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개혁주의> 삼송제일교회 정대운목사의 갈라디아서 강해 중 율법주의에 대한 설교 입니다.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1.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할 수록 무서워집니다. 왜? 율법주의니까.
--> 좋은 일을 하는 사람 중 자기 의를 드러내며 율법주의에 빠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좋은 일을 하면 할 수록 무서워지고.. 그것이 율법주의라는 주장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2. 자기 삶의 철학을 가지면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것이고 율법주의 인가요?
3. ”나는 약속 장소에 10분 전에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인생에 가치관입니다. 나는 목사님들에게는 이렇게 목사님들한테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럴 때 물어볼게요.예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시는 거예요? 중보자는 어디 계십니까? ---> 이 질문에 무엇이라 답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4. 스마트폰을 하게 되면 율법적으로 당장 하지 마! 공부해! 하지 마! 공부해! 라고 계속적으로 율법! 율법! 율법!해! 하지 마! 해! 하지 마! 이거 율법이잖아요. --> 해! 하지마! 하는 것이 율법인가요?
5. "저는 원래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나 귀하게 쓰셔서 저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셨는데 그건 게으름이에요. 게으름" --->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가 게으름 일 수 있나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면 게으름의 은사를 주시는거에요?
6. 나머지 부분들은 영상 또는 녹취록으로 확인해 보시지요.
* 하나님의 교회에 바른 설교가 선포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무서워 집니다. 왜? 율법주의니까.
제가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제 인생의 철학, 이것도 자기 의를 드러내고 있는 거거든요. “나는 내 인생의 철학은 항상 사람을 만나기 전에 10분 전에 약속 장소에 나가는 것이 나의 인생의 철학입니다.나는 10분 전에, 모든 약속의 10분 전에 나가 있는 것이 나의 인생의 철학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여러분들 계시지요.
그런데 ”내 인생에서 내 가장 중요한 나의 철학 중에 하나는 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 10분 전에 약속의 장소에 나와 있는 것이 내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럴 때 물어볼게요. 중보자 예수님이 어디 계십니까? 이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 마음을 가질 때 어디 계시냐고요. 또 이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성도들하고 이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불신자하고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아무 차이없어요.
제가 처음 말씀드렸죠. 율법주의는 교회 안에 얼마든지 많다고…. ”나는 약속 장소에 10분 전에 나와서 기다리는 것이 나의 인생에 가치관입니다. 나는 목사님들에게는 이렇게 목사님들한테는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인생의 철학입니다.“ 그럴 때 물어볼게요.예수 그리스도는 어디 계시는 거예요? 중보자는 어디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목사님을 그렇게 따뜻하게 섬기는 거하고, 불교 신자들이 스님을 따뜻하게 섬기는 그 마인드의 차이는 어디 있는 거예요? 없잖아요. 불교는 분명하게 중보자 없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기독교는 중보자 있이 살아가야 되는데 둘 다 마음이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자기들이 율법주의인 걸 꿈에도 모릅니다. 꿈에도 몰라요. 자기는 잘 산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는 참 반듯하게 산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의 철학은 참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 앞에서 저는 저는 약속한 10분 장소에 전해 나와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늦어본 적이 없습니다.“라는 사람하고 약속 한번 잡아볼 때 여러분 어떤 마음이 들어요?
덜덜덜덜 떨려요.아이고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이거 아이고 큰일 났네. 내가 최소한 5분 전에 나가야 되는데 그런데 아이고 5분 지났네. 약속장 약속 시간 5분 지났네.
그럼 여러분 딱 어떤 마음이 든 줄 알아요? 그 사람 딱 만났을 때 저 사람이 나 속으로 욕하겠지. 저 사람이 속으로 나 욕하겠지.
겉으로는 오셨어요. 라고 하지만 속으로 너는 나를 배려하지 않았어. 너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 너는 나를 배려하지 않았어.너는 나를 배려하지 않았어. 나한테 왜 그런거니? 그렇게 저 사람이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여러분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율법주의는 두려운 거예요.
