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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장파(長派)"라는 표현은 종종 쓰이는 말입니다. "장파(長派)"라는 낱말은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습니다. 그 뜻은 "맏아들의 갈래"라고 나와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 보기로 합시다.
| 6세 | 7세(子) | 8세(孫) | 9세(曾孫) | 10세(玄孫) | 11세(5代孫) |
| 訔(평도공) | 葵(참판공) | 秉鈞(판관공) | 䃞(승지공) | ①琛(사직공) | 장파(長派) |
| | | | ②璡(가선공) | 중파(仲派) |
| | | | ③珩(참판공) | 계파(季派) |
여기서 "長派"라 함은 승지공(휘 숙䃞)의 장자(長子) 사직공(휘 침琛)의 후손 계열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직공(한 분), 또는 승지공과 사직공(두 분), 또는 판관공ㆍ승지공ㆍ사직공(세 분)만을 별도로 모아서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8세 판관공 종중에서는 이런저런 편의를 위해서 후손들을 장파, 중파, 계파로 구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남일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 13세(子) | 14세(孫) | 15세(曾孫) | 16세(玄孫) | 17세(5代孫) | 18세(6代孫) |
| 東燾(온양공) | 垓(호군공) | 世冕(첨추공)取 | 泰定(금창부위)繼 | ①弼明(大憲公)取 | 장파(長派) |
| | | | ②弼英(감찰공?) | |
| | | | 이하 생략 | |
남일공 묘표에서 말하는 "長派" 역시 적장자 다섯분만 별도로 모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금창부위의 장자(長子) 대헌공(휘 弼明)의 입후자(立後子)인 문헌공(휘 師洙)으로 이어지는 계열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允中님께서 예로 제시하신 "長派"라는 말은 문정공 묘비문(『세적편』)에 나오는 "嫡派"라는 표현과는 사실상 별로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다시 말해서, "長派"라는 말이 있으니 같은 의미로 "嫡派"라는 말을 쓸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즉 <"長派"가 곧 "嫡派"와 같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역으로, "嫡派"를 "長派"의 뜻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음). 다시 바꾸어 말하면, "長派"와 "嫡派"의 의미가 각각 "嫡長"의 의미와 일치하는 합동 관계(長派≡嫡派≡嫡長)를 이룬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嫡派"라는 말은 "서파(庶派)"라는 말의 대립적 표현으로 사용할 수는 있겠으나, 적장(嫡長) 줄기 몇 분만 모아서 "嫡派"라고 집단화하는 것은 올바른 표현 방식이 아니라고 봅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적파(嫡派)"를 "정실의 자손들로 이루어진 계통"으로 정의하고 반대말을 "서파(庶派)"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적장(嫡長)"은 "정실에서 난 맏아들과 맏손자"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終
추기1:
참고 삼아 "嫡長"이 들어간 표현 몇 가지를 봅시다.
적장안(嫡長案): 적장자(嫡長子)ㆍ적장손(嫡長孫)을 수록한 문안(文案).
적장충의(嫡長忠義): 공신(功臣)의 적장자ㆍ적장손으로서 충의위(忠義衛)에 소속된 사람.
공신적장(功臣嫡長): 공신(功臣)의 적장자ㆍ적장손. 나라에서는 이들 가운데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을
해마다 1월과 7월 2회에 걸쳐 무관 체아직(遞兒職)으로 뽑았는데, 이렇게 뽑힌 사람들은 재직(在職)
108일 후에 승급되나 그 품계는 정삼품에서 그쳤다고 함.
