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월동 버스 정류장은 두 곳.
한 곳은 시내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 다른 곳은 광주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는 곳.
난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간 시내 방향을 향한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을 시작했다.
진월동 많은 남학생은 이상하게도 가까이에 있는 중학교가 아닌 조금 먼 화정동에 있는 광덕 중학교에 다녔다.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로 배치해 주는 게 아닌가?
어쨌든 25분 정도 걸리는 중학교에 가기 위해 진월동 많은 선후배가 24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여 아침마다 24번 버스는 매우 만원이다.
그 시절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24번 버스를 타기 위해 우르르 달려가는 까까머리 남학생들을 기억할 것이다.
24번이 보이기만 하면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버스 빈 의자에 한 번 앉아보겠다고 버스가 설 만한 위치를 계산한다.
이 계산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이다.
기사님이 핸들을 트는 장면을 보고 나름 계산한다.
또 다른 차들이 있는지 장애물도 계산해야 한다.
수학 시간보다 더 어려운 계산이지만 참 도움이 되는 실생활과 연관된 수학이라고나 할까?
참고로 난 지금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수학적으로 펼쳐본다.
난 아침마다 가방에다 그날 든 시간표에 맞추어 교과서와 노트를 챙기고 무거운 가방을 낑낑거리며 버스 정류장에 갔다.
학교 가서 공부도 별로 하지 않을 거면서 어찌 그리 교과서와 노트는 이리도 잘 챙겨 다녔을까?
난 키가 작았다.
그래서 그 가방이 더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무거운 가방 때문에 중력에 눌려 키가 작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신없이 아침을 시작하는 버스를 타면 키가 작아서 위에 있는 손잡이는 잡지도 못하고 겨우 의자 손잡이를 잡은 채 버스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무거운 가방과 함께 흔들렸다.
이것을 유식하게 관성이라 하더라.
그때 절실히 경험했다.
관성이 무게에 비례한다는 것을...
내 기억이 맞다면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친구인 진원이가(이름이 맞는지 모르겠다) 24번 버스를 먼저 타려다가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버스 앞으로 달려가 버스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솔직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래서 그 친구가 다치고 그 다음은 잘 기억이 안 난다.
좋지 않은 일이라 기억하기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도 나처럼 잘 지내고 있을까?
버스 정류장에 가면 왠지 기분이 좋았다.
마치 예전 개그 프로그램에서 ‘최양락’씨가 어느 카페에 들어서며 ‘오늘은 왠지 이 카페에 들어서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은데...’라며 대사를 치던 그 상황처럼.
왜냐면... 교복 입은 예쁜 여학생들을 볼 수 있어서..
그냥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절이었으니...
말 한마디도 못 붙일 거지만.
그때 난 그렇게 용기없는 허술한 시절이었다.
지금도 뭐 딱히 다를 건 없다.
남자 중학교라 학교에 여자가 없다.
선생님들도 행정실 직원도 죄다 남자다.
중학교 가서 후회했다.
초등학교 때 여자 친구들한테 잘해줄걸...
여학생 귀한 줄 몰랐다.
남중 남고를 다니면서 여학생 귀한 줄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여자들한테 잘해준다.
특히 울 마눌님에게는 더.
한 가지 버스 정류장과 관련된 나의 일화를 이야기 하련다.
이 생각을 하면 항상 어머니에게 죄송스럽다.
중학교 시절, 학기 초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시물함 열쇠를 가져오라고 했다.
사물함 열쇠를 사달라고 어머니께 부탁해 열쇠와 자물쇠를 사주셨는데 내가 원한 건 그게 아니라 비밀번호 자물쇠였다.
실은 내가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침에 토라진 채로 화를 내고 우정아파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무렵 뒤에서 어머니가 “동하야”라고 부르며 슬리퍼를 신은 채 한 손에는 비밀번호 열쇠를 들고 달려오시는 거다.
슬리퍼를 신은 그 어머니의 두 발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아들이 뭐라고 그 아침에 가게에 들러 비밀번호 자물쇠를 사들고 버스 오기 전 전해주려고 뛰어오시던 모습.
나 같으면 “오늘은 그냥 가라. 내일 사줄게.”했을 것 같은데...
자물쇠를 내 손에 꼭 쥐여며 “미안하다. 이거 맞지? 비번 1111 이라더라.”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죄송스럽다.
내가 뭐라고...
이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중학교 시절, 버스 정류장은 나에게 그런 소중한 진월동의 공간 중 하나였다.
하루를 시작했던 공간, 어머니와의 추억이 있던 공간,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공간...
소중한 추억들과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닐까?
#나의진월동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