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임꺽정과 고석정
강원도 철원군에 고석정(孤石亭)이 있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 때 세웠다고 알려진 정자로, 고려시대 충숙왕(忠肅王)이 노닐었다고도 전한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 무렵에 모두 소실되었다.
현재의 고석정은 1971년에 새롭게 건립한 것이다.
고석정은 원래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고석정이 소재한 인근 지역의 솟아 있는 바위와 현무암계곡까지 모두 포함해서 일컫기도 한다.
철원군 지역에서도 경관이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으로 현재 강원도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주위를 한탄강(漢灘江)이 흘러 아름다움을 더한다.
철원군에서 전해지는 설화에는 고석정이 임꺽정[林巨正]이 ‘은거했던 곳’, ‘무술을 연마했던 곳’이라고 한다.
임꺽정은 ‘임거정(林巨正)’ 또는 ‘임거질정(林居叱正)’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중기 양주 출신의 백정으로 알려져 있다.
임꺽정은 비록 천인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인물이 출중하며, 날쌔고, 용맹하였다.
무술에도 능통하였다고 한다.
임꺽정 태어난 시기가 여러 해 동안 흉년이 이어지고, 지방 및 중앙 관리들의 수탈이 심할 무렵이었다.
임꺽정은 자신의 신분으로 출세하기 어렵고, 당시의 시대상황도 어지러워 도적의 무리를 조직하였다.
처음에는 몇 명이 모여 만든 도적떼였지만, 나중에는 황해도까지 세력을 확장해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임꺽정은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 관아들을 습격해 획득한 물건들을 일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백성들은 임꺽정을 의적(義賊)이라 불렀다.
특히 임꺽정은 고석정 건너편에 돌을 모아 석성을 쌓고, 함경도에서 조정으로 상납되는 조공을 약탈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임꺽정을 체포하려 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 보낸 토포사(討捕使)들이 수차례 임꺽정을 보고 활로 쏘아 잡으려고 하면, 그럴 때마다 꺽지[우리나라 토종 물고기로 쏘가리와 비슷하게 생김]로 변해 고석정 아래에 흐르는 한탄강으로 들어갔다.
임꺽정이 몸을 숨기던 곳이 고석정 인근의 암벽 동북쪽 정상부에 위치한 석굴이다.
임꺽정이 평상시에는 석굴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토포사들이 습격하면 강물 속으로 들어가곤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임거정을 ‘임꺽정’ 또는 ‘임꺽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의적설화
성호 이익(李瀷) 선생은 임꺽정을 홍길동, 장길산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도둑’으로 손꼽기도 하였다.
임꺽정은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도망다니며, 3년 이상 잡히지 않았다.
1562년 황해도 구월산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해 사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역사에는 ‘잔혹한 도적’이라 기록되어 있지만, 철원군에서 전해지는 설화 속에서는 관리들의 재물을 빼앗아 어려운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물론, 임꺽정이 철원군 고석정에 머물렀다는 기록은 없다.
벽초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서도 고석정에 임꺽정이 은거했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철원군 사람들은 임꺽정이 고석정에서 활동했다고 믿고 있으며, 꺽지로 변해 한탄강 물속에 지금도 살아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