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할머니 소리 듣기는 일러 / 양선례
또 갈 때가 되었다.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왜 이리 금방인지. 미장원 가는 일 말이다. 염색 안 하고 살자니 우리 학교 꼬맹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를까 겁난다. 잦은 염색에 머릿결도 상하고, 눈도 점점 침침해지지만 그래도 아직 그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꼬마가 할머니라고 하여 슬펐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 눈이 가장 정확하다. 상대의 처지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현직에 있는 동안만은 염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한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미장원에 가야 할 판이다. 염색과 파마를 동시에 할 수는 없기에 교대로 하자면 어쩔 수가 없다. 단단한 손톱에 물이 들 정도의 독한 약을 두피에 그렇게 자주 발라대서 좋을 건 아무 것도 없다.
새치 염색을 맨 처음으로 한 건 마흔한 살 1월 1일이었다. 우리 몸에서 노화가 가장 먼저 오는 건 시력이다. 그런데 내게는 눈보다 흰머리였다. 서른 중반쯤 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아이들에게 용돈을 줘 가며 뽑았다. 새치는 하나 뽑으면 그 자리에서 두 개가 난다더니 마흔이 되니 급격히 늘어났다. 결국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노화는 자연스런 순리지만 자각하는 건 슬픈 일이었다. 오래오래 이날을 기억하고자 일부러 1월 첫날에 미장원을 찾았다. 색깔에 조금씩 변화를 줄 뿐 지금껏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염색하고 있다. 미장원에 가면 기본이 두 시간이다.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집에서 한 적도 많다. 빨리 마칠 수 있는 대신에 고르게 발라지지 않아 또 맘에 안 든다.
한 번 정해 놓으면 식당도, 마트도 그곳만 즐겨 가는 평소의 내 성향과는 달리 미장원은 단골 가게가 없었다. 조금 큰 데는 미용사(헤어 디자이너)가 여러 명이다 보니 갈 때마다 손질해 주는 사람이 달랐다. 평소에 말도 섞고 마음에 들게 해 주던 분이 하필 쉬는 날이면 낭패였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은 한 곳만 다녔다. 직장 동료의 단골집이라 추천해 준 곳인데 마음에 들었다. 전화로 예약하면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 말수가 적은 주인이라서 좋았다. 몇 번의 경험으로 손님의 취향을 파악했는지 앉아 있으면 알아서 해 주는 것도 장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는 한 달을 넘기고야 말았다. 당분간은 시간 내기 어려워서 주말 주택을 가지 않는 이번에, 꼭 머리를 손질하고 싶었다. 그동안 다니던 미용실에 전화해 봤지만 휴무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새로 이사 온 집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한 집 건너 미용실, 한 집 건너 교회라더니 몇 걸음 걷지 않고도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다 문을 닫았다는 거다.
그러다가 딱 한 군데 발견했다. 목욕탕 건물 1층에 있고, 꽤 넓은데도 주인이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미장원 갈 때면 손에 들기에 적당한 - 무겁지도 않고, 내용도 가벼운 소설류 위주- 책을 챙겨 가기에 이번에도 책이나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얼굴이어선지 자꾸 말을 시킨다. 어디 사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 다행이라면 학교 울타리에 사는 건 못 맞힌 거다. 이마에 써두고 다니는지 ‘학교 계시지요?’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았다. 직장인이라는 것만 밝히고 근방에 산다고 했더니 이번엔 자기 이야기다. 나보다 두 살이 적은데도 벌써 아들 둘을 결혼시켜 손자도 있단다. 그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직업을 갖고 살 수 있게 밑 작업을 어떻게 했는지 줄줄이 사탕이다.
그게 그렇게 밉지 않았던 건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 때문이다. 해마다 아이를 만나고 그들과 하루를 복닥거리며 산 세월이 삼십 년이 넘다 보니 ‘반풍수’는 되었다. 그녀에게서는 선한 느낌을 받았다. 이십 대에 이 동네에 자리 잡아 벌써 29년째 일하고 있단다. 건물도 여러 채라 월세만도 천만 원이 넘고 아들의 일터도 다 본인이 일궈준 거라 자랑한다. 보조 미용사가 있었는데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서 내보냈다는 말도 한다. 처음 보는 내가 맘에 들었을까. 뭘 믿고 살아온 이력을 이렇게 풀어내는 걸까.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는 걸까.
머리카락을 자르고, 롯지로 감고, 중화제를 바르는 틈틈이 쉬지 않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다듬어 놓은 머리는 꽤 마음에 들었다. 머리카락이 뻣뻣하여 영양분을 줘야 한다느니, 에센스를 발라야 머리카락이 덜 상한다느니, 코팅을 추가로 해 보라는 등의 그럴듯한 말도 없다.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나면 한 번에 기십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여타의 미용실에 비해 가격도 착하다. 오래된 습관이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휴일에도 문을 연단다. 몇 번 다녔더니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 준다. 집에서도 가깝고, 실력도 좋으니 당분간은 단골로 삼아도 될 듯하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약점이 있다. 내게는 흰머리가 그렇다. 쭈뼛거리는 머리카락이 가르마 사이로 하얗게 올라오면 만나는 이들이 내 머리만 쳐다보는 것 같다. 자존감도 급격히 떨어진다. 거기다 나를 내려다 보는 사람이 많아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살아 있으니 흰머리도 올라오는 것이라고 마음을 다져 보지만 별 위안은 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미장원으로 달려간다. 할머니 소리 듣지 않으려면 서두는 게 정답이다. 이제 단골 가게도 생겼으니 시간 낼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