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3일차 코스
몬테카시노
베네딕도회
몬테카시노 수도원
(Abbazia di Montecassino)
이탈리아 중서부, 로마의 남동 약 120km, 로마와 나폴리 중간에 있는 산. 산꼭대기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모원(母院)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으로 유명하다. 아냐네의 베네딕토(Benedictus)는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529년경) 누이동생 스콜라스티카(Scholastica)와 함께 이곳에 매장되었다. 이 수도원은 롱고바르드족에 의해 파괴되어(585년경), 페트로낙스(Petronax)에 의해 재건되었다(720년). 그러나 후에 사라센인(884년)과 노르만족(1046년)에 의해 파기되었다. 전성기는 데시데리우스(Desiderius, 1058-1087년, 후의 교황 빅토르 3세)와 오데리시우스(Oderisius, 1095-1105년)의 시대였다. 이탈리아의 국민기념물로 지정되었다(1866년).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당했으나(1944년), 재건되었다.
수도원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베네딕토 수도회 총본부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베네딕토 성인은 젊은 시절 이탈리아 중부의 수비아코라는 깊은 산골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으나 많은 이들이 찾아와 수도원의 규모가 커지자, 보다 조용한 곳을 찾아 제자 몇 명만을 데리고 와서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몬테카시노 수도원이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곳에 와서 이교도들을 신자로 개종시켰으며 근처에 있던 아폴로 신전을 마르티노 성인께 봉헌한 교회로 개조했다고 한다. 그리고 산 정상에는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한 경당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 자리가 지금의 수도원 자리일 것이다.
성인은 이곳 몬테카시노에서 수도회 규칙을 썼다. 규칙의 내용은 사유재산을 금하고 평생 수도원에 머물면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전례를 중시하며, 수도생활의 중심으로 일과 기도가 중심이 되는 성무일과를 안배하는 것 등이었다고 한다. 이 규칙은 이후 서방 수도회 규칙의 기초가 되었다.
베네딕토 성인
7월 11일은 베네딕도 수도회의 창시자로,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의 축일이다.
‘분도’라는 한자 음역으로 불리기도 하는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생활에 필요한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묶은 「수도규칙서」(Regular Benedicti)를 만든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스콜라스티카 성인과는 쌍둥이 지간이다.
성인은 480년경 이탈리아 노르치아(Norcia)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유모와 함께 생활했던 성인은 로마로 유학을 떠났으나, 그 곳의 퇴폐와 향락에 염증을 느끼고 곧 엔피테(Enfide)라는 작은 산골 마을로 간다. 이후 성인은 유모와도 헤어져 수비아코(Subiaco)로 가서 3년간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했다.
이 시기 성인은 사탄으로부터 유혹을 받기도 했다. 동굴에서의 시간은 모든 인간이 갖는 유혹과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자아를 중심에 놓고자 하는 유혹, 관능과 육욕의 유혹, 분노와 복수의 유혹이었는데 성인은 이 유혹들과 맞서 싸워 이긴 끝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수도원을 세우게 된다.
성인은 수비아코에 12개의 수도원을 세운 후, 몬테카시노(Montecassino)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아폴로 신전을 개조하여 성당을 세웠고, 「수도규칙서」를 썼다.
「수도규칙서」로 대변되는 베네딕토 성인의 영성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관상하면서도 매일의 일과나 인간관계의 의무 등 현실의 일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성인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생활을 이상으로 한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했다.
성인은 수도생활을 ‘주님께 봉사하기 위한 학교’라고 말하며, 아빠스(Abbas·베네딕도 수도회 대수도원장)는 온화한 아버지이며 엄격한 선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성인 자신의 삶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도생활의 기본적인 덕으로 순명과 침묵과 겸손을 제시했다.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네딕도회 규칙의 근간은 시간 전례를 중심으로 한 공동 기도와 노동, 그리고 성독(Lectio Divina)이다. 그리스도를 철저히 따르기 위해 세속과 자신을 끊어 버리고 매일의 단순한 삶 속에서 하느님을 찾고자 한 것이다.
특히 성인은 수도서원에서 ‘정주’(定住)와 수도승다운 생활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는데, 정주란 단순히 수도원 안에 머물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내적 정주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듣는 ‘경청’과 모든 이들을 존중할 것, 손님에 대한 환대를 강조했다.
547년 성인은 자신이 사망할 날을 예언해 무덤을 열어둘 것을 명했는데, 이 말을 마치자 바로 열이 나고 아팠다. 그로부터 6일 후, 성인은 성체를 영하고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리던 중 선종했다.
베네딕토 성인은 유럽 전체의 수호성인이자 농부, 동굴학자, 화학자, 기술자의 주보성인이다. |
성 베네딕도회(라틴어: Ordo Sancti Benedicti, OSB)는 로마 가톨릭교회 소속의 수도회(Ordines monastici)이다. 529년에 누르시아의 베네딕토가 몬테카시노에서 창건하였으며, 그가 수도원 생활의 규범으로 세운 계율(베네딕도 규칙서)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의 연합체를 일컫는다. 모토는 ‘평화’(라틴어: pax)와 ‘기도하고 일하라’(라틴어: ora et labora)이다. 이름을 한자로 음차하여 분도회(芬道會)라고 부르기도 했다.
https://youtu.be/30eAeg9GiAc?si=VvIGphhteuQ65bJk
구조
성 베네딕도회는 통일된 하나의 수도회가 아니며, 각 수도원들이 하나의 수도회를 이루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베네딕도회가 존재한다기보다는 베네딕도 규칙서를 지키는 수도원들이 존재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베네딕도회 총연합(라틴어: Confederatio Benedictina)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예수회나 프란체스코회 등과 같이 막강한 권위와 권한을 지닌 중앙집권적인 기구가 아니다. 베네딕도회 소속 수도원들은 서로 종속 관계에 있지 않고 인사나 경제 문제에 있어서 외부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고 독자적인 운영을 하는 자치 수도원(라틴어: monasterium)들이다.
베네딕도회는 자치 수도원들의 연합 형태인 19개의 연합회(라틴어: Congregatio)와 어떤 연합회에도 속하지 않은 자치 수도원과 예속 수도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연합회들과 수도원들은 하나의 베네딕도회 총연합(라틴어: Confoederatio Congregationum Monasticarum Ordinis Sancti Benedicti)을 이루고 있다. 성 베네딕토회 총연합을 대표하는 수석 아빠스(라틴어: Abbas primas)가 있고 또 각 연합회마다 그 연합회를 대표하는 연합회 총재(영어: Abbot President) 혹은 총아빠스(라틴어: Archiabbas)가 있다. 그리고 각 자치 수도원을 대표하는 아빠스와 원장들이 있다.
마지막으로 베네딕도회 총연합 안에 전 세계 수도회원들의 양성과 학문 연구를 위해 1888년에 설립된 로마의 성 안셀모 대학교가 있다.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 연합회 (라틴어: Congregatio Ottiliensis Ordinis Sancti Benedicti)와 같이 보통 성 베네딕도회 다음에 연합회의 이름을 표시함으로써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베네딕도회를 구별하고 있다.
https://maps.app.goo.gl/CstTgeR9pmmHLbmK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