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 설경과 눈축제 2001.1.30 작년 이맘 때는 장거리 산행을 했다 하면 눈꽃산행을 하여 좋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눈이 적다. 지난 1월 20일 한라산을 올랐을 때도 정상에 눈이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역시 고산이라서인지 나무가지에 눈이 얼어붙어 그나마 경관이 괜찮았다. 금년들어 태백산행을 늘 생각하고 있던차 마침 눈소식도 있고 태백산 당골에서 눈축제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1월30일 거목산악회를 따라 눈구경을 하기로 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연락하니 한결같이 좋아했다. 아침 7시30분 양재역 서초구청 정문에서 만나기로-- 마침 이날 아침부터 눈이 오기 시작했다. 비록 가는 길 교통사정은 안 좋겠지만 산행시 눈이 오면 신나는 산행이 될 것이다. 눈 때문인지 예정보다 20여분 늦게 도착하였는데다 탑승장소가 많아 서울 시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45인승 버스가 만차가 되었다. 서울을 벗어나자 의외로 잘 달렸다. 산악회 안내에 의하면 11시30분 내지 12시경에 산행이 시작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제천으로 가기 전 국도에서 교통사고가 생겨 근 1시간반이나 차에서 답답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등산이 불가하리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길이 뚫혀 오후 2시경에야 유일사 매표소에 당도했다. 원래는 화방재에서 출발하여 주목군락지~장군봉~천제단~문수봉~당골 주차장의 10.5km코스를 예정했는데 도저히 시간내 산행이 불가하다고 주최측에서 코스를 단축했다. 유일사매표소에서 장군봉에 오른 뒤 천제단에 오른 후 망경사, 반재를 거쳐 단군성전, 눈 축제장인 당골로 내려오도록 했다. 8.4km로 축소했다. 날씨가 푹해서 그다지 춥지 않으리라 했지만, 산 정상 부근은 바람 세기로 유명한지라 특별히 대비를 해야 했다. 나는 특히 사진을 찍기 때문에 두꺼운 장갑과 핫팩을 준비하여 언 손을 녹일 수 있는 대비를 하였다. 얼마전 한라산 오를 때 이상하게 힘이 들었는데 오늘은 스타트가 좋았다. 내가 친구들을 가자고 제안을 해서인지, 힘든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처지라서 인지 무거운 베낭도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이젠을 하고 가니 편했다. 태백산은 그다지 가파른 데가 없는 초보자도 오르기 좋은 산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부지런히 올라 주목 군락지 근처에 오니 경치가 좋고 카메라를 꺼내는 횟수도 많아졌다. 카메라에 잡히는 경치가 모두 작품 전시회에 나온 작품 같다. 주목 고사목이 하늘로 치솟은 모습은 정말 멋진 풍경이다. 언제 보아도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는 명경이다. 주목 군락지가 시작되는 곳에 굉장히 큰 주목이 있다. 우리 일행은 너무 시장하여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바람이 적게 부는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장갑을 벗으니 손이 시리기 시작한다. 모두 보온 도시락을 꺼내고 새벽부터 부인들이 정성껏 사준 도시락 반찬을 꺼내 시장한 배를 채우기 시작한다. 너무 추워 반찬을 골고루 나누어 먹을 엄두가 안난다. 뜨거운 물을 마시니 좀 살 것 같다. 무엇보다 손이 곱아 젓가락질이 어려웠다. 더운 밥을 먹었는데도 밥을 먹고 나니 추위가 더한 것 같다. 바람이 점점 더세진다. 정상에 가까워 올수록 바람이 본떼를 보여주려는 듯 강해진다. 귀마개는 물론 입까지 마스크를 쓰고 아래만 쳐다보며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남극 대륙을 탐험하는 아문젠일행 처럼 보인다. 갈수록 경관은 좋아진다. 특히 금방 내린 눈으로 하얀 밀가루를 뿌려놓은 것 같은 고사목이나 기이한 형상의 주목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핫팩으로 손을 따뜻하게 덥히지만 손끝이 아릴 정도로 시려웠다. 카메라 때문에 장갑을 계속 벗기 때문이다. 주목군락지의 오래된 주목들 모두가 작품감이다. 고사목 또한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함께 절경을 이룬다. 드디어 장군봉 정상에 올랐다. 평일이라 등산객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정도로- 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을 쌓아 만든 3기의 제단이다. 태백산은『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기록에서 신산(神山)으로 섬겨져 제천의식의 장소가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천제단 역시 이런 제를 올리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북쪽 약 300m 떨어진 곳에 장군단과 남쪽 아래에 있는 이름없는 제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북에서 남으로 일직선상에 배열되어 있다. 유일사에서 오르면 먼저 장군단을 만나고 다음에 보통 천제단이라고 하는 천왕단을 만난다. 천제단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기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떤 때는 관리인이 있어서 제례를 지내는 일을 도운다고 하는데 오늘은 관리인이 보이지 않았다. 간단히 목례로 대신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몇년전 우리 중고교동창들이 단체로 이곳에 왔을 때 너무 추워 카메라 작동이 안되어 사진 한장 못남긴 기억이 난다. 그 때를 생각하며 추억에 잠겨본다. 천왕단은 2m 남짓한 높이로 자연석을 쌓아 남쪽으로 계단을 조성한 원형제단이다. 