그런데 앞에 있는 사람이 자기 삶의 철학도 없어요. 철학도 없고, 늦게 와도 관심도 없고, 지가 또 늦고.... 약속을 딱 정했습니다. 야~ 빨리 가야 되는데… 어어!! 정대운목사는 원래 좀 늦어. 마음이 얼마나 편해요? 여러분 마음이 얼마나 편합니까?
저랑 약속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종종 지각을 합니다.또 늦게 오고… 그런 건 별로 관심도 없어요. 늦게 와도 괜찮아~~ 나는 그때 책 읽으면 돼. 나 유튜브 보면 돼. 괜찮아. 아무 때나 와. 그럴 때 얼마나 편하게 가겠습니까?
그런데 “저의 인생의 철학이 10분 전에 기다리는 거예요.” 여러분 오다가 너무 긴장해 가지고 사고 납니다.
제가 간단한 예를 들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자의 관념없이 여러분의 의를 딱 세우잖아요. 율법주의에요. 그거 어디가나 두려움을 유발시킵니다. 어딜가나 두려움을...
또 하나 봅시다. 만약에 우리 성도들이 얼마나 그리스도 믿어도 아무런 그리스도를 적용할 수 없는 게 뭐냐면 자녀들이 만약에 스마트폰을 하고 있어요. 스마트폰을 하게 되면 율법적으로 당장 하지 마! 공부해! 하지 마! 공부해! 라고 계속적으로 율법! 율법! 율법!해! 하지 마! 해! 하지 마! 이거 율법이잖아요.
여러분 부모님들 불교신자 부모하고 그리스도인 부모와의 차이가 뭡니까? 똑같아요. 우리는 표면만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런데 그것도 바울을 죽이려고 했던 유대주의자들도 예수 믿었어요. 그런데 율법주의예요
이왕 예수 믿는거, 이왕 예수 믿는거 남들에게 보란 듯이 남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남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중보자 없이 스스로 결정하면서 중보자 없이 스스로 의를 세울려고 하면서 불신자와 똑 같은 마음으로 의를 딱 기준을 세워 놓으면 여러분 주변 사람들은 여러분 때문에 버들버들 떨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원래 하나님께서 저를 너무나 귀하게 쓰셔서 저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셨는데 그건 게으름이에요. 게으름.
그래서 저는 이미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왜? 항상 늦게 가므로 내 앞에 온 사람은 나 때문에 해방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거죠.
내가 모든 죄는 내가 짊어지고 갈 테니 다 내 앞에 온 사람들은 나 때문에 만연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 왔어요. 특별한 은혜가 있어 가지고 특별한 은혜가 있어 가지고 아주 모든 사람을 내가 구원해주는 구세주가 되어 가지고 왜? 맨 마지막에 선생님 죄송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36살 먹은 우리 노처녀 선생님한테 대나무로 허벅다리를 60대나 맞았습니다. 왜? 지나치게 지각을 하니까... 매번 늦으니까 그래서 제가 속으로 그랬어요. 그 60명 학생들을 보면서 니네들의 희생의 재물이 나다 이러면서 맞았죠. ㅎㅎㅎ
여러분들이 한 번 경험해 보면 알겠지만 여러분은 누구에게 위로를 받습니까? 반듯한 사람에게 위로를 받습니까? 여러분보다 못 한 사람 때문에 위로를 받습니까?
.
.
내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은 옥동자였어요. 쟤도 사는데.. 쟤도 사는데.. 장동건이 내 마음을 위로한 적은 없어요. 옥동자, 무를 가져와 걔. 이런 애들이 우리 마음에 위로를 주지... 응?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개입되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개입되지 않은, 내가 직접적으로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곳에는 율법주의가 따라 오게 되어 있다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이 율법주의는 의외로 전지구상에 처음부터 가인부터 지금까지 이 율법주의는 지금까지 버젓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는거에요
이 원리를 알지 못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야~ 라고 말하게 되면은요 모두가 율법주의에 있으면서 자기가 율법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할 방법이 없는거에요 .
첫댓글 전혀 논리도 안맞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내용은 성경적이지 않고....
본인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까요?
이해가 쉽지 않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