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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 출 33:12-16, 벧전 1:13-21
이런 여인이 있었다. 남편이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그 기간동안 잠시 실수로 불륜의 관계를 가졌던 부인이 있었다. 남편과 월남에서 함께 있다가 고국으로 돌아온 남편 친구에게 들켜 부정한 생활이 드러나게 되었다. 남편은 무섭도록 냉정한 성격이어서 이 사건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정확하게 츨근하고 또 집에 정확하게 퇴근하여 돌아왔다. 가정과 자녀를 향한 경제적 책임을 아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집안에서 아내와는 절대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마치 아내가 없는 것처럼 그는 한 집안에서 생활했다. 사실상의 별거생횔이었다. 그 부인의 가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병들어 갔다. 그러다가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낫지 않겠으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출애굽기에 기록되어 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킬 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으로 올라갔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는 밤죄를 저질렀다. 이 사실을 하나님이 먼저 알고 모세에게 이른다. 모세가 증거의 두 돌판을 든 채 산에서 내려온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마음과는 달리 정작 금송아지를 섬기는 그 현장, 그 처절함, 엄청난 사건을 보는 순간, 그는 대노하여 하나님이 친히 만드시고, 친히 쓰신 그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고 만다. 그 순간은 물불을 가릴 수가 없을 정도로 정말 화가 났다.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운명은, 심지어는 하나님의 무서운 손길도 볼 겨를이 없었다. ‘다 망했다’라는 완전한 포기이다. 완전한 절망이다. 이제 그대로 때려부수고 만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다. 그래서 출 3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다. 그 백성들과 동행하시면서 말씀도 하고 책망도 하고 위로도 하시던 그 교제를 그만두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재를 철회하시겠다는 선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성실하게 된 것이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한 채 살고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임재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비극인지 알지 못한다. 당장은 살아가는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공급은 계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마치 앞에서 예로 든 그 남편이 가정을 향한 책임은 꼬박꼬박 이행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 삶의 도움이 되어 주시고 계속 내 필요를 채워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급이라는 것은 성도들 뿐만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계속된다. 하나님은 햇빛과 비를 의인과 불의한 사람에게,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에게 똑같이 주신다고 했다. 하나님은 이런 은혜를 누구에게나 주신다. 이런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총이 계속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것이 매우 비극적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반응을 보인다. 33:4절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그들은 슬퍼하기 시작했다. 참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표자였던 모세는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중보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제가 가나안까지 계속 이 백성을 이끌고 가려면 그렇게 하셔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그래야만 제가 다시 힘을 얻어 제 여정을 마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모세의 중보기도 내용을 자세히 보면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나와 함께 할 자를 보내주소서.
12절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다시 말하면 ‘하나님, 친히 우리와 더불어 못가시겠다는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 그러지만 누구라도 보내주셔야 그와 더불어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이 길은 저 홀로 가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길 아닙니까? 함께 할 자를 보내주옵소서.’라는 뜻이다. 모세는 그 누군가와 더불어 함께 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이 인생인 것을 알았다.
현대의 비극이 어디에 있는가? 인류는 공동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홀로 살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이웃들에게 무관심하다. 그리고 마치 이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지만 진실한 만남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롭다. 사람들은 인간 단절, 인간 소외의 비극을 경험하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다. 대학가에서는 동아리들이 제대로 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학생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기에 그렇다. 이는 컴퓨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하루종일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사람들과 만나서 노는 것이 시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인간에 대하여 실망을 경험하였으면서도 인간을 믿고 있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려면 동역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모세가 사내산에 올라가 율법을 받아오는 동안 모세의 동역자인 형 아론은 백성들을 충동질해서 우상숭배의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도하지 않았나? 그것은 모세에 대한 배신이었다. 이렇게 상처를 받았다면 ‘이제 내가 사람을 의지하나 보라.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살겠다’라고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모세는 여전히 인생은 홀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함께 할 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모세 곁에는 여호수아도 있었지만 나이가 어렸다. 11절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성경은 여호수아를 ‘젊은(청년)’이라고 했다. 히브리어로는 어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여호수아는 어렸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직 동역자가 될만큼 성숙하지 않아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함께 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이 직접 저와 같이 가지 않으시려면 누군가 정말 제가 신뢰하고 교제하며 동행할 수 있는 적합한 동역자를 보내주셔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생 길에는 이런 반려자가 필요하다. 동역자가 필요하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참 진실한 믿음의 이웃들, 형제자매들을 만나 그들을 통해 위로 받을 때 거기서 하나님의 위로를 느낀다. 그들을 통해 격려받으면서 하나님의 격려를 느낀다.
