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립식 가족>과 <We Wenny Has Wings>
최근에 <조립식 가족>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jtbc에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드라마인데, 현재 4화까지 나왔다. 주인공 윤주원은 어릴 때 엄마를 잃고 국수 가게를 하는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어느 날 주인공이 사는 빌라 위층에 아들 하나를 둔 가족이 이사를 왔다. 그 가족에게는 딸도 하나 있었는데, 사고사했다. 이 가족의 엄마는 죽은 딸을 잊지 못하고 술과 약으로 지탱하고 있다. 아빠는 강력계 형사였는데,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으로 이사 가서 살고 싶다는 부인의 뜻을 받아들여 시골로 이사를 왔고, 아마도 형사보다는 파출소 순경쯤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딸이 죽었을 때, 아들 산하가 함께 있었기에 딸의 죽음에 대해 당시 고작 일곱 살이었던 아들을 탓했다. 술과 약으로 간신히 숨만 쉬는 삶이라 이제 아홉 살이 된 아들을 보살피지 못하면서 아들이 웃거나, 아래층 가족과 어울리면서 밥을 먹는 꼴을 참지 못한다. 그 엄마는 결국 집을 나간다, 남편과 아들을 버려두고.
국수 가게 사장은 동네 주민의 주선으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여자와 선을 보게 된다. 그런데 윗집 오빠에게는 호의를 표하면서 계속 따라다니는 주인공은 막상 아빠가 재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자 강력한 거부 의사를 밝힌다. 자신에게는 (죽은) 엄마가 있기에, 새엄마는 필요 없고, 당연히 (의붓) 오빠도 원하지 않는다고. 재혼은 성사되지 않는다. 그런데 선을 봤던 여자가 돈을 빌려달라고 국수 가게 사장에게 전화한다. 놀랍게도 주원의 아빠는 돈도 빌려주고, 선을 본 여자의 아들이 걱정되어 집까지 찾아간다. 아이가 엄마가 돈 많이 벌어서 자기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며 해맑은 눈빛으로 컵라면을 자기에게 대접하려고 하자, 주원의 아빠는 엄마가 올 때까지 자기 집에서 지내자고 한다. 아이(강해준)는 국수 가게 사장에게 아빠라고 한다. 이 아이는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라는 존재가 없이 자랐다. 그래서인지 자기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주원의 아빠를 바로 아빠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엄마가 없는 세 아이를 거두며 주원의 아빠(국수 가게 사장)와 산하의 아빠(경찰)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가 <조립식 가족>이다. <조립식 가족>은 중국 후난성 TV에서 2020년에 방영된 <이가인지명>를 한국식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제목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가인지명>은 46부작 드라마여서, 빌드업이 천천히 되는데, <조립식 가족>은 16부작 예정이라 압축하여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조립식 가족>을 4화까지 본 후에 티빙으로 <이가인지명>을 8화까지 보았는데, <조립식 가족>의 각색이 매우 잘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릭터에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원작의 서사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한국의 문화에 잘 녹아들게 리메이크가 잘 되어 있었다. 적어도 4화까지는 그랬다. 드라마는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휴머니티가 뛰어나서 막내딸과 나는 연신 울면서 드라마를 보았다. 애초 <조립식 가족>을 보자고 한 사람도 막내딸이었고, 중국 원작이 있는 드라마인데, 중국 원작은 티빙에서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준 사람도 딸이었다.
동화 작가인 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조립식 가족> 얘기를 하게 되었다. 친구는 산하의 이야기에서 자신이 예전에 본 동화가 생각난다고 했다. 무슨 책이냐고 물었더니 <웨니에겐 날개가 있다(Wenny Has Wings)>라는 책이라고 했다. 알라딘에 접속해서 검색했더니 절판된 책이었다. 그런데 역자 이름이 너무 낯익었다. 부업으로 가끔(이라고 하기엔 좀 빈번하게) 책을 번역하는 친구의 이름이었다. 나는 번역한 친구에게 혹시 책을 구할 수 있냐고 톡을 보냈다. 친구는 오래전에 웃다가 울다가 하며 번역한 책이고, 자신이 번역한 책 중에서 가장 아끼는 책이라며 반색했다. 처음에는 한 권뿐이라 빌려준다고 하더니, 아버지에게 선물한 책이 그대로 있다고 나중에 만나서 주겠다고 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최근에 작고하셨다.
바쁜 일정이 끝나면, 읽을 책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 이미 줄 서 있는 책이 많지만, <웨니에겐 날개가 있다(Wenny Has Wings)>를 맨 앞에 둔다. 형제의 죽음에 책임감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어린 존재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왠지 첫 번째로 읽고 싶다. <조립식 가족> 5화부터는, 그리고 남은 <이가인지명> 역시 여유가 생길 때 몰아서 봐야 할 수 있다. 이것도 좋은 일이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좋은 드라마나 책을 보고 싶은데 막상 떠오르는 게 없는 것도 스트레스다. 사실 나에게 그런 일은 별로 흔치 않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읽어야 하는 책과 봐야 하는 드라마, 영화의 목록은 지구를 수십 바퀴 돌고도 남을 지경이다. <조립식 가족>은 추천할만한 드라마이다. <웨니에겐 날개가 있다(Wenny Has Wings)>는 읽고 나서 추천해야겠지?
첫댓글 글만 읽어도 따뜻하고 애틋한 내용일거 같네요. 날도 추워지는데 나도 이 드라마 볼래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어서 쓸까 말까 하다가 씁니당. 제목과 달리 본문에서는 계속 Wemmy로 나와용^^ 와, 근데 이 책의 번역자도 아시고 책도 얻으실 것이고, 그 관계의 범위가 참 넓으시네여~~~사소님도 글로리아님도 뮤즈님의 친구 ㅎㅎ
정말 중요한 부분을 피드백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