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
지은이:벌마로(김윤식)
그렇게 병휘와의 동거 아닌 동거 생활은 계획에도 없이 시작되었다. 처음 며칠은
무료하고 따분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병휘가 출근을 하고나면 영우는 막상 할 일이 없다. 방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만화책을 읽거나 누워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시간만 보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방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비스킷이
눈에 들었다. 병휘오빠가 혼자 지내면서 무료할 때 먹으려고 사다 놓은 모양이다.
영우가 과자봉자를 뜯었다. 한번 손이가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심심할 때마다 먹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빈 봉지만 남았다.
퇴근해서 돌아온 병휘가 빈 과자봉지를 확인 한 다음부터는 거의 매일 과자봉지를 손에 들고 왔다. 병휘오빠는 매일 과자를 사서 날라야 하는 과제가 한 가지
더 생긴 거다.
언제부턴가 방안에서만 먹던 과자를 대문 밖에까지 봉지 째 들고 나가서 먹었다.
병휘오빠 퇴근해서 돌아오기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을 때 골목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궁금증이 생긴 영우가 과자봉지를 들고 골목 밖에까지
나왔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이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다. 골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던 아이들이 영우의 등장에 일순간 놀이를 멈추고 영우
앞에 모여들었다.
눈앞에 서있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했고 하나같이 밝았다. 그중에도 다른 아이들보다 옷을 깔끔하게 입은 여자아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열 살쯤 돼 보였고 피부가
우유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 아이는 얼굴도 예뻐 보였는데, 남자아이들이 그 아이를 많이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이 마을에서 꽤나 부잣집 자손인데 일찌감치 도시에서 사업을 해보겠다며
고향땅을 팔아 서울로 떠났었다. 하지만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몇 년 만에 사업을 정리하고 일 년 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탕아였다. 서울에서 사업에는 실패를 했지만 예쁜 색시를 얻어서 결혼을 하고 지금의 딸을 낳았다. 그때
적지 않은 재산을 잃었지만 아직도 고향에 많은 땅을 소유한 마을의 부자로 알려져 있었다.
영우는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를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자신도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유복하게 자랐고 언제나 예쁜 옷을 입고 있어서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꽤 많았던 기억이 났다.
영우가 4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기 전까지 거의 매일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있었다. 어리지만 몸이 빨라서 운동회 때마다 달리기 선수로 나가던 광휘하고 수줍음을 많이 타서 말을 더듬던 동훈이 이렇게 두 친구는 영우네 집하고 가까이 살았기도 했지만, 어른들 사이에도 친분이 두터워서 그 친구들 하고는 이물 없이 친하게 지냈었다.
영우가 4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친구들하고 자주 볼 수 없어서 몹시
서운 했었다. 그래서 더욱 토요일이나 방학 때 집에 오면 가장 먼저 광휘하고
동훈이를 찾았었다.
아마 영우가 전학 가던 그 해 여름방학 때 였던 거 같다. 방학하는 첫날 신나서
집에 왔더니 어느새 소식을 듣고 광희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리곤 영우를 보자 마자 눈물을 흘리며 훌쩍였다. 영우가 당황해하며 광희 손을 잡고 사철나무 뒤로
데려가서 물었다.
“광희야 왜 울어?”
“반가워서,,, 방학 끝날 때까지 서울 않가고 집에 있을거지?”
“그럼. 언니 오빠들도 전부 집에 왔는데”
그때 광희는 오랜만에 만난 영우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이담에 어른이 되면 너와 결혼할거라고 어색한 고백을 했었다.
영우는 지금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서 10년 전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혼자 미소
짓고 있다.
아이들 속에 며칠 전 문방구에서 보았던 키 큰 아이도 눈에 띄었다. 그 아이가 먼저 영우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아줌마 안녕하세요?”
‘인사성은 밝아서 좋은데 아줌마 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영우가 무슨 말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아이를 불렀다.
“너 이름이 뭐니?” “
김용두 요! 우리 아버지께서 용의 머리가 되라고 그렇게 지어주셨어요”
“이름에 커다란 의미가 있구나. 너의 아버지는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데?”
