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이야기 2
닭의 문화사와 민속설화 속의 닭 이야기
한국에서의 닭은 이미 신라 시조설화와 관련되어 등장하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알지의 탄생 담에 의하면 신라왕이 어느 날 밤에 금성 서쪽 시림 숲 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호공을 보내어 알아보았더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 궤를 가져와 열어 보니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이 아이가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설화를 보면 닭은 이미 사람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중국 명나라 이시진와 [본초강목]에서 "닭의 종류가 매우 많아서 산지에 따라 크기와 형태. 색갈에 차이가 있는데, 조선의 장미계는 꼬리가 3~4척에 이르며 여러 닭 중에서 가장 맛이 좋고 기름지다" 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닭의 모습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고구려 무용총 천장벽화의 주작도로부터 긴 꼬리를 가진 닭을 연상할 수 있다.
<동의 보감>에서는 붉은 수탉[단웅계] 흰수탉[백웅계], 검은수탉[조웅계], 오골계로 나누어 각각의 효험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원일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서 닭은 액을 막는 수호초복의 동물로 나타나고, 정월 들어 첫 유일을 <닭의 날>이라고 하여 이 날은 부녀자의 바느질을 금하기도 하였다.
또한,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서 울음소리가 귀신을 쫓는 벽사의 기능을 가진다고 하여, 닭이 제때에 울지 않으면 불길한 징조로 여기고 있다.
닭에 관해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 <산 닭 길들이기는 사람보다 어렵다> <촌 닭 관청에 간 것 같다> 등의 속담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닭의 보편적 속성과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암탉, 수탉, 산닭, 촌닭 등으로 세분되어 다양하게 나타난다.
닭에 관련된 민요로는 의령, 김해 등지의 <닭 노래> 또는 <닭 타령> 등이 존재한다.
주작(朱雀)
주조(朱鳥)라고도 한다.
고대 중국에서 하늘을 별자리에 따라 크게 다섯으로 구분하여 오관(五官) 또는 오궁(五宮)이라 하였는데, 그 중 동서남북의 4관 중 남관(南官)을 다스리는 신이다.
이 4개 구분은 사륙(四陸)으로도 불리며, 나머지 하나는 하늘의 북극을 중심으로 하는 중관(中官)이다.
동서남북의 각 관에는 7수(宿, 또는 舍)씩 28수가 배치되어 각각 동방칠수·서방칠수·남방칠수·북방칠수로 불리는데, 주작이 거느리는 남방칠수는 정(井)·귀(鬼)·유(柳)·성(星)·장(張)·익(翼)·진(軫)이다.
사기』 천관서(天官書)에서 “남궁은 주조(南宮朱鳥)”라고 하였고, 『예기』 곡례편(曲禮篇)에는 “앞에는 주조, 뒤에는 현무, 왼쪽에 청룡, 오른쪽에 백호(前朱鳥而後玄武 左靑龍而右白虎)”라 하여 4개 방위의 신을 그린 깃발이 배열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청룡은 동방, 백호는 서방, 현무는 북방의 신이다.
붉은 봉황을 형상하여 예로부터 무덤과 관(棺) 앞쪽에 그렸다.
가장 먼저 일어나 새벽을 알리는 닭은 불교에서 깨달음의 주체 또는 덕성을 가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돼 왔다.
닭은 꼿꼿한 닭벼슬 같은 당당함, 모이를 먹을 때 혼자 먹지 않고 다른 닭을 불러 함께 먹는 인정스러움,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시간을 알리는 성실함 등 세 가지 덕성을 지녔다고 전해져 내려왔다.
민간에서는 수호초복의 기능이 있어 정월원일에 호랑이와 닭 그림으로 액을 물리치고, 상원일에 새벽에 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풍년이 든다고 전해져 왔다.
이런 상서로운 이유로 옛날 절에서는 닭을 많이 키웠다.
또 닭은 지네와 천적관계로 이들이 절에 있는 지네를 없애는 역할을 해왔다.
닭에 관한 옛 설화 하나. 황해도 장연군 계림사에는 지네의 변괴로 승려들이 하나둘씩 죽임을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의 지시로 흰 닭을 키우면서 이와 같은 변괴가 사라졌다고 한다.
경전이나 불교사에서 보이는 닭의 이미지는 깨달음이다.
본생담 ‘수탁의 전생이야기’ 편에 따르면 부처님이 전생에 수탁으로 태어난 닭을 잡아먹은 매를 훈계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증일아함경에는 “미래세계에 미륵이라는 이름의 부처가 출현하는데 그 나라는 계두왕(닭의 왕)이 다스리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서산대사의 오도 일화 유명
“나무 군다리보살 마하살” 〈천수경〉에 나오는 대목이다.
보배병을 들고 있으며, 일체 고액을 제도해 주는 일을 맡아서 자비를 펴는 보살이다.
이 군다리보살(軍茶利菩薩)은 별나라마다 혼란을 일으키는 악마들을 무찌르고, 선을 지키는 보살인데 바로 닭의 신이다.
악마를 지키다가 깜빡 조는 순간에 들이닥친 악마들이 인간 세상을 혼란케 하고, 악마 행위를 자행케 했기 때문에 큰 칼을 빼들고 지상에 내려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 닭신이 된 것이다.
따라서 닭은 군다리보살의 화신인 셈이다.
마귀와 전쟁을 치르다 보니 분노에 잘 휩쌓이고 성질이 급하다.
하지만 그 마귀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숨어있는 탐 진 치 삼독심이다.
군다리 보살은 바로 삼독심에 빠져 고통 받는 중생들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수호신인 것이다.
