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약속 / 조영안
아침 일찍부터 부산을 떨었는데 빠듯하다. 집을 나서는데 매섭게 부는 찬바람은 마음을 더 꽁꽁 얼어붙게 한다. 기차 도착 예정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행히 늦지 않게 순천역 앞에 도착했다. 마음은 급한데 역으로 올라가는 길을 헤매고 말았다. 사실 이곳에 와본 지도 십수 년 만이다. 막연히 올라만 가면 되겠지 싶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대형 주차장으로 가고 말았다.
역사를 못 찾겠다고 남편한테 전화했다. 막 웃기만 한다. "엉구 여사, 왜 그래? 시내버스에서 내려서 역을 향해 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럴 줄 알았더라면 돈 아끼지 말고 택시를 탈 걸, 뒤늦게 후회가 된다. 주위를 둘러봐도 지나는 사람 한 명이 없다. 정신을 가다듬고 큰 건물을 찾았다. 바로 앞에 조립식 건물이 보였다. 달려가 보니 찾아 헤매던 역이었다.
예전의 그 역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을 보고 그제서야 역이라는 실감이 난다. 학생한테 “기차가 어느 쪽에서 들어오냐?”고 물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면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다행히 아버지가 타고 오시는 열차는 도착하기 전이었다.
오늘은 아버지가 수술 후 처음으로 진료를 받는 날이다. 보름 전 ㅎㄴ병원에서 어깨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전과 당일에는 두 동생이 함께했지만 통원 치료는 병원과 가까운 데 사는 내가 맡기로 했다. 여든일곱인 아버지는 아직 젊은이 못지않다. 친정에서 여기까지 오는 교통수단은 기차가 유일하고 안전하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순천역에 아홉 시 반 도착이니 열 시 예약 시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다.
기차에서 내린 승객들 사이에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날도 추운데 환자가 환자 마중을 나왔구나.”하신다. 몸이 처져 있는 나를 보고 안쓰러워서 하신 말씀이다. “아버지, 그래도 아들, 사위를 대표하여 왔으니 걱정마세요.”라며 팔짱을 꼈다.
아버지와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큰딸이자 맏이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독차지했던 사랑은 다섯 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나도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고추밭에 터를 팔았다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내 생일날은 소금에 절인 간 갈치 한 마리가 새끼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할아버지 손에 들려왔다고 엄마는 내내 들먹였다. 아버지는 작은 체구지만 단단하고 깔끔한 차림새다. 팔짱을 해도 어색하지가 않다. 나이 탓인가? 예전에 엄하신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병원 진료는 잘 끝났다. 의사 선생님은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다며, 이제는 아프면 오라고 했다.
병원을 나서니 다시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온다. 이제 기차표 예매한 시간까지는 두 시간 남짓이 남았다. 순천역 앞에 있는 짱뚱어탕 전문 식당으로 갔다. 경상도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음식이라 장어탕을 두 그릇 시켰다.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아버지 입맛에는 영 아닌 모양이다. 오래된 식당이라 기대했는데 시원섭섭했다. 역으로 가면서 “허허, 너는 전라도 사람이 다 됐어. 나는 맵고 짜서 영 아니다.”하신다.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2층에 있는 승강장 의자에서 기다렸다.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를 가는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다. 창밖을 오가는 기차를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서운해진다. 아버지는 내 건강부터 먼저 챙기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이렇게 단 둘이서 오붓하게 앉아 서로의 건강을 걱정하다 보니 출발 시간이 다 됐다. “아버지, 저 때문에 울지 마세요. 젊은 데 뭘 걱정합니꺼? 아버지 건강만 잘 챙기세요. 아셨지예.” 그러고 슬며시 책 두 권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제가 쓴 글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책을 좋아하시는 줄은 알지만 내 글이 실린 책을 드린 적은 처음이다. “잘 읽으마. 글 쓰는 것도 건강해야 되는기라.”하신다. 다시 운동도 시작하고 병원도 잘 다닌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아버지 손을 잡았다.내가 아버지를 걱정해야 정상일 나인데, 그 반대라서 아버지 뵐 면목이 없었다.
기차가 들어오는 플래폼으로 내려갔다. 기차는 허망하게 떠났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아버지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매서운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첫댓글 선생님,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서울 다녀오느라 순천역도 갔다 와서 글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ㅎㄴ병원과 역이 가까운 것도 다행이구요. 아버님과 선생님 두 분 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병원까지 아시네요.
선생님, 저도 반갑습니다. 지난 학기는 쉬었어요.
허리 통증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눈앞에 있는 역을 못찾고 헤매었답니다. 지금은 많이좋아졌어요. 선생님, 함께 열심히 쓰게요.
이제는 선생님 건강을 잘 챙길 일만 남았네요.
함께 문학기행 가게 꼭 건강 챙기시기 바랄게요.
아자아자!
선생님, 고맙습니다. 치료받고 있어요.
선생님 엄청 반갑습니다. 하하. 여전히 글도 좋으세요.
저도 반갑습니다. 이렇게 글쓰기 공부를 하지 않으면 더 힘든 것 같아요. 열심히 하게요.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몸 잘 챙기시며 사시길 바랍니다.
네.
반갑습니다.
지난 해 2학기 공부못한 걸 많이 후회했답니다.
건강도 챙기면서 열심히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