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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 커니스, 3명의 추락·사망 사고…
여기는 숫제 히말라야!
리무진에 몸과 배낭을 싣고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동안 2007-2008 동계 북알프스 등반이 떠올랐다. ‘이번에야말로 꼭 정상에 서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오지만 용기 내어 등반의 성공을 다짐해 본다.
전문등반을 배운지 1년도 안 되는 백연식·조현정 모녀 대원과 작년 가을 북한산 인수봉에서 척추 골절을 당해 고생한 이승혜 대원, 해외 산행이 처음인 대천알파인클럽의 이광철·이상규 선배, 이번이 북알프스 두 번째인 유두열 선배, 그리고 처음 만나는 고상옥 사장.
과연 이분들과 함께 북알프스 최고봉인 오쿠호다카다케(3,190m)를 오를 수 있을까? 만약 등반을 성공하지 못하면 또다시 북알스프에 올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히말라야 8,000m 고봉을 7개나 오른 나관주(오지로투어 대표) 대장이 있다는 생각에 천군만마를 얻은 듯 마음이 놓인다.
급경사의 가라사와다케 능선을 오르는 대원들.
텐트 폴 빠뜨렸지만 설동에서 안락한 밤 보내
약 1시간40분의 비행 끝에 북알프스의 첫 관문인 도야마공항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신호다카온천에 있는 호다카호텔 앞에 다가섰다.
정의철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나를 포옹해온다. 재일교포인 정의철은 2008년 나와 같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는데, 북알프스 동계등반은 처음이란다. 이번 등반에 도움을 받고자 일본으로 전화하자 의철이도 함께 등반하고 싶어해 합류하게 되었다.
호텔에 들어가 의철이 미리 택배로 보낸 식량과 가스를 챙기고 불필요한 짐을 맡겨놓은 다음 호다카히라고야(산장)를 향하는데 배낭 무게가 부담이 된다. 그렇게 임도를 따라 운행하며 사방을 둘러보니 지난해와 달리 눈이 많다.
3시간 만에 호다카히라고야에 도착해 의철이가 준비해온 삼겹살로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공동장비를 분배하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임도를 지나 산의 들머리에 진입하는 대원들.
1월 25일,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떡국을 먹고 서둘러 등반 준비를 했지만 벌써 6시가 넘어간다.
오늘은 러셀이 계속되는 오르막 구간이라 힘든 산행이 예상된다. 경험이 없는 현정이도, 연식 누나도, 허리가 아픈 승혜도 걱정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올 땐 각오를 했을 테니 각자 자기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본다.
6시15분경 산장( ? ) 을 나와 임도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맨 처음 두열 형이 러셀을 한다. 그래도 산행경력이
많고 두 번째 북알프스 동계 등반이어서 그런지 눈길을 척척 헤치고 나간다. 교대로 러셀을 하며 북알프스의
경치를 맘껏 즐기면서 걷고 또 걷는데 막내 현정이가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에 입을 갖다 대며 깔깔깔 웃는다.
모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입안엔 눈을 한가득 넣어본다.
오쿠호다카다케에서 바라본 일본 최고봉 후지산(오른쪽 맨끝에 솟구친 삼각형 봉).
길을 재촉하여 두 시간여 후 오르막 초입에서 아이젠을 고쳐 매고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는데 눈이 많은 데다 분설이어서 러셀이 쉽지가 않다. 밟을 때마다 무너지는 탓에 다리에 힘이 빠진다. 그렇게 한참 오르니 모두가 힘들어하는 분위기다. 의철이 러셀을 한다.
“의철아, 천천히 가라. 땀 흘리면 더 힘들어, 임마!”
의철이는 아직은 젊어서 오르막 구간에서도 지치지도 않고 앞장서서 눈을 헤치며 힘있게 올라간다. 어느새 의철이 옷은 땀으로 젖어 있다. 이번 등반은 점심을 행동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상규형이 소리를 지르며 “배고파 죽겠다”고 난리다. 상규형은 배고픈 걸 못 참기로 대천알파인클럽에서도 유명하다.
우리 일행은 잠시 쉬면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이번에도 의철이 선두로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몇 번을 쉬면서 캠프지(2,460m)에 도착했다.
시간은 오후 3시40분쯤 된 듯하다.
날씨는 자꾸 나빠져서 바람도 강해지고 하늘에서 눈발이 내리고 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를 하는데 아뿔싸 이럴 수가. 텐트를 두 동 준비했는데 텐트 한 동에 폴이 없다. 후배가 빌려간 텐트가 폴 없이 돌아온 것이었다. 확인하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편한 잠자리를 위해 눈삽으로 눈을 파내기 시작했다. 1시간 정도를 파고 나니 아늑하고 근사한 설동이 완성되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마치고 설동에서 밖을 바라보니 거센 바람과 함께 눈이 설동 입구에 쌓인다. 나와 승혜는 설동에서 장갑을 말리면서 내일 날씨를 걱정해본다. 모두가 잠든 시간 밖을 나와 보니 대원들의 코고는 소리와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소리뿐이다. 다시 설동으로 들어가 잠을 청해 보지만 쉽게 깊은 잠을 들 수가 없었다.