그래서 닭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나태와 방일(放逸)과 한치의 타협도 없이 싸우는 불굴의 정신일 것이다.
12간지 중에서 닭인 유신(酉神)은 쇠몽둥이를 들고 닭 머리에 사람 몸둥아리 모습의 진달라(眞達羅)다.
고대 인도의 귀신 ‘야차’가 불교속으로 편입돼 불교와 불보살을 수호하고 나약한 인간을 보호하는 수호신장이 된다.
특히 야차는 약사여래의 권속으로 12대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중국의 도교와 결합한 12간지다.
진달라는 나쁜 왕이나 강도 등의 고난으로부터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는 원을 가진 신이다.
특히 닭 울음소리는 오도의 기연(機緣)으로 불린다.
서산대사의 깨달음의 순간은 이를 잘 나타낸다.
서산대사가 지리산 암자를 전전하며 정진하던 중, 큰 의문에 부딪혀 울증(鬱症)에 빠져 있었다.
하루는 친구를 찾아보려고 어느 마을에 내려갔는데, 낮닭이 홰를 치며 크게 울었다.
순간, 대사는 의문이 풀리면서 확연히 깨닫고 다음의 오도송을 남겼다.
‘머리칼은 희어도 마음 안 희다고/ 옛 사람은 누설한바 있거니와/ 이제 외마디 닭 울음소리 들을작시면/ 장부의 할일 모두 마쳤어라.’
닭의 해는 기유(己酉), 신유(辛酉),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순으로 12년마다 돌아온다.
닭은 십이지지(十二地支)의 열 번째 동물이다.
달로는 음력 8월, 시간상으로는 오후 5~7시, 방위는 정서(正西)를 나타낸다.
십이지 동물은 고대 중국인이 그때그때 활동하는 동물을 들어 시간을 나타낸 것이다.
온종일 먹이를 쫓던 닭이 둥지에 들어가는 시간이 바로 오후 5~7시다.
정유년은 ‘붉은 닭의 해’라고 불린다.
10천간(天干) 중 갑(甲)ㆍ을(乙)은 청색, 병(丙)ㆍ정(丁)은 적색, 무(戊)ㆍ기(己)는 황색, 경(庚)ㆍ신(辛)은 백색, 임(壬)ㆍ계(癸)는 흑색을 상징한다.
이런 연유로 지난해 ‘붉은 원숭이의 해’에 이어 올해는 ‘붉은 닭의 해’가 되는 것이다. 붉은색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특별한 의미는 없다.
◇ 긴 세월 친숙한 동물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닭을 사육한 것으로 보인다.
‘후한서’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특산물을 열거하며 “꼬리가 긴 닭이 있는데 꼬리가 다섯 척이나 된다”고 했다.
‘삼국지’ 동이전에는 “세미계(꼬리가 긴 닭)가 나는데 그 꼬리의 길이가 모두 다섯 자 남짓 된다”고 적혀 있다.
닭은 긴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해 온 동물이었다. 우리 문화 속에 닭과 관련한 풍속과 놀이, 유물이 많았다.
우리 전통을 보면 혼례에서는 청홍 보자기에 닭을 싸서 상에 올리고, 식이 끝나면 폐백용으로 사용했다.
닭이 다산과 부활을 상징하는 길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국가 제사인 종묘 제례에서는 닭의 형상이 새겨진 술잔을 사용했는데, 이는 선왕의 위엄과 신성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전통 놀이 가운데는 한 발로 뛰며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닭싸움도 있다.
닭은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동물로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역할도 했다.
신라 시대 왕릉이나 불탑의 탑신 등에는 용맹스럽게 무기를 들고 있는 닭 조각을 볼 수 있다.
음력 정월의 첫 닭날인 상유일(上酉日)과 관련된 풍속도 재미있다.
이날 부녀자가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해서 금기시했고, 제주도에서는 이날 사람들이 모이면 싸움이 난다며 모임을 열지 않았다.
전남 지역에서는 이날 닭이 곡식을 헤치면 흉년이 들거나 재산이 흩어진다고 여겨 마당에 곡식을 널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 깨우는 울음소리 "꼬끼오~"
중국 신화에서는 바닷속 도삭산(度朔山)의 거대한 복숭아나무에 살면서 태양이 비출 때 아침을 알리는 "꼬끼오~" 소리를 내는 천계(天鷄)가 있다.
천계의 울음소리를 신호 삼아 이 세상 모든 닭은 차례대로 울음으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도삭산은 귀신의 소굴로, 귀신들은 첫닭이 울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는 것이 옛날 얘기다.
닭은 새벽의 고요함을 깨뜨리는 청아한 울음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옛날 닭의 울음은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일을 예고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수탉이 새벽에 홰를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간밤에 마을로 내려왔던 맹수들이 산으로 돌아가고, 잡귀가 모습을 감춘다고 믿었다.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는 “닭은 광명을 가져다주는 빛의 전령일 뿐만 아니라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 본풀이 서두에는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가 개벽하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닭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기도 하지만 바로 세상의 시작도 닭의 울음소리에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조상들은 닭의 울음소리를 통해 시간을 가늠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고려 왕궁에서는 자시(子時)와 축시(丑時), 인시(寅時) 등 우는 시각에 따라 닭을 일명계(一鳴鷄), 이명계(二鳴鷄), 삼명계(三鳴鷄) 등으로 나눠 불렀다.
닭 울음소리는 아침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자명종이자 살아 있는 시계였던 셈이다.
닭이 제때 울지 않으면 불길한 일이 생긴다는 속설도 있었다.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생기고, 해가 진 뒤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