“어른들이 그냥 범수라고 불러요. 엄마도 계시고요, 공부하러 서울 간 형도 있고요, 결혼한 누나도 있어요, 매형은 군인이에요”
용두는 묻지도 않는 가정사를 꺼내며 뿌듯해했다.”
“으응,,,누나 남편이 군인이야?”
“네, 우리 매형 되게 멋있어요”
용두는 은근히 매형 자랑을 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그런 용두를 보며 영우도 덩달아 흐뭇해했다. ‘내 남자도 군인이란다. 후훗’
“누나가 결혼을 했으면 누나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나겠구나”
“네, 어른들이 저보고 늦둥이래요”
영우는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아이들에게 나눠 주면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물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밝혔는데, 전부 외우지 못했다.
특별한 놀이 시설이 없는 이곳의 아이들은 골목에 모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래잡기, 땅따먹기, 자치기 같은, 도시에서는 서서히 사라져 가는 놀이를 하고 있다.
영우의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 잊혀져가는 추억속의 놀이를 몇 년 만에 여기 아이들한테서 발견하고, 철없이 마냥 뛰어놀던 그때 그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곳의 아이들은 그렇게 영우에게 동무가 되어 주었고 영우도 아이들과 어울려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다가 놀이가 싫증이 날 때
쯤엔 아이들을 모아놓고 간간이 단편 문학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 아이들 정서에
맞는 부분을 간추려서 이야기를 해 주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옹기종기
영우 앞에 턱을 괴고 모여 앉아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고개를 받쳐 들고 영우의
책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한동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 기다렸다. 아이들도 학교 공부가 끝나면
의례 영우네 집으로 몰려왔고 대문 앞에서 ‘아줌마’ 하고 합창이라도 하듯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면 영우는 방안에 있는 과자를 한 아름 안고 대문 앞으로 나갔다.
아이들이 이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영우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는 없다. 영우와 노는 것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영우가 주는 과자가 맛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찾아와 주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아이들은 한동안 영우를 찾아왔고 영우도 반가웠다.
영우가 아이들을 반기는 이유가 또 있는데, 그것은 이곳의 사정을 아이들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거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영우가 묻지 않아도 이야기한다. 영우가 즐겨먹던 북엇국의 북어가 이곳에서 생산된다는 것도
아이들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다. 그리고 요즘이 어른들에게는 바쁜 시기인 것도
알았다. 가을철 추수작물을 걷어야 하고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황태덕장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전에 다른 겨울준비를 미리 해놓아야 그때 가서 허둥대지 않고 여유롭게 황태덕장 준비를 할 수 있단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차츰 뜸해졌다. 영우는 공연히 기다려져서 혼자 대문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쓸쓸히 돌아서는 일이 잦았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한가한 오후, 혹시나 오늘은 ‘아줌마’ 하고 아이들이 소리치며 달려올 것만 같아서 대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데 용두가 혼자 나타났다.
‘친구들하고 같이 안 오고 왜 혼자 온 거지?’ 순간 의아하게 생각하며 용두를 내려다보는데, 용두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쓱 내밀며 수줍은 듯 말했다.
“아줌마 옥수수 드시라고 가져 왔어요”
옥수수 한 봉지를 들고 온 용두는 앞으론 못 올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는 바쁘게 뛰어갔다. 급히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맘 씀씀이가 깊고 대견함을 보았다.
아이들이 바쁘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도와서 집안일을 하느라고 영우에게 오지 못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영우도 아이들 사정을 잘 알기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첫댓글 감물처럼 흐르는 자연스런 문장이 이어지는 역량이 처음 습작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새롭게 시도하는 인터넷 연재소설!
스토리의 극적인 반전과 전개가 있으면
더 많은 관심과 주목을 끄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고요. 극적인 반전은 없을 듯 합니다. 그저 7,80년대 젊은 시절을 지나온 한 여자의 사랑과 이별, 연애감정을 표현하려고 하고요. 다만 여자의 과거를 감추고 터부시 했던 시대적 분위기를 넘어서서 차분하게 이야기 하며 회상하는 모습으로 전개 해 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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