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참 까다롭다. 무슨 품목을 해야 할까? 얼마짜리를 해야 할까? 예를 들어 넥타이를 선물하려고 마음먹고 넥타이 가게에 들어갔다고 치자. 빨주노초파남보 무슨 색상을 택할까? 천의 재질은 어떤 게 좋을까? 거친 것? 매끈한 것? 빨강색 계열로 정했다고 치자. 색상의 톤이 생생한 것부터 죽은 톤까지, 그 그라디에이션이 너무 많다. 무늬는 또 어떤가? 기하학적 무늬가 그에게 잘 어울릴 것인지 점무늬가 더 나을 건지, 물결무늬가 나을런지, 얼룩무늬가 나을지, 아예 무늬가 없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사선 무늬가 무난할 것 같아서 거기까지 결정을 했다 해도, 기울기의 각도나 선의 굵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에게 어떤 게 가장 잘 어울릴까? 예상하고 따져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그의 취향(taste)이라기보다는 고르는 사람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걸로 고르게 되어 있다. 그의 취향은 그의 마음속 방들 중에서도 가장 애매모호한 방에 숨겨져 있어서 알아맞힌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어쨌든 어떤 하나를 결정해서 선물했을 때 그게 그걸 받는 사람의 취향을 저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그가 취향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불가능에 가깝다. ‘taste’의 기본 의미는 ‘맛’이지만 ‘취향’이나 ‘기호’의 의미도 있고, ‘심미적 감성’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즉 어떤 것의 훌륭한 품질이나 높은 미적 수준을 식별해내는 미묘한 능력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음악적 취향’이라거나 ‘문학적 취향’ 등의 경우에서처럼 예술적인 성향을 나타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뭘 선물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결국 맛이 그 주된 요소인 먹을 것을 선물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혀로 감지하는 맛은 감성으로 식별하는 기호나 취향보다 훨씬 종류가 단순하고 보편적이며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투 플러스 한우는 나에게도 맛있고 그에게도 맛있고 거의 모든 사람에게 맛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걸 받을 사람이, 소설가 한강이 묘사하는 채식주의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취향이 가장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며 그래서 가장 까다로운 경우가 옷이나 음악인 것 같다. 그래서 그건 선물하기가 그만큼 어렵고 받는 사람을 만족시키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 이유는 그 두 가지가 다 개인의 스타일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스타일은 몸이나 마음에 오랜 세월에 걸쳐 점차 들러붙어 그의 정체성의 일부분이 된 것이다. 글쓰기 스타일(문체)도 마찬가지다. 특히 음악적 취향은 극히 내밀한 개인적인 정서와 관련된다. 그것은 어떤 시대와 환경에서 생성된 특정 세대의 고유한 감성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X세대와 Y세대, MZ세대, 5060세대와 7080세대의 음악적 감성과 취향이 각각 다르다. 세대별 구분만 있는 게 아니다. 문화권별 구분도 무시할 수 없다. 인도 사람들은 인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다른 문화권 사람들은 그걸 생소해하거나 거북해할 수도 있다. 세대와 문화권별 차이만 있는 게 아니라, 거기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성이 작용한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어떤 음악을 들려주는 건 고문에 가깝다. 한국의 아이돌들이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K팝이 나에게는 조금도 즐겁지 않다. 그걸 계속 듣게 된다면 고역일 것이다. 25년쯤 전에 뉴욕에서 나는 선배의 아들이 뉴욕시에서 약 4시간 운전해서 가는 곳에 있는 어떤 사립대학의 서머캠프에 참가하게 되어 거기까지 동행했는데, 그날 네댓 시간 동안 차 안에서 고등학생인 선배 아들이 계속 반복해서 틀어 놓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노래 소리에 나의 머리는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나는 그때 그걸 처음 들었는데 정말 괴상한 노래였다. 가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고 일정한 가사와 멜로디, 박자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데다가, 가끔씩 알아들을 수 있는 건 가래가 끓는 듯한 남자 목소리로 “나 이제 알아”와 “느낄 수 있니”라는 구절과 그에 이어지는 숨넘어갈 듯 불안정한 고음의 여자 목소리로 “혼자된 기분을 그건 착각이었어” “사랑의 시작은 외로움의 끝인 걸” 정도였으며 랩인듯한 가사는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게다가 노래의 끝부분에서는 “퉤퉤퉤퉤퉤퉤”로 들리는 괴상한 소리가 끼어들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가 당시 우리나라에서 대히트곡이었었다.
마치 어떤 자물쇠에 딱 들어맞는 열쇠가 끼워져서 그 자물쇠를 끄르듯이 어떤 사람의 음악적 취향에 딱 들어맞는 음악 혹은 가요라는 열쇠가 그 사람만의 감성의 자물쇠를 열어 주는 것 같다. 요새는 모두들 전자 도어 록을 쓰니까 쐬로된 열쇠ㅡ쇳대ㅡ라기보다는 전자화된 디지털 암호, 비밀번호가 그런 역할을 하겠다. 숫자가 하나만 틀려도 안 열리고, 나사산이 약간만 틀려도 안 열린다. 만능키가 있다고 하지만, 어떤 만능키 가요가 정말로 모든 사람의 감성 자물쇠를 다 끄를 수 있을까?
첫댓글 호미님 어떤 음악,노래를 좋아하는지 궁금해지는 글입니다. 옷 그리고 글쓰기 취향은 청바지 정장과 ‘다 알려주지 마세요’..
ㅋㅋㅋ
산길에서 타인에게는 소음일 수 있는 음악을 크게 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본인들은 좋은 음악을 공유하고 싶어서 저러겠지 하고 용서합니다. ^^
호미님 글 읽다가 한밤중에 큭큭거립니다. 피곤함을 웃음으로 날립니다. 자물쇠를 '끄르다' ㅎ 몇년 만에 들어보는 고향어 입니다.
"끄르다"는 표준어입니다. 어쨌거나 글이 너무 길어서 폐를 끼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