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축복되게 하는 헤아림
2024. 5. 26(주일낮예배) 데살로니가전서 5:21-22
경제잡지에 실린 재미난 이야기이다. 인디아나주 노틀담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있었다.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이 청년은 겉모양만 보고 선택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청년은 부모님의 많은 유산이 있어서 그것으로 사업을 하려 하였다. 그래서 휴스턴에서 부동산 사업을 하는 것과 보스턴으로 가서 은행에 투자하는 것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던 청년은 휴스턴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부동산투자를 하였는데, 휴스턴의 부동산이 곤두박질쳐서 가진 돈을 다 잃게 되었다.
그 후 청년은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으로 열심을 다하여 돈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을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애플이라는 컴퓨터 회사에 투자하는 것과 융자회사에 투자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때 청년은 이상한 회사 이름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서 융자회사에 투자하였다. 그런데 그해 금융사업이 도산하는 바람에 청년은 다시 빈털털이가 되었다.
크게 낙심한 청년은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청년은 유나이티디 항공권과 이스턴 항공권중 하나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때 청년은 이스턴 항공권을 구입하고 다음날 공항으로 가보니 이스턴 항공이 파산하여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던 청년은 마침 고향으로 가는 2인승 경비행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정하여 경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폭풍을 만나 추락하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조종사와 청년은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렸는데, 청년이 멘 것은 낙하산이 아니라, 배낭이었다고 한다. 청년은 결정하는 것마다 실패하여 죽게 된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선택과 결정은 이 청년과 다른가? 열왕기하 5장은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열왕기하 5장 1절을 읽기 바란다.
(왕하 5: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나아만은 아람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구원할 수 있을만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왕이 인정하여 줌으로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진 나아만은 나병환자였다.
나아만에게 나병은 축복이겠는가? 저주이겠는가? 나아만은 나병에 걸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소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나아만은 나병에 걸렸기 때문에 소녀의 말대로 엘리사를 찾아간다. 그래서 나아만은 엘리사의 사환이 시키는대로 요단에 일곱번 몸을 잠금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 요단에 몸을 일곱번 잠그었다는 말은 수레에서 내려야 했고, 또 왕의 신하를 증명하는 옷도 벗어야 했다. 그래서 수치의 나병을 온 신하들 앞에 드러내어 놓고 물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수치를 다 드러낼만큼 간절했던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낫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나아만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지 않는다. 나병이 나은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와서 자신이 준비한 은 십달란트(4억 2천)와 금 육천개(64억 7천만원)와 의복 열벌을 내어놓고 그것을 받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리사가 거절하자 나아만은 노새 2마리에 실을 흙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아만은 왜 흙을 달라고 하였는가? 왕하 5장 17절-18절을 읽기 바란다.
(왕하 5:17-18)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가지고 가서 제단을 쌓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만 섬기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람의 왕이 림몬을 섬기러 갈 때에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은 함께 갈 수 밖에 없고, 또 왕이 림몬을 섬길 때 자신도 섬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만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겠지만, 어쩔 수 없이 림몬의 신상 앞에 절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아만은 하나님도 섬기고, 또 림몬도 계속해서 섬겼겠는가? 열왕기하 6장을 보면 아람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하여 신복들과 의논(왕하 6:6)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이야기에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왕이 나오고, 또 엘리사도 나온다. 그리고 아람왕도 나오는데,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왜 나아만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은퇴한 이재철 목사님은 나아만은 자신이 체험한 구원의 하나님을 버릴 수 없어서 아람왕과 함께 림몬신전에 가서 절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붙잡기 위하여 군대장관이라는 이름과 왕의 총애를 다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고 말씀한다. 그렇게 하나님 한 분만을 선택한 나아만은 나병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러분은 삶의 고난과 아픔이 나아만과 같은 은혜의 통로가 되고 있는가? 신학교에서 설교학 시험을 치는데 한 학생의 설교내용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그 설교를 계속 읽던 교수님은 그 설교는 자신이 쓴 설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학생을 불러서 남의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죄라고 책망하였다. 그때 학생은 다른 사람의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교수님의 설교가 너무 좋아서 설교학 시험 때 사용한 것이다고 설명하였다. 그 말을 들은 교수님은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표절하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좋은 설교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을 아주 훌륭한 것입니다.
그 후 교수님은 학생에게 좋은 학점을 주었다고 한다. 교수님이 그 학생에게 좋은 학점을 준 이유는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오늘 본문은 종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이 쓴 편지이다. 당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이 종말에 기근이 있을 것이다고 예언하였는데, 팔레스타인에 큰 흉년이 든 것을 보면서 종말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글라우디오 황제가 자신을 신격화 하고 있었는데, 이것도 종말의 한 현상으로 보였다. 그랬던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회가 가진 가장 큰 관심은 2가지였다. 먼저 한가지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다 먼저 죽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자신이 살아있을 때 예수님이 재림할 것을 믿고 있었는데, 재림을 기다리다 먼저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종말에 대한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가진 질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앞둔 성도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오늘 본문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오늘 본문을 읽기 바란다.
(살전 5:21-22)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여기서 좋은 것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전반부에 나오는, 피차 권면하여 덕을 세우고(11절), 또 형제들이 서로 화목하고(13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고 악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오래 참고(14절),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고(15절), 항상 기뻐하고(16절), 쉬지 말고 기도하고(17절), 범사에 감사하는(18절) 이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는 악은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불화를 만들고, 게으른 자를 칭찬하고, 힘없는 자를 멸시하고,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한 모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헤아려(δοκιμάζω) 라는 단어를 살펴보아야 한다. 헤아려라는이 단어는 보석감별사가 순금을 얻기 위하여 금을 끓이다가 불순물이 나오면 과감하게 버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하여 선을 지키기 위한 과감하게 악을 버리는 것이 헤아려 라는 단어의 의미인 것이다.
이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다.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는 내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 수 있나? 내가 이러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시는 우리 주님께서 나를 인정하는 그 행동을 하고 있는가를 헤아리는 것이다. 이것이 말세를 사는 성도의 삶인 것이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헤아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2012년 소설가 이외수가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로 존버 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존버는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존경받는 그 날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 존버라는 단어는 증권시장에서 간간히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투자한 것이 크게 손실이 났지만, 수익이 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존버는 승리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증권전문가들은 무작정 묻어놓고 기다리는 존버 정신이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무작정 버틴다고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난 가운데 선과 악을 헤아리는 헤아림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헤아림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고난 가운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그러한 헤아림을 하는 성도는 고난이 축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신앙은 성숙하여지고, 마지막 날에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고난 가운데 헤아리는 신앙으로 주님을 다시 뵈옵는 날을 준비하며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