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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충돌: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Clash of Empires(2022)
훙호평 지음, 하남석 옮김, 글항아리 2022
많은 사람이 최근의 미중 관계 악화가 이데올로기적 차이에서 기원하는 ‘신냉전’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두 나라가 경제 통합과 지정학적 협력을 추구하는 것에 그러한 이데올로기적 차이는 방해되지 않았다. 저자는 미중 관계 변화의 기저에 있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기업 간 관계 변화라고 주장한다. 2010년 이후 중국의 경제 침체에 이어 국가가 배후에 있는 중국 기업들은 국내 시장과 세계 시장 모두에서 성장하면서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왔다. 중국 기업의 성장은 미국 기업의 쇠퇴를 대가로 한 것이었으며, 미국 기업들은 워싱턴에서 기존의 대중국 사업을 위해 강도 높게 진행하던 로비를 중단했다. 동시에 중국 산업의 과잉생산 능력 수출은 미국과의 지정학적 경쟁을 촉발시켰다. 저자는 그 지정학적 경쟁의 결과로 인해 형성된 동학이 20세기 초 강대국들 사이의 제국 간 경쟁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서론: 지구적 갈등의 정치사회학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말 이후, 정치인과 학자들은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도래를 환호하며 맞이했다. 2010년대가 되어 미국과 중국이 무역, 기술, 남중국해, 타이완을 비롯해 다른 많은 문제를 놓고 대결하는 국면이 늘어나자 ‘신냉전New Cold War’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세계 각국은 두 거인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압박에 점점 더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개념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권 사이의 긴장 증대는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갈등 혹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 자본주의 사이의 갈등이라는 이데올로기 및 정치체제의 균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모함을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진지한 분석이라면 어느 것이든 이 경쟁관계가 특정한 정부 때문이라기보다는 트럼프 정부보다 앞서서 형성되었고 바이든 행정부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 두 나라 사이의 경쟁관계는 201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분명해졌다. 2012년 워싱턴 당국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남중국해를 공해公海로 간주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이 해역에서 미 해군의 주둔을 늘리는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 정책에 착수했다. 이는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주권 주장과 점점 더 공격적으로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협상에도 속도를 냈다. 이 자유무역협정은 중국을 배제했다. 그 배제의 의도는 만약 중국이 이 협정에 가입하려 한다면 현재 국유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 체제를 변화시키고 약속한 대로 시장을 개방하며, 미국과 다른 외국 기업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2014년 중국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 대출을 제공하는 다자간 금융 기관으로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을 출범시켰을 때, 미국은 이를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을 통한 개발 금융 헤게모니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여겼다. 미국은 AIIB에 대한 보이콧을 택했고 동맹국들의 보이콧 동참을 요구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관계를 양국의 정치−경제 모델 간의 적대적 차이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 설명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차이점들이 최근에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1989년 톈안먼 사건과 1990년대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가 공고해진 이후 중국이 당분간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되지 않을 것은 분명해졌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걸쳐 중국의 권위주의 체제는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공고해진 게 분명했다. 일각에서는 후진타오 시기(2002~2012)부터 중국의 새로운 외교 공세, 국유 기업의 지배력 회복, 시민사회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적·정치적 차이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 통합과 지정학적 협력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두 나라 사이의 공생은 매우 강력해서 니얼 퍼거슨은 중국과 미국의 결합으로 형성된 유례없이 통합된 경제를 묘사하기 위해 ‘차이메리카Chimeric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중국이 세계의 공동 지도국으로서 ‘G2’를 구성했다는 시각도 있다. 정보기관 관료 및 트럼프의 중국 고문 마이클 필스버리와 같은 워싱턴의 오래된 중국 정책 관계자들은 미중 갈등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보기에 베이징 당국은 언제나 미국을 적으로 여겨왔으며, 1949년 이후로 중국의 장기적 목표는 미국의 세계 지도력을 무너뜨리고 자국의 세계 지배를 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이 해석은 중국이 2010년대까지 워싱턴 당국이 그 목표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로 의도를 잘 숨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견해를 옹호하는 많은 이가 일찍이 워싱턴에서 미국과 중국의 공생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주도했던 이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1990년대와 2000년대의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가 2010년대 들어 갑자기 경쟁관계로 변한 이유를 설명해야만 한다. 양국의 정치경제 체체는 근본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레이엄 앨리슨의 투키디데스의 함정 테제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듯 보인다. 앨리슨은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의 전쟁을 바탕으로 기존 강대국과 새로 떠오르는 강대국 사이의 갈등이 피할 수 없는 궤적이라고 판단한다. 기존 강대국은 오늘 현재 상황을 어떻게든 지켜내려 하고 새 도전자를 꺾어버리려 하기 때문이다. 앨리슨은 20세기 초반 영국과 독일 사이의 갈등 및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갈등을 선례로 보고 오늘날의 미중 관계가 동일한 갈등의 운명을 향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힘이 약하고 미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는 것에 만족하는 한 미중 관계는 조화를 유지했다. 그러나 중국이 일정 수준의 역량과 자신감을 갖추자 더 큰 야심을 내비쳤고 미국은 중국을 도전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두 나라 사이의 조화는 갈등으로 변했다. 미중 경쟁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강대국 간 경쟁Great Power Competition’으로 치닫고 있다고 특징짓는 많은 저술에 영향을 끼쳤다.