60도 경사의 가마타후지(蒲田富士·2,742m)를 오르는 대원들.
호다카다케 연봉의 아름다움이 강행군 가능케
이튿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눈을 녹여 떡국을 만들어 먹고 오전 6시40분 가마타후지(蒲田富士·2,742m)를 향해 출발했다. 수목 한계선이 보이면서 왼쪽으로 눈처마가 있고 능선으로 접어드는 구간도 경사가 심하다. 여기서도 의철이 러셀을 시작한다. 한참 오르는데 2008년 동계 북알프스 등반 때 일이 떠오른다. 이 루트에서 일행 한 명이 250m 정도 미끄러져 아찔했다. 대원들에게 각별히 조심하라고 소리치고 안전을 강조하며 한 발 한 발 걷는다.
오전 8시경 능선 초입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수목한계선이라 시야가 트인 곳이다.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 행동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대원들은 모두 안자일렌으로 서로서로 확보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등반하기로 했다. 70도 경사의 100m 구간은 하산시 안전하고 빠르게 내려올 수 있도록 고정 로프를 설치하기로 했다.
2,460m 캠프에서 야영 준비 중인 대원들.
중간중간 눈에 묻힌 고정로프가 보인다. 고정 로프를 눈 속에서 꺼내고 뒤에 대원들에게 등강기를 이용하여 오를 것을 알리고 한참을 오르는데, 뒤에서 현정이 목소리가 들린다. 현정이가 등강기 사용법을 잊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앞에 매달려 있는데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등강기 사용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기술등반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초보자여서 사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상규형에게 도와줄 것을 얘기했는데 그 짧은 시간이 왜 그리도 길게 느껴지던지. 내 뒤로는 대원들이 굴비 엮듯이 엮여 있고 바람은 왜 그리도 불어대는지.
그렇게 첫 구간을 무사히 올라왔다. 안자일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우측면으론 가파른 설사면이, 좌측은 커니스 구간으로 낭떠러지가 끝이 안 보인다. 그래도 이곳에서 보는 북알프스 경치는 최고다. 멀리 흰 눈이 쌓인 설산과 북알프스의 7부 능선에 걸려 있는 구름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가라사와다케에서 바라본 호다카다케산장(왼쪽 아래)과 오쿠호다카다케.
그렇게 약 1시간30분을 지나 우리는 1.2km 길이의 칼날 능선을 무사히 통과, 가마타후지(2,742m)에 도착했다. 약 50도 경사의 설사면을 내려가 넒은 공간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먹고 있는데 왠지 찜찜해 주변을 살펴보니 위험한 커니스 위에 서 있는 것이었다. 커니스가 무너지면 우리는 단체로 염라대왕 앞에서 한 줄 서기를 할 것이라 생각하니 눈앞에 깜깜해졌다.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잠시나마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이젠 60도가 넘는 급경사 구간이다. 안자일렌을 다시 확인한 후 2개 조로 나누어 등반을 하기로 했다. 1조는 나와 현정·상규형·승혜·의철, 2조는 나관주 대장을 선두로 고상옥 사장·연식 누나 그리고 두열 형과 광철 형. 이렇게 2개 조로 나누어 등반을 하자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하지만 60도가 넘는 경사에서 가쁜 숨을 내쉬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에 몸과 함께 배낭의 무게가 실려 다리의 근육들이 아우성이다.
비록 숨은 가쁘고 다리의 근육들은 욱신거렸지만, 북알프스의 아름다운 경치가 작은 히말라야처럼 펼쳐져 있는 덕분에 무사히 가라사와다케의 능선까지 오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대원들도 북알프스 호다카 연봉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 있는 표정으로 능선을 둘러본다.
칼날능선을 통과하는 대원들.
가라사와다케 능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목적지인 호다카다케산장을 향하여 또다시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앞에 빨간색의 무엇인가가 보인다.
혹시 아이젠인가 하면서 한 걸음을 다가가니 아이젠 한 짝이 바위 위에 놓여 있다. 순간 올 1월 초 일본 산악인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이곳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말이 떠올라 주변을 살펴보니 1000여m 아래로 설벽이 드리워져 있다. 나중에 산장에서 의철에게 들었지만 그곳에서 3명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고 그 중 1명의 시신만 찾았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저 멀리 호다카다케산장이 보인다. 하늘에서는 밝은 달빛과 쏟아지는 별빛이 우릴 반기는 듯하다. 저 멀리 이름을 알 수 없는 마을의 불빛도 우리의 호다카다케산장의 입성을 반기는 듯이 겨울밤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북알프스의 일출.