2.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13절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모세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았다. 하나님이 자기와 그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이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인생 길에는 확인이 필요하다. 모세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았다. 가나안까지 도달하는 동안 그 백성을 인도하시겠다는 약속도 잘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중간중간에 확인시켜 주지 않으면 쉽게 시험에 들 것이기에 모세는 ‘내가 주께 은총받은 사람이라는 징표를 보여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이는 사실 모세가 하나님을 시험한 것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을 금하셨다. 마 4:7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그러나 우리가 나쁜 동기가 아니라 좋은 동기로 시험을 위한 시험이 아니라 정말 좋은 동기로 하나님이 계신가 시험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시험하는 것은 허용하신다. 예들 들면 말 3:10절에 ‘한번 십일조를 해 봐라. 내가 축복하나 안 하나 시험해 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시험 당하시되 진노하지 않으신 예들이 성경에 많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기드온 같은 경우이다. 그는 세 번씩이나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과 요술게임하는 것처럼 ‘내가 이렇게 금 그어 놓을 테니까 양털 밖에만 마르고 이 안에는 마르지 않게 해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확신이 서면 그 다음에 나를 바치겠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래, 한번 해봐라’고 허용하셨다. 이렇게 기드온은 하나님을 세 번이나 시험하고 하나님은 그대로 응답하신 것을 우리는 사사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부부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을 알아도 그 사랑이 확인되지 않으면 멀어질 수 있다. 어떤 경상도 사나이가 결혼을 했다. 경상도 사람이 대체로 말이 투박하고 무뚝뚝하지 않나요? 그래서 첫날밤 신부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식의 간사한 말을 몬하는 사람인기라. 그러나 오늘 결혼했으니까 오늘밤 한번은 하겠다. 이 한번은 평생 유효한기라. 나 니 사랑한다.’고 했답니다. 신부는 기가 막혔다. 그런데 그 신부는 지혜로운 여자였던 모양이다. 남편에게 말하기를 ‘여보,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내게는 문제가 하나있어요. 매우 심각한 문제예요. 다른 문제는 없지만 무슨 얘기를 들으면 자꾸자꾸 잊어버려요. 그래서 당신이 그 말을 날마다 해주지 않으면 그 말을 잊어버려요’라고 했대요. 이처럼 우리 인간에게는 확인이 필요하다. 사랑의 확인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기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하셨다. 우리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신다는 그 임재의 징표를 알기 위해서 주 앞에 종종 이런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저를 기쁘게 여기시고 저를 사랑하신다면 그 징표를 좀 보여주세요. 그래서 험난한 인생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말이예요.’ 이런 기도 좀 하면서 살아가기 바란다.
3. 하나님의 기도응답입니다.
모세는 두 가지 기도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는가? 응답을 받았을까요, 못 받았을까요? 하나님의 응답은 신속하게 왔다. 신속한 응답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했기 때문이다. 참회했다. 이 중요한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33:4절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왜 몸을 단장하지 않았을까? 참회하느라 외부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의 반응은 어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한다. 목이 곧다는 것은 목이 뻣뻣하하는 것이다. 목이 뻣뻣하면 하나님이 쓰시기가 곤란하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쓰실 수가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하며 엎드린다. 자세를 낮추었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서 모세의 기도에 신속히 응답을 하셨다.
1) 내가 친히 가리라.
하나님께게서 마음을 바꾸셨다. 같이 하지 않겠다라고 하다가도 백성들이 참회하고 회개하면서 기도했더니 그 뜻을 바꾸어 같이 가기로 하셨다. 함께 할 자를 보내달라는 기도는 어떻게 되었나? 제3의 인물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셨나? 그냥 모세는 게속해서 아론과 여호수아와 함께 같이 간다. 아론은 변화되어 새로운 사람으로 모세와 동역한다. 여호수아는 좀 더 성숙해져 간다. 훗날 모세의 후계자가 될 만한 사람으로 성숙해 간다. 아마 하나님의 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바꿔 봤자 인생은 다 마찬가지다. 그냥 아론과 여호수아와 같이 가라.’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하면 종종 ‘한번 바꿔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 남자와 평생을 살아야 하나? 한번 바꿔봐?’라고 생각한다.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미국, 바바라 월터 - 저널리스트, TV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한 여자. 남편 - 기자, 컴퓨터 전문가, 이혼함. 남편 - ‘나에게 적합한 사람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살자.’ 그래서 여러 자료들을 소개받고, 컴퓨터나 통신 광고 등을 이용. 결국 자기와 가장 잘 맞는 여자 1위가 바로 이혼했던 바바라였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바뀌는 것이다. 내가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가 친히 함께 하리라 하시면 우리는 바꿀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서 함께 동역하게 하신다.
2)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편하게 하리라).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모세에게 응답하신 하나님의 첫째 약속은 ‘내가 친히 가겠다’라는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이다. 두 번째는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주께서 나와 더불어 같이 하신다는 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 임재 안에서 안식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어떻게 살기를 원하나? 무엇보다도 모세가 기도를 통해 하나님 임재의 회복을 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아가기를 구했으면 한다, 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와 안식 속에서 항상 승리하기를 바란다. (200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