그 위에 4각 시멘트제단과 대종교에서 단군을 모신 장소로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세운 것으로 알려진 비석이 있다. 지금부터는 하산이다. 6시까지 하산하라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주변 경관이 너무 좋아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아름다운 풍경감상에 도취해 본다. 멀리 문수봉이 보인다. 작년도에는 저 문수봉을 들러서 험한 바위길을 다녀 갔는데-- 시간이 없으니 별 수 없다. 하산 길은 완만하여 눈썰매를 타는 코스이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 매우 지루한 코스이다. 경사가 있는 곳은 저절로 가속도가 붙어 속보가 된다. 모두들 평소 등산연습을 하는지 힘들지 않게 잘도 하산한다. 오늘 등산을 같이 온 산악회 멤바들을 보니 우리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많다고 약속한 시간을 어긴다든지 표나게 느린 행동을 보여선 안된다. 소위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천제단에서 가파른 하산길을 10여분간 내려오면 망경사 바로 위 산비탈에 단종비각이 서 있다.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혼이 백마를 타고 이곳까지 와서 태백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그를 기리기 위해 산신각을 짓고 산신각 안에는 단종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 망경사는 천제단 정상에서 10분정도만 내려오면 만날 수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지만 신라 진덕여왕 6년 (652년)에 자장(慈藏)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자장율사가 함백산 정암사(淨巖寺)에서 말년을 보내던 중 이곳 태백산 꼭대기에 문수보살 석상(石像)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암자를 짓고 그 석상을 모셨다고 한다. 그후 6.25전쟁 때 모든 것이 불에 타 옛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라곤 약수터 하나 뿐이다. 망경사 입구에는 용정(龍井)이라 쓰여진 흰색의 큰 비석이 아래에 수도꼭지를 메달고 있다.그러나 원래의 용정은 비석 바로 뒤쪽에 진하게 단청이 칠해진 용왕각 안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물이자 가장 맛있는 물로 명성이 자자한 명수다. 땅속에서 쉬고 있던 용이 하늘로 오른 자리에 물이 쏫았다 하여 용정이라 하고 이 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망경사 절 입구에 용정과 문수보살상이 있고 그 뒤로 요사채와 대웅전, 객사가 있다. 그러나 마당앞에 서면 저 아래로 당골 광장까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이 가히 일품이다. 망경사 구경을 하고 지루할 정도로 계속 하산을 하면 반재와 삼거리를 거치게 된다. 하산 하면서 미끄럼을 타서 눈길이 반질반질하다. 예전에는 미끄럼을 위해 포대를 빌려주는 일도 있었는데- 사실 바닥에는 돌이 있고 길도 바르지 않아 위험천만이다. 시간에 쫓기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맨 후미인 것 같아 마음이 바빴다. 모두들 점심도 굶고 가는지 보이질 않았다. 몇몇 여성분들이 우리와 같이 동행했다. 배낭에 꼬리표를 달아서 금방 일행을 알아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걸어서 이제 종점까지 불과 2.2km밖에 남지 않았다. 편한 길이 계속된다. 당골 3교,2교 1교가 차례로 나온다. 주변은 험준한 산이 우뚝 솟아 있다. 가끔씩은 하늘 높이 쳐다볼 필요가 있다. 주변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병풍바위, 촛대바위 등 기암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해가 지려는지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키가 하늘을 찌르듯 높은 나무들이 산위에 가지런히 정렬해 있다. 드디어 당골 부근에 가까이 온 모양이다. 단군성전이 보였다. 길가에 단군성전 표지석이 서 있고 오른 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성전이 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부리나케 계단 위로 올랐다. 국조 단군상 앞에서 잠시 목례로 예의를 갖추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냥 지나치기 쉬운 길가에 서 있는 태백산 석장승을 발견하고는 얼른 사진기에 담았다
드디어 목적지 당골에 다 온 모양이다. 눈 축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중앙에 축제무대가 있고 엄청나게 큰 눈조각품들이 서로 자기가 가장 멋 있다고 뽐내고 서 있었다. 매년 보는 광경이지만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몇몇 작품을 카메라에 담고 벌써 어둠이 깔리는 도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부지런히 걷는다. 목표시간이 6시인데 5시25분에 도착. 정말 대단한 시간단축이다. 3시간 20분만에 태백산 산행을 마치다니-- 당골의 온도는 -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상은 영하10도를 넘었을 것 같은데 바람이 많아서 실제 체감온도는 훨씬 낮았으리라 짐작된다. 아이젠괴 스패치를 풀고 차에 오르니 오늘의 바쁜 산행 스케쥴이 끝난 셈이다. 좀더 일찍 산행이 시작 되었다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산행을 즐겼을 것인데, 그래도 그나마 태백산 천제단에 올랐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1월의 산은 분명 태백산이라고 말하고 싶다. 친한 친구들과 같이 한 오늘 산행의 즐거움은 나의 등산일지에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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