오쿠호다카다케에서 오렌지빛 일출 맞이
1월 27일, 새벽 4시30분에 기상하여 누룽지로 아침을 대신하고 장비를 착용하고 밖에 나오니 어젯밤에 보이던 마을의 화려했던 불빛은 사라지고 하늘의 끝자락엔 붉은 띠 모양이 새색시의 볼연지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른다. 세찬 바람과 서리 가득한 공기가 귓속과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뇌와 폐부가 찬 공기로 가득 찬다. ‘이렇게 좋은 날씨면 전원이 정상에 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안자일렌을 하고 오쿠호다카다케(3,190m)를 향해 오전 6시에 출발한다. 초입에 이르니 철사다리가 우리를 반기듯 반듯하게 서 있다. 사다리 세 개를 넘어 루트를 보니 우측으로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다. 순간적으로 트래버스식 등반보다 위를 향해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쪽으로 방향을 바꿔 올라가니 그곳이 바로 등반 루트였다.
우리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었다. 바람은 심하게 불고 있었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색으로 쪽빛 바다와도 닮아 있다. 오쿠호다카다케의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과연 이곳의 일출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우리나라에서처럼 7시30분쯤은 볼 수 있겠지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곳은 한국의 동쪽이 아니던가. 6시30분경 오렌지빛으로 물든 일출이 보이기 시작했고, 모든 대원들의 함성이 울려 퍼지며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발광했다.
오쿠호다카다케에서 바라본 야리가다케(가운데 뾰족한 봉우리).
출처 : 월간산(http://san.chosun.com)
바람은 왜 그리도 센지 코와 볼이 떨어져 나갈 듯 아려오고 손끝은 딱딱하게 굳어 저려온다. 몸이 날아갈 듯 불어닥치는 바람을 헤치고 1시간10여 분의 운행 끝에 대원 전원이 정상에 올라섰다. 우리는 행운아다.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기분일 정도로 청명하다.
저 멀리 후지산도 보이고 북알프스 연봉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우리가 등반한 오쿠호다카다케(3,190m)는 일본 후지산, 남알프스의 기타다케 다음의 일본 3위 고봉으로 산세가 험하기로는 일본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라사와다케 니시오네 루트로 동계등반은 한국인으로선 처음인 것 같다.
10분 동안 사진촬영을 마치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구간도 가팔라 녹록치 않다.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현정이가 잘 따라오질 못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겨울을 맞아 문이 닫힌 호다카다케산장의 내부. / 필자
호다카다케산장 안으로 들어가 배낭을 꾸려 하산 준비를 하고, 8시40분경 산장을 뒤로하고 가라사와다케(3,103m) 능선을 거쳐 캠프지(2,460m)로 하산을 시작했다. 오르는 것보다 하산하는 게 더 힘들기에 나관주 대장에게 현정이를 잘 데리고 내려와 달라 부탁하고, 다른 대원들과 안자일렌을 하고 생각보다 빨리 칼날 능선을 지나 12시30분경 캠프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박을 더 하고 내일 신호다카다케온천에 있는 호다카호텔에 투숙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바람도 많이 불고, 눈까지 내리고 있어서 호다카히라고야(산장)까지 하산하기로 하고 텐트를 철수해 하산을 시작했다.
이틀 전 내린 눈이 많이 쌓여 발걸음을 옮기는 족족 빠지고 만다. 러셀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오후 6시 무사히 산장에 도착, 12시간 산행으로 허기져 있는 배를 채우고 하산주에 등반 이야기로 늦은 시간까지 산장 안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어려움 뒤에야 진정한 안락함이 찾아온다고 하던가. 무인산장의 고요함이 우리 산행의 안락함을 더해준다.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에 선 대원들. 맨 위에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이승혜, 백연식, 조현정, 유두열, 정의철, 필자, 이상규, 나관주, 고상옥.
“내년엔 남알프스 동계등반 가볼까?”
28일. 그동안의 피로 때문인지 늦은 시간까지 침낭 속에서 나오는 대원은 한 사람도 없다. 밖에는 눈과 비가 섞여서 내리고 있다. 어젯밤에도 많은 눈이 내린 듯 발자국을 덮어 버렸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오전 11시경 산장을 뒤로하고 신호다카다케온천을 향하여 하산을 시작했다.
12시10분경 신호다카온천에 도착하여 우동과 계란 그리고 의철이가 사온 맥주로 서로에게 등정을 축하한 다음 도쿄로 돌아가야 할 의철이와 아쉬운 이별을 위해 모두 버스 정류장으로 배웅을 갔다. 우리와 등반을 하기 위하여 도쿄에서 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달려와 함께 등반한 의철이에게 다시 한번 진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었고, 다음 등반을 기약하며 돌아가는 의철이의 뒷모습에서 아쉬움과 동계등정의 기쁨을 엿볼 수 있었다.
노천온천탕에서 피로를 풀고,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다음 등반의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내년엔 남알프스로 동계등반을 가볼까?”
북알프스에서 너무 심하게 고생해 싫다 할 줄 알았는데 “좋~아, 좋~아”를 외친다.
/ 글·사진 김용석 부천 돌아이산악회 대장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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