활동에 필요한 직무는 나이가 필요 없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민법에도 성인 나이를 20세로 했다가 지금은 18세로 낮추었습니다. 개인과 사회, 가정과 친족 간에 필요한 법적인 업무나 책임 사무를 맡은 때에도 나이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세법에는 ‘1세대 1주택’의 요건을 30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관련 법규가 30세가 되면 독립된 한 가정의 세대주가 될 수 있고, 그에 필요한 주택과 재산을 소유해도 정당한 소유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아파트 청약기준에도 단독 세대주는 30세 이상이라는 요건이 있습니다. 민법에서 미성년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의 행정 법적 사무는 일정 요건을 갖춘 부모나 대리자가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초기에도 한 가계에서 가장과 가족대표의 역할을 하거나, 사회적으로 가계의 법적인 대표자 또는 문중과 친족의 사무를 대리할 대표자 역할은 30세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재산상속은 태아에게도 있으므로 나이와 관련이 없습니다. 재산 상속은 부모가 죽어야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 상속재산의 관리나 운영에 대한 업무와 책임, 소송 등에서 법률적 주체가 될 수 있는 나이는 30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왕위는 자리가 비면, 나이에 관련 없이 바로 후사가 빈자리를 잇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업무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적정 나이는 30세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가계의 대표자로서 기업 무르기, 기업의 운영, 기업의 경작권 거래와 관리 등에 사무적 능력과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는 30세입니다. 물론 사법적 영역인 기업의 소유권 문제나 법적인 책임 주체, 책임에 대한 법률적 대리자, 기업을 무를 때 배석한 성읍의 장로들도 30세가 되어야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족보는 이러한 제사장, 총리, 왕과 같은 공적 업무는 물론이고, 한 가정의 가계와 기업과 관련된 사무, 행정, 법률에 대한 사적 업무까지 이행할 수 있는 적정 나이를 30세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흠 없고 온전한 책임자로 30세가 된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 이름으로 올려서 계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눅 3:23).
씨와 땅, 그리고 “낳다”와 “잇다(계승)”의 재확인
앞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듯이 성경의 족보는 생명의 씨와 그 씨를 지켜오는 땅을 이어가는 계보이고 역사입니다. 마태복음 족보는 시기별로 14명씩 선택받은 공동체(씨족, 국가, 사회) 대표가 기업을 이어오는 계보이고, 누가복음 족보는 가계(家計)의 대표가 기업을 이어오는 계보입니다. 이 계보를 성경은 단수로 표기한 씨(제라, 자손)와 땅(에레쯔, 기업)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씨는 땅이 없으면 생명을 이을 수 없고, 땅은 사람의 씨가 없으면 생명을 낼 수가 없습니다. 이 씨(사람)와 땅, 땅과 씨는 하나님이 직접 지으시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십니다. 성경의 족보는 이렇게 생명을 유지하고 이어오는 필수 요소인 씨와 땅의 역사적 계보를 뜻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알려주는 역사적 계보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天),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땅(地), 하나님과 땅이 이어주고 있는 씨(人)가 함께 들어있습니다.
註) 하나님은 창조질서에 땅을 지어(창 1:1) 땅이 씨를 맺는 열매를 내게하고(창 1:12), 사람을 지어(창 2:7) 그 땅과 씨를 관리하게 맡기셨다(창 1:27~31).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씨는 땅이 내는 것르로 동물과 식물 등 생명체가 있고, 이를 다스리는 씨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직접 내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씨가 하늘의 뭇별의 수만큼 자손의 번성을 약속했습니다(항 15:5). 그런데 씨는 생명을 잇는 근원을 말하지만, 그 씨가 가진 혈통은 생물학적 특성이 있습니다. 필자가 생물학이나 유전학 분야는 잘 모르지만, 생명의 생물학적 혈통은 아버지 50%, 어머니 50%의 씨(유전인자)를 받아서 태어납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같은 남자인 아버지의 혈통을 잇는 것은 50%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이 대가 다윗의 후손이 40대가 지속된다면, 다윗의 혈통이 자기에 이어져 오는 것은 수리적으로, 10%{10%=(1-0.5)^40}에 미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의 후계 혈통은 대수가 생략되어 계산이 불가능하지만 계산을 할 수 있어도 그 수치는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밭에 나는 잡초는 모두 뽑아내고 근원을 없애도 그 밭에 씨는 다시 들어와서 싹을 내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씨를 가진 사람은 중간에 혈통이 끊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씨를 이어오는 땅(기업)은 영원합니다. 독자들의 족보에 들어있는 가문의 혈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족보는 이런 생명의 원리를 먼저 이해에야 합니다.
그다음 성경 족보에서 “낳다”는 헬라어 ‘겐나오(마 1:2)’이며, 이 단어는 여자가 아기를 낳다는 뜻을 가진 ‘티크토(마 1:23, 눅 1:23)’에 비하면, 뜻과 활용도가 좀 다릅니다. 티크토는 여자가아이를 출산한 경우에만 쓰이고, 겐나오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혈통, 곧 가계(家系)를 잇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낳다"는 "잇다"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희년법에서 토지에 대한 “팔다”와 “사다”라는 단어는 그 의미를 ‘빌려주다’나 ‘무른다(값을 치러 다시 찾는다)로 이해해야 해석을 바로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족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육적인 조상과 혈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의 족보는 혈통보다 이러한 혈통을 잇는데 필요한 기업의 상속권을 이은 대표자들의 계보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씨와 땅, 그리고 씨와 땅이 함께 살아가는 가계(家計)에 초점을 둔 가계(家系)의 기록입니다. 족보에는 육적인 혈통보다 이런 혈통을 따라서 믿음의 씨와 땅을 지키고, 이어오는 인간의 역사와 그 역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 곧 구속사가 들어있습니다.
이러함에도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자기들이 사마리아인으로 여기는 혼혈족과는 구별하기 위해 대수를 세며 순수 혈동을 따졌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허탄한 논쟁에 휘말리는 족보는 들추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딛 3:9).
우리는 족보를 보아도 혈통만 보지 말고 그 안에서 역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씨가 족보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씨는 이름도 없는 여성들의 역할로 이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족보는 씨가 족보를 잇는 하나의 요소이긴 하지만, 그 씨를 부양하고 있는 땅과 땅을 지키며 이어가는데 초점을 둔 희년법을 함께(또는 먼저) 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