그레이엄 앨리슨의 설명은 깔끔하고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민국가 간의 경쟁이라는 한정적인 렌즈로만 미중 관계를 해석하는 것은 두 나라가 활동해온 수많은 국제기구가 양국 간의 긴장을 완화하거나 악화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최근 새로운 연구 문헌들은 글로벌 통치 기구들의 복잡성을 도입해 강대국 간 경쟁에 대한 견해를 보완함으로써 이 차이를 메우고 있다. 이 연구 작업들은 WTO, AIIB,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와 같은 글로벌 조직들의 정치적 맥락 속에 미중 경쟁을 놓고 분석한다. 이 연구들은 미중 경쟁에 관한 질문을, 중국의 부상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하에 구축된 자유주의 규범과 국제질서를 전복시킬 것인지, 아니면 기존처럼 글로벌 다자주의의 원칙에 따라 이를 지속시킬 것인지의 문제로 해석한다.
두 개별 국가 간의 경쟁에 초점을 맞추든 혹은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통치 기구의 규범과 질서를 어떻게 형성하고 재구성하는지에 집중하든 간에 이 연구들은 지정학만 다루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적 연결이 양국 관계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이 연구들은 국가가 권력, 세계 지배 혹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추구하는 자율적 행위자라고 가정한다. 이러한 가설은 ‘국가의 복귀Bringing the State Back In’학파가 국가 자율성이라는 베버주의적 개념을 복원한 이후로 정치학과 정치사회학에서 통용되었다. 베버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자율성을 가진 외교 정책 엘리트들의 국익에 대한 정의와 엘리트 네트워크 속에서 내생적으로 발전된 정책 지향성은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토대를 이룬다. 외교 정책 엘리트는 군사 및 정보 분야 외교 관료, 싱크탱크의 학자들, 외교 정책에 관심을 갖는 선출직 관료로 구성된다. 이는 국제무대에서의 국가 행위가 ‘위신 감정’과 세계에서의 ‘권력 지위’ 추구에 의해 추동된다는 베버의 가정에 따른 것이다. 이 관점은 국가의 외교 정책을 초국적 기업의 경제적 요구의 단순한 반영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대한 대응이다.
국가주의적 관점과 경제학적 관점을 넘어, 국가 간 경쟁과 기업 조직 간의 경쟁 혹은 초국적 연결을 세계질서와 갈등의 형성에 있어 상호작용하는 두 개의 자율적 영역으로 보는 더 섬세한 국제정치 이론들이 있다. 이러한 이론들의 통찰에 기반해 이 책에서 나는 국가 간 지정학적 경쟁과 기업 사이의 자본 간 관계를 연결시켜 1990년대와 2000년대 미국과 중국의 공생관계 및 2010년대 그 공생관계가 경쟁으로 변화한 원인들을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정치경제의 거시적인 구조 변화를 배경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기업 및 국가 간의 중간 수준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2장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지구 제국을 건설해 경제위기와 헤게모니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1970년대 미국의 전략을 살펴본다. 그 시도는 성공했고 21세기 전환기에 미국은 수익성과 지구적 권력 면에서 부활하며 제국적 순간을 맞이했다. 이러한 성공은 많은 부분에서 중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로의 통합 덕분에 가능했다. 이 통합은 예정된 것이 아니라 중국 국가와 미국의 정치 및 경제 엘리트 간의 계속된 상호작용 속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미국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1990년대 초반 냉전 종식 이후 중국을 지정학적 경쟁자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과 미국 기업들 사이에 형성된 새로운 연합 속에서 미국 기업들은 베이징 당국을 대리하는 로비스트가 되어 중국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을 추구하려는 미국의 지정학적 충동을 억제시켰다.
3장에서는 중국의 자본주의적 발전이 여타 지역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마찬가지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악화된 과잉 축적 위기에 빠졌는지를 살펴본다. 급속한 부채 증가와 산업의 과잉 생산 능력을 조장하는 이 과잉축적 위기로 인해 중국 공산당과 국유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미국과 그 외 외국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압박해 수익성을 회복하려 했다. 이러한 대립에 직면하자 우호적인 미중 관계를 보장하는 데 앞장섰던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미국 외교 정책 엘리트들의 대립적 태도를 막는 것을 중단했다. 일부 영역에서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미국 국가의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미국 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이 같은 성향 변화는 2010년경 이후 거의 모든 사안에 걸쳐 미국과 중국 국가 사이에 적대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4장에서는 중국 시장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자본 간 경쟁이 어떻게 세계 시장으로 확장되는지 살펴본다. 중국의 과잉축적으로 인해 중국 기업들은 해외, 특히 개발도상국들로 확장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 기업의 이익 및 지정학적 영향력과 제로섬 관계가 되었다. 세계 무대에서 이러한 자본 간 경쟁은 중국 국가로 하여금 아시아와 그 외 지역에서 그 세력권을 개척하도록 유도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을 심화시켰다.
세게 1위와 2위 경제 대국으로서 둘을 합칠 때 GDP에서는 세계 전체의 거의 40퍼센트, 국방비에서는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중 관계의 변화는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대한 변화이며, 21세기 미래의 세계질서 혹은 혼돈을 결정짓는다. 이 책은 변화하는 미중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이자 지구적인 정치 권력의 지형이 어디로 향할지에 대한 예측이다. 결론에서 나는 새로운 미중 경쟁을 20세기 초 강대국 사이의 제국 간 경쟁과 비교해 세계 갈등 혹은 세계 평화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살펴볼 것이다.(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