추기2: ※※※
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어 적어 둡니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적파(嫡派)"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님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한한대사전』을 살펴보면, "적파(嫡派)"를 '혈통상의 종손(宗孫) 계통'이라고 정의해 놓은 것이 발견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漢語大詞典』의 '指家族相傳的正支'를 국어로 옮겨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 용례로 다음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水滸傳》第二二回:“我只聞江湖上人傳說滄州橫海郡柴大官人名字,說他是大周皇帝嫡派子孫。”明湯顯祖《牡丹亭·訓女》:“內有夫人甄氏,乃魏朝甄皇后嫡派。”"
그런데 위의 용례에서 "嫡派"가 과연 오로지 "嫡長"만을 가리키는지는 의문입니다. 첫번째 예에서, "說他是大周皇帝嫡派子孫"을 '그는 대주 황제의 적통 후손이라 한다'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고, 두번째 예에서도 부인(夫人) 견씨(甄氏)가 위(魏)나라 견황후(甄皇后)의 '嫡長'이라 해석하기보다는 '적계(嫡系) 후손' 쯤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합니다.(註: 大周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여황제로 집권하면서 당(唐)나라 국호를 잠시 폐지하고 서기 690년에서 705년까지 약 15년간 사용한 국호입니다. 학계에서는 '무주(武周)'로 부릅니다.)
한편, 『中文大辭典』에서는 "嫡派"를 "正系也"로 정의하고 그 용례로 앞에서 인용한 <訓女>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大漢和辭典』에서도 "嫡派"를 "正系"로 정의하고 역시 <訓女>의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正系"는 다시 "정통(正統)"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바른 혈통(血統)', 즉 적통(嫡統)ㆍ적계(嫡系)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동아백년옥편』에는 "嫡派"를 '가계(家系)에서 정실의 계통. 嫡統(적통)'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서파(庶派)'와 대립되는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필자는 이 정의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즉 嫡派는 세대별 嫡長 1인을 따로 모아 그 몇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는 적계(嫡系)로 이어지는 자손들을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보충: "嫡派"가 "庶派"[또는 서류庶流]의 대립 개념으로 사용된 예는 다음 실록 기사와 승정원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조실록 정조1년(1777년) 3월 21일 기사: <命兩銓講究疏通庶類之方, 著成節目。 . . . . . 吏曹進節目。 . . . . . 一, 庶孽稍進仕路之後, 或因嫡派之孱弱, 有壞亂名分之罪, 繩以以孽淩嫡之律。> (양전(兩銓)에 명하여 서류(庶類)들을 소통(疏通)시킬 방도를 강구하여 절목(節目)을 마련하라고 하였다. . . . . 이조에서 절목을 올렸다. . . . . . 1. 서얼이 점차 사로(仕路)로 나온 뒤에 혹 적파(嫡派)가 잔약하게 된 것으로 인하여 명분(名分)을 괴란(壞亂)시키는 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서얼이 적자(嫡子)를 능멸한 율(律)로 다스린다.) ※양전(兩銓): 이조와 병조. ※이 절목을 '정유절목(丁酉節目)'이라 함.
승정원일기 영조 27년(1751년) 3월 12일 기유 36/39 기사: . . . . . . 且臣於庭試親臨時, 伏承下敎, 則大王子孫嫡派勿限代數, 庶派限九代勿定軍役, 親承聖敎, 而亦不出擧條, 以此知委各道, 何如? 上曰, 大王姓孫嫡派, 勿限代, 庶派限九代事, 申明, 可也。. . . . . (“또 신이, (上께서) 정시(庭試)에 친히 임하셨을 때, 삼가 하교를 받들었사온즉, 대왕의 자손 중 적파(嫡派)는 대수(代數)에 제한을 두지 않고, 서파(庶派)는 9대까지로 한정하여 군역(軍役)에 정하지 않도록 하라는 성교(聖敎)를 직접 받들었으나, 또한 이를 거조(擧條)에 내지 않았습니다. 이를 각 도에 알려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대왕의 성손(姓孫) 가운데 적파는 대수에 제한을 두지 말고, 서파는 9대까지로 한정한다는 일을 거듭 밝혀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 ※거조(擧條): 임금의 하교나 명령을 공식적인 조항으로 기록하여 시행하는 절차 또는 항목.
끝으로, 본 논의의 핵심은 문정공 묘비문에 나오는 문제의 글자가 "派"자가 아니라 "長"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뜻과는 별도로) "嫡派"가 아니라 "嫡長"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묘비문